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235화 (235/255)

# 235

1장, 한지호의 날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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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정이 잡혔다.

스케줄을 조율하는 사무장 박우식은 머리를 쥐어짰지만 불평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한지호가 존스 홉킨스 의대의 초빙 교수로 부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의사가 미국 명문 의대의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한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전례가 없다.

만약 특강을 넘어 초빙 교수로 임용이 된다면 역사적인 대사건이다.

단순히 한지호 개인의 명예만 높아지는 일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현대 의학의 최전선에서 한의학 연구가 이뤄질 수 있고, 그 혜택은 결국 세계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한지호의 발걸음은 이미 역사와 미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미국으로 출국하는 공항에서부터 기자들이 진을 치고 대기했다.

한지호는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익숙했지만, 공항에서부터 이런 열기를 느낀 적은 없었다.

항상 현대 의학에 비해 비과학적이란 소리를 듣는 한의사가 존스 홉킨스 의대에 특강을 하러 간다는 사실이 화제는 화제인 모양이다.

찰칵- 찰칵, 찰칵!

“원장님, 여기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쪽도 한 번만 봐주세요, 원장님!”

사진기자들이 한지호를 애타게 불렀다.

어떻게든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한지호도 이왕이면 기자들에게 협조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복잡한 인천공항 출국장이 자신 때문에 더 어수선해져 시민들에게 미안했다.

그는 가까이 다가와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들에게 입을 열었다.

“공항을 이용하는 분들이 불편할 수 있으니 질문은 몇 개만 간단히 받겠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보도 자료를 통해 배포 됐습니다.”

눈치 빠른 기자들은 무슨 질문을 해야할지 깨달았다.

보도 자료에 나와있느 않은 내용을 짧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지호가 금방 출국 게이트 안으로 사라질 것이다.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 한의학의 체계화 과정에 대한 특강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이나 성과를 알 수 있을까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베테랑 기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지호는 그의 질문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레 강의 내용을 알리고, 원화 아카데미의 성과를 홍보할 수도 있게 됐다.

“원화 아카데미에서 발간한 한의학 1차 백서가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의학의 처방과 진단이 어떠한 임상 결과를 얻어내는지 설명할 예정입니다. 지금껏 누구도 기록하지 않았지만, 한의학 또한 체계적인 의학으로 인정받기 위해 원화 아카데미에서 앞장서서 투자와 연구를 해온 결실이라고 봐야겠죠.”

한지호가 대답을 마치자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기자들은 녹음기를 켜놓고 있기 때문에 굳이 답변을 받아적을 필요가 없었다.

호시탐탐 두 번째 질문을 할 기회를 노리던 젊은 여기자가 한지호의 시선을 낚아챘다.

“연예계에서는 원화 아카데미가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MBS에서 편성이 확정됐다고 들었는데요, 이것도 한 원장님의 지시인가요?”

“그렇습니다. 연구와 치료, 신약 개발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에게 한의학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일도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행히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빠른 시일 내에 안방극장에서 현대 한의학을 다룬 재밌는 드라마를 보게 되실 겁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한지호 원장님이라는데 사실입니까?”

“글쎄요. 스토리와 캐릭터에 대한 부분은 제작발표회에서 PD님이나 작가님께 물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한지호는 말을 돌렸지만 부정을 하지 않았다.

역사상 최초로 전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국민 한의사 한지호가 주인공 모델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홍보 포인트다.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그 사실이 알려지면 기대감은 더욱 더 고조 될 것이다.

한지호가 기획한 드라마의 성공은 촬영이 시작하기 전부터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PD와 작가, 배우들이 작정하고 작품을 망치지만 않으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둘 것 같았다.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한 원장님, 환자 치료뿐 아니라 신약 개발과 학문적인 연구까지 하고 계신 일이 참 많으십니다. 최종 목적은 무엇입니까?”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당장의 현안이 아닌 본질적인 목표를 묻는 질문을 받은 한지호는 기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의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일요신문의 김태현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서있었다.

예전에 공항에서 한지호와 단독 인터뷰를 했던 사이다.

충분히 아는 척을 할 법도 한데 다른 기자들 틈에 섞여 가까스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한지호는 좋은 인상을 받았던 김태현 기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예전에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의학 투어를 하는 게 꿈이라고 했었죠? 그 꿈은 이미 이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 몸은 하나라는 거죠. 그래서 신약 개발과 한의학 체계화 작업을 통해 내가 없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한의학으로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 그게 지금 나의 목표입니다.”

김태현 기자를 바라보며 한 이야기지만 다른 기자들도 감탄한 얼굴이었다.

이토록 분명하게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입만 살아있는 정치인들도 감히 세상을 더 낫게 만들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지호는 자신 있게 꿈을 말했다.

망상이 아닌 현실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부끄러움도 없었다.

존스 홉킨스 의대로 특강을 가는 것 또한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비행기 놓치면 곤란하니까.”

옅은 웃음을 머금은 한지호가 기자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다음 발걸음을 뗐다.

끈질긴 기자 몇 명은 끝까지 질문을 던졌지만 더 이상의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출국장 안으로 들어선 한지호는 퍼스트 클래스에 몸을 싣고 미국으로 날아갈 것이다.

존스 홉킨스 의대가 있는 볼티모어에서 그가 또 무슨 역사를 쓸지, 이제는 국민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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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 홉킨스 대학은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의 의대는 학부 과정을 마쳐야 진학할 수 있기에 정확히 말하면 의학 전문 대학원이라고 보는 게 맞다.

