제124화. 배신의 화살
본진에서 출발한 3만의 조선군 기마대는 명군이 사용하지 않은 북쪽의 도강 예상지 두 곳을 통해 요동으로 진입했다.
아울러 ‘덫 줄 당기기’를 시작하라는 소식을 품은 전령이 제물포에서 상해로, 또 합비로 달렸다.
이틀 후, 그 소식이 합비에 머물고 있던 누르하치에게 닿았다.
일전에 방문했던 이항복과 합의한 일련의 작전 중 하나인 ‘덫 줄 당기기’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명나라의 정동군을 조선군과 후금군이 양쪽에서 요격하여 괴멸시키는 작전 계획이었다.
그것의 실행에 대해 수하들과 논의하던 누르하치에게 한 젊은 장수가 물었다.
“칸. 만약 우리가 조선이 아니라 명과 손을 잡는다면 어찌 되는 겁니까?”
“명과?”
“예. 명과 손을 잡고 조선을 치면 우리 조상들의 땅을 저들에게 내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순간적으로 누르하치의 장수들이 모여 있던 장소에 욕심이 휘몰아쳤다.
기름진 중원의 땅도 얻고, 조상들로 부터 물려받은 본거지도 보존할 수 있다면······.
잠시의 갈등 끝에 누르하치가 물었다.
“만들어 볼 수 있겠나?”
누르하치의 물음에 후타이라 불리는 젊은 장수가 일어섰다.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젊은 장수들 사이에서 제법 신뢰도 있고, 가장 두드러진 전공을 세우던 이다.
거기다 제법 머리도 돌아가고 임기응변도 좋아서 누르하치도 신임하는 장수였다.
“후타이. 좋다. 가라. 가서 명나라의 황제에게 내 뜻을 전하고 일을 만들어오라!”
“예. 칸!”
군례를 올린 후타이가 곧바로 막사를 빠져나갔다.
누르하치가 쏘아올린 배신의 화살이 후금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그것을 알지 못했던 조선군 기마대 3만은 철수하는 명나라 정동군 소속 보군들을 멀리서 추격하고 있었다.
사면초가에 몰려있던 명나라의 입장에서 후금의 제의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현재의 점령지를 인정한다는 후금의 조건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만력제는 흔쾌히 수락했다.
조정의 대신들이 만류했지만 그것을 약속하는 협정까지 맺어 후타이를 돌려보냈다.
만력제의 입장에서 땅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안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황제의 모습에 대신들이 절망어린 표정을 지었다.
수십 년을 태정으로 일관하다 기껏 피난 나와 한다는 짓이 나라를 팔아먹는 짓이라면 한탄하는 대신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석성을 비롯한 몇몇 대신들이 그 협정을 뒤엎을 간계를 조심스럽게 마련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들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문제는 그런 일련이 일들이 남창에서 벌어지고 있을 때 조필은 공교롭게도 남창에 있지 않았다.
명나라가 혼란해지면서 무역에 문제가 발생하자 유럽 상인들이 포르투갈을 앞세워 강력하게 항의를 해왔던 것이다.
자칫 명나라의 혼란을 이용해 유럽 열강들이 포르투갈의 무력을 앞세워 개입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 질것을 걱정한 조필이 서둘러 해결을 위해 마카오로 향했던 것이다.
그로인해 조선은 명과 후금이 뒤에서 배신의 칼을 맞잡았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
후타이가 만력제와의 협정서를 들고 돌아오자 후금군은 곧바로 움직였다.
조선과 합의한 덫 줄 당기기를 위해서는 3만의 병력을 북상시키기로 했지만 누르하치는 1만의 병력만을 합비에 남겨두고, 5만의 병력을 이끌고 북상했다.
그렇게 북상하는 후금군에는 정동군과의 연계위해 보내진 명나라 금군 장수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후금군의 계획은 간단했다.
덫 줄 당기기 작전계획에 의해 조선군과 합류한 후, 명군을 공격하기 직전 칼을 거꾸로 잡고 조선군을 급습한다는 것이었다.
거리를 주면 조선군의 화력에 밀려 대규모 피해만 입고 패퇴할 것을 우려한 작전이었다.
또한 그러한 형태의 작전은 조선군에게 커다란 혼란을 야기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을 터였다.
물론 후금군 혼자 그런 위험을 떠안을 생각은 없었다.
자신들이 칼을 거꾸로 잡는 순간, 명나라의 정동군이 돌진해서 함께 조선군을 격파하도록 소식을 전할 생각이었다.
