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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8화 (28/325)

제28화. 동성진 전투 (1)

광해군의 군대가 함흥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열흘이었다.

그사이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김억수가 대었다.

그로인해 선전 내에서 말들이 많이 나왔다.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벌어질 대행수 선출에서 김억수가 아닌 자가 대행수에 뽑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김억수는 광해군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만 했다.

그 상황에 걱정이 된 조필이 광해군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비용을 줄일 방법을 만들어보자고 했지만 김억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은 쓰려 함인데 나라를 위해 쓸 수 있다니 망설일 것이 무엇인가. 하물며 이 일이 잘되면 돈을 벌수도 있다지 않은가.’라 말해 조필을 놀라게 했다.

그건 분명히 돈만 밝히던 이전의 그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여하간 그런 김억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함흥에 무사히 도착한 광해군의 군대는 그곳에서 부상을 치료중인 이순신의 부대와 합류했다.

광해군은 임금에게 사전에 허락을 얻은 관직인 별시위 별장의 관직을 주어 이순신에게 군대의 지휘권을 맡겼다.

이로서 광해군의 군대는 오위 중 좌위에 속하는 중앙군의 한 조직이 되었다.

물론 기존의 별시위랑은 다르다는 의미로 북위별시위란 명칭을 달았다.

북쪽을 지키는 별시위란 뜻이었다.

별시위 자체가 왕실을 지키는 사병의 개념이 강했다.

오죽하면 조선 초엔 권세 있는 가문의 자손들만 들 수 있었을까.

여하간 그렇게 선조는 이들을 왕실을 지키는 하나의 패로 삼았다.

성공한다면 빛나는 방패가 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거친 북방의 땅에 버려지는 패가 될 것이었다.

그런 북위별시위는 이순신과 이억, 김수, 그리고 살아남은 고참 노비군. 아니 이젠 면천되어 양인이 된 이들의 교육을 받았다.

면천 된 이들이 떠나지 않고 남은 것은 그들에게 광해군이 한 또 다른 약속 때문이었다.

<이번 전쟁에 참여한다면 살아남든 죽든, 가족들을 면천시켜 주겠습니다.>

광해군의 약속에 살아남은 노비군 중 진중을 떠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그들의 노력으로 북위별시위는 단련되어가고 있었다.

***

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8월 말.

북위별시위의 병사들이 함흥 군영에 벌여 섰다.

철포군 1천5백, 승차총통병 1천, 가형 소총병 1천, 화차병 1백, 그리고 살수 9천과 기마병 5백, 총 1만3천1백으로 이루어진 대부대였다.

북위별시위는 그 큰 부대 규모만큼이나 대량의 화포로 무장되어 있었다.

철포 1백문, 조선철포 2백문, 승차총통 1천문, 가형 소청 1천정, 사전총통화차 10문, 신기전 20문을 보유했다.

그 많은 무기를 옮길 수레만 2백여 대가 동원되었다.

북위별시위가 함흥을 떠난 것은 8월의 말일.

그리고 그들이 북진해 종성 앞 두만강을 건넌 것은 조선의 추수가 마무리되어가던 9월 7일 이었다.

그때까지도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여진족의 무리는 회령 인근의 번호인 니탕개의 무리 3만이었다.

그들 속엔 5월에 종성을 공격했다가 실패한 율보리의 무리도 끼어있었다.

당연히 자신들의 본거지인 종성 인근으로 진출한 조선군의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율보리의 설득에 니탕개가 지휘하는 여진족 무리 3만이 동성진 벌판에서 북위별시위의 앞을 가로막았다.

벌판에서 마주 한 양 측은 2천보의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북위별시위는 3백문의 철포를 길게 방열하고 그 앞에 4천의 살수를 4열 횡대로 세우고, 다시 그 앞에 1천의 승자총통병을 배치했다.

아울러 살수 2천을 철포 뒤에 세워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으며 각기 1천의 살수들을 좌우, 그리고 후면에 세워 여진족의 배후 기습에 대비했다.

그에 대응한 여진족은 참여한 열여덟 개 부족으로 나누어 서되 전원이 기마병인 이점을 활용해 돌격이 원활한 형태로 섰다.

특히 우측으로 돌아 적의 후미를 칠 율보리의 기마병 3천을 별동대로 꾸려 조선군의 시야에서 감추었다.

싸움은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율보리의 기마대를 위해 해가 정중에 걸린 점심나절까지 기다린 여진족의 도발로 시작되었다.

여진족도 훈융진과 종성 전투를 거치며 조선군 화포의 무서움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활지에서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도 종성 전투에서 체득했다.

