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75화 (175/255)

# 175

4장, 길들이기 (1)

24시간을 컨트롤 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지호는 금링링이 먹고 마시는 것뿐 아니라 숨 쉬는 것까지 통제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일종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금링링은 당연히 뜨악한 얼굴로 따졌지만 한지호를 이길 수 없었다.

주도권은 철저히 한지호가 쥐고 있었다.

싫으면 치료를 받지 말고 나가도 상관없다는데 환자가 무슨 수로 의사를 이기겠는가.

보름의 스케줄을 비우고 찾아온 이상 그녀는 스스로 다른 선택지를 버린 셈이다.

한지호는 추위안차오를 치료하며 의술을 입증했고, 그 명성은 대륙의 여신이라 불리는 톱스타마저 꼼짝 못하게 만들 정도였다.

결국 금링링은 한지호가 마련해둔 레지던시 아파트에서 보름을 보내게 됐다.

한지호는 그녀의 치료를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위층을 빌렸다.

다행히 위층이 공실이었고, 2주에 우리 돈 300만 원을 렌트로 지불했다.

1억 9천만 원의 치료비를 약속 받았으니 그 정도 단기임대료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가 굳이 같은 아파트를 빌려 금링링을 머물게 한 건 확실한 집중 치료를 위해서다.

말이 좋아서 집중 치료이지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감금 치료다.

한지호가 홍콩에 있을 때는 하루에도 여러 번 금링링의 상태를 체크하고, 그가 서울에 머물 때는 바이룽이 한지호의 아파트에 머물며 역할을 대신할 계획이었다.

첫 날 저녁, 한지호는 금링링에게 두 시간의 여유를 줬다.

짧은 기간이지만 당분간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인 레지던시 아파트에 적응하라는 뜻이었다.

방이 3개나 되고, 발코니 너머로 리펄스 베이의 해안가가 보이는 전망을 가진 럭셔리 아파트이니 머물기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원래 주인이 쓰던 런닝머신을 비롯한 헬스 기구, 그리고 TV와 책도 준비 돼 있으니 감금이라고 해도 초호화 감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금링링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스케줄을 통째로 비우라고 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레지던시 아파트에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게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치료에 있어 환자와 타협을 하지 않는다.

금링링이 아니라 누구라도 한지호에게 치료를 받으려면 그의 방식을 따라야만 한다.

디리링-

약간의 적응 시간이 끝나자 한지호가 금링링이 머물게 된 위층으로 올라왔다.

비밀번호를 누르자 금링링 혼자 있는 아파트 현관문이 열렸다.

물론 안에서도 문을 열 수 있다.

그렇기에 진짜 감금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그녀가 치료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발로 나가면 막을 방법이 없다.

그 순간 치료는 끝나고, 한지호는 금링링의 대마초 중독에 대해 아무 것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제 왔어요? 여기 날 덩그러니 내버려두고?”

한지호가 들어오자 금링링이 눈을 날카롭게 떴다.

표독스러운 표정이 마치 드라마 안에서 악역을 맡았을 때 같았다.

그녀는 얇은 슬립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한의사와 환자로 만났지만, 그리고 한지호가 금링링에게 끌림을 느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 옷차림이다.

금링링은 뚜렷한 이목구비는 물론이고 육감적인 몸매로도 유명했다.

그녀의 몸이 보여주는 굴곡이 슬립 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한지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금링링의 가슴골이나 허리 쪽으로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눈빛만 흔들려도 금링링은 예리하게 시선을 포착하고 어떤 도발을 할지 모른다.

여러모로 예측이 불가능한 여자이기에 주치의로서 빈틈을 보여선 안 되는 것이다.

“적응은 좀 했습니까?”

“여기 적응할 게 뭐가 있어요. 이 좁은 집에서 2주나 못 나간다니…….”

“회사에는 뭐라고 말하고 왔습니까?”

“치료도 받고, 이참에 휴가삼아 쉰다고 했어요. 쓸데없이 전화도 하지 말라고 했고. 가끔씩 잠적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그렇군요.”

한지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금링링이 사고를 자주 치며 잠적을 탔던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다니 신기한 일이다.

그는 금링링과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았다.

