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92화 (92/255)

# 92

5장, 황금의 섬 (1)

“여기입니다, 형님.”

조기운이 팔을 쭉 뻗으며 말했다.

한지호는 조기운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에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거대한 중장비 기계도 빼놓을 수 없다.

바야흐로 국제 특구 영종도 시대를 열어갈 공사 현장인 것이다.

이미 완공된 건물도 여럿 있었다.

하나같이 최신 공법으로 햇빛이 투명하게 반사되는 빌딩들이다.

초고층 빌딩은 글로벌 호텔, 국제 비즈니스 특구 등의 목적에 맞게 설계 됐다.

정부와 민간에서 대대적으로 영종도에 투자를 했기에 공사 현장의 분위기는 무척 뜨거웠다.

쉽게 말해 돈이 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건물 중 한 곳에 내국인 카지노가 들어선다.

강원도 정선에 존재하는 카지노의 아성을 뛰어넘을 금맥(金脈)이 열리는 것이다.

한지호는 마창우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은 후 조기운을 영종도에 보내 사업 가능성을 알아봤다.

조기운은 청우단을 판매하며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인천 시장과도 술자리를 가졌다.

여기저기 발로 뛰며 알아본 결과 영종도에 내국인 카지노가 들어선다는 건 확실했다.

게다가 암묵적으로 사업권을 따낸 업체는 마창우가 이끄는 조직이 맞았다.

블랙문 코퍼레이션(Blackmoon Corporation).

생소한 이름의 투자 합작 회사는 마창우의 조직이 출자해 만든 것이다.

실제 소유주는 마창우와 그가 모시는 조직의 큰형님이다.

전국구 조직의 2인자로 알려졌지만, 마창우는 사실상의 실세이자 오너나 다름없다.

동생들의 수발을 받지 않고 매주 혼자 원화 한의원을 찾아오는 마창우가 어떤 인물인지는 이미 오대경을 통해 충분히 알아본 상태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넌다는 심정으로 조사를 거듭했지만, 마창우의 제안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내국인 카지노 입지를 발표할 것이고, 마창우의 블랙문 코퍼레이션이 담당 업체로 내정 돼 있는 건 기정사실이다.

인천시장과 지역구 국회의원, 담당 공무원 모두가 쉬쉬하지만 공유하고 있는 특급 정보였다.

한지호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외면할 수 없었다.

한의사인 동시에 세상 누구보다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망을 지닌 남자로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내국인 카지노 사업이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벌게 된다.

돈이 있고 투자를 하고 싶다고 해서 참가하는 게 가능한 사업이 아니다.

환상통(幻想痛)을 치료해준 인연이 한지호에게 대운을 허락한 것이다.

“저쪽에 세워지고 있는 H 호텔 지하에 들어선다고 했지?”

“네. 지하 두 층을 사용하는 규모입니다.”

“정선보다 더 넓을까?”

“일반 공간의 실제 면적은 정선의 카지노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별도의 VIP 게임 룸 공간이 훨씬 넓어서 더 큰 수익이 기대된다고 합니다.”

“거기에 위치도 강원도 산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고. 확실히 노다지는 노다지야.”

한지호는 공사 막바지에 다다른 H 호텔 건물을 주시했다.

세계적인 5성급 호텔 지하에 들어서는 카지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릴지 익히 짐작이 됐다.

서울 시내나 제주도 등지에는 이미 수많은 카지노들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정선을 제외하면 모두 외국인만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다.

정선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혀를 내두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도박을 좋아하는지, 내국인 카지노 하나 때문에 정선 주위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 실상을 안다면 서울과 가까운 영종도에 들어설 내국인 카지노의 파급력을 예상할 수 있다.

수도권, 공항과 가까운 위치.

송도 신도시와 국제 특구 영종도의 프리미엄까지.

한지호는 눈앞의 거친 공사 현장이 머지않아 황금의 도시로 변하리라 확신했다.

“가자.”

“네, 바로 모시겠습니다.”

충분히 현장을 둘러본 한지호가 몸을 돌렸다.

조기운은 한 걸음 먼저 움직여 한지호의 A5 운전석에 앉았다.