그래서 여진족은 넓게 펼쳐 전면적으로 도발해 왔다.

대략 3천씩 9줄을 만들어 줄줄이 밀어닥치는 전략을 세웠다.

여러 부족이 연합한 전력이었던 터라 세세한 작전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오로지 전진 돌격만을 상정한 전략이었다.

유일하게 세밀한 작전이라면 인근의 지리를 잘 아는 율보리가 지휘하는 3천의 기마대가 크게 우회하여 조선군의 후미를 들이치기로 한 것뿐이었다.

넓게 흩어져 섰지만 돌격 초기 조선군 화포에 상당한 수가 죽어나갈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진족의 족장들은 전사들에게 옆에서 달리던 동료가 죽어도 신경 쓰지 말고 달려 조선군에 들이닥치라고 말해두었다.

한마디로 빠른 기동력과 상대적으로 우위인 숫자를 활용한 전술을 구사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생각대로 되었다.

넓게 벌려 선 3천의 첫줄 기마병이 걷기 시작하고, 차례차례 출발할 때만 해도 조선군은 그냥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으니까.

기마병답지 않게 서서히 다가오는 여진족을 바라보며 권률이 이순신에게 말했다.

“야인들답지 않게 서두르지 않는구려. 생각보다 쉽지 않겠소.”

권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순신이 뒤를 돌아봤다.

언덕 위, 일단의 병사들과 함께 서있는 광해군이 보였다.

뒤라고는 해도 고작 5백보 가량 떨어진 언덕이다.

보이기도 잘 보인다.

높은 구릉이 별로 없는 동성진 벌판의 지형 상 멀리서도 잘 보일 터였다.

더구나 저렇게 대장기를 보란 듯이 펄럭이고 있었으니까.

광해군을 호종하는 병사들이 있다지만 수는 겨우 스물, 모두가 보군이다.

여진이 모두 기마병이니 도망도 못 갈 것이고, 걸리면 여진 기마대의 먹잇감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순신이 세운 이 작전이 실패하면 광해군은 죽는다.

그럼에도 광해군은 자신의 작전 제의에 두말없이 따라 지금 저기에 서 있었다.

그 결의를 알기에 고개를 돌려 천천히 다가오는 여진족을 바라보는 이순신의 주먹이 굳게 쥐어졌다.

여전히 서둘지 않는 여진족 전사들은 1천보로 거리가 좁혀지고서야 속보로 말을 몰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겪어본 결과 1천보가량부터 조선군의 화포가 화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1천보 지점을 지나 속보로 돌입했음에도 조선군 화포는 조용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늦게 시작되면 늦을수록 여진족에겐 좋았다.

그만큼 조선군과 부딪치기 전에 죽어나갈 전사들의 수가 줄어들을 테니까.

호기롭게 괴성을 지른 한 부족장을 따라 여기저기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속보라지만 달리는 것이 아니었기에 5백보를 전진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조선군이 벌이고 선 지역까지는 5백보. 여진 기마들이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물론 최고속도의 돌격은 아니었지만 기마들이 투레질을 할 정도의 속도였다.

본래대로라면 1백보 이내에서 시작되고, 50보에서 전속 돌격으로 전환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돌입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모두가 조선군의 화포에 대응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조선군의 화포는 여전히 조용했다.

거리가 2백보로 줄어들었다.

이제 거의 모든 전사들이 괴성을 지르며 말의 옆구리를 차며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전속 돌격!

평소보다 먼 거리에서 돌격을 시작한 탓에 말의 체력에 과부하가 걸리겠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여진족 전체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조선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꽈과과쾅!

포탄에 직경당한 일부가 마치 망치에 두들겨 맞은 모양새로 뒤로 튕겨나갔다.

포격소리에 흠칫 놀란 말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여진족들이 말을 몰았다.

순간 방금 전 보다 훨씬 큰 포성이 연달아 들리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콰과쾅쾅쾅!

쉬지 않고 철포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이순신은 3백문의 철포들을 30개 조로 나누어 10문씩 쉬지 않고 연달아 쏘도록 했다.

그런 까닭에 처음엔 죽어나가는 숫자가 적어 안도의 표정을 짓던 여진 전사들의 표정이 차츰 굳어졌다.

놀란 말을 다그쳐 앞으로 가도록 만드는 것도 한두 번이다.

끊임없이 흠칫거리며 놀라는 말을 계속 다그쳐 앞으로 가게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속도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2백보 거리에서 빠르게 뛰기 시작했지만 겨우 1백도 더 전진하지 못해서 선두가 무너졌다.

