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
10장, 미래를 여는 한의사 (2)
전세계의 수많은 상 중에서 가장 영예로운 것을 단 하나만 고르라면 노벨 평화상이 아닐까.
다른 사람도 아닌 UN 사무총장 반유준이 한지호가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의미심장하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지호는 특별한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평화상 후보만 100명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세간에 떠도는 말이니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총장님.”
“허허, 역시 한 원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나 같으면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밤잠을 설칠 거 같은데…….”
한지호는 노벨 평화상 후보가 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하지만 반유준 총장의 말처럼 밤잠을 설치고도 남을 일이었다.
물론 노벨 평화상 후보가 다수이기는 하다.
그래도 30대 초반의 나이, 한국이라는 국적, 한의사라는 직업으로 유력 후보가 됐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노벨상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그러나 오직 평화상만큼은 노르웨이에서 별도로 선정하는 게 전통이다.
그만큼 특별한 상이고, 인류사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사람만 받을 수 있는 역사적인 상이다.
후보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세계 평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뜻이다.
한지호가 유력 후보로 점쳐지는 이유는 적지 않았다.
먼저 예멘 내전의 평화적 해결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다르 왕자를 치료한 뒤 예멘 불개입 선언을 부탁했고, 한중일 3국을 움직여 국제사회의 공조를 이끌어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실화이지만 워낙 드라마틱한 이야기라서 헐리웃 유명 제작사가 영화로 만들겠다고 나설 지경이었다.
젊은 한의사 한 명이 큰 그림을 그려 중동의 평화에 기여했다.
세계가 주목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원화 아카데미에서 개발한 신약도 그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만들었다.
마황을 이용한 신약, 에페원은 성공적으로 출시되며 중증 환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한지호는 신약의 주성분인 에페드린과 슈도에페드린의 에페, 그리고 원화의 원을 따서 에페원이라 이름을 지었다.
첫 실험부터 동물 실험, 인체 실험까지 빠른 속도로 개발이 진행됐지만 부작용은 크지 않았다.
에페원이 특허를 얻고, 전세계의 중환자들에게 쓰인지 세 달이 지났다.
상용화 이후 한 계절이 지났음에도 문제가 될 이상 반응은 검출되지 않고 있다.
에페원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신세계를 열어줬다.
한편으로는 연명 치료용 약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겐 구세주와 같았다.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있으면 몸의 안과 밖이 다 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페원 덕분에 장기와 인체 내부의 손상에 대한 우려는 덜게 됐다.
아직까지는 약값이 비싸지만 한지호는 점차 에페원의 공급가를 낮출 계획이었다.
어차피 수십 년 동안 독점적 특허권을 누릴 것이고, 한의학을 응용해 신약을 개발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수지타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환자들의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노력을 할 생각이었다.
에페원의 개발 성공은 한지호에게 명예만 선사해주지는 않았다.
첫 번째 개발 프로젝트에서 바로 성과를 보인 원화 아카데미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원화 아카데미는 주식 시장에 상장을 하지 않은 비상장 연구 기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가치가 1조 원을 넘어설 거라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평가였다.
아무 회사나 신약 개발을 성공시키지 못한다.
국제적으로 독점 특허권을 누릴 수 있는, 그것도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신약 개발은 가치를 돈으로 따지기 힘들다.
한지호와 신영준, 최규열은 원화 아카데미의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한지호 개인의 지분이 60%, 신영준과 최규열, 원화 정의 네트워크의 다른 원장들, 그리고 주요 투자자들이 나머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굳이 한국 증시가 아니라 뉴욕 증시에 상장을 하면 시가총액이 얼마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기업 가치에 걸맞게 1조 원의 시가 총액이 형성되면 한지호는 원화 아카데미의 주식 보유만으로 6천억 원의 자산가가 되는 셈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에페원의 계속해서 부작용 없이 좋은 효과를 보이면 주식 가치는 끝없이 뛰어오를 터였다.
한지호는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산으로 새로운 신약 개발과 원화 한의학 백서 발간 등을 이어갈 계획이었다.
처음 목표대로 원화 아카데미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연구 기업이 됐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것이다.
서울과 홍콩에 한의원을 두고, 외국의 VIP들을 진료하러 다니면 아무리 유명해져도 잘 나가는 원장일 따름이다.
