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덫 줄 당기기
상해에서 돌아온 조필은 만력제와 명나라 조정에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아무래도 조선이 후금과 모종의 거래를 진행 중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였는가?”
만력제의 물음에 조필이 답했다.
“조선의 사신은 우리 명과의 협의에 뜻이 없어보였습니다. 그저 시간이나 끌다 돌아갈 요량으로 보였기에 소신이 지난 정리를 들먹여 물었더니······.”
“물었더니?”
“헛힘을 쓰지 말라고, 그리고 구멍 난 배에서 지금이라도 내려 서둘러 조선의 품에 안기라고······.”
“구, 구멍 난 배!”
그것이 명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아차렸기에 되읊는 만력제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런 만력제에게 조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여 소신이 혹시 후금과 모종의 거래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답이 없이 그저 웃기만 하였습니다.”
조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신들이 조선을 성토하는 소리들로 소란을 떨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한순간 그렇게 소용도 없는 소한이 지나가자 석성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하면 조선과 후금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을지는 알아보지 못했소?”
“그에 대해서는 전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만?”
“감히 구멍 난 배 어쩌고 한 것으로 보아 저들이 명을 협공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리 사료됩니다.”
“혀, 협공!”
여기저기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서로 손발을 맞춘 것이 아님에도 조선과 후금을 상대함에 명의 국운이 위기에 처했음인데, 거기다 그 두 나라가 합을 맞춰 명을 공격하면······. 결과는 뻔했다.
그 탓에 만력제를 비롯한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의 침묵 끝에 만력제가 석성에게 물었다.
“병사들을 더 끌어 모을 수 있겠소?”
“지금도 병사들은 모으고 있사옵니다. 하나, 열을 모으며 여덟, 아홉이 도망하여 그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훈련은커녕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후금군과의 전투에 내몰린다는 소문이 온 나라 안에 파다하게 퍼진 까닭이었다.
그 탓에 끌려가면 죽는다는 인식이 깊게 뿌리내려 징집당하면 어떻게든 도망하려는 이들로 가득했다.
그런 징집병들을 도주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파견된 금군들조차 도망하는 탓에 전혀 통제가 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금군들도 허접한 농민군들과 함께 하면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석성의 말에 만력제의 표정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그런 만력제에게 몇몇 신하들이 권했다.
“이젠 수가 없사옵니다. 서둘러 정동군과 방해군을 불러들여 일전을 결하오소서. 폐하.”
“그렇게 하소서. 그들을 불러들여 저 간악한 조선과 불충한 후금에 철퇴를 내리소서. 폐하.”
“그리하소서. 폐하.”
신하들의 말에 만력제의 시선이 병부상서인 석성에게로 향했다.
“되겠는가?”
“전령은 보낼 수 있겠사오나, 그들이 움직일 수 있을지는······.”
“움직이지 않으면 황명을 어긴 죄로 대역죄로 다스린다 하시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폐하.”
“그리 하소서. 황명을 내리시어 감히 어기지 못하게 호소서.”
자신의 말을 끊고 나서는 대신들의 주장에 석성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그들이 떠나려는 것을 조선군이 그냥 내버려 둘리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석성은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저리 청하는 대신들도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님을 아는 까닭이다.
그만큼 명이 사면초가에 빠져있었다. 전선에서 적군과 마주하고 있는 군대를 불러들여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입을 다문 석성에게 만력제가 속히 정동군과 방해군을 남창으로 불러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그것에 허리를 숙이는 석성을 보면서 함께 고개를 숙인 조필의 입가로 섬뜩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이항복이 후금에게 삼분지계를 설명했던 것과 다른 행보를 조필이 명나라 황제와 조정 대신들에게 보인 것은 상해에서 만난 이항복을 통해 전달된 광해의 뜻 때문이었다.
광해는 삼분지계가 시작되기 이전에 명나라의 군세를 줄일 것을 희망했다.
특히 압록강변에 집결해 있는 방이정동군, 흔히 정동군이라 불리는 병력은 반드시 괴멸시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척가군을 비롯해, 다수의 정예군이 포함된 정동군이 무사히 귀환했을 경우 방해군과 합해 30만에 달하는 대군을 갖게 되는 명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조선은 계속해서 상해와 홍콩에 대규모 병력을 진주 시킬 수 없었다.
자칫 소수의 주둔군을 남기고 조선군이 철수한 직후, 명이 엉뚱한 짓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군이 정동군과 단독 결전을 벌이는 위험부담을 않을 생각이 광해는 전혀 없었다.
승리는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죽어나갈 조선군의 피해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광해는 지속적으로 명 측에 압력을 가해 명 조정이 정동군을 불러들이는 상황을 만들고, 그렇게 철수하는 정동군을 후금군과 연계하여 괴멸시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계획은 사람이 세우되 성사는 하늘이 결정 한다던가?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고 있었다.
*****
황제의 전령을 받은 방해군 총병 마림이 장수들을 모아놓고 황명을 전했다.
황명이 전해졌음에도 그것에 따라야 한다고 나서는 장수들이 아무도 없었다.
황명대로 자신들이 퇴각을 개시한다면 홍콩에 잔뜩 들어서 있는 조선군이 어찌 나올지는 눈앞에 펼쳐진 그림을 보듯이 뻔했던 까닭이다.
그런 장수들에게 마림이 물었다.
“어찌 생각하는가?”
