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04화 (104/255)

# 104

11장, 나비 효과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버서커는 광전사를 뜻합니다. 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전투에 몰입하는 병사들이죠. 이런 광전사들은 큰 부상을 입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적들에게 달려듭니다. 때문에 적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단순히 신화나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스와 북유럽, 그리고 고대 중국의 기록을 찾아보면 두려움을 모르는 광전사들의 이야기가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그 이야기가 제 아내의 병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광전사 부대의 병사들에게 특수한 약을 지어 먹였습니다. 일종의 마약인 셈이죠.”

“그런 약이 있다고 해도 제가 아내에게 먹였을 리가……. 광전사, 광전증. 이런 단어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데 말입니다.”

“혹시 사모님께서 뱀으로 만든 약이나 술을 드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뱀이요? 뱀……. 아, 서, 설마-!”

단서가 생각난 것일까.

황태수는 엄청난 쇼크를 받은 모양이었다.

쿵-!

다리에 힘이 풀린 그가 휘청거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한지호가 걱정하며 황태수의 안위를 살폈다.

“황 선생님.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하시던 이야기를 마저 부탁드립니다. 배, 뱀이 아내의 병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광전사를 만드는 약에 들어가는 필수 재료가 사독입니다. 뱀독이라고도 하죠. 사모님은 아마 사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그냥 뱀이면 괜찮은데 독기를 머금은 뱀을 꾸준히 섭취했다면…… 그로인해 광전증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황태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입을 벌렸다.

한지호는 그런 그를 쳐다보며 전생의 기억에 몸서리를 쳤다.

수 천, 수 만 명의 병사들이 죽고 죽이던 삼국지 시대의 전쟁터.

군주와 장수들은 영토 한 자락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다.

책사들은 암암리에 떠도는 광전사 제조법을 알아내 두려움을 모르는 병사들을 양성했고, 전쟁은 끝을 모르고 잔인해져갔다.

하지만 머지않아 광전사들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장수들이 광전사 부대를 통솔하지 않으면서 기록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아직까진 추측에 불과하지만, 황태수의 아내는 하필이면 독사로 만든 뱀술이나 보약을 장기간 복용한 것 같다.

한국에는 유독 검증되지 않은 땅꾼들이 많다.

산을 타며 뱀을 잡는 사람을 땅꾼이라 하는데, 전문가도 있지만 사짜들도 넘쳐난다.

심마니들도 산에서 뱀을 발견하면 대충 잡아서 술이나 약으로 만든다.

독사를 제대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정확한 판별이 어렵다.

그래도 땅꾼이라는 명함을 달고 다니면 뱀독을 제거하는 법은 알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린 게 사이비 아니던가.

뱀독, 즉 사독(蛇毒)이 조금이라도 남아 몸에 쌓이면 무슨 병을 낳을지 모른다.

황태수의 아내처럼 특이한 체질과 결합해 광전증을 앓게 될 수도 있다.

발작이 일어나면 맥이 주체 못 할 정도로 빠르게 뛰면서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 평소에 없던 힘이 솟아나는 것 모두 광전증의 증상이다.

사독 외에 다른 약재가 첨부 됐다면 진짜 고대의 광전사처럼 변해 버렸을지 모른다.

그나마 이 정도 증상인 게 다행이었다.

물론 오랜 발작으로 그녀의 몸은 한계치에 다다라 있었다.

한지호를 만나지 않았다면 올해를 넘기기 전에 기력이 쇠하여 시들시들 죽어갔을 것이다.

“모두 내 탓이었습니다, 원장님. 세상을 원망할 것 없이 다 내 탓이었어…….”

황태수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한지호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황태수는 허약한 아내의 몸보신을 위해 뱀탕이나 뱀술을 지속적으로 구입해 먹였을 것이다.

사독이 제거되지 않았다는 걸 그가 알 리 없었다.

따지고 보면 황태수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는 지난 세월 내내 아내를 괴롭히고, 재산과 직장을 잃게 만든 병이 자기 때문에 생겼다고 판단했다.

어쩌면 아내의 발작을 지켜볼 때보다 더 괴로운 순간일 수도 있다.

