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93화 (93/255)

# 93

5장, 황금의 섬 (2)

한지호는 거금을 마련했다.

최소 50억 원 가량을 영종도 내국인 카지노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어마어마한 액수지만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다.

게다가 이 정도는 투자를 해야 어렵게 자리를 내어준 마창우의 체면이 살 것이다.

성공이 확실한 투자이기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이미 여러 경로로 사업의 확실성을 체크했고, 인천시 경제부시장과도 술자리를 가졌다.

지난 한 달 사이 영종도 내국인 카지노 사업은 공식적으로 발표가 됐다.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정부 발표 이후 시장이 들썩거렸다.

뒤늦게 사업에 참여하려는 업체들도 있었지만 한참 늦은 뒷북이다.

인천시에서 정부와 손을 잡고 공개 입찰을 시행했지만, 실제로는 사업자가 내정 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정된 사업자는 마창우의 블랙문 코퍼레이션이다.

한지호는 영종도 내국인 카지노 사업이 진행되는 걸 여유롭게 지켜보며 투자금을 만들었다.

50억 원이라는 거액의 실탄을 준비하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는 이제껏 원화 한의원을 운영하며 번 돈을 특별히 쓰지 않고 모아왔다.

뿐만 아니라 방송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은 게 결정적이었다.

은행에서는 가짜 백수오를 고발하며 국민 한의사로 떠오른 한지호의 신용을 인정해줬다.

원화 한의원이 VIP 전문 특수를 누리며 막대한 수익을 내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40억 원 가량의 거금을 저렴한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충분한 실탄을 만들었으니 알맞은 타이밍에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일이지만, 그래도 사람인 이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50억 원을 날리게 되면 빚을 갚기 위해 당분간은 노예처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50억 원 규모의 빚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만한 자금을 빌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강남 한의원 바닥을 평정하고 있는 한지호라고 해도 만만히 볼 액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결단을 내린 그는 망설이지 않았고, 방아쇠를 당길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아무 것도 안 하고 카지노 사업만 바라보고 있을 리 없었다.

가짜 백수오 파동을 겪으며 전국적인 명성을 완전히 굳힌 한지호는 몰려드는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매일같이 땀을 쏟았다.

초 고가의 진료만 한다는 게 널리 알려져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지만, 예약을 하는 환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한 달에 하루를 정해 의료 봉사를 하는 캠페인도 구청의 협조 아래 원활히 실행됐다.

각 지의 노인들과 소외 계층을 돌보는 선행이 알려지며 VIP 전문 한의원을 향한 질투어린 시선도 대부분 사라졌다.

적어도 대놓고 원화 한의원과 한지호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론의 파도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한지호는 다이어트 한약에 이어 가짜 백수오 고발로 국민들의 호감을 얻었다.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목소리를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령 누군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도 여론의 거센 흐름에 묻혀버릴 가능성이 높다.

걱정할 게 없는 삶.

최근 한지호의 일상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위와 같다.

영종도 카지노에 거금을 투자하는 문제 정도를 제외하면 머리 아플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가 돌보는 천사원의 유초아도 수능을 잘 치고, 실기 시험을 준비 중이다.

유초아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연극영화과에 진학 할 예정이었다.

한지호는 최고의 레슨 선생들을 붙여줘 그녀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천사원의 다른 아이들도 운동, 공부, 취미 모든 측면에서 남부럽지 않은 지원을 받고 있었다.

낡은 주택 건물에 모여 어렵게 살아가던 시절의 천사원과 지금의 천사원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지호라는 든든한 큰형의 존재로 인해 천사원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못 받은 사랑과 후원을 넘치도록 누리고 있었다.

“올해도 한 달이 채 안 남았네.”

한지호는 원장실에 앉아 달력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정신없이 질주하는 사이 올 해의 끝이 다다랐다.

천사원에서 폭행 시비에 휘말린 후 전생을 각성하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한의사 중 한 명이 되기까지 1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왔다.

그렇기에 곧 맞이할 서른 살, 30대의 시작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 될 따름이었다.

30대 10년 동안 과연 자기 자신이 어디까지 높이 올라갈 수 있을지, 한지호는 달력을 쳐다보며 낮은 소리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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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3! 2! 1! 해피 뉴 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올해에는 더 대박!”

카운트 다운을 하고 새해를 맞이한 사람들이 주위를 돌아보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어른들의 손에는 샴페인이, 아이들의 손에는 콜라나 쥬스가 들려 있었다.

한지호는 원화 한의원과 천사원 식구들을 한 자리에 모아 송년 파티를 벌이는 중이었다.

한의원 2층을 꾸며 파티장으로 만들었고, 출장 뷔페와 케이터링 서비스를 불러 웬만한 연회장 못지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를 나누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각오를 다지는 소중한 시간이다.

마리아 수녀와 천사원 아이들, 그리고 원화 한의원 직원들과 그 가족들까지.

한지호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따뜻한 기운을 뿜어냈다.

특히 직원들의 가족들이 무척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박우식의 아내와 아이들도 파티에 참석했고, 간호사와 코디네이터들의 부모님도 여건이 허락하시는 분에 한해 자리를 빛내주셨다.

가족들은 TV에서 보던 한지호를 직접 만났다는 걸 무척 신기해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남편과 딸이 강남 한복판의 유명한 한의원에서 근무한다는데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한지호는 송년 파티를 통해 직원들에게 책임감과 뿌듯한 마음을 불어 넣어줬다.