총병의 물음에도 답하는 장수가 없었다. 아니된다하면 황명을 대놓고 반하는 일이 될 것이고, 따르자고 했다간 모두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장수들의 모습에 마림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 뜻이 그대들과 같다. 하나 이것을 황상께 전하는 것만으로도 대역죄가 되는 것이니······.”
마림의 걱정에 한 장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령은 혹시 돌아갔습니까?”
“답을 받아 간다고 기다리고 있다.”
마림의 답에 그 장수가 칼 손잡이를 굳게 움켜쥐고 일어섰다.
“소장이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순간 좌중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전령을 죽여 없애, 자신들이 아예 황명을 받은 일이 없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듣지 못한 장수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전령이 머무는 막사로 향하는 동료 장수를 누구도 나서서 막지 않은 것이다. 총병인 마림조차도.
그렇게 한 전령의 죽음을 끝으로 방해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방해군과 달리 정동군은 곧바로 반응했다.
돌아가야 한다는 총병 유정의 결심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자신들이 퇴각할 때 조선군이 그냥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동군은 압록강이라는 방어기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조선 땅을 밟기 위해선 압록강을 건너야 했듯이 조선군도 요동으로 넘어오자면 압록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용해 조선군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일단 발이 느린 보군부터 철수시킨다. 기마대가 뒤에 남아 허장성세를 꾸미고 있다가 보군이 일정 거리를 벌리면 곧바로 퇴각하면 조선군은 단시간 안에 추격해 올수 없을 것이다.”
유정의 말에 장수들도 동의 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수들의 동의를 받은 유정의 명으로 정동군의 퇴각이 시작되었다.
이때까지 살아남아 있었던 동이군의 병력은 8만. 그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6만의 보군이 차례차례 퇴각하기 시작했다.
*****
과거 완도해전의 패배 원인에 대한 연구가 수군에서 심도 있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완도 일대에 매복해 있던 왜군 함대의 존재를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착으로 지적되었다.
그로인한 정찰 자산에 대한 개선 요구가 있었다.
수군은 그것을 탑재 연락선의 개량을 통해 속도와 항속능력을 증가시킴으로써 해결 하려 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해당 보고서를 접한 광해는 일련의 정찰 자산 확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장원의 개발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상당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광해와 장원의 창의개발부에서 내놓은 결과물은 열기구였다.
대형 천과 코크스를 연료로 하는 난로와 풍로를 결합한 장치를 열원으로 삼은 열기구는 초보적인 형태였다.
이것은 실제역사에서 몽골피에 형제가 최초로 열기구를 성공시킨 것보다 거의 백년 이상 빠른 결과였다.
물론 광해는 열기구를 통한 비행까지는 욕심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열에너지를 공급하는 장치의 신뢰도가 아직은 낮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밧줄로 연결해 안정성을 확보한 열기구를 4천척(尺) 높이까지 하늘로 올리는 데는 성공했다.
이것은 현대 도량형으로 1천2백 미터 상공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뜻했다.
그렇게 성공한 열기구로 광해는 한 가지 특수부대를 만들었다.
바로 비행대였다.
10명의 비행대원과 50명의 정비병, 그리고 40명의 경비대로 구성된 이 부대에는 3대의 열기구를 장비하고 있었다.
또한 그 열기구와 부속장비들, 그리고 병력을 수송하기 위한 20대의 마차로 구성되어 있었다.
육군 총사부는 이 비행대를 1개 병단에 1개씩 배치하길 희망했고, 광해는 그 계획을 승인했다.
그로인해 비행대 수립계획이 발동되어 병사들의 훈련과 장비의 수급이 진행되었다.
해전의 패전 보고를 바탕으로 연구되어 개발된 열기구였지만 아직 수군에는 배치되지 않았다.
함상에서 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현재 시험이 진행 중이었지만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실전 배치는 명과 충돌 직전에 이루어졌는데 훈련을 끝마친 2개 비행대가 압록강변으로 집결한 함경 제1 기동병단과 경기 제1 기동병단에 각각 배치되었다.
장원의 시험 평가 운용에서도 증명된 것이었지만 열기구의 고도와 망원경이 결합된 비행대의 정찰 능력은 꽤나 믿을 만 했다.
열기구의 특성상 기상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그저 높이 올라가는 것만이 목표였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모두 운용이 가능했고, 정찰 효과도 상당해서 실전부대의 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물론 사고의 위험은 상존했다.
아직 실전 배치 부대에서 사고가 난적은 없었지만 장원의 평가 운용 기간에는 두 차례 사고가 발생해서 타고 있던 시험요원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비행대 훈련 때 그 사고들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받은 까닭에 비행대원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안다.
해서 비행대원들은 임무에 나설 때면 그것이 마지막 일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그래서인지 임무에 나서는 비행대원은 열기구에 탑승하기 전에 손톱을 깎고, 머리카락을 잘라 넣은 유서를 남겨두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처럼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 비행에 나선 비행대원들도 마찬가지로 유서를 남기고 열기구에 탑승했다.
그렇기 열기구와 함께 공중으로 올라간 비행대원의 망원경이 순차적으로 철수하는 명군의 모습을 목격했다.
다행스럽게 무사히 귀환한 비행대원의 보고를 받은 광해는 곧바로 작전 계획 ‘덫 줄 당기기’를 시작하라는 명을 내렸다.
광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9개 병단이 집결 되어 있던 조선군 군영에서 차출 된 3만의 기마대가기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