한지호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황태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황 선생님, 사모님의 병이 광전증이 맞다면 제가 고치겠습니다. 후유증이 남겠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두 분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면서 지난 세월을 갚아가는 게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요.”

“원장님, 제발, 제발 고쳐주십시오. 지난 세월을 모질게 참으며 견뎠지만, 아내의 병이 제 탓으로 생긴 걸 알게 됐으니 더는 두고 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황태수는 체면을 버리고 한지호의 팔을 붙잡은 채 흐느꼈다.

인생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은 50대 남성의 눈물은 서글프다 못해 처연하게 보였다.

한지호는 큰삼촌 뻘인 황태수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말보다 진한 위로가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해내겠습니다. 반드시.”

구구절절 길게 말하지 않았다.

짧고 단순한 말이 큰 울림을 주는 법이다.

광전증이 맞다면 그 치료법은 무엇인지, 예상되는 부작용과 장애는 어떤 종류인지, 굳이 이 자리에서 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황태수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힘겹게 떠안았고, 나머지 일들은 치료를 하며 순리대로 풀어가면 된다.

한지호는 그저 한 문장만 더 덧붙였다.

“사모님이 광전증을 앓게 된 것은 황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잘못이 있다면 아무 뱀이나 잡아서 해독도 못하고 약을 만든 사람들을 탓해야죠. 지나간 일보다는 앞으로를 바라봤으면 합니다.”

한지호는 다시 한 번 한국에 넘치는 사짜 심마니, 땅꾼, 약장수들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걸 절감했다.

그들이 망쳐 놓은 사람과 가정이 황태수 부부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광전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고치겠다고 다짐하면서 또 하나의 결심을 했다.

사이비 민간요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없도록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1주일에 한 번 <건강 백서, 진짜! 가짜!>를 통해서 방송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황태수 부부의 사례는 한지호로 하여금 한의학과 관련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 여파가 얼마나 클지 아직은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M 호텔의 객실 안, 한지호와 황태수는 오늘의 난리가 평화로운 미래를 향한 관문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

“으흐음……. 이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조합일세.”

최치우가 인상을 쓰며 말을 내뱉었다.

한지호는 그의 앞에서 여러 약초를 배합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뭉친 두 사람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지호가 진료를 마치고 경동시장에 있는 명징약초를 찾아 실험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렵네요.”

명징약초에 있는 약재를 거의 다 꺼내서 머리를 굴리던 한지호는 순순히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다름 아닌 황태수의 아내를 위해 실험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쌓인 사독을 제거하려면 아주 특별한 약이 필요하다.

우선 완전히 말라가는 기력을 보하기 위해 약재를 처방하고 침을 놓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본질적으로 발작을 없애려면 몸 안 깊숙하게 배어든 사독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광전사를 만드는 약의 제조법은 소실된 지 오래다.

그것은 일종의 독약이자 마약이었다.

문제는 황태수의 아내가 제대로 된 광전사 제조약을 복용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주요 재료인 독사(毒蛇)의 정기(精氣)를 잘못 흡수했고, 체질과 결합되어 증상이 나타난 것뿐이다.

그렇기에 알맞은 해독약을 만드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지호는 전생에서 광전사가 되어 버린 이들을 해독한 적이 있었다.

화타와 함께 대량의 해독약을 만들어 광전사 부대 하나를 무력화시킨 공로를 세웠다.

하지만 그때와 똑같은 해독약은 황태수의 아내에게 통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다른 건 건드리지 않고 사독만 골라서 해독해야 하는데…….’

초조한 듯 한지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황태수와 그의 아내는 여전히 역삼역 부근의 M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 부부가 서울로 올라온 지 벌써 나흘이 지났다.

그 사이 황태수의 아내는 두 번의 발작을 했다.

한지호가 지어준 보약을 먹은 덕분에 기력을 회복하고 있고, 영양실조 상태에서도 벗어나는 중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호텔 안에서 발작을 거듭하는 걸 방치할 수는 없다.

