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254화 (254/255)

# 254

10장, 미래를 여는 한의사 (1)

신약 개발에 있어서 동물 실험은 중차대한 고비다.

동물 실험에 성공하면 목적지까지 팔할은 왔다고 봐도 된다.

최근 각 국마다 실험 윤리를 까다롭게 적용하면서 동물 실험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이전의 테스트에서 충분한 결과를 얻어야만 동물 실험에 돌입할 수 있다.

LUSH와 같은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는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에게 쓰는 약을 개발할 때 동물 실험을 패스할 수는 없다.

무턱대고 인체 실험을 하는 게 더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동물 실험 표본으로는 주로 실험용생쥐나 실험용집쥐가 사용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별히 허가를 받고 돼지나 강아지 등을 실험 대상으로 쓰기도 한다.

원화 아카데미에서는 실험용 생쥐를 이용해 동물 실험을 진행했다.

몇 달 전, 벌써 두 계절이 지나갈 때쯤 한지호와 신영준 회장, 최규열 센터장, 그리고 주요 투자자들은 동물 실험 성공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그 이후 남은 순서는 인체 실험밖에 없다.

엄격한 조건 아래에서 비밀스럽게 임상 실험을 진행하며 부작용와 인체 적응도, 상용화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

원화 아카데미는 동물 실험까지 이르는 과정도 빨랐듯 인체 실험 역시 순조롭게 진행시켰다.

물론 인체 실험이 단번에 100% 성공이라는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수많은 임상 실험은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이다.

실험 대상의 연령이나 성별, 건강 상태에 따라 신약이 작용하는 효과가 달라진다.

그러나 실패는 또 하나의 데이터가 될 따름이다.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신약의 밸런스를 조정하고, 보편적인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부작용 없이 약효를 낼 수 있는 결과물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인체 실험에 돌입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쾌거인지 모른다.

적어도 앞선 동물 실험에서 신약이 인체에 중대한 부작용을 끼칠 확률은 현저히 낮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요즘 한지호의 일과는 매일 임상 실험 결과를 보고 받는 것으로 열린다.

이른 아침마다 그의 태블릿 PC로 전날의 실험 결과 보고서가 도착해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어떤 사람이 실험 대상이었는지를 시작으로 약효와 반응, 부작용 정도, 개선 사항까지 디테일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약 개발은 연구진의 몫이지만 전체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사람은 바로 한지호다.

그는 마황의 주성분을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는 현재 개발 중인 신약의 뿌리가 됐다.

쉽게 말하면 원화 아카데미에서 첫 번째로 개발 중인 신약의 원저작권자인 셈이다.

동시에 원화 아카데미의 오너이니 큰 틀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게 당연하다.

한지호가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투자를 끌어오고, 과감하게 추가 실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신약 개발은 지금처럼 빨리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 전쟁터에서도 선봉에서 적군과 부딪치는 것은 병사들의 몫이다.

그러나 군대를 이끄는 장수가 지휘를 똑바로 못하면 병사들은 우왕좌왕 궤멸하고 만다.

잘 훈련된 병사도 중요하지만 유능한 지휘관은 전쟁의 성패를 가른다.

손권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장료의 8천 병사에게 패퇴하여 꽁무니 빠지게 도망친 것만 봐도 지휘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한지호는 합비의 장료처럼 훌륭한 장수 역할을 다하고 있었고, 원화 아카데미의 연구진은 위나라의 강병(强兵)처럼 실무에서 빛을 발했다.

장수와 병사가 서로 최선을 다하며 호흡을 맞추니 전투에서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원화 아카데미 역시 쾌조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한지호가 일궈내는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바쁘다.

그들은 운이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물론 행운은 성공을 위해 아주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만 성공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어마어마한 부를 물려받아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당대에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다.

땡전 한 푼 없이 바닥에서 치고 올라온 한지호도 전생을 각성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전생의 기억을 깨닫고 나서부터 피땀 흘리는 노력을 쉬지 않고 했다는 게 더 중요하다.

원화 아카데미를 세운 다음에도 환자 진료를 빼먹지 않으며 프로젝트 지휘를 위해 밤잠을 잊을 정도였다.

백조는 물 위에서 그저 우아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죽어라고 발길질을 하고 있다.

