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응?”
무엇을? 무엇을 자신이 한다는 거지? 묻기도 전에 릴리는 카르낙의 어깨를 잡고 천천히 침대에 눕혔다. 카르낙은 영문도 모른 채 릴리가 이끄는 대로 폭신한 베개 위에 머리를 얹었다. 제법 순종적인 움직임이었다.
릴리는 반듯하게 누운 카르낙의 허벅지 위에 얌전히 내려앉았다. 그의 발끝에 젖은 천 뭉치가 닿았다. 카르낙은 그것을 휙, 하고 발로 차 버렸다.
릴리는 작고 여린 하얀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바지끈을 풀었다. 팔 하나를 제 머리와 베개 사이에 껴 시선을 더 높인 뒤 카르낙은 기다란 손가락이 제 끈을 풀고 하반신을 바지에서 해방시키는 모습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감상하였다.
부적절한 모습이었으나 차분하게 내리깔린 그녀의 속눈썹과 그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는 지독히도 아름다워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더 흥분되었다. 미친놈이 틀림없었다. 마침내 릴리가 바지 안에서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페니스를 해방시키자 카르낙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신음을 토했다. 혈류가 빨라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가슴이 헐떡여서 가파르게 오르락내리락하였다.
릴리가 무릎을 시트에 대고 그의 골반 위로 몸을 일으켰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움직임인지 알고 있어서 카르낙은 제 양물의 기둥을 잡아 그녀가 삽입하기 좋도록 세우고 릴리의 허리를 잡았다. 어서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피가 달았다. 카르낙은 허리를 쳐들고 싶은 충동을 제어하려 제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릴리가 카르낙의 가슴팍을 집고 천천히 제 하반신을 내렸다. 이게 맞을까 싶어 미간을 찌푸리고 카르낙을 쳐다보니 그가 독려하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러며 입술이 마르는지 혀를 축였다.
그의 턱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분명 이렇게 하면 덜 아프댔지. 그의 선단이 제 밀부에 닿았다. 지끈한 아픔이 느껴져 그녀는 움찔거리며 멈췄다. 릴리의 허리를 잡은 카르낙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강제로 그녀를 끌어 내리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의 흘러내린 은빛 머리를 어르듯 쓸어 넘겨 줄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좀 덜 아플까. 지끈한 것을 보니 분명 거기가 맞는 것 같긴 했다.
“릴리.”
카르낙이 속삭이듯 그녀를 부르며 목덜미를 부드럽게 당겼다. 그러며 조금 상체를 일으켜 기꺼이 그녀의 입술을 마중 나갔다. 부딪친 입술이 부드럽게 삼켜졌다. 카르낙은 달래는 듯, 어르는 듯 릴리의 입술을 핥고 빨고 벌어진 틈으로 들어가 그녀의 혀를 얽었다.
“응….”
릴리가 더운 숨을 뱉어 냈다. 그러며 다시 천천히 하반신을 내렸다. 흉흉하게 서 있던 선단 대신 매끄러운 페니스의 기둥이 닿았다. 릴리는 본능적으로 거기에 제 밀부를 비볐다. 말간 애액이 그의 선단에 부드럽게 발렸다.
기분 좋은 감각에 카르낙이 먼저 신음을 흘렸다. 바르작대는 허리를 또다시 움켜쥔 채 그는 황홀한 감각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대로도 좋을 것 같았다. 그녀만 아프지 않다면 이렇게 하는 것도.
그러나 릴리의 생각은 달랐다. 릴리는 완벽한 육체적 교합을 원했다. 그녀는 카르낙의 선단이 닿을 때마다 아릿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그 고통에 익숙해지기 위해 계속해서 시도했다. 아주 조금. 그리고 좀 더 조금, 최대한 하반신을 밀착하고 비비며 그의 것이 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서서히 허리를 움직였다.
“아….”