포탄 사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을 듣지 않는 말들과 계속 앞으로 가려는 기마병의 의지가 충돌하며 구르는 말들이 생긴 것이다.

그 혼란이 옆으로 퍼졌다.

주인을 떨구고 도망가려는 말들, 주인의 명에 상관없이 뒤 돌아 도망치는 말들이 마구 엉키며 뒤에서 달려오던 기마병들과 뒤엉켰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순신의 손짓에 그동안 조용히 기다리던 20문의 신기전이 차례차례 화염을 토했다.

사실 신기전의 살상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마구잡이로 흩어져 떨어지는데다 바닥으로 내리꽂힐 때의 무게 중심이 잘 잡혀있지 않아서 관통력도 기대치를 밑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쐐애애애액.

날카롭고 기다란 소성을 이끌며 날아간다.

말들이 제일 싫어하는 소리다.

화포 발사음으로 기마병의 통제에 잘 따르지 않던 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속으로 신기전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여진 전사들은 자신의 기마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바로 옆으로 그 소란스러운 소리를 이끌고 신기전이 떨어졌으니 말들의 놀람이 한계치를 넘어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 여지없이 포격음이 들려왔다.

콰과쾅쾅쾅!

오래된 친구 같은 기마병이고 나발이고 완전히 마비된 본능 앞엔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말에서 떨어지는 기마병들이 속출했고,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도주하는 말들의 양이 전체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렇게 본능에 충실하게 포격음이 들려오는 반대반향으로 도주하는 여진의 말들과 한 방향으로 달리는 기마대가 출현했다.

귀를 솜으로 틀어막고, 눈 가림막도 씌워서 제대로 듣지 못하고, 앞뿐이 보지 못하게 만든 조선군의 기마였다.

솜으로 막아도 워낙 커다란 소리라 흐릿한 포성은 들리겠지만 달리는 방향이 포성이 멀어지는 방향이었다.

조선 기마들이 기마병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연유 중 하나였다.

한데 그렇게 달리는 조선 기마 위에 기수가 한명이 아니라 둘이다.

아니, 기수는 한명이고, 뒤에 거꾸로 탄 이는 승마총병이다.

말을 조종하는 것을 기수에게 맡긴 데다 기수와 안전벨트를 통해 등을 맞대어 연결해서 양손의 완전한 자유를 얻은 승마총병이 장탄한 소총을 거치해 사격자세를 취했다.

탕!

첫 사격음과 동시에 제멋대로 달려대던 여진의 말 위에서 여진족 전사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에 놀란 말이 더 사납게 뛰었다.

그리고······.

따당땅당당.

연속해서 총격음이 이어졌다.

조선의 가형 소총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데뷔하는 소리였다.

기본 사격속도는 분당 6발, 숙달된 병사들은 분당 10발까지도 쏜다.

그렇게 따지면 화승총도 숙달된 병사들은 20초 내외에 한발 씩 쏠 수 있다.

물론 그래도 가형 소총이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도주하는 여진족 전사들의 옆으로 길게 내달리는 승마총병을 태운 조선군 기마의 수는 5백.

기본 발사속도를 감안한 단순 계산으로만 봐도 분당 3천 명씩 여진 전사들이 죽어나간다는 뜻이었다.

정신을 차린 일부 여진 전사들이 활을 들어 반격을 시도했지만 그렇게 활을 꺼내들기만 하면 두세 발의 총탄이 날아들어 황천길로 직행했다.

그걸 본 몇몇 여진 전사가 말 옆구리로 돌아가 활시위를 당기는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선보였지만.

탕-!

말을 관통한 총탄에 자신의 애마와 함께 그대로 절명했다.

총의 무서움이다.

그것도 강선 총이다. 정확도는 물론이고, 파괴력과 관통력이 일반 화승총보다 월등했다.

말을 방패삼으면 죽지 않았던 과거와 전혀 달랐다.

방패를 들어도, 말 뒤에 숨어도 여지없이 관통한 탄환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기마들이 말이라도 들으면 좋겠는데 공포에 질려 도주하기 시작한 말들은 전혀 여진 전사들의 뜻에 따를 생각이 없어보였다.

더구나 너무 가깝게 다가든 시점에서 포격이 시작된 탓에 도주하는 뒤를 길게 포격소리와 포탄이 따랐다.

그 길을 조선군 기마가 따르며 총을 쏘아대는 통에 여진 전사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전면을 맡은 여진족이 고전하는 가운데 율보리의 별동대 3천이 조선군 후미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그들의 시야에 조선군 후미 언덕에 세워진 대장기가 들어왔다.

방심했던지 대장기가 세워진 언덕 후미엔 별도의 방어병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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