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06화 (106/255)

# 106

1장, 천적 (2)

한지호와 조기운은 어지간한 것에는 절대 놀라지 않는 담력의 소유자다.

오금희로 정신과 육체를 단련해온 한지호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기운 역시 깡패 같은 용역들 틈바구니로 뛰어들 만큼 강인한 정신력과 운동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주인장을 따라 가게에서 제법 떨어진 곳의 농장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땅꾼들의 농장은 말 그대로 산에서 잡아온 뱀을 사육하는 장소다.

곡식이 자라나는 농장과 달리 음울하고 지독한 뱀의 기운이 공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스슷- 스스스슷!

수십, 수백 마리의 뱀들이 땅을 기어 다니며 혀를 날름거렸다.

자기들끼리 어지럽게 뒤엉켜 기 싸움을 하는 뱀들도 있었다.

농장이라고 부르지만, 당연히 탁 트인 곳은 아니다.

일종의 헛간이나 창고 같은 곳에 서로 다른 뱀을 모아놓은 것이다.

“어떻수? 이런 건 처음 보는 거 아니요?”

주인장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한지호와 조기운을 쳐다봤다.

둘은 굳이 놀람을 숨기지 않았다.

“처음 봅니다. 노가다 판에서 일할 때 가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이렇게 수백 마리의 뱀들이 모여 있을 줄은…….”

“이렇게 모아두면 탈이 나지는 않습니까?”

조기운은 순수하게 감탄을 금치 못했고, 한지호는 그 와중에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주인장은 씨익 웃으며 대답을 해줬다.

“그걸 모르면 땅꾼이라 할 수 없지 않겠소. 여기 있는 놈들은 저마다 한 가락씩 하는 독사요. 영특한 독사들은 섣불리 서로를 건드리지 않고, 경계만 하는 게 다반사라 오래 두어도 문제가 없수다. 어설픈 놈들을 농장에 넣어두면 죽고 죽이고, 그러다가 다른 독사들의 살기도 건드려서 사단이 나는 법이고 말이오.”

“교묘하네요.”

한지호는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농장이라 불리는 창고의 주변에서부터 음울한 독기가 느껴졌던 것도 그래서였다.

만만치 않은 독사들만 골라서 모아두니 주위의 공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강한 독사들만 모아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 이것도 따지고 보면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이치를 적용한 방법이었다.

“그럼 이제…….”

한동안 주인장의 농장을 둘러본 한지호가 운을 띄웠다.

한지호와 조기운은 독사를 구경하기 위해 파주까지 온 게 아니었다.

뱀의 비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독충인 사슬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주인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기다리슈. 눈앞에서 원하는 만큼 사슬을 줄 터이니. 치우 성님이 보낸 손님들인데 그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지.”

말을 마친 주인장은 미리 준비해온 새하얀 비닐을 바닥에 펼쳤다.

제법 굵은 재질의 튼튼한 비닐이 농장 앞 바닥에 깔렸다.

주로 농사일에 쓰이는 비닐인데, 땅꾼들도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이었다.

조기운도 주인장을 도왔다.

여러 번 접어서 가져온 비닐이 온전히 펼쳐지도록 손을 거든 것이다.

어른 한 명이 위에서 뒹굴어도 될 만큼 꽤 넓은 공간을 새하얀 비닐이 뒤덮었다.

사전 작업을 마친 주인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그가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창고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무 예고 없이 걸어간 거라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독사 수백 마리가 우글거리는 창고 안으로 보호 장비 하나 없이 들어간 것이다.

아무리 날고기는 땅꾼이라 해도 겉보기엔 신경질적인 외모의 평범한 아저씨일 뿐이다.

“사장님, 그렇게 갑자기……!”

조기운은 발을 동동 굴렀고, 한지호는 무의식적으로 단전의 내공을 격발시켰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언제라도 오금희를 펼쳐 주인장을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주인장이 안으로 들어서자 놀랍게도 독사들이 홍해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마치 맹수를 피해 도망치는 양떼와 같았다.