하지만 원화 아카데미를 통해 한지호는 국제적인 제약 회사이자 연구기관의 오너가 됐다.
이제는 한의사로서뿐 아니라 경제인으로서도 글로벌 리더가 된 것이다.
신영준 회장의 미한약품이 시가총액 4조 원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신 회장의 보유 지분은 10% 미만이다.
주식 자산으로만 따지면 벌써 한지호에게 밀리는 셈이다.
첫 신약 개발 성공으로 신영준 회장이라는 거물을 단숨에 따라잡은 한지호는 시작부터 차원이 달랐다.
따지고 보면 UN 사무총장 반유준이 한참 어린 한지호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도 이해가 됐다.
반유준 못지않게, 어떤 측면에서는 그보다 더 인류사에 획을 긋고 있는 인물이 바로 한지호이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에 뉴욕에서 또 뵙겠습니다.”
“그전에 내가 먼저 서울이나 홍콩을 찾아가지 싶어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한 원장.”
“별 말씀을요.”
한지호는 반유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세계 대통령이라 불리는 UN 사무총장에게도 값 비싼 진료비를 받았다.
보통 권력자들에게는 무료로 진료를 해주는 의사들이 많다.
치료를 빌미로 가까워져 권력을 함께 누리려는 심산이다.
하지만 한지호는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에게는 절대 진료비를 할인해주는 법이 없었다.
VIP들에게 비싼 진료비를 받아야 가난한 사람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고, 연구 개발에도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한의학의 가치가 낮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동네 병원에서 천 원을 내면 아무나 침을 맞을 수 있다.
그런 진료 역시 소중하다.
그러나 저렴한 백반집 말고 최고급 한정식도 존재하는 것처럼 최상위 한의학 진료도 비싼 값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몸소 입증하고픈 것이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어서 지갑에서 돈이 나가야 귀한 줄 안다.
반유준은 한지호를 만나기 전 개인 계좌로 거액의 진료비를 송금해 놓았다.
돈이 넘쳐나도 한지호를 못 만나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으니, 그에게 일 대 일 진료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특혜라면 특혜였다.
호텔에서 나온 한지호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타임 스퀘어를 가로질렀다.
그가 머무는 호텔도 반유준이 예약한 H 호텔 스위트 룸에 뒤지지 않는다.
위치도 당연히 타임스퀘어 근처에 인접해 있다.
하지만 잠시 바람을 맞으며 여행자가 된 것처럼 혼자 걷고 싶었다.
1조 원 가치의 원화 아카데미 상장 준비, UN 사무총장을 진료하며 노벨 평화상 후보가 됐다는 대화를 나누는 것, 존스 홉킨스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들에게 존경을 받는 젊은 교수로 우뚝 선 것까지.
하나씩 따로 떼어도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고 무거운 일이다.
한지호는 그 모든 축복과 영광, 동시에 부담과 책임을 한 몸에 짊어지고 있었다.
동료들이 기운을 주고 있고, 미래를 함께 할 유초아가 곁을 지켜주지만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렇기에 가끔은 혼자 남몰래 숨을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타임스퀘어의 관광객들 틈에 섞여 무작정 거리를 걷는 것도 일종의 휴식이다.
정체를 감춘 거인이 뉴욕의 뒷골목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잠깐 숨을 돌리고 나오면 그는 또 다시 세상을 놀라게 할 역사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무슨 일을 해내도 더는 놀랍지 않은 사람, 한지호의 전성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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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이 됐다.
수많은 외신 기자들이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을 찾았다.
올해에는 한국 언론과 방송국에서 파견을 나온 기자들이 유독 많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매년 노벨의 사망일인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기 때문이다.
수상자 발표는 2달 전에 이뤄졌다.
기라성 같은 후보들이 각축전을 벌인 노벨 평화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지호였다.
원화 정의 네트워크의 대표 자격으로 수상자가 된 한지호는 한국 역사상 두 번째 노벨상의 주인이 됐다.
한국은 두 번 모두 최고의 영예를 지닌 평화상 부분에서 수상자를 배출해내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그의 수상은 가을부터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었다.
반다르 왕자가 UN 총회에서 명연설을 남기며 그의 이름을 언급했던 임팩트가 너무 컸다.
