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05화 (105/255)

# 105

1장, 천적 (1)

한지호는 곧장 신사동 오피스텔 아파트로 돌아와 서재에 틀어박혔다.

방 하나를 연구실 겸 서재로 만들어 놓은 그는 컴퓨터를 켜고 관련 자료를 검색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뱀, 특히 독사의 천적을 사슬(沙蝨)이라고 한다.

사슬은 물여우라고도 하는데, 사전에 의하면 날도랫과 곤충의 애벌레를 뜻하는 말이다.

작은 곤충을 잡아먹고 살며 여름에 나비가 되는 애벌레를 물여우라고 한다.

하지만 한지호가 떠올린 사슬은 조금 다른 종류다.

불세출의 한의학자 허준이 동의보감에 기술한 사슬 역시 나비가 되는 애벌레와는 종이 다르다.

한지호는 한의대 재학 시절 어설프게나마 동의보감을 읽었던 것에 감사했다.

물론 어렴풋이 떠올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다행히 세상이 좋아져 인터넷 검색으로 동의보감 한글본을 찾아 읽을 수 있었다.

“사슬은 뱀의 비늘 속에 사는 벌레이다. 사슬은 뱀을 괴롭게 하는 천적이다. 뱀은 사슬을 털어내기 위해 모래에 몸을 비비는 등 애를 쓰는데, 사람이 모래를 통해 사슬의 독을 받으면 피부가 헐고 좁쌀 같은 종기가 돋아난다.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사흘 안에 죽을 수도 있다.”

한지호는 동의보감에 나온 사슬의 정의를 간단히 요약해 입으로 읊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사슬은 뱀의 천적인 동시에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맹독(猛毒)을 품고 있다.

독사보다 더 지독한 벌레인 셈이다.

과연 이것이 황태수의 아내를 치료하는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불현듯 영감을 얻은 한지호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눈에 불을 켜고 관련 자료들을 탐독했다.

꽉 막혀있던 문제의 실마리를 찾았기에 열정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어쩌면 이지은이 행운의 여신인지도 모른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예기치 못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독제독이야, 이독제독.”

한지호는 독으로 독을 제압한다는 이독제독(以毒制毒)이란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

원래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막는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가 올바른 사자성어지만, 한의학계에서는 예로부터 이독제독의 원리를 응용해왔다.

잘 쓰면 독도 약이 되고, 못 쓰면 약도 독이 된다.

약초와 독초는 결코 종이 다르지 않다.

결국 의원의 손길에 따라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정해지는 것이다.

한지호는 사슬이라는 독충(毒蟲)을 약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독사는 독충으로 잡는다.

황태수의 아내가 안고 있는 광전증(狂戰症)을 치료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밤을 지새울 것 같았다.

+++

“간판은 미심쩍은데.”

한지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최치우의 소개를 받아 경기도 파주까지 달려왔다.

운전을 하며 한지호와 함께 온 조기운도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외관은 그렇게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형님.”

그의 말대로 눈앞의 가게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이름도 없이 <뱀, 개소주, 보신 전문>이라는 낡은 간판이 달려 있었고, 굳게 닫힌 유리문 안쪽의 풍경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한지호와 조기운이 파주까지 달려온 건 다름 아닌 사슬을 구하기 위해서다.

동의보감에 나온 독사의 천적, 사슬.

사슬의 독으로 약을 만들면 황태수의 아내에게 내재 된 사독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사슬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물여우를 구하는 것도 힘든데 뱀의 비늘에 기생하는 사슬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한지호가 믿을 구석은 명징약초의 최치우밖에 없었다.

팔도의 심마니와 약초꾼들이 최치우를 큰 형님으로 모시기 때문이다.

최치우라면 도움을 줄 것 같았고, 그는 남한의 북쪽 끝이라 할 수 있는 파주의 주소를 일러줬다.

“일단 들어가자.”

“알겠습니다.”

한지호의 말을 들은 조기운이 잽싸게 문을 두드렸다.

굳이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조기운은 한지호 밑에서 청우단 고객을 관리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며 인생이 바뀌었다.

미래가 불투명하던 과거와 달리 꽤 많은 돈을 벌고 있고, 잘나가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회적인 네트워크도 쌓았다.

게다가 한지호에게 아우디 A5를 선물 받아 20대에 외제차를 모는 대열에도 합류했다.

그러나 여전히 순수한 의경 시절처럼 변치 않고 우직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한지호는 흐뭇한 얼굴로 조기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낡은 외관의 가게가 수상했지만, 최치우가 소개해준 곳이니 일단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계십니까?”

똑똑똑!

조기운이 목소리를 높이며 여러 차례 문을 두드렸다.

각종 보약을 홍보하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유리문 너머 가게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똑똑-!

유리문을 두드리는 강도가 점점 세졌다.

조기운이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실은 것이다.

오금희를 통해 무공을 수련한 한지호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조기운은 타고난 체격과 운동신경을 가진 강골이다.

그의 힘이 실린 노크에 유리문이 크게 들썩거렸다.

“거 문짝 다 부서지겠네!”

곧이어 가게 안쪽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렸다.

조기운의 노크에 한참 늦게 반응을 해온 것이다.

드르륵-

신경질적으로 문을 연 사람은 자다 일어났는지 떡진 머리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 온 뉘슈?”

깡마른 체구의 중년 남자가 눈을 부라렸다.

가게 주인장은 최치우보다는 연배가 조금 아래인 것 같았다.

그는 낮잠을 방해 받아서인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명징약초 최치우 사장님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습니다.”

뒤에 서있던 한지호가 나섰다.

최치우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주인장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확실히 팔도의 약초꾼들 사이에서 통하는 최치우의 명성이 죽지 않은 것이다.