세계 최고의 의대로 이름 높은 존스 홉킨스 의대는 다양한 대학원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던 중 하버드와 조지타운 의대에서 대체의학 전문 과정을 신설했고, 텍사스 의대는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동양 의학을 연구하며 이름값을 높였다.

세계 의학의 패러다임을 주도하던 존스 홉킨스가 트렌드에 뒤처진 셈이다.

물론 존스 홉킨스는 트렌드를 따라가기 급급한 대학은 아니다.

의대 교수진과 학생들은 언제나 현대 의학의 정점에 서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의학의 본질을 지키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

인정하지 않으면 반성할 수 없고, 반성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존스 홉킨스 의대의 교수진들은 미국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는 대체의학 연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새로운 흐름을 좇는데 소홀했고, 이제라도 반성하며 발전하기로 기조를 정한 것이다.

세계 최고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런 모습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 같았다.

한지호는 존스 홉킨스 의대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고 있었다.

공항에 교직원이 가이드로 나와 있었고, 운전기사와 차량도 대기하고 있었다.

VIP를 진료하기 위해 외국으로 오면 당연하게 받던 서비스다.

하지만 경우가 달랐다.

지금은 거액을 받고 치료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명문 대학으로부터 초빙을 받은 강사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예우를 해준다는 것은 존스 홉킨스가 한지호를 특별한 귀빈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콜린스 교수님의 말이 과장은 아니었던 것 같아.’

한지호는 교직원으로부터 존스 홉킨스 대학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안토니 콜린스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콜린스는 단순한 특강이 아니라 교수 초빙을 위한 면접에 가깝다고 비밀을 털어 놓았다.

단순히 한지호를 끌어들이기 위해 과장을 한 것 같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학교 측은 특강 강사가 아닌 신임 교수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고 있었다.

초빙 교수가 되어도 한지호가 1년 내내 존스 홉킨스에 머물며 학생들을 가르칠 수는 없다.

하지만 학기에 한 번 이상 특강을 개설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의대 교수들과 공동으로 연구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것만 해도 한지호와 존스 홉킨스 양 측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한의사 최초 존스 홉킨스 의대 교수라는 명예는 또 다른 전리품일 것이다.

끼이익-

한지호를 태운 차가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운전석 너머를 바라보자 멋들어진 건물이 우뚝 서있었다.

넓게 펼쳐진 전원 캠퍼스와 고풍스러운 양식의 학관들.

방금 전까지 현대식 빌딩이 들어찬 도심을 지나고 있었는데 잠깐 사이 미국의 전통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에 당도했다.

“짐은 호텔로 보내놓겠습니다. 콜린스 교수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공항에서부터 함께 온 교직원이 차에서 내리며 다음 스케줄을 알려줬다.

오늘은 한지호를 초청한 장본인 안토니 콜린스 교수를 만나기만 하면 된다.

특강은 내일 오전에 열리고, 학장을 비롯한 의대의 교수들과 점심을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바로 가죠. 컨디션도 좋은데.”

한지호는 가이드 역할을 맡은 교직원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컨디션이 좋았다.

비행기를 오래 타면 몸이 찌뿌둥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퍼스트 클래스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두 다리를 쭉 펴고 개인 침대에 누워서 오는 셈이기 때문에 여독이 거의 쌓이지 않는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한지호에게는 그나마 비행기에서의 시간이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미국까지 오는 내내 한숨 푹 잤고, 공항 라운지에서 샤워까지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에 거리낄 게 없었다.

교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서 걸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캠퍼스는 마치 잘 꾸며진 테마 공원 같았다.

아름다운 정원과 들판, 전통적 스타일의 건축물이 그런 느낌을 들게 했다.

하지만 청바지에 티를 입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보니 이곳이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벅저벅-

그리 오래 걷지 않아도 됐다.

다행히 콜린스의 연구실은 차가 멈춘 곳 근처에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일 처리를 하는 교직원 덕분에 한지호는 금방 콜린스의 연구실 문 앞에 다다랐다.

똑똑!

한지호가 가볍게 노크를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연구실 문이 벌컥 열렸다.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문을 활짝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안토니 콜린스 교수였다.

혈액암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동시에 CAHCIM(통합의학 연구센터 연합) 회원인 안토니 콜린스는 미드에 나오는 교수님처럼 생겼다.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회색빛 머리, 적당히 자라나 코와 턱을 덮은 수염, 그리고 갈색 뿔테와 약간 헐렁한 정장까지.

헐리웃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 사람 좋은 교수님 역할을 하는 배우를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닥터 한?”

“처음 뵙겠습니다. 한지호입니다.”

“오 마이 갓! 이렇게 만나서 영광이에요. 안토니 콜린스입니다.”

콜린스 교수는 어린아이처럼 두 팔을 쭉 뻗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도 느꼈지만 한지호에 대한 동경이 상당한 것 같았다.

하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대체의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한지호이기 때문이다.

안토니 콜린스가 혈액암의 권위자라면 한지호는 한의학의 지존이다.

둘은 오랫동안 알아왔던 사이처럼 격의 없이 악수를 나누며 서로를 바라봤다.

손끝에서 찌릿한 감각이 전해졌다.

‘내게 날개를 달아줄 사람이다.’

조조가 곽가를 만났을 때, 유비가 제갈량을 얻었을 때, 손권이 육손의 성장을 확인했을 때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

한지호는 존스 홉킨스에서 얻어갈 게 아주 많을 거라는 강한 확신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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