오늘은 그가 기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지호는 아주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 술자리를 가질 예정이었다.

뒷자리에 앉아 약속장소로 이동하는 한지호의 얼굴에서 효웅(梟雄)의 그림자가 엿보였다.

그는 한의사라는 본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한의원 원장으로만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한의학으로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돈과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전생의 규호가 괜히 천하를 움직이는 위치에 오르라고 절규했던 게 아니었다.

부우우웅-

A5의 배기음이 한지호의 상념을 덮었다.

한지호는 문득 앞에서 핸들을 잡고 있는 조기운을 쳐다봤다.

“기운아. 청우단 고객도 늘어났고, 이번처럼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 만날 일도 많아지는데 차가 없으니 불편하지?”

“아닙니다, 형님.”

“이 차, 너 줄게.”

“네? 하지만 이건 김해수 씨가 선물로 주신…….”

“해수 씨와는 이미 정리 된 사이야. 얼마 전에 통화했는데 연예계 소문이 빠르긴 하더라. 내가 지은이와 만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서로 잘 지내기로 했어. 아무튼 그거랑 상관없이 일을 더 잘 하라고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아.”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조기운은 이미 한지호로부터 적지 않은 액수의 월급을 받고 있다.

게다가 청우단 판매를 전담하며 챙기는 인센티브도 꽤 크다.

그래도 독일 수입차를 넘겨주는 건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 일이다.

비록 한지호가 몇 달 동안 타고 다녔던 자동차라고 해도 통 크게 마음을 쓴 것이다.

한지호는 가짜 백수오 파동을 겪고, 이런저런 반발을 모조리 이겨내며 그릇의 크기를 한층 넓힌 것 같았다.

천하를 바라보기 시작한 그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인재를 더욱 아끼는 삼국지 군주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

“한 원장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마창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지호를 반겼다.

넓은 룸 안에는 마창우 말고도 몇 사람이 더 앉아 있었다.

조기운을 밖에 두고 혼자 약속 장소로 들어온 한지호는 마창우와 인사를 나눴다.

“밖에서는 처음 뵙게 되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둘은 악수를 나눴다.

원화 한의원 밖에서 만난 마창우는 독특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짙게 풍기고 있었다.

물론 한지호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지만,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확실히 알았다.

곧이어 마창우가 룸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한지호를 소개해줬다.

“위원장님, 이쪽은 원화 한의원의 한지호 원장님입니다. 한 원장님, 이 분은 영종도 국제 특구 추진위원회의 허충욱 위원장님이십니다.”

한지호는 환갑을 넘긴 걸로 보이는 노인을 보며 인사를 했다.

“한지호입니다.”

“허허, 가짜 백수오를 고발한 그 사람이지? TV에 나오는 유명인을 다 보고, 영광일세.”

허충욱이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밀었다.

한지호가 그와 악수를 나누자 마창우가 나머지 한 사람을 소개해줬다.

“여기 이 분은 백성필 인천시 경제부시장님이십니다.”

뜻밖의 거물이었다.

그러나 티를 내면 한 수 접어주고 들어가게 된다.

한지호는 백성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 허충욱과 인사를 나눌 때처럼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원화 한의원의 한지호입니다.”

“백성필이오. 우리 마 이사의 고질병을 치료해줬다면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마창우의 공식 직함은 블랙문 코퍼레이션의 이사다.

주먹 세계의 전설인 마창우와 인천의 경제부시장 백성필은 제법 막역한 사이인 것 같았다.

그 자체로 화제가 될 일이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울 게 없다.

한지호는 적당히 겸손을 떨었다.

“마창우 환자님, 아니 마 이사님이 워낙 치료를 잘 따라오신 덕분입니다.”

“TV를 통해서도 꾸준히 조명을 받고 있고, 강남에서 굉장히 잘 나가는 한의사로 알고 있는데 이런 사업에까지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소.”

백성필이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아직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지도 않았다.

이너 서클(inner-circle)에 들어오려는 한지호를 향해 견제를 거두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한지호가 누구인가.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부족하지만 사업에도 뜻이 있습니다. 부시장님께서 잘 이끌어 주십시오.”