가족들에게 일자리를 보여주고 인정을 받는 것이야말로 보너스보다 더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는 법이다.

“아이고, 원장님. 참말로 감사합니다. 우리 주은이 뽑아주신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좋은 자리에 불러도 주시고…….”

코디네이터 정주은의 어머니가 한지호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한지호는 미소를 지으며 어머님의 손을 잡았다.

“아닙니다. 주은 씨가 없었으면 우리 한의원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아요. 늦은 시간인데 이렇게 참석해주신 어머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원장님만 믿고 맡기겠습니다. 우리 부족한 주은이 계속 잘 부탁드려요.”

“제가 주은 씨를 얼마나 많이 믿고 의지하는데요. 계속 잘 부탁드릴 쪽은 저입니다.”

그저 잘 보이기 위한 겸손이 아니었다.

한지호는 정주은의 어머니를 비롯해 파티에 참석한 직원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직원 중에서 누구보다 바쁜 박우식의 아내에게는 명품 가방을 선물하며 남편을 힘들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했고, 부모님들에겐 적지 않은 액수의 백화점 상품권을 봉투에 넣어 드렸다.

원화 한의원 직원들은 가족까지 살뜰하게 챙기는 한지호를 보며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냉철한 CEO 출신의 박우식도 아내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한 한지호의 마음 씀씀이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원래 자기 욕은 참아도 가족 욕은 못 참는 게 인지상정이고, 반대로 자기에게 잘해주는 것보다 가족에게 잘해주는 걸 더 고마워하기 마련이다.

송년 파티를 통해 한지호는 원화 한의원의 내부 결속력을 단단하게 다졌다.

실제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조기운과 천사원 아이들도 깜짝 놀랄 선물을 받았다.

한지호는 얼마 타지도 않은 아우디 A5 쿠페를 조기운에게 넘겨줬고, 명의 이전에 따른 취등록세와 1년치 보험료까지 대신 납부했다.

돈으로 따지면 수천만 원 상당의 선물을 준 셈이었다.

그동안 청우단 고객 관리부터 천사원 아이들을 찾는 일, 또 영종도 내국인 카지노 사업을 알아보는 일까지 한지호의 오른팔이 되어 전국을 뛰어다닌데 대한 보답이었다.

천사원 아이들에겐 값비싼 선물을 하긴 힘들었다.

마리아 수녀가 아이들의 교육에 좋지 않다며 제한을 뒀기 때문이다.

대신 한지호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 죽지 않도록 요즘 유행하는 옷과 외투를 풀 세트로 선물했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유초아에게 연기 선생님을 붙여준 것처럼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배우게 해줬다는 사실이다.

사춘기를 거치며 머리가 제법 굵은 민기와 지훈이는 공부가 살 길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보육원 출신으로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지호처럼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지호는 민기와 지훈이에게 S대 출신의 과외 선생님을 소개해줬다.

당연히 과외비 역시 한지호가 책임지는 것이다.

아직 어린 민우는 태권도부터 시작해서 미술과 음악 등 다양한 취미 학원에 보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무조건 공부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재능을 개발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천사원 아이들은 한지호의 넓은 품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며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송년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한지호가 있음으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지호가 꾸는 꿈의 조각에 몸을 싣고 저마다 다른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한지호는 풍성한 송년 파티에서 기쁨과 동시에 더욱 큰 책임감을 느꼈다.

자신을 믿고 인생을 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더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

우웅- 우우웅-

즐거운 시간이 계속되는 가운데 주머니 속 스마트 폰이 울렸다.

박우식 사무장의 와이프와 대화를 나누던 한지호는 전화를 받기 위해 양해를 구했다.

“전화가 와서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원장님. 신경쓰지 마셔요.”

한지호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 받고 입이 귀에 걸렸던 박우식의 아내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가방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다.

특히 이 경우엔 남편의 직장 상사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기에 더 각별한 게 당연하다.

박우식의 아내 역시 한지호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남편의 보스를 완전히 존중하게 된 것 같았다.

“음?”

그러나 전화를 받기 위해 조용한 원장실 안으로 들어간 한지호의 표정은 심각했다.

마창우의 이름이 스마트폰 화면에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늦은 시각에 마창우가 무슨 일로 전화를 걸었을까.

싱겁게 새해 인사나 하려고 전화를 했을 리는 없다.

한지호는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지호입니다.”

“한 원장님,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마창우는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평소답지 않게 다소 격앙 된 톤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마 이사님?”

“허충욱 위원장님이 쓰러지셨습니다.”

“네?”

“몇 시간 전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마창우가 왜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었는지 알 수 있었다.

허충욱은 영종도 국제 특구 추진위원장이다.

내국인 카지노 사업을 블랙문 코퍼레이션이 따오기 위해서는 허충욱이 꼭 필요하다.

인천시 경제 부시장인 백성필이 커버하지 못하는 민간의 실력자들을 허충욱이 직접 관리하며 공개 입찰에 영향을 끼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가 쓰러져 공개 입찰에 불참하게 되면 따 놓은 당상이었던 내국인 카지노 사업권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미 인천시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동의를 얻어 놓았지만 판이 순식간에 뒤집힐 수도 있다.

백성필 부시장 혼자서 허충욱의 공백을 감당하긴 무리다.

한지호는 방금 전까지 훈훈하던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새해가 시작되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일생일대의 기회가 불발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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