한지호의 삶도 백조의 물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세상을 놀라게 만든 결실을 이뤄낸 것이다.

그는 또 한 번의 천지개벽(天地開闢)을 바라며 아침 일찍 일어나 태블릿 PC를 켰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한다.

오금희가 절정에 가까워지며 운기조식 시간도 예전보다 많이 단축 됐다.

요즘에는 15분, 일각만 집중해도 피로가 풀리고 전신 혈도에 내력이 쌩쌩 돌며 활발해지는 기분이었다.

운기조식을 마치고 침대에서 내려오면 욕실로 직행한다.

매우 뜨거운 물을 세게 틀어 샤워를 하면서 하루 동안 무슨 일을 할지 머릿속으로 점검하는 게 한지호의 습관이다.

씻고 나와서는 손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드립하고 한 손에는 태블릿 PC를 든다.

간밤에 날아온 업무 메일과 원화 아카데미의 보고서를 읽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도 어두워지지 않도록 주요 뉴스를 체크하는 편이다.

한지호는 이렇게 남들보다 일찍 아침을 맞이하고 충실한 시간을 보낸 후에야 진료를 하러 한의원으로 출근한다.

겨우 눈을 떠서 허겁지겁 출근하기 바쁜 보통 사람들과는 하루의 밀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쁘지 않은데?”

손수 드립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한지호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술을 크게 즐기지 않는 대신 커피를 좋아한다.

청담동 빌라는 물론이고, 서울과 홍콩의 원화 한의원 원장실에도 여러 종류의 귀한 원두를 넉넉하게 가져다 놓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케냐 AA를 선택했는데 드립이 평소보다 잘 됐다.

커피 맛이 기대 이상이어서인지 괜히 아침부터 예감이 좋아졌다.

달그락-

잔을 내려놓은 한지호가 손가락으로 메일함을 확인했다.

곧이어 태블릿 PC 화면에 원화 아카데미의 임상 실험 보고서가 떴다.

한지호는 절대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될 극비 보고서를 천천히 읽었다.

아무리 한의사라고 해도 제약 기술 지식이 없다면 봐도 무슨 말인지 알기 힘든 보고서다.

하지만 한지호는 틈틈이 신약 개발과 관련된 기술 공부를 하며 지식을 업그레이드시켰다.

현대 과학의 힘을 많이 빌리는 과정이기에 전생의 기억도 큰 도움이 안 됐다.

그만큼 힘든 공부였지만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인지 이제 보고서를 읽고 가끔 허점을 찾아낼 수준까지 성장했다.

나날이 늘어나는 그의 전문 지식에 아카데미의 연구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75세 노인, 여성. 평소 고혈압이 있음. 가장 약한 타입인데… 신약 복용 후 신진대사 증가, 약간의 어지러움증과 소화 불량 증상 발현, 경미한 수준. 이만하면 훌륭하군.”

한지호는 새로운 실험 보고서를 검토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고혈압을 앓는 75세 여성은 실험 대상자 표본에서 가장 연약한 타입이다.

경우에 따라 심한 부작용 발발이 우려되는데 나타난 증상은 경미하다.

게다가 신약은 거동이 불편한 중증 환자들에게 사용 될 예정이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중환자들의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장기의 손상을 막는 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지러움증이나 소화 불량 증상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혼수상태나 거동 불가 상태의 환자들은 어차피 식사 대신 영양제를 투입 받고, 어지러움을 자각할 가능성도 무척 낮다.

한지호는 최근 받아본 다른 실험 대상들의 리포트도 다시 열었다.

그의 태블릿 PC는 지문 인식으로만 작동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원화 아카데미에서 보낸 극비 보고서가 유출 될 염려는 없었다.

“소아 환자의 경우 약효가 과하게 작용하여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 여부를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성인부터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는 굉장히 안정적인 지표를 보이고 있어.”

한지호의 혼잣말은 임상 실험 단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남은 과제는 소아기와 유년기의 중증 환자들에게서 부작용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것만 성공하면 원화 아카데미의 첫 번째 신약은 특허를 출원하고 상용화를 시도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수천 억 원을 투자했지만, 특허가 출원되기만 하면 신약은 10조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물론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과제가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최악의 경우 연령 제한을 둬서 성인 이상의 환자에게만 신약을 사용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지호는 의술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한다.

