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발 아래 은빛 눈-86화 (86/231)

86화

“더러워요….”

“깨끗한데?”

“더럽다니까….”

결국 그가 회음부를 할짝였다. 꺅! 소리를 내며 릴리가 상체를 세웠다.

“더럽다니까욧!”

“깨끗해. 내가 봐서 알아. 넌 못 보지만.”

“…….”

할 말을 잃었다. 그 와중에도 가만, 일리가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자신이 더 어처구니가 없다. 카르낙이 다시 볼기 사이를 혀로 핥았다.

“아앗!”

하고 릴리는 본능적으로 까무러치는 소리를 냈다. 카르낙의 손이 흠뻑 젖은 질구를 지나 클리토리스까지 내려갔다. 릴리의 엉덩이가 움찔거리며 위로 튀어 올랐다. 혀와 손가락이 동시에 그녀의 작은 우주를 유영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간지러운 감촉이 물러나면 저릿저릿한 감각이 들이쳤다.

잔뜩 부풀어 오른 클리토리스를 만질 땐 몸이 움찔 튀어 올랐고, 그의 혀가 닿아서는 안 되는 곳에 닿을 때면 허리 아래가 부르르 떨렸다. 릴리는 시트에 얼굴을 묻고 끙끙 앓았다.

카르낙은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집요하게 그녀의 볼기 사이를 관찰했다. 꿀을 바른 듯 반질반질해지다 못해 가랑이 사이로 뚝, 뚝 말간 점액이 떨어졌다. 절반쯤은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고 절반쯤은 아마도 자신의 비말일 것이라 생각했다.

카르낙은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듯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굴리다가 질구에 중지를 집어넣었다. 그것을 빼낼 때마다 애액이 더해져 주루룩 흘렀다. 제 손길에 그녀의 몸이 열렬하게 반응하는 것이 좋았다.

이런 때에는 체면을 차린 이성이나 언어보다 몸의 반응이 더 솔직한 대답일 터였다. 비록 몸의 주인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도 붉게 달아올라 계속해서 점액을 내뿜는 신체는 적극적이고 열렬했다.

카르낙은 그녀의 엉덩이를 깨물고 척추를 따라 그녀의 목덜미까지 입술을 비비며 올라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붉은 귓바퀴를 씹자 릴리가 ‘아’ 하고 신음했다. 카르낙은 그녀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아 벌어진 볼기 사이로 제 페니스를 집어넣었다.

“아윽!”

하고 릴리가 얼굴을 쳐들었다. 카르낙은 시트를 구겨 잡은 그녀의 손에 제 손가락을 얽었다. 젖은 질구는 유연하게 그의 것을 빨아들였다. 귓불을 핥는 카르낙의 숨소리가 그녀의 피부를 뜨겁게 데웠다.

카르낙이 제 위에 올라타 있는데도 무겁지가 않았다. 무게의 대부분을 침대가 나누어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매트리스에 딱 달라붙은 전신과 꽉 붙어 있는 허벅지 때문인지 마냥 부끄럽기보다는 설핏 안정감이 들었다. 게다가 카르낙에게 제 무방비한 표정과 몸짓을 보여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그녀의 부끄러움을 덜어 주었다.

반대로 카르낙에게는 과한 자극이었다. 작은 질구뿐만 아니라 허벅지와 엉덩이까지 그를 조여 댔다. 꽤 빨리 끝날 것 같았다. 본인은 아쉬워도 그편이 릴리에겐 더 좋을지도 모른다. 카르낙은 릴리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빠르게 추삽질을 했다. 그때마다 그녀의 볼기가 흔들리며 찰싹거렸다. 피부와 피부가 빠르고 간급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난잡하였다.

볼기를 움켜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체중을 싣고 카르낙은 잔뜩 상체를 웅크렸다. 황홀경에 빠져 얼굴은 아래로 떨어졌고 이마와 목에 핏대가 돋아났다. 탄력을 받은 허릿짓은 점점 더 빨라졌다. 짐승처럼 피스톤 질을 하는 그의 몸에 돌덩이 같은 근육이 단단하게 뭉치다 못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들이키고 내쉬는 카르낙의 숨소리에 점점 신음이 섞였다. 하, 하고 내뱉은 다음엔 흑하고 숨을 들이켜고 다시 하아, 하고 내뱉었다.

릴리의 몸은 그의 아래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시트를 아무리 꽉 쥐고 버텨도 소용이 없었다. 숨이 가빠지다 못해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카… 아읏, 칼!”

살려 달라는 말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릴리는 저도 모르게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뱉을까 제 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의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더 빠르고 격해졌다. 골반이 울리다 못해 머리끝까지 ‘징’ 하는 소리가 났다.

무리다. 못 견디겠다. 이제 정말 죽을 것 같다, 몸이 부서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쯤 그가 아읏! 하며 그녀의 질구에 제 것을 콱 처박았다. 더는 신음도 나오지 않았다. 릴리는 그가 제 골반을 짓이길 듯 비비며 부르르 떨 동안 입만 뻐끔거리며 물에 젖은 비단처럼 침대에 추욱 쳐졌다.

정수리 위로 가쁜 그의 호흡이 내려앉았다. 그는 숨을 가다듬으며 릴리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 그 역시 릴리처럼 그대로 축 늘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릴리를 깔아뭉개고 싶지 않았고 정액을 뿜고 예민해진 제 살덩이를 아직 그녀의 가랑이에서 빼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팔꿈치로 제 무게를 지탱한 체 릴리의 정수리에 씨근덕거리는 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릴리… 아.”

그가 미간을 구겼다.

“힘주지 마. 아, 리….”

