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76화 (176/255)

# 176

4장, 길들이기 (2)

주르르륵-

땀이라고 보기엔 애매했다.

침이 꽂혀있는 혈도 부근의 모공에서 땟국물 같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대륙의 여신 금링링과 땟국물.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다.

하지만 달리 설명할 말이 없었다.

땀방울보다는 조금 끈적하면서 칙칙한 색을 띈 액체가 송골송골 맺히는 광경은 보기 좋지 않았다.

눈으로 보기에만 좋지 않은 게 전부가 아니었다.

심지어 악취까지 풍겼다.

한지호는 이런 일을 예상했기에 담담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금링링은 달랐다.

그녀는 엎드린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급히 한지호를 찾았다.

“선생님, 한 선생님! 이거 왜 이러는 거죠? 몸에서 기운이 쏙 빠지는 것 같아요. 침을 맞을 때보다 더 아파요, 욱신욱신 거리고!”

“정상입니다. 탁기가 땀에 섞여 배출되는 과정이니까요.”

“이, 이게 정상이라고요?”

“기운이 빠지고 근육통이 느껴지는 건 인위적으로 체온을 높여 불순물을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탁기와 함께 기력도 빠져나가기 때문에 침술을 펼친 다음 무엇을 먹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한지호는 이미 2주치의 식단을 다 짜놓았다.

아주 철두철미한 선식 위주의 식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은 육식을 하지 않으면 기운을 낼 수 없다.

하지만 지금 금링링에게 필요한 건 기운이 아니다.

몸에 쌓인 약물의 기운을 쫙 빼내고, 텅 빈 자리를 깨끗한 기운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수반되는 작은 부작용들은 감수할 필요가 있다.

“고작 15분입니다. 참을 수 있을 겁니다.”

“으으음-!”

금링링은 자기 몸에서 느껴지는 낯선 고통에 입술을 깨물었다.

마치 고열과 몸살 증상을 한 번에 앓는 기분이었다.

탁기와 불순물이 배출되며 체온이 급속도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몸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수치심도 참기 힘들었다.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검은 땀을 줄줄 흘리고 있으려니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금링링의 콧대도 신체 현상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한지호 한 명밖에 없다는 게 위안 아닌 위안이었다.

한지호는 금링링의 몸에서 새까만 땀이 흘러나오는 걸 가까이서 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악취를 직격으로 맡았다.

하지만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이 모든 게 치료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길고 긴 15분이 지났고, 한지호는 금링링의 전신에 꽂혀있던 침을 하나하나 회수했다.

금링링은 15분 동안 탈진했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숨을 쉴 때 어깨가 들썩거리는 걸 보니 의식은 멀쩡하다.

다만 탁기를 배출하며 느낀 고통과 수치심으로 인해 움직이거나 말하기 싫은 상태인 것 같았다.

한지호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위로의 말을 건넸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따뜻한 물로 씻으세요. 나는 금링링 씨의 주치의입니다. 치료 과정에서 내게 보여주는 것들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내게 있어 금링링 씨는 여자가 아닌 환자인 것처럼, 나를 사람이 아닌 의사로 생각하면 됩니다.”

“알겠…… 어요.”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지치면 안 됩니다.”

한지호의 위로를 받아들인 듯 엎드려있던 금링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단호하고 차갑게 그녀를 대하던 한지호가 격려를 했기에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한지호는 금링링을 놔두고 침실 밖으로 나왔다.

첫 번째 침술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꽤 많은 양의 탁기가 땀과 뒤섞여 흘러나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생각보다 땀방울의 색깔과 악취가 진했다.

그만큼 금링링의 몸 안에 약물이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괜히 중독으로 고생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소파에 걸터앉은 한지호는 심각한 얼굴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시작은 좋지만,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겠어. 환자가 괴로워도 어쩔 수 없지.”

또 무슨 방법을 쓰려는 것일까.

분명한 건 한지호가 오직 완치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사실이다.

쏴아아아아아-

금링링이 샤워를 하는 듯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한지호는 소파에서 창밖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었다.

멍하게 있는 것 같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당장 금링링에게 앞으로의 치료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 한다.

뿐만 아니라 침술 외에도 또 어떤 치료법이 효과적일지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고 있었다.

치료법은 무조건적으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상태와 반응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질 수 있다.

한 가지 치료법만 고집하는 의사는 대부분 실력이 없다는 평가를 듣는다.

임기응변에 능한 경험 많은 의사들이 각광을 받는 이유가 따로 있다.

환자의 몸이 어떤 반응을 보여도 가장 적절한 대처법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한지호도 금링링의 약물 중독을 치료할 큰 계획은 세워 놓았다.

그러나 당장 오늘 땀구멍을 통해 분출 된 탁기만 보고도 세부 계획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예상보다 약물 중독의 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려운 치료에 돌입한 의사는 쉴 틈이 없어진다.

휴식을 취할 때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고민을 멈추지 못한다.

치료가 성공할 때까지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밖에 있어요?”

그때 침실 안에서 금링링이 한지호를 찾았다.

그녀가 침실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모양이었다.

한지호는 소파에 앉은 채 대답했다.

“거실에 있습니다.”

“나갈게요.”

금링링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처음 아파트 안에서 봤을 때처럼 얇은 슬립만 챙겨 입었다.