소아 환자에게 부작용이 심하게 발생한다면, 다른 연령대에서도 특이한 징후가 나타날지 모른다.

연령 불문 완벽에 가깝게 부작용 제어를 한 다음에야 안심하고 상용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본질은 제약 회사 오너가 아니라 한의사이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다른 무엇보다 의원으로서의 책임감이 큰 사람이다.

설령 돈과 시간이 훨씬 더 든다고 해도 의원의 본분을 망각할 생각은 아예 해본 적이 없었다.

“마냥 욕심 낼 일은 아니지만 내년이면 상용화가 가능할 수도. 막연한 꿈은 아니니까.”

한지호는 정도(正道)를 걸으면서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남들이 따라올 엄두를 못 내는 속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하나의 관문이 남았지만 임상 실험은 성공적이고 순조롭다.

미션 하나만 해결하면 내년 중으로 특허와 상용화를 이뤄내는 게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었다.

태블릿 PC를 끈 한지호는 전율이 느껴지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마시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처음 원화 아카데미를 구상했을 때만 해도 업계에서 돈 잡아먹는 하마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함께 해준 원화 정의 네트워크 식구들과 여러 동료들 덕분에 몽상은 비전으로, 미래는 현실로 변화하고 있었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면 안 되지만 고지가 보인다.

신약 개발이라는 프로젝트에 쏟아 부은 시간과 열정, 수고와 자금이 얼마던가.

또 이 약이 개발되면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중증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까.

한지호는 손에 잡힐 듯 다가온 미래를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모닝 커피가 그 어느 때보다 감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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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New York).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이지만 세계의 수도는 뉴욕이다.

인종의 용광로, 금융 자산의 중심, 지구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도시.

뉴욕을 설명하는 말은 너무 많아 일일이 정리하기 힘들 정도다.

한지호는 그런 뉴욕의 한 복판, 타임스퀘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방이 뻥 뚫린 통유리 바로 아래가 그 유명한 타임스퀘어다.

그는 타임스퀘어 중심부에 우뚝 선 H 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에서 막 진료를 마쳤다.

존스 홉킨스에 강의를 하러 워싱턴에 들렀고, 마침 몇 달 전부터 러브콜을 보낸 VIP를 진료하기 위해 잠시 뉴욕으로 온 것이다.

“정말… 몸이 가뿐하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곧이어 스위트룸 안쪽의 메인 침실에서 머리가 반쯤 벗겨진 노인이 걸어 나왔다.

자신의 몸 상태가 믿어지지 않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았다.

한지호는 등을 돌려 금테 안경을 쓴 노인을 바라봤다.

한국인 최초의 UN 사무총장이자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인 반유준이 오늘의 VIP였다.

“비타민 주사나 마늘 주사를 수 없이 맞아도 피로가 가시지를 않았는데… 한 원장의 침은 대체 어떤 원리로 이렇게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겁니까?”

반유준은 손자뻘인 한지호에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한지호는 의료계를 넘어 국제 정치 사회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UN 사무총장이라고 해도 격의 없이 막 대하기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질문을 받은 한지호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영양 주사는 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죄송하지만 노년층의 경우 세포 자체가 노쇠화 됐기 때문에 영양 주사를 맞아도 큰 효과를 보기 힘듭니다. 반면 침을 제대로 맞으면 혈도를 자극해 몸의 기를 강성하게 만들어줍니다. 몸안의 세포가 젊은 시절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직접 자극을 주는 것이죠. 효과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가? 반신반의했지만 체험을 하고 보니 한의학의 원리도 참 깊고 오묘한 것 같네요, 허허허허!”

“총장님께서 만족하시니 다행입니다.”

“내 한국에 갈 때마다 원화 한의원에 들러야겠어요. 양성문 소장이 극찬을 한 이유가 다 있었군요.”

“양 소장님께서 저를 많이 예뻐해주십니다.”

한지호는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WHO 아시아 지역 소장이 된 양성문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한의학계, 아니 의료계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한 금자탑을 쌓고 있지만 혼자서 해낸 일은 아니다.

도와준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 그게 지금의 한지호를 지탱하는 큰 힘 중 하나였다.

그때 반유준이 화제를 돌리며 민감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소문…… 한 원장도 들어 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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