물론 자신들처럼 딴 생각을 먹을지 모를 명나라를 압박하기 위해서 2만의 기마대를 직접 거느린 누르하치가 명군 배후에 진을 치고 있기로 했다.
믿음을 저버린 이의 작전은 그렇게 배신을 하며 배신을 걱정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정이 안전한 거리라 판단한 보군의 철수 거리는 3백리(약118Km)였다.
일반적으로 보군의 하루 진군 거리는 대략 60리(약 24Km)정도다. 강행군을 통할 경우엔 80리(약31Km)를 가기도 하지만 전투행위를 위한 보군의 체력을 감안하면 강행군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시대의 전투가 대부분 칼과 창 등 살수무기를 온힘을 다해 휘두르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전투 전에 체력의 보존은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기동은 재빠른 퇴각이 목적이어서 정동군 소속 보군 6만은 강행군을 통해 하루 80리씩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 정동군 소속 보군부대로 후금군과 함께 북상한 명나라 금군 장수들이 찾아왔다.
그들에게서 후금군과 함께 손을 맞잡고 조선군을 격파하기로 했다는 황제의 칙서를 받은 정동군 소속 보군 장수들은 곧바로 그에 대한 준비를 갖췄다.
더 이상 퇴각할 필요가 없으니 체력을 회복하고, 전투 준비를 갖출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명군을 추격하고 있던 조선군 척후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한시라도 바삐 내려가야 할 명군이 느닷없이 대낮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고 전투준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행동이 벌어지기 직전에 소수의 기마대가 명나라 보군에 합류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척후대 지휘관은 곧바로 전령을 보내 해당 소식을 멀리서 추격중인 조선군 기마대 본대로 전했다.
정동군 소속 보군들의 뒤를 추격하던 조선군 기마대의 지휘관은 남간도 제1기동 병단장을 맡고 있던 투삼구였다.
그가 선임지휘관으로 3만의 기마대 전체를 지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척후대 전령의 보고를 받은 그가 기마대의 전진을 중단시켰다.
투삼구가 존경해 마지않는 신인, 아니 태왕은 자신이 본대를 출발할 때 두 번, 세 번 강조했다.
<정찰을 등한시 하지 말라. 아니다 싶고, 이상하다 싶으면 두 번 생각지 말고 정찰을 강화하라. 그것을 위해 비행대를 배속시키니 최대한 활용하여 적정을 살펴야 할 것이다.>
그 말을 투삼구가 충실히 따랐다. 곧바로 배속되어 있던 비행대장을 불렀다.
“여기서도 비행이 가능한가?”
“시간만 주신다면 가능합니다.”
이동 상태에서 비행 준비를 갖추자면 3시간가량이 걸렸다. 반대로 비행을 끝낸 후 다시 장비를 수납해서 이동 상태로 변형하는 것에도 거의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비행대장으로부터 그것을 설명들은 투삼구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는 정중이고, 아직 해가지려면 오랜 시간이 남았다. 3시간이 필요하다지만 충분히 해가 남아있는 시간에 비행이 이루어져 정찰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이내 투삼구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좋아. 즉시 실시해.”
투삼구의 명을 받은 비행대장이 복명했다.
“예. 장군.”
군례를 올린 비행대장이 나가자 투삼구는 장수들을 불러 모아 상황을 전파하고 명군의 의도를 파악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말했다.
3만의 조선군 기마대가 주변 경계를 강화하며 벌판에 머물렀다.
그러는 사이 비행대가 준비를 갖춰 열기구를 띄웠다.
최대높이인 4천척까지 올라간 열기구에서 비행대원들이 망원경으로 저 멀리 남쪽에 치우친 명군을 정찰했다.
한 번에 열기구에 탑승하는 비행대원은 3명이다.
1명은 풍화로라 불리는 코크스 난로와 풍로가 결합된 장치를 운영하는 운영병이었고, 2명은 정찰병이었다.
그런 정찰병들 중 한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거······. 기마대 아니야?”
그 말에 또 다른 정찰병이 물었다.
“어디?”
“저기, 남쪽, 저 강 이름이 뭐더라······. 아! 요하(遼河). 요하 바로 앞에.”
동료 정찰병의 말에 서둘러 망원경을 움직인 또 다른 정찰병도 놀란 음성을 토했다.
“맞다. 기마대! 근데 너무 멀어서 깃발 식별이 어려운데.”
“깃발이 무슨 소용이야. 저 정도 규모면 명군은 아니지.”
“그럼······. 후금군?”
