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38화 (38/255)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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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생님, 잠깐 못 본 사이 너무 멋있어 지신 거 아닙니까? 하하하.”

유건영이 손을 내밀고 웃음을 터트렸다.

한지호는 그와 악수를 나누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멋있어 지긴요.”

“원래도 인물이 훤하셨지만, 요즘 부쩍 세련돼 지신 것 같습니다. 강남 물이 좋긴 좋죠?”

“동네가 동네이다 보니. 그래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지호와 유건영은 청담동의 기욤이라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만났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맞은편에 있는 기욤은 프랑스 출신의 파티쉐가 정통 유러피안 디저트를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연예인과 기업 사모님들의 단골 카페이고, 이곳에서 파는 빵 한 조각은 웬만한 밥값보다 훨씬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낮부터 기욤 내부에는 빈 테이블이 없었다.

“여기 유명하다던데, 진짜 맛있긴 하네요.”

한지호가 독특한 모양의 조각 케익을 먹으며 감탄했다.

확실히 일반적인 빵집에서 파는 디저트와는 모양과 맛이 남달랐다.

유건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격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명품 브랜드의 고가 정책을 비난해도 그만한 가치를 하니까 사는 거죠. 싸고 좋은 상품이 없는 것처럼 비싸고 안 좋은 상품도 없습니다.”

그냥 하는 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여의도 금융가에서 온갖 사람을 만나는 유건영은 종종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다.

한지호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배우는 점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은 한지호가 먼저 연락을 해서 만난 게 아니었다.

유건영이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한지호가 사는 강남까지 차를 몰고 온 것이다.

베이커리 카페 기욤의 창문 밖으로 하얀색 벤츠 CLS와 검은색 아우디 A5가 나란히 서있는 게 보였다.

흑백의 조화, 매끈하게 잘 빠진 쿠페 형 디자인, 벤츠와 아우디라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엠블럼까지.

외제차가 국산차보다 더 흔하다는 강남에서도 나란히 주차된 두 사람의 차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지호의 아우디 A5 쿠페는 신차 가격이 6500만 원 정도다.

1억에 달하는 유건영의 벤츠 CLS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떨어지지 않는 스포츠카다.

창밖에 주차된 자동차는 불과 얼마 전까지 뚜벅이였던 한지호의 사회적 지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김해수 씨가 완전히 나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증권가와 금융가에서 별에 별 찌라시가 떠돌았었는데……. 며칠 전 완벽한 모습으로 광고 촬영장에 나타나면서 모든 헛소문이 사라졌지요.”

“연예가중계에서 봤습니다. 김해수 씨가 잠적일 깨고 다시 복귀해 멋진 모습으로 CF 촬영을 했다는……. 아주 기분 좋은 뉴스였죠.”

“그 모든 게 한 선생님의 덕이라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황 회장님에 이어 김해수 씨까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가식이 섞여 있지 않았다.

한지호는 플래티엄 홀딩스의 VIP 고객 두 명을 연달아 치료해냈다.

유건영은 서울대 병원의 과장이나 대형 한방 병원의 원장들보다 한지호가 뛰어나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가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한지호를 쳐다봤다.

한지호는 가만히 눈을 맞추고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유건영은 길게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VIP 고객들을 한 선생님께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네?”

“VIP 고객들 중에서 건강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생긴다면……. 그때 우선적으로 한 선생님을 소개해 드려도 될런지요.”

한지호는 차분한 얼굴로 유건영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지르는 중이었다.

황만금에 이어 김해수까지 완치시키면서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사실 한지호가 먼저 유건영의 VIP 고객들을 소개 받길 원했었고, 난색을 표하던 유건영이 겨우 승낙을 해 김해수를 만나게 됐었다.

그런데 이제 유건영이 자세를 낮추고 자신의 VIP 고객들을 소개해 줘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그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지호의 실력을 100% 신뢰하게 됐기 때문이다.

건강 문제를 지닌 VIP 고객들에게 한지호를 소개하고, 그로인해 완치가 되면 유건영 역시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황만금이 태자병에서 완치된 후 유건영에게 계속 거액의 자금 관리를 맡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지호는 유건영에게 VIP 고객을 소개 해달라고 부탁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유건영으로부터 VIP 고객을 소개 해줄 테니 치료를 해 달라고 부탁을 받는 입장이 됐다.