하고 카르낙이 릴리의 가슴에 제 얼굴을 묻고 릴리의 슈미즈를 움켜쥐었다. 제 선단이 따듯하고 부드러운 곳을 파고드는 느낌이 너무도 황홀하여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반대로 릴리는 아픔을 참기 위해 입술을 물고 더운 숨을 뱉어 냈다. 지푸라기라도 되는 듯 그의 어깨를 꽉 붙잡고 그녀는 마침내 자의로 그의 것을 제 안에 품었다.
“우… 움직이면 안 돼요.”
릴리가 그의 어깨를 와락 안으며 애원하듯 속삭였다. 카르낙은 정신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자신이 그 말을 따라 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의 것은 릴리의 내부에서 더욱 빠듯하게 팽창하고 있었다. 모든 혈액이 그리로 몰리는 것 같았다.
릴리는 아픔이 가실 때까지 그를 품은 채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타는 듯한 작열감에 더운 땀이 흘렀다. 카르낙의 페니스에서 둥둥 맥이 뛰었다. 조급함을 참으려 릴리의 슈미즈를 걷어 올리고 카르낙은 그녀의 젖가슴을 아이처럼 빨았다. 릴리는 몇 번이고 심호흡하며 이물감에 익숙해질 때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아주 조금 허리를 움직였다.
“아… 릴리….”
카르낙이 더운 숨을 뱉으며 신음했다. 여전히 접촉부가 홧홧했다. 그러나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고약과 휴식 덕분인지 움직임을 더할수록 고통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릴리는 조금 더 허리를 움직여 보았다.
카르낙의 앓는 소리를 내며 제 허리께 어딘가를 꽉 움켜쥐었다. 그다지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턱까지 숨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속에서 열이 치밀었다. 아픔으로 인한 작열이 아니었다.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릴리는 한 번 더 허리를 움직였다. ‘흑’ 하고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움직일 때마다 숨이 가빠졌다. 아픈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힘이 다해 숨을 고르는 것이 아닌 다른 이유로.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어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그 감각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조차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더 알고 싶었다. 좀 더 확실하게 그 벅찬 감각을 정의 내려 보고 싶었다.
“…릴리.”
카르낙이 그녀의 몸을 와락 껴안으며 숨을 씨근덕댔다.
“못 참… 못 참겠어.”
그러고는 매치듯 체중을 실어 릴리를 침대 위에 눕혔다. 카르낙은 다급하게 릴리의 입술을 찾아 삼켰다. 미약하게 왕복을 반복하던 질구에 카르낙은 질주하듯 저의 것을 처박았다. 릴리의 히스테릭한 비명이 입 안에서 뭉개졌다.
허우적거리던 두 손이 그의 어깨에 손톱을 세웠다. 저를 치받는 카르낙의 몸이 돌덩이처럼 제 몸을 울렸다. 그것이 너무 강하여 모든 뼈마디가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충돌할 때마다 번개가 치는 듯 눈앞이 번쩍거렸다.
릴리가 내지르는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것을 카르낙은 제 혀와 입으로 뭉개어 안으로 삼켰다. 고통스럽진 않은지, 멈추어야 하는지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 맞다고는 생각했다. 그리하여 고통스럽다면, 이제 그만하라고 하면 멈추어야 한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물을 여유도 없으며 멈출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니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은 짐승이라고. 너무나 나약하고 타락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 성욕 앞에서는 다만 산산이 부서지고 말 뿐이라고. 욕구를 통제할 수 없다면, 도저히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다 놔 버리자고. 인간일 수 없다면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짐승이라도 되어 보자고 결국 카르낙은 그렇게 결심했다.
카르낙은 제 어깨에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릴리의 두 손을 잡아 그녀의 머리 위로 올렸다. 그의 손은 릴리의 양 손목을 교차해 움켜쥐고도 남을 만큼 컸다. 그는 적당한 악력으로 그것을 속박하여 시트에 내리눌렀다.