처음 발작이 일어났을 때 그녀가 찢어버린 침대 시트와 이불을 배상하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호텔 직원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주기적으로 침구류를 손상하면 강제 퇴실을 당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호텔 어디로든 숙소를 옮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지호는 웬만한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보는 유명인이다.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호텔 침대를 쓰레기처럼 찢어발긴다는 소문이 퍼지면 이상한 루머가 양산될 가능성도 있다.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서각은 어떤가?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해독에 그보다 좋은 약재를 찾기도 힘들 터인데.”

한지호와 함께 고민에 빠져있던 최치우가 입을 열었다.

서각(犀角)은 무소의 뿔을 뜻한다.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도 서각을 이용해 해독을 하는 방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보통 서각은 육독(肉毒)에 중독 됐을 때 쓰이는 약재다.

그러나 넓은 시각에서 보면 뱀 역시 육고기의 한 종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서각을 쓰는 게 어떻겠냐는 최치우의 조언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서각이라, 서각. 당장 구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원래라면 며칠이 걸리지만, 시급을 다투는 일이니 내일 점심까지 구해놓을 수 있네. 동생 놈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들들 볶아봐야지.”

최치우는 전설적인 약초꾼이었다.

심마니 이원복을 비롯해 그를 큰형님으로 모시며 따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가 수배령을 내리면 구하기 어려운 서각이라도 하룻밤 사이에 명징약초로 배달 될 것이다.

한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봐야죠. 내일까지 서각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반드시 구해놓음세.”

“네, 저도 연구를 더 해보겠습니다.”

한지호는 엉망이 된 탁자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명징약초를 뒤집어 놓으면서 이런저런 약초들을 배합했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황태수의 아내에게 배어든 사독은 이미 만성화 되어 어지간한 약으로는 제거하기 힘들 것이다.

부작용을 최소화 하면서 사독을 제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한지호는 황태수에게 치료를 하더라도 평생 장애가 남을 수 있다고 일러두었다.

해독 과정에서 강렬한 내부 작용이 일어나 다른 신체 기관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해독약부터 만들고 나서 선택을 맡겨야겠지.’

한지호는 해독이 가능하다고 확신을 얻고 나면 황태수 부부에게 선택권을 넘겨줄 계획이었다.

이러이러한 부작용이 따를지도 모르는데 해독약을 먹겠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발작을 견디며 시름시름 앓아 가겠느냐.

어떤 결정을 내리건 황태수 부부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발작을 계속 하는 것만큼 평생 남는 장애가 생기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의원이라고 해서 환자에게 일방적인 방향을 강요해선 안 된다.

최종적인 책임은 환자 스스로 지는 것이기에 중요한 결단도 직접 내려야 한다.

명징약초에서 실험을 마치고 경동시장 밖으로 나온 한지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어느새 매서운 겨울의 추위가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아직 꽃샘 추위 등 봄이 오려면 시련이 남았지만, 분명 계절은 흘러가고 있다.

시간이 앞으로만 가는 것처럼 황태수의 아내에게도 차도가 있기를 그는 진정으로 바라고 있었다.

아내를 바라보던, 그리고 자책감에 눈물을 흘리던 황태수의 모습이 뚜렷한 잔상으로 각인됐다.

한지호에게 있어 황태수는 볼품없이 초라한 50대 아저씨가 아니라 진짜 사랑을 지키는 존경스러운 남자였다.

+++

“지호 오빠. 언제나처럼 잘 해낼 거라고 난 믿고 있어. 그러니까 힘 내. 어깨 펴구.”

늘 짧게 느껴지는 데이트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 이지은이 한지호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그녀는 한지호가 황태수 부부를 돕고 있는 걸 알고 있다.

자비를 들여가며 최선을 다하는 한지호의 모습에 또 한 번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치료법을 찾느라 애쓰며 힘겨워하는 한지호가 더욱 안쓰럽게 보였을 것이다.

한지호는 이지은의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길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뭐야? 그거 인터스텔라 대사잖아?”

“맞아. 감명 깊은 대사라서. 매튜 메커너히는 우주에서 지구 멸망도 막아내는데, 병마와 싸우는 의사가 힘을 잃어선 안 되겠지.”

“똑똑하네, 우리 오빠.”

이지은이 활짝 웃으며 한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7살이나 어린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하나도 싫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 든든한 기운이 샘솟는 느낌이었다.