좌우로 갈라진 독사들은 주인장의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맹독과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뱀들이 비쩍 마른 중년 남자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지호와 조기운은 알지 못하는 세계.

평생 뱀을 잡으며 살아온 땅꾼들의 세계에서만 통용 되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농장의 독사들은 본능적으로 땅꾼의 기세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슬이라는 독충도 뱀의 천적이지만, 그보다 더 강하고 원초적인 천적이 바로 땅꾼이기 때문이다.

기세 좋게 들어선 주인장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수백 마리의 독사 중에서 어떤 놈들이 사슬로 괴로워하는지 일일이 아는 것 같았다.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땅꾼이라는 최치우의 평가는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곧이어 주인장이 낡은 목장갑을 낀 손으로 뱀을 낚아챘다.

크기가 있어서 한 번에 한 마리만 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

주인장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뱀을 들고 나오며 입을 열었다.

“귀찮아서 그냥 놔두고 있었는데, 이참에 애들 가려운 구석이나 긁어줘야 겄수.”

양 손으로 뱀 한 마리를 잡은 그는 하얀 비닐 위에 섰다.

그는 한지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뱀을 거꾸로 잡은 주인장이 빨래 털듯 팔을 열심히 흔들었다.

그에 맞춰 유연한 뱀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비듬처럼 보이는 작은 알갱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비닐 위에 떨어진 좁쌀만한 알갱이, 그게 바로 독사의 천적이라는 사슬이었다.

가소로워 보여도 만만치 않은 독을 품고 있는 곤충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한지호는 눈을 부릅뜨고 비닐 위에서 움직이는 사슬들을 노려봤다.

다행히 뱀에서 떨어진 사슬이 비닐을 벗어나진 않았다.

사슬은 원래부터 활동반경이 넓지 않은 편에 속한다.

야생의 모래에서 머물다가 뱀의 비늘에 옮겨 붙는 독충이기에 움직임은 무척 굼떴다.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뱀 한 마리를 야무지게 탈탈 털어낸 주인장은 다시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역할을 마친 독사를 놓아주고 다른 뱀을 잡아서 나오려는 것이다.

한지호는 주인장이 두 번째 독사를 잡아 나오자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제까지 사슬로 괴로워하는 뱀들을 방치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칫하다간 힘들게 잡은 뱀이 죽을 수도 있을 텐데요. 또 농장 안의 다른 뱀들에게 사슬이 옮으면 골치 아플 것 같습니다만.”

사실 한지호 입장에서 굳이 궁금해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그는 황태수의 아내가 앓고 있는 광전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슬만 얻어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독사들이 모여 있는 농장을 보고 호기심이 샘솟았고, 사슬을 털어내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것을 향한 궁금증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다.

탐구심을 잃은 사람은 늘 그 자리에서 정체하게 된다.

당장은 쓸모가 없어 보여도 새로운 지식이 언제 어느 때 큰 도움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지호는 사슬을 얻는 순간에도 지적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질문을 받은 주인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두 번째 독사를 탈탈 털며 대답했다.

“사슬은 뱀의 비늘 사이에 터를 잡으면 여간해선 자리를 옮기는 법이 없수다. 게다가 만만찮은 독을 품었어도 숙주를 죽일 만큼 괴롭히진 않는다오. 아주 짜증나게 할 뿐이지. 그걸 못이긴 뱀들이 가끔 물가로 기어가 급류에 휩쓸려 죽는 경우는 있지만 말이오.”

주인장은 뱀에 관련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

땅꾼이라고 하면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직업은 아니다.

그러나 한지호는 어떤 분야건 최고의 전문가라면 누구 못지않게 존중해왔다.

최치우의 소개 덕분에 파주에서 또 한 명의 귀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벌써 독사 두 마리를 털어서 새하얀 비닐 위에 좁쌀 같은 사슬들이 제법 쌓였다.

이대로 몇 마리만 더 털면 약을 짓기에 충분한 양의 사슬이 확보될 것 같았다.

꽉 막혔던 문제의 실마리를 풀었고, 자물쇠를 여는 열쇠가 손에 들어왔다.