그것만 해도 수상 후보가 되기 충분한데 에페원의 개발까지 성공하며 중환자들에게 희망을 줬으니, 어쩌면 예정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한지호는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오늘 시상식에 참여하기까지 두 달 동안 어마어마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웬만한 관심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지만,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고 난 다음 그에게 쏟아진 관심은 스케일이 달랐다.
CNN과 같은 미국 주요 방송국에서 한지호가 어떤 사람인지 분석하는 특집을 내보냈고, 각 국의 외교부나 보건부에서 공식 방문을 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한지호의 위상은 어디를 가도 국빈급 대우를 받을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한지호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다.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것과는 별개로 자신에게 주어진 명예와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면 큰 코 다친다.
정상에서 순식간에 추락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한지호는 아직 3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지만, 전생의 기억을 통해 누구보다 풍부한 인생 경험을 갖고 있었다.
천하를 다 얻은 줄 알았던 원소가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 끝내 통일을 이루지 못한 조조가 사마 씨에게 천하를 넘겨준 것 등 삼국지의 기억 속에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 수두룩했다.
한의사로서 전무후무한, 그야말로 새로운 역사와 신화를 쓰고 있는 한지호는 그렇게 중심을 잃지 않고 뚜벅뚜벅 전진하는 중이었다.
노르웨이 국왕을 비롯해 세계에서 모인 귀빈들이 자리 잡은 시상식에서도 한지호는 빛이 났다.
그는 결혼 날짜를 잡은 연인 유초아와 천사원의 마리아 수녀, 그리고 훌쩍 큰 지훈이와 민기, 민우 형제를 함께 데려왔다.
노벨 평화상을 받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세계의 정점에 올랐다는 뜻이다.
규호의 표현대로라면 천하를 좌우하는 위치에 우뚝 선 셈이다.
그런 자리에 가장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보낸 천사원 식구들을 초대한 것은 단순히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던지고픈 메시지가 있었다.
“다음 평화상 수상자는…… 한국의 닥터 한, 지호 한입니다!”
화려하게 꾸며진 오슬로 시청 내부의 대연회홀 단상에서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한지호의 이름을 불렀다.
어깨를 쫙 펴고 걸어 나간 한지호는 메달과 상장, 상금증서를 수여받았다.
그는 이미 노벨위원회로부터 받는 11억 원 가량의 상금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절차에 따라 수상 후 6개월 안에 기념 강연을 하고, 시상식 다음날에는 세계적인 가수들이 노 개런티로 평화상 콘서트를 주최한다.
평화상이 괜히 노벨상 중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한지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각 국의 귀빈들, 그리고 수많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수상이 확정 된 날부터 이 순간을 수없이 상상했지만 막상 느껴지는 감격은 예상을 뛰어넘고도 남았다.
의술로 천하를 좌우하는 사람이 되라, 는 규호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피 토하는 외침을 남겼던 전생의 규호와 달리 한지호는 이른 나이에 천하를 손에 쥐었다.
그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규호의 형상을 지워냈다.
대신 앞자리에 앉아 활짝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천사원 식구들을 찾았다.
“마리아 수녀님, 어머니와 같은 수녀님이 없었다면 전 거리의 불량학생이 되었을 겁니다. 사랑합니다.”
한지호는 마리아 수녀에 대한 감사 인사로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뭔가 남다른 그의 소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지훈이, 민기, 민우, 그리고 초아. 우리 모두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랐지만 지금 여기에 같이 있어. 어떻게 태어났느냐는 마음대로 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사느냐는 우리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이 항상 함께 했다는 것도 잊지 말고, 이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야 할 차례겠지. 멋있게 자라준 너희들이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한지호의 소감은 깊은 울림을 자아냈다.
천사원 식구들에게 전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온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인류 보편적인 내용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마리아 수녀와 아이들에게 진심을 전한 한지호는 그제야 세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시상식을 지켜볼 어린 친구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지만, 심지어 부모조차 없었지만 꿈이 있어서 오늘날의 제가 존재하니까요. 그러나 평화가 없는 곳에서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미사일과 총알, 폭탄이 날아다니는 지역에서 꿈은 사치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말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평화를 찾아줘야 합니다. 평화상을 받은 후에도 더 많은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더 많은 평화를 위해 힘쓰겠습니다. 원화 정의 네트워크와 원화 아카데미는 기존의 원화 재단을 원화 평화 재단으로 재창립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네트워크와 아카데미의 수익 10%를 세계 평화를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끝까지, 지치지 말고 함께 갑시다. 세계 곳곳에서 제 2의 한지호가 나올 수 있게,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아이들이 꿈만은 가질 수 있게.”