조이면 아프다니까. 결국 그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제 양물을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빼냈다. 조금 더 여운을 느껴 보고 싶었건만. 그는 허탈해 헛웃음을 켰다. 주르륵, 하고 제 정액이 그녀의 가랑이를 타고 시트로 떨어졌다.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카르낙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끊어진 기억을 되짚었다. 아, 맞아. 따듯한 수건으로 마사지를 해 주러 왔었지. 그래, 분명 그랬다. 분명 그랬는데….

카르낙은 사지를 늘어뜨린 채 엎드려 있는 릴리의 나신을 눈으로 훑었다. 이제야 집 나갔던 이성이 돌아왔다. 그는 세일린이 떠다 놓은 물그릇에 손을 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물은 이미 차게 식은 지 오래였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블리오를 집어 대충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세일린이 두고 간 물 주전자에 아직 물이 담긴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벽난로 위에 올렸다. 어쩌면 릴리의 근육을 풀어 주는 것은 세일린에 맡기는 것이 좋을 수도 있었다. 괜한 오기를 부렸다가 방금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답습할지도 모르니.

아니, 아마 십중팔구는 그러리라. 그는 주전자의 물이 데워지기를 기다리며 타오르는 벽난로의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들과 생각해야만 하는 미래의 일들이 복잡하게 얽혔다.

타는 듯한 가뭄이 소강되고 날이 선선해졌으나 이것으로는 충분히 않았다. 창고에 남은 식량과 격납고의 무기들도 살펴봐야 했다. 더 불순물을 제거해서 단단한 철검을 만들 수 있도록 스코크에게 충분한 자원을 준비해 주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되었다.

그와 더불어 군을 다시 정비해야 했고, 북쪽 땅에 더 많은 조력자도 생성해 내야만 했다. 갑작스레 기침을 시작한 로로가 리쿠스에게 갔을까. 한 움막에 사는 투로일 적에는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그를 챙겼다.

자신이 식량을 사러 나가면 이스바가 그의 곁에 있었고, 이스바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투로가 로로의 거처를 살폈다. 한때 그는 모든 투로에게 존경받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원로였다. 지금은 어떨까. 지금 그의 삶은 나아졌을까, 사막에 있을 때보다 행복할까, 아니면 더 늙고 지쳐 차라리 그 척박한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까.

“칼.”

불현듯 저를 부르는 릴리의 목소리에 그는 침대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그녀는 몸을 일으켜 슈미즈를 끌어안고 있었다. 카르낙을 바라보는 회색 눈동자가 환하게 빛났다.

“물을….”

묻기도 전에 그는 주전자를 가리키며 멋쩍은 듯 말했다.

“물을 데우는 중이었어. 다 식었길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아. 그게 아닌가? 지레 찔려 먼저 대답하고 나니 그것을 물으려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냥… 이것저것.”

뭉뚱그려 대답하고 보니 어쩐지 퉁명스러워 보여 카르낙은 제 머리를 쓸어 넘기며 후, 하고 숨을 짧게 내뱉고 옅게 미소 지었다.

“투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나, 로로 그리고 아까 전의 일 같은 거….”

아까 전? 얼핏 세일린과 함께 있을 때 창밖이 소란했던 것이 떠올랐다. 세일린에게 병사들이 몰려 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은 일이었다.

“성 밖이 소란하던 일 말이지요? 잘은 모르지만 누군가 고함치는 소리는 들었어요. 얼핏 곡소리 같기도 했고요.”

곡소리도 맞았고 고함 소리도 맞았다. 그러나 릴리가 자세한 사정을 알게 하고 싶진 않았다. 이를테면 투로에게 제 일가족이 죽임을 당했다는 다미앵의 절규나, 그를 두 동강 낸 자신의 가혹함 같은 것들 말이다.

“로리아나에게 교습소를 열어 주겠다고 했던 거.”

칼은 주전자에 살짝 손을 데어 열을 가늠하며 말했다.

“퍽이나 감동적이었어.”

“아….”

카르낙은 주전자를 들고 다가왔다.

“수많은 투로들이, 아니 거의 대부분의 투로들이 까막눈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난 그들에게 글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

쪼르르, 식은 물그릇 뜨거운 물이 떨어지며 더운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오로지 검과 방패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여겨 왔던 것 같아. 더 쉽고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카르낙은 주전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조금 더 일찍 그것을 생각했더라면 어쩌면… 어쩌면 조금은 덜 생겨났을지도 몰라. 택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그것뿐이어서 괴물이 되어 버린 그런 놈들 말이야.”

릴리는 그의 말 뒤에 숨어 있는 그의 심중을 읽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좀처럼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기 전에는 영영 알지 못할 것 같았다.

카르낙은 세일린이 탁자 위에 비치해 두었을 새 천을 집어 물에 적시며 말했다.

“내겐 로로가 있었지. 또 형제처럼 자라 온 친우도 있었어. 그들이 날 덜 비틀리게 잡아 줬어. 나 같은 망아지를 잡고서 로로는 참 끈덕지게도 글을 가르쳐 주었거든. 내 이름을 쓰는 법이나 해나 달을 보며 방향을 가늠하는 법이나 사막에서 물을 찾는 법이나 아니면… 밤하늘에 뜬 별자리를 읽는 방법 같은 거.”

그는 릴리의 허벅지를 닦으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고는 부러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었다.

“로로가 기침을 해.”

“…….”

“그는 너무 늙었어. 난 아직도 철부지 망나니인데 말이야.”

릴리가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비로소 카르낙은 눈을 들었다. 라일락 빛의 눈동자가 고집스럽게 빛났다. 단단하고 굳센 그의 껍데기는 너무도 강하여 아주 조금의 균열을 내보이는 것도 허용치 않았다. 그러나 릴리는 그 너머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보아야 하고 그리하여 어루만져 주어야 할 남편의 여린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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