이제 한지호의 처방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그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

파주에서 사슬을 구해온 한지호는 곧바로 약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사슬을 구하는데 큰 도움을 준 땅꾼 이인형에게 확실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인형은 최치우의 손님이니 대가를 받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은혜를 입고 그냥 넘어가는 건 한지호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는 적지 않은 액수의 수표를 건넸다.

인적 드문 곳의 다 쓰러져가는 가게를 정리하고, 파주 시내에 깔끔한 보신 약재 가게를 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단순히 사슬을 구해준 대가로 수표를 건넨 것만은 아니었다.

이인형처럼 뛰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이 더 나은 환경에서 빛을 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명징약초의 최치우가 원화 한의원에 깨끗한 약재를 공급하는 것처럼 이인형도 언젠가 두고두고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한지호는 미래를 바라보며 사람에게 투자를 할 줄 알았다.

근시안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헛돈을 쓰는 것이지만, 큰 그림을 그린다면 당장 쓰는 돈을 아까워해선 안 된다.

사실 사슬을 구해서 약을 지으려는 것 자체가 지금의 한지호에겐 아무 이득이 없는 일이었다.

황태수는 아내를 치료하느라 전재산을 날리고 직장도 잃은 빈털털이다.

서울에서 지내는 M 호텔의 숙박비도 한지호가 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한지호는 황태수의 아내가 발작하는 것을 보고 광전증을 진단해냈고, 치료에 필요한 사슬까지 어렵게 구했지만 한 푼의 대가도 기대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돈을 바라보고 나선 여정이 아니었다.

황태수 부부의 기구한 사연과 절절한 사랑에 마음이 움직였을 뿐이다.

땅꾼 이인형의 경우와는 달리 황태수의 아내를 치료하는 건 장기적인 투자와도 거리가 먼 일이었다.

다만 한의사로서 한 단계 벽을 뚫어내며 성장하는 계기는 확실히 될 것이다.

한지호는 그 정도면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매번 이익만 따지며 살 수는 없다.

때로는, 아주 가끔은 무작정 마음이 시키는 일도 하고 살아야 사람다운 삶이 아닐까.

그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어느 때보다 정성을 다해 사슬로 약을 지었다.

평범한 약재가 아니라 까다로운 독을 지닌 곤충으로 만드는 약이다.

당연히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독제독은 간단한 원리지만 어마어마한 위험이 뒤따른다.

한지호는 황태수에게 치료에 성공해도 평생 장애가 따를 거라고 일러 뒀었다.

그럼에도 이왕이면 부작용을 최소화 하고 싶었다.

의원으로서 욕심이자 황태수 부부를 인간적으로 안타깝게 여기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하늘에 달렸어.’

한지호는 약을 지으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사람이 최선을 다한 뒤에는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

그는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황태수의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 온힘을 쏟는 중이다.

다만 결과는 하늘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아무리 뛰어난 의원이라도 환자의 치료를 100% 확신할 수는 없다.

사람의 몸은 하나의 우주와 같아서 수많은 변수와 가능성을 품고 있다.

감기약을 잘못 먹어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생긴다.

하물며 몸에 깊이 배인 사독(蛇毒)을 사슬의 독으로 씻어내는 위험한 치료이니 변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할 것이다.

한지호가 예상하는 최악의 부작용은 뇌사(腦死)다.

뱀의 독과 사슬의 독이 강하게 충돌하면 가뜩이나 기력이 약해진 황태수의 아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독기운이 머리로 올라가면 뇌사 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기에 한지호는 약을 다 지은 후 황태수와 그의 아내에게 한 번 더 다짐을 받을 작정이었다.

발작을 계속하며 점점 죽어가는 삶,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나을 가능성이 있는 모험.

약을 전해주기 전에 둘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거냐고 묻는 게 먼저다.

선택의 책임은 모두가 함께 나눠지게 될 것이다.

만약 한지호가 황태수의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섣불리 답을 하기 어려운 문제다.

한지호는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천적의 독으로 다른 독을 이기게 만들 약이 그의 손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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