“치우 성님의 소개로?”

“네, 그렇습니다.”

“성님이 별 말씀 없으셨는데…….”

“전화를 몇 번 하셨는데 받지 않으신다고. 그래서 바로 주소를 알려주셨습니다.”

“고것이 내가 산을 타다 전화기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아무튼 그랬구만. 치우 성님의 손님들이라니, 안으로 들어오소.”

주인장은 출신을 알아듣기 힘든 요상한 사투리를 사용했다.

한지호는 그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산을 타며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느라 각 지방의 사투리가 조금씩 섞인 것 같았다.

이름난 약초꾼이나 심마니들은 대체로 말투가 이상하다.

한 곳에 머물러있지 않고, 팔도를 돌아다니며 서로 다른 지역의 꾼들과 교류하다보면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지호와 조기운은 주인장을 따라 유리문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가관이었다.

진열대에는 먼지가 가득했고, 참기 힘들 정도의 악취가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먼지 쌓인 진열대 위에는 주로 술들이 놓여 있었다.

인삼주, 더덕주 등 각종 약초를 넣어 담근 술이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중이었다.

주인장은 술을 담가서 진열대에 올려놓은 후 방치하는 듯 했다.

몇 달, 아니 몇 년 째 신경을 안 쓰는지 술들이 걱정 될 정도였다.

그 와중에 한지호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들도 꽤 있었다.

“형님, 저 쪽에…….”

조기운도 같은 것을 봤는지 나지막이 한지호를 불렀다.

한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가게 구석에는 뱀술들이 놓인 공간이 따로 있었다.

종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다양한 모양의 뱀들이 술통에 빠져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보였다.

특이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다른 진열대와 달리 뱀술들이 놓인 곳에는 먼지가 보이지 않았다.

주인장이 그쪽을 쓸고 닦으며 관리를 한다는 뜻이다.

가게의 다른 곳은 모두 난장판인데 유독 뱀술이 놓인 쪽만 청소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주인장에게 있어 이곳의 뱀술들이 무척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치우 성님이 보낸 양반들. 무슨 용건이 있어 예까지 찾아온 거요?”

“선생님께서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땅꾼이라고 들었습니다.”

“한 때는 그렇게 불렸지만…… 이제야 뭐 옛날 이야기지.”

주인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땅꾼이라는 호칭이 싫지 않은지 겸연쩍게 웃었다.

땅꾼.

산을 타며 뱀을 잡고, 잡은 뱀을 이용해 술이나 약을 만들어 파는 사람.

적어도 뱀에 한해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들이 바로 땅꾼이다.

허름한 보신 가게의 주인장은 최치우가 인정한 최고의 땅꾼이었다.

“파주까지 찾아온 걸 보면 예사 일은 아닐 테고, 귀한 뱀이 필요한 거요?”

“뱀이 아니라…… 혹시 사슬이라는 벌레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한지호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사슬은 약초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독충이다.

그나마 아는 게 많다는 사람도 평범한 물여우로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주인장은 달랐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그 빌어먹을 벌레 새끼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모를 리가 있겠수?”

“……!”

한지호와 조기운이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약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최치우도 고개를 내저었었다.

그런데 주인장은, 아니 대한민국 최고의 땅꾼은 당연하다는 듯 사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언급하는 내용도 정확한 것 같았다.

“정말 사슬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뱀 비늘에 붙어사는 벌레들 말하는 거 아니요? 다른 사슬도 있는가는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비늘에 붙어서 독사들을 괴롭히는 벌레!”

“땅꾼들 입장에서는 그 벌레가 고맙기도 하고, 밉기도 할 수밖에 없지.”

“네?”

“독사들이 비늘에 붙은 사슬인가 하는 벌레들을 털어내려고 모레로 기어나오거든. 그래서 손쉽게 희귀한 독사들을 잡아낼 수 있는 거고. 또 한편으로는 기껏 잡아놓은 뱀들이 사슬한테 시달려서 뒤지기도 하니까 미워 죽겠는 것이고. 이해가 되슈?”

“바로 그 사슬이 필요합니다.”

한지호는 사람을 제대로 찾았다고 확신했다.

지금까지 그가 구하는 사슬에 대해 주인장처럼 제대로 아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뱀과 붙어서 생활하는 땅꾼을 소개해준 최치우의 안목도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독충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예까지 찾아왔고?”

“그렇습니다.”

“대체 뉘신데 뱀도 아니고 뱀을 괴롭히는 벌레를 구하는지 모르겄네……. 진짜 치우 성님이 보낸 거 맞수?”

“소개가 늦었습니다. 서울에서 원화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 한지호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동생 조기운입니다. 그리고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최치우 사장님과 전화를 연결시켜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한지호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 명함을 내밀었다.

그의 명함을 받은 주인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글자 한 글자를 꼼꼼하게 읽었다.

이내 주인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호와 조기운의 행색이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최치우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파주 구석의 가게를 찾아올 수 있었겠는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다만 한지호가 왜 사슬을 구하는지는 계속 궁금한 모양이었다.

“사슬을 구해주는 거야 어렵지 않소만, 대체 그게 왜 필요한 거요?”

“정말 구할 수 있습니까?”

“두 말 하면 잔소리라니까. 내 농장에서 뱀 새끼를 잡아다가 털면 그 빌어먹을 벌레가 우수수 떨어질 거요.”

“그 벌레가 있어야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한지호의 목소리에 뜨거운 진심이 담겨 있었다.

사람을 살린다.

그 한 문장이 가지는 힘은 실로 위대하다.

어렵게 실마리를 찾아내 파주까지 온 한지호는 굳게 잠겨있던 비밀의 문을 열어내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땅꾼이 독사의 천적을 그의 손에 쥐어주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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