“그래. 함께 작전을 펼친다던 그들 같다.”
그제야 상대를 파악한 정찰병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던 그때 문제의 기마대가 분화를 시작했다.
일단의 무리는 북상을 시작한데 반해 일단의 무리는 뒤에 그대로 남은 것이다.
“본래 작전이 양동작전이었나?”
“그렇지 북에서 우리가 밀고, 밑에서 후금군이 치받는······. 근데 쟤들 왜 움직이지?”
“경로가······. 명군을 우회해서 우리 쪽으로 올 기센데?”
서로를 바라본 정찰병들이 상황을 적은 전서를 넣은 지급통을 열기구와 지상을 연결한 밧줄에 걸어 내려 보냈다.
급한 상황을 지상으로 보낼 때 사용되는 지급통이 밑에 달린 무게추의 무게로 빠르게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지급통을 회수한 비행대에서 곧바로 투삼구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했다.
“후금군으로 보이는 대규모 기마대가 둘로 나뉘어 기동 중인데, 그 중 하나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다?”
“예. 장군.”
비행대장의 답에 투삼구의 시선이 다른 장수들에게로 돌려졌다.
“무슨 꿍꿍이 같아?”
“여진 놈들 속을 어찌 알까? 일단 대비해야지.”
그 말을 던진 호정이도 남간도 출신으로 십년 전만해도 여진인이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장수들의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모여 있는 이들의 절대다수가 여진인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을 여진인이라 생각지 않는다. 자신들은 자랑스러운 조선인이었으니까.
“좋아. 호정이 말대로 움직이자. 3대로 나누어 1대가 저들을 맞고, 2대가 좌측, 3대가 후방을 맞는다. 자칫 적으로 돌변하면 내가 지휘하는 1대가 저들을 막는 사이 2대가 뒤로 돌아 후미를 친다. 3대는 둘로 나뉘었다는 후금군의 별동대에 대비한다. 이견 있나?”
자신의 물음에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자 투삼구가 말했다.
“그럼 가자.”
“후!”
남간도 출신 기마대 특유의 함성을 지른 장수들이 신속하게 흩어졌다.
조선군의 편제는 전단, 병단, 단, 대, 오로 나뉘어있었다. 어떤 병력을, 어떻게 나누어도 그 편제는 유지된다.
3만의 조선군 기마대도 마찬가지다. 6개의 병단에서 차출되었다고 해도 기본 편제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 편제에 따라 병단장이 단장에게, 단장이 대장에게, 대장은 오장들에게 명령을 전파했다.
순식간에 명령이 최상부에서 말단에까지 전파되고 3만의 기마대가 단시간 만에 3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거리를 벌렸다.
장전을 끝낸 기마총을 꺼내기 좋게 말에 묶인 총갑의 고정 고리를 풀어둔 기마대원들이 저마다 휴식을 취했다.
말위에서 무슨 휴식이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남간도 출신 기마대원들은 말위에서 먹고 자기도 한다.
심한 경우엔 행군 중 잠을 자기도 한다. 말들이 한곳으로 뭉쳐 따라가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말위에서 자도 말은 제대로 군열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과거 그 모습을 발견한 한 해외 5도 출신 기마대원이 물은 적이 있었다.
잠을 자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런 위험한 일을 하냐고?
그 물음에 대한 남간도 출신 기마대원의 답이 가관이었다.
말위에서 잠이 들었다고 말에서 떨어진다면 그건 남간도 출신 기마대원이 아니다.
그것에 해외 5도 출신 기마대원이 다시 물었다.
그럼 뭔데?
싱긋 웃은 남간도 출신 기마대원이 답했다가.
그냥 얼자 새끼지.
그 답을 던져놓고 크게 웃었다던가.
그럴 만큼 남간도 출신 기마대원들은 말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다.
그 사이에도 비행대의 정찰은 계속 이루어졌다.
지속적으로 후금군 기마대의 이동 방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야간 비행도 결정되었다. 지상의 깃발신호로 그것을 확인한 비행대원들이 야간의 추위에 대비해 솜옷을 추가로 입었다.
해가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쯤이 되어서야 북상한 후금군 기마대가 조선군 기마대 1대가 전진해 자리한 지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합류이전에 전령을 보내 자신들이 덫 줄 당기기를 실행하기 위해 북상한 병력임을 밝혔다.
그들을 1대와 함께 투삼구가 맞아들였다.
사위가 어두워진 탓에 3만의 기마대를 이끌고 온 후금군 장수들은 조선군의 규모가 예상보다 작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