한지호는 이제 막 23살이 된 국민 여동생을 누구보다 깊게 의지하고 있었다.

“주말에는 드라마 OST 녹음한다고 했지? 그 드라마가 OST 덕 좀 보겠네.”

“내가 드라마 덕을 좀 봐야 할 텐데, 헤헤.”

“넌 누구 덕 안 봐도 계속 최고잖아.”

괜한 말이 아니었다.

이지은은 연예계에서 최고의 여자 솔로 가수 자리를 차지한 이후 기복 없는 성적을 내고 있었다.

음원을 발표하면 무조건 1위는 기본이다.

그녀는 이효리 이후 끊어졌던 여자 솔로 가수의 명맥을 이었고, 과거의 여가수들과 달리 작사 작곡 능력에 가창력까지 겸비했으니 계속 롱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이지은이 한지호만 바라보며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힘이 나지 않을래야 안 날 수 없는 상황이다.

“나 그럼 들어갈게. 오빠도 조심히 가요.”

“응. 집에 도착해서 연락할게.”

한지호가 인사를 마치자 이지은이 기다렸다는 듯 발 뒤꿈치를 들어 입술을 포갰다.

키스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짧은 입맞춤이지만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없었다.

한지호는 손을 흔들어 이지은을 끝까지 배웅했다.

총총거리며 숙소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여전히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지은과 만나면 한 시름을 놓게 된다.

무소의 뿔인 서각을 구했지만 해독약을 만드는데 실패한 한지호는 잠시나마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냥 현실에서 도피할 수만은 없다.

데이트가 끝났으니 다시 주어진 문제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한지호는 오피스텔 아파트가 있는 신사동까지 걸어가며 당면한 과제들을 되짚었다.

‘서각으로 만든 해독제는 사독에 별다른 효과가 없었어. 그 정도 효과를 믿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몸 안에 뿌리를 내린 독사의 기운을 물리치려면 대체 뭐가 필요할까? 가능하기는 한 걸까? 병이 존재하는 한 분명 치료법도 있을 텐데…….’

그가 해야 할 고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공개 심사 입찰에서 마창우의 블랙문 코퍼레이션이 영종도 내국인 카지노 사업권자로 확정됐다.

이제 본격적인 공사 개시를 앞두고 투자금을 조달해야 할 시기다.

이미 대규모 대출을 포함해 50억 원의 자금을 마련해놓은 한지호는 정식으로 계약서를 써야 한다.

블랙문 코퍼레이션의 개인 투자자로 내국인 카지노 사업에 조인을 해야 할 타이밍이 된 것이다.

영종도의 내국인 카지노 사업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이고, 모든 게 시나리오대로 준비 돼 있다.

그렇지만 무려 50억 원을 투자하는 계약서를 쓰는데 긴장이 안 될 수 없었다.

황태수 부부와 카지노 사업.

두 가지 문제 말고도 원화 한의원 운영과 매주 수요일의 방송 촬영.

끊임없이 밀려드는 취재 요청과 방송 요청 및 천사원을 후원하는 원화 재단 관리까지, 한지호는 열 명이 할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었다.

사무장 박우식이 크고 작은 문제를 일일이 도와주지만 한계가 있다.

그의 업무량은 일반 한의사들과 비교하기 힘든 지경이다.

“환자들에게 과로는 건강의 천적이라고 하면서, 정작 내가 과로를 하고 있으니.”

한지호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업무량이 많은 환자들에겐 일과 스트레스를 동시에 줄이라고 강권해왔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고, 과로(過勞)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이 과로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래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옛말이 나온 모양이다.

찌릿-!

그런데 길을 걷던 한지호가 갑자기 멈춰 섰다.

강렬한 자극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깨달음이다.

“천적? 천적?”

과로가 건강의 천적이라는 혼잣말이 연결 고리가 되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다.

한지호의 눈동자에서 형형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뱀의 천적, 독사의 천적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그가 자책하듯 인상을 썼다.

화타의 의술이 아니라 한의대 시절 건성으로 읽으며 넘겼던 동의보감의 구절이 떠올랐다.

“사슬(沙蝨). 사슬이 답이었어!”

- 5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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