모든 게 빌트 인(built-in) 돼 있어서 마치 금링링이 예전부터 살던 아파트처럼 느껴졌다.

“아까도 설명했지만, 내가 홍콩에 있는 동안은 매일. 어쩌면 하루에도 여러 번씩 금링링 씨를 치료하고 상태를 확인할 겁니다.”

“없는 동안에는 그 부원장이 와서 보구요?”

“바이룽 부원장이 직접 침을 놓을 일은 없습니다. 대신 금링링 씨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날마다 내가 정해둔 약재를 탕약을 만들어 올 겁니다.”

“알겠어요.”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한지호의 말에 금링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막상 어떻게 치료를 시작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작은 케이스에 들어있는 새 침을 보여줬다.

“전신에 침을 놓을 겁니다. 속옷만 빼고 탈의한 후 침대에 엎드려있으세요. 참고로 커다란 수건을 몸 아래 깔아놓아야 합니다. 불순물이 나올 테니까.”

“옷을 모두 벗으라고요?”

“대마초 중독, 고치기 싫습니까?”

한지호는 귀찮은 질문을 상대해주기 싫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금링링은 강하게 휘어잡아야 하는 스타일이다.

주위에서 그녀를 톱스타라고 떠받들어줬기 때문에 잘해줘 봤자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지호가 강하게 나가자 그녀는 조용히 침실로 들어갔다.

확실히 철벽을 치고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효과가 있었다.

“준비 다 되면 불러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침실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안에서 준비를 하는 듯 사브작 사브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금링링이 침실로 들어간지 몇분 쯤 지났을까.

소파에 앉아있는 한지호의 귓가로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됐어요!”

한지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2주 만에 약물 중독을 치료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한지호가 아니면 다른 어떤 의사도 도전할 엄두를 못 내는 미션이다.

그가 괜히 금링링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는 게 아니었다.

침술을 펼치는 걸 시작으로 약 처방은 물론, 여기 머무는 동안의 식단까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한지호는 물 샐 틈 없이 짜놓은 치료 플랜을 머리에서 재생시키며 금링링이 누워있는 침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럭셔리한 레지던시 아파트답게 침실에는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로 그 아래, 넓은 침대에 하얀 수건을 깔고 엎드려있는 금링링의 매끈한 몸이 보였다.

속옷만 입고 있는 그녀의 뒤태는 말 그대로 숨이 막힐 정도였다.

여러 영화에서 노출신을 찍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지호도 남자이기 때문에 본능이 먼저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남자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한지호는 남자이기 전에 한의사다.

남자로서의 본능보다 한의사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직업 의식이 훨씬 더 강하다.

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침대 옆에 섰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침을 놓을 겁니다. 지금 자세 그대로 누워있어야 합니다.”

“많이… 아플까요?”

“침을 놓을 때는 통증이 심하진 않을 겁니다만, 침을 다 놓은 후부터 고통스러워질 겁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침을 놓을 때는 괜찮은데 그 다음부터 힘들어진다니.

하지만 한지호는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케이스에 가져온 수십 개의 침을 곱게 펼치고, 순서대로 하나를 집었다.

시작은 대추혈이다.

정수리의 백회혈 아래, 우리가 흔히 뒤통수라 부르는 곳에 대추혈이 자리잡고 있다.

대추혈에서 시작해 신주혈, 명문혈, 양관혈, 장강혈을 거쳐 회음까지 내려온다.

그 다음은 하반신이다.

회음을 기점으로 환조혈, 풍신혈, 양능천혈, 양교혈, 복숭아뼈에 위치한 구허혈을 지나 지오외혈과 발끝의 귀움혈까지.

그야말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기운이 지나다니는 기경팔맥의 주요 혈도를 침으로 자극하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신에 퍼져있는 탁기(濁氣), 금링링의 경우에는 주로 담배와 대마초를 피우며 쌓인 불순문을 걷어내기 위함이다.

한 번의 침술로 몸안의 탁기를 모조리 제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꾸준히 전신을 자극해 불순물을 배출시키고, 그 자리를 선식(仙食)과 한약으로 채운다.

보름 내내 관리를 받으며 집중적으로 치료를 하면 놀라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독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시간을 온전히 비우지 못한다.