카르낙은 그대로 릴리의 슈미즈를 밀어 그녀의 손목까지 올렸다. 보드라운 천은 그쯤 어딘가에서 조악하게 뭉개졌다. 후드득 슈미즈를 빠져나온 은백색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와 시트 위로 떨어졌다.
열기로 붉어진 눈을 하고 훤히 겨드랑이를 드러낸 채 갇혀 있는 아내의 모습이 가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며 또한 난잡하여 그의 열기를 더 북돋웠다.
카르낙이 그녀의 하얀 겨드랑이를 혀로 핥았다. 그러자 릴리가 ‘앗!’ 하고 몸을 움츠리려 어깨를 떨었다. 카르낙은 괘념치 않고 계속해서 그녀의 겨드랑이와 팔뚝을 핥았다. 릴리는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칼! 가, 간지러워요.”
비어져 나오는 것이 신음인지 웃음인지 짧게 토막난 숨을 가쁘게 내쉬는데 그가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쿵, 하고 다시 접촉했을 때 릴리는 허리를 띄우며 몸을 활처럼 휠 수밖에 없었다.
헉, 하고 나는 소리는 분명 간지러운 탓이 아니었다. 카르낙은 이왕 맛본 김에 그녀의 목덜미와 등도 맛보고 싶었다. 그는 제 페니스를 여전히 그녀의 질구에 물린 채 한쪽 다리를 잡아 반대편으로 넘겼다.
몸은 너무도 쉽게 모로 돌아갔다. 카르낙의 것이 생전 압박을 느껴 본 적 없는 곳에 압박을 가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기이할 뿐이어서 릴리는 입을 벌린 채 눈만 깜빡였다.
카르낙은 그녀의 목덜미와 등에 붙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내고 곧바로 혀를 댔다. 혓바늘에 달콤한 향과 함께 부르르 떨며 돋아난 그녀의 잔털까지도 느껴졌다. 카르낙은 그녀의 목덜미를 핥고 깨물어 자신의 표시를 남겼다.
그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부위마다 붉은 반점이 돋아났다. 이젠 아내의 엉덩이를 맛보고 싶었다. 그는 릴리의 가랑이 사이에서 페니스를 빼내고 좀 더 아래로 이동했다. 릴리가 ‘흑’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켰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카르낙은 한 손으로는 릴리의 가슴을 주무르고 한 손으로는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릴리의 골반을 물었다. 릴리는 남편이 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카르낙은 릴리의 몸을 완전히 뒤집었다.
릴리는 무기력하게 뺨을 대고 시트 위에 뻗었다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카르낙이 무엇을 하는지 보이진 않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그의 이가 엉덩이의 어디쯤을 물더니 이어 그 사이에 뜨끈하고 축축한 것이 느껴졌다.
그의 손이 엉덩이의 둥근 곡선을 쓰다듬다가 양 볼을 쥐고 벌리더니 이내 혀를 그 사이에 가져다 댄 것이다. 릴리는 기겁을 하며 버둥댔다.
“칼!”
이번엔 정말 비명이었다. 당황하고 놀란 데다 상황의 위급함에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릴리가 손을 뻗어 제 볼기를 쥔 그의 손을 붙잡았다.
“거… 거긴 안 돼요, 칼!”
“왜?”
왜냐니. 그렇게 묻는 게 더 이상해. 릴리는 아직 그런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을 만큼 음란해지진 못했다. 그러자 그가 볼기를 더 벌렸다.
“안 돼!”
릴리가 버둥거리며 그의 손을 쥐어뜯었다. 그의 양손을 끈으로 포박해 버리고 싶었다. 로리아나의 말을 들을걸. 말을 안 들으면 묶어 두랬는데. 처음부터 차라리 묶어 두고 시작할 것을. 설마 이럴 줄은 몰랐다. 부끄러움에 릴리가 앙알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