거기에 살짝 젖어있는 머리카락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샤워를 하고 향수를 뿌렸는지 달콤한 냄새가 거실의 공기를 감쌌다.

하지만 한지호는 무표정하게 소파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새초롬한 얼굴의 금링링이 한지호 앞에 앉았다.

한지호는 그녀가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담배, 오래 피웠죠?”

“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탁기가 많이 쌓여있더군요. 악취를 풍기던 끈적끈적한 액체가 몸에서 나와 놀라지 않았습니까?”

“놀랐죠, 당연히. 내 몸에서 그런 게 나올 줄…….”

“앞으로 더 많이 빼낼 겁니다. 오늘은 시작에 불과해요.”

“내 몸 안에 그만한 게 더 들어있다는 뜻이에요?”

“그럼요. 보통 사람도 탁기를 쌓으며 살아갑니다만, 흡연자는 더 심하죠. 거기에 금링링 씨는 대마초에 중독되어 단기간 집중적으로 약물을 받아들였으니까.”

“아- 정말.”

금링링은 현기증이 나는지 머리로 이마를 짚었다.

섬섬옥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하얗고 긴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저 손으로 대마초를 달고 살았을 거라 생각하니 참 아이러니했다.

“내일, 그리고 모레까지 계속 오늘과 같은 침술을 펼칠 겁니다. 그때마다 탁기가 배출되겠죠. 물론 몸의 좋은 기운도 약간은 함께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아까 몸살과 같은 증세를 느꼈던 것이고, 급격히 배가 고파지거나 몸이 허해질 수도 있습니다.”

“맞아요. 지금도 엄청 배가 고파요. 감기를 앓고 난 다음처럼 몸도 으슬으슬하고요.”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 때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금링링 씨의 체질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요?”

“내가 짜놓은 선식 식단을 지키고, 한약도 제 시간에 잊지 말고 먹도록 해요. 그렇게만 하면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는 걸 포함해서 덤으로 건강도 좋아지고, 피부도 눈에 띄게 달라질 겁니다.”

“다 좋아요. 다 좋은데…… 이 아파트에만 갇혀서 2주 동안 제공되는 채식 식단, 선식이라고 했죠? 그것만 먹고 버티라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탁기든 선기든 기운을 배출한 이후 몸은 백지상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연을 비롯한 온갖 독기로 가득한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금링링 씨의 몸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선식은 체질을 바꾸고 몸의 내성을 기르는데 필수적입니다.”

한지호는 단 하나도 양보하지 않았다.

환자의 편의를 위해 물러설 수 있는 문제라면 얼마든지 관대해졌을 것이다.

그는 일부러 환자를 골탕 먹이며 기뻐하는 취미 따위는 없었다.

금링링을 레제던시 아파트에서 못 나가게 하고, 선식과 한약 외에는 어떤 음식물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면 치료는 끝난다.

한지호는 진즉부터 최악의 경우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모레까지 침술로 탁기를 배출하고,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은 선식과 약으로만 컨디션을 조절할 겁니다. 그 다음 다시 홍콩에 돌아와 침을 놓고.”

“일주일을 반으로 나누는 거네요.”

“맞습니다. 그렇게 두 번의 텀이 돌아가고, 보름이 다 됐을 때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겁니다.”

“오늘 내 몸에서 이상한 게 땀과 섞여 나오는 걸 보고 느꼈어요. 선생님이라면 이걸 치료해줄 수 있겠다는 사실을. 그런데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금링링이 모처럼 솔직한 흉금을 털어놓았다.

그녀도 침술 치료를 받으며 한지호의 의술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걸 체감했다.

이 사람이라면 대마초 중독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거라는 확신을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 쉬워 2주의 감금 치료이지, 실제로 모든 과정을 견디는 건 결코 만만하지 않은 일 같았다.

한지호는 금링링의 고민에 크게 공감했다.

나약한 소리 하지 말라며 윽박지르지 않았다.

그가 표정을 이전보다 부드럽게 풀면서 대답했다.

“금링링 씨. 연예인이니까 남들보다 더 혹독한 다이어트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다이어트야 일상이잖아요.”

“처음에는 힘들어도 막상 하다보면 몸이 다이어트에 적응을 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래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과 정신은 나태해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반면 적절한 긴장을 주면 금방 한계를 뛰어넘기도 합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제 말을 믿어요. 몸은 길들이는 겁니다.”

“길들이는 것이라고요?”

“물론 너무 무리하면 탈이 나지만, 적절한 채찍질로 몸과 정신을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금링링 씨는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니까 이해할 거라 생각합니다.”

한지호는 그녀에게 기운을 줬다.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조언이었다.

힘들어 할 몸에게 지지 말고 채찍질로 길들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2주 동안 본인의 의지로 치료를 감내해야 하는 금링링은 뭔가 결심한 듯 입술을 꽉 다물었다.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지금 대마초 중독을 치료하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에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그녀의 연예계 생명이 끝날지 모른다.

한지호는 그녀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며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100% 자신할 수는 없지만 비로소 금링링이 환자다운 환자가 된 것 같았다.

환자다운 환자라는 건 반드시 낫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을 뜻한다.

한지호와 금링링.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한 두 사람의 남은 2주가 예사롭지 않게 흘러갈 것 같았다.

그 끝에서 둘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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