식단과 탕약도 한의사의 지시대로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치료 기간이 몇 달 넘게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어설프게 몇 달을 쓰는 것보다 기간이 짧더라도 100% 몰입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중독 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만성 질환은 시간을 두고 길게 보며 치료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약물에 의한 중독 증세는 단기적인 충격 요법으로 뿌리를 뽑아버리는 편이 낫다.

대추혈에 침을 놓은 한지호는 거침없는 손길로 신주혈과 명문혈에도 침을 꽂았다.

“으음…….”

엎드려있는 금링링의 입술 사이로 약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통증이 심하지 않다고 해도 기다란 침이 피부를 뚫고 혈도를 자극하고 있다.

적응되기 전에는 따끔거리는 느낌이 무척 생경할 것이다.

한지호는 문득 김해수의 구음절맥을 치료하던 때를 떠올렸다.

벌써 그게 꽤 오래전의 일이 됐다.

김해수는 정말 목숨이 위험한 상태였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한지호와 살을 맞대며 특별한 치료를 해나갔었다.

금링링도 속옷만 입고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으니 그때 생각이 났다.

하지만 김해수와 그랬던 것처럼 묘한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았다.

김해수를 만났을 땐 마음속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었다.

지금 한지호는 아니라고 부정해도 신경이 쓰이는 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다.

그는 옛날 생각을 접고 다시 침을 들었다.

“아직 별다른 느낌이 없지 않습니까?”

“그냥 그래요.”

“이제 회음에서 하반신으로 내려갑니다. 발끝의 귀움혈까지 침을 놓고 나면 몸에서 변화가 시작될 겁니다.”

“어떤 변화요?”

“그건 직접 느끼게 될 겁니다. 그보다 회음혈은 다소 민감한 자리이니 양해를 부탁합니다. 속옷을 아주 살짝만 아래로 내리겠습니다.”

“…… 마음대로 해요.”

금링링은 치료에 관해선 따지는 걸 포기한 눈치였다.

속옷만 입고 엎드릴 때부터 마음을 놓은 모양이었다.

한지호는 조심스레 그녀의 속옷을 살짝 내려 엉덩이에 걸쳤다.

침을 놓는 혈도로서의 회음혈은 꼬리뼈와 엉덩이 골이 파이는 곳 중간 지점이다.

회음부는 성기와 항문 사이지만 그곳에 침을 놓는 일은 없다.

회음혈의 위치는 그보다 훨씬 덜 민망한 곳에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민감하긴 마찬가지였다.

한지호는 정확한 위치에 원하는 만큼 침을 꽂았다.

이곳은 조금 아픈 부위기이에 금링링이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같은 혈도에 침을 놓아도 매번 똑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깊이, 얼마만큼의 기운을 실어서, 그리고 다른 혈도와 어떻게 연계하여 침을 놓느냐에 따라 몸의 반응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래서 한의학을 비롯한 동양 전통의학에서는 인체의 신비를 우주와 같이 무한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어.’

한지호는 자기 자신이 몰아(沒我)의 경지로 접어드는 것을 체감했다.

추위안차오의 몸에서 독환을 제거할 때도 몰아에 젖었었다.

그만큼은 아니라도 금링링의 회음혈에 침을 놓고, 일사천리로 하반신의 혈도를 공략할 때 외부의 잡음과 빛이 정신을 방해하지 않았다.

꾸우욱-

마지막으로 발가락 끝의 귀움혈에 침이 꽂혔다.

대략 15개 정도의 침이 금링링의 머리부터 발끝을 수놓고 있었다.

무사히 침술을 펼친 한지호가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

“다… 된 거에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네?”

“이대로 일각, 15분만 있겠습니다. 놀라지 말고 가만히 누워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놀라지 말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 것일까.

엎드려있는 금링링은 생각보다 침이 아프지 않았다고 여길 따름이었다.

하지만 한지호는 알고 있었다.

커다란 수건을 깔아놓으라고 말한 것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기 때문이다.

“음? 으음?”

곧이어 금링링이 잔뜩 당황한 소리를 냈다.

그녀의 몸에서 침술로 인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