“내가 이끌게 뭐가 있겠소. 나도 우리 마 이사만 보고 따라가는 것이지.”

백성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마침내 손을 뻗었다.

악수를 청한다는 건 같은 자리에 앉아 일을 도모할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한지호는 백성필과 악수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에는 이미 최고급 일식 코스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져 있었다.

마창우와 허충욱, 백성필은 참치 뱃살과 달콤한 사케를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이었다.

한지호가 자리에 앉자 맞은편의 마창우가 잔을 채워줬다.

“지긋지긋한 손가락 통증을 없애주신 빚은 톡톡히 갚겠습니다. 마음 푹 놓고 있으십시오, 한 원장님.”

“덕분에 좋은 기회를 잡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지호는 마창우의 술을 받았고, 사케 병을 들어 그의 잔도 채워줬다.

일어난 김에 비어있는 허충욱과 백성필의 잔도 채웠다.

네 사람이 모여 처음으로 건배를 하는 분위기가 잡혔다.

자리를 주도하는 마창우가 가볍게 건배사를 뱉었다.

“영종도의 무한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한지호는 달달한 사케를 단번에 털어 넣었다.

일본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자리의 분위기로 보아 분명 엄청나게 비싼 술일게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목으로 넘어가며 착 감기는 느낌이 남달랐다.

잔을 비운 그는 마창우, 허충욱, 백성필의 얼굴을 스쳐보며 결심을 굳혔다.

이미 이길 걸 알고 들어가는 도박이다.

변수는 있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주저할 수는 없다.

황만금에게 받은 투자금 중 남은 금액과 지금껏 원화 한의원을 운영하며 벌어들인 돈, 그 외에도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을 최대한 끌어 모아 내국인 카지노에 투자할 작정이었다.

기회가 왔을 때 한 방에 크게 먹고, 그걸 바탕으로 원화 한의원을 전국적인 체인으로 확장시킬 수도 있다.

“마 이사, 내가 보낸 양해각서는 검토 하셨소?”

“물론입니다, 부시장님.”

“문제는 없겠소?”

“그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달에 공식 발표를 하고, 두 달 안에 블랙문 코퍼레이션과 우리 시청이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것이오.”

“시장님과 김 의원님께서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소.”

“역시 부시장님이십니다.”

마창우가 호탕하게 웃으며 백성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백성필이 인천시장을 대신해 내국인 카지노 사업의 행정 절차를 책임지는 모양이었다.

아마 마창우를 밀어주는 대가로 엄청난 액수의 정치자금을 약속 받았을 것이다.

한지호는 굳이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거물들의 정치 놀이에 빠지면 골치 아픈 일만 생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만 제대로 살리면 그뿐이다.

“한 잔 더 올리겠습니다, 부시장님. 위원장님께서도 제 잔을 받으십시오.”

“허허허, 이거 지병이 있어서 술을 피해야 하지만 마 이사가 따라주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백성필은 말없이 잔을 받았고, 허충욱은 너스레를 떨었다.

인천시 경제부시장 만큼이나 영종도 국제 특구 추진위원장도 노른자 자리다.

영종도의 각종 개발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며 재미를 보는 위치고, 당연히 허충욱 역시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거물이었다.

한지호는 잔을 받은 허충욱을 유심히 쳐다봤다.

미세하게 손가락 끝이 떨리고 있다.

‘음?’

돈으로 관리를 한 덕에 나이에 비해 늙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미간의 주름이 깊고, 귓구멍에도 털이 길게 자라있다.

‘좋지 않은 징조인데.’

한지호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마창우가 다시 건배를 외치며 분위기를 띄우느라 길게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키우게 된 한지호 역시 기분 좋게 술잔을 들었다.

대외적으로는 국민 건강을 위해 진실을 고발한 용기 있는 한의사로 이미지가 굳어졌고, 수면 아래에서는 잭팟을 노리는 투자자로 거물들의 이너 서클에 합류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중인 한지호는 달콤한 사케를 연거푸 마시며 축배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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