천둥처럼 쏟아지는 박수와 환호성, 오슬로 시청을 빛나게 만든 카메라 세례.
자리에서 일어나 한지호의 수상 소감에 최고의 예우를 갖추는 노르웨이 국왕과 노벨위원회 위원들, 그리고 국제적인 거물들.
한지호는 꿈같은 광경의 중심에서 미소를 지었다.
하늘이 그에게 얼마나 더 시간을 줄지 모르지만, 그는 아직 30대에 불과하다.
정점을 찍은 것 같지만,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날아오를 것이다.
혼자만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지호의 도전은 숨을 다하는 날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에필로그(epilogue)
휠체어에 탄 노인이 완벽하게 조경 된 정원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노인은 세계 최고의 명의로 불렸지만, 그도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의술도 노화(老化)와 싸워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여든을 훌쩍 넘겨 다리가 불편해진 노인은 대신 지난 세월 동안 누구도 넘보지 못할 업적을 이뤄냈다.
원화 정의 네트워크는 세계 15개국 50여개 도시에 한의원을 냈고, 존스 홉킨스에서 배출된 노인의 제자들은 의료계를 이끄는 선두에 서있다.
원화 아카데미는 연이은 신약 개발 성공과 한의학 백서 발간으로 시가총액 30조가 넘는 글로벌 연구 기업이 됐다.
뿐만 아니라 원화 평화 재단은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 숱하게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단 한 사람의 한의사가 이 모든 역사의 뿌리이자 줄기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가 쌓은 금자탑은 영원히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사랑하는 부인 유초아를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과 손자들을 장성시킨 노인은 과거를 회상하는 듯 했다.
원화 정의 네트워크의 명예 원장인 동시에 원화 아카데미와 원화 평화 재단의 이사장, 한지호는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들을 지켜봤다.
“부끄럽지 않은 세월이었지…….”
그가 조용히 혼잣말을 읊조렸다.
부끄러움은커녕 세계적으로 추앙 받는 삶을 살았는데 그저 겸손인 것일까.
휘이이- 휘이이이이-
그때였다.
적당히 불던 바람이 갑자기 거세어졌다.
곧이어 한지호의 눈앞에서만 바람이 일정한 흐름을 띄고 불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고도 납득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이다.
하지만 전생을 각성하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던 한지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정점이여,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는가?>
어디서 들리는지 모를 음성이 울렸다.
한지호는 젊은 시절과 똑같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이라?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도전을 피해본 적이 없었지.”
휘이이이이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몰아치던 바람이 한지호의 온몸을 덮었다.
한지호.
의술로 시대와 역사를 바꾸고,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거인이 88세의 나이로 잠들었다.
포기를 모르는 그의 강인한 영혼은 또 다른 세상에서 도전을 계속 해나갈지 모른다.
그러나 이 땅에 남겨진 사람들은 오래도록 한지호를 그리워하며 칭송할 것이다.
한지호가 남긴 유산이 세계를 덮고 있기에, 그는 결코 금방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작가 후기
안녕하세요, 작가 묘재입니다.
강남화타를 완결 짓고 작가 후기를 쓰는데 거의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강남화타를 집필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글 쓰는 속도가 느려져 독자분들의 원망을 샀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전작인 고고학자, 색공학자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유료연재에서 내 글이 통할까? 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강남화타는, 그리고 강남화타를 읽어주신 독자분들은 저의 미련한 의문에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셨습니다.
부족한 작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으니 앞으로는 쓸데없는 고민은 삼가고 더 열심히 글을 쓰겠습니다.
항상 이전 작품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후기를 마무리했던 것 같습니다.
강남화타의 여운은 오래 남겠지만, 구상 중인 다음 작품이 훨씬 더 재밌으리란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묘재의 글, 계속해서 기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비슷한 시기에 강남화타 웹툰도 시즌 1이 마무리 됐습니다.
새해에 찾아올 강남화타 웹툰 시즌 2도 사랑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늘 독자 제현께 고마운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묘재(妙才) 배상(拜上).
- 12권 끝, 완(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