거꾸로 뒤집힌 입장과 상황이 말해주는 사실은 하나였다.

한지호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것.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상황이 그의 위상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유 팀장님이 소개해주시는 분들은 특별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선생님.”

“제가 먼저 부탁을 드려야하는 일인데, 유 팀장님께서 선뜻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둘은 만날 때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윈 윈(win-win)이 되는 관계였다.

이제 한지호는 유건영의 인맥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건영은 VIP 고객들이 건강 문제를 호소할 때마다 한지호를 소개해줄 것이다.

그럼으로서 자신의 신뢰도를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한지호는 가만히 앉아서 유건영이 물어다주는 먹이를 삼키기만 하면 된다.

여의도 금융가의 잘 나가는 다크호스를 환자 브로커로 둔 셈이었다.

그러나 마냥 유건영에게만 의지할 생각은 없었다.

자기 힘으로 활로를 뚫어놓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숨이 막혀 죽을지 모른다.

한지호는 강남에 입성하며 이미 여러 곳에 미끼를 뿌려 놓았다.

때마침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던 스마트 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우우웅- 우우웅-

“잠시 실례를.”

“네, 편하게 받으세요.”

양해를 구한 한지호가 전화를 받았다.

잠시 전화기 너머 상대의 말을 들은 그는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알겠습니다. 곧 가도록 하죠.”

전화를 끊은 한지호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를 찾는 환자가 생겨서요. 조금 일찍 일어나야 될 것 같습니다, 유 팀장님.”

“괜찮습니다. 바쁘신데 한 선생님을 오래 붙잡아둘 수는 없지요.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지호와 유건영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밖으로 나왔다.

하얀 벤츠와 검은 아우디가 카페 기욤의 주차장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지호는 유건영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자신을 찾는 환자들이 생겼다는 걸 자연스레 어필하게 됐다.

그는 아우디 A5의 운전석 문을 열며 유건영과 한 번 더 눈인사를 나눴다.

“조심히 가세요, 유 팀장님.”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한 선생님.”

타악-

차 문을 닫고 운전석에 앉은 한지호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유건영이 자발적으로 VIP 고객들을 소개하겠다며 부탁을 해왔고, 다른 곳에 뿌려 놓은 씨앗도 열매를 맺기 직전이었다.

한지호는 상승기류를 타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할 일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위로 오르는 기류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다.

부와아앙!

아우디 A5의 배기음이 그를 강남대로로 이끌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 강남을 가로지를 차례였다.

9장, 연예계 명의 (1)

유건영과 헤어진 한지호는 압구정으로 향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플래티넘 홀딩스의 유건영은 언제나 유쾌한 에너지를 전해주는 사람이다.

그가 직접 자신의 VIP 고객들을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한지호는 운전석과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들어오는 바람을 만끽했다.

차가 막혔지만 도로 상황과 상관없이 기분이 좋았다.

어차피 급하게 도착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상대방 측에서 갑자기 약속을 잡고 전화를 걸었으니 조금 늦게 도착해도 된다.

부우웅-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부근을 지나자 도로가 뚫렸다.

한지호는 엑셀을 강하게 밟으며 아우디 A5가 내는 소리를 즐겼다.

시원한 배기음과 함께 검은색 차체가 도로 위를 질주했다.

잠깐이지만 가슴 깊은 곳까지 저릿저릿한 쾌감이 밀려왔다.

이 맛에 다들 스포츠카를 사고, 더 빠른 차를 타기 위해 목을 매는 것 같았다.

갤러리아 백화점을 지나친 검은색 A5는 미용실들이 몰려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미용실도 그냥 미용실이 아니다.

정원이 딸린 단독 주택을 럭셔리하게 개조해서 샵으로 쓰는 게 압구정 미용실 바닥의 트렌드였다.

한지호는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대로 골목을 헤집고 유럽식 주택 앞에 차를 세웠다.

그가 차를 세우자마자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이 달려 나왔다.

미용실에 소속된 발렛 파킹 전담 직원인 것 같았다.

“주차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한지호는 차 키를 꽂아둔 채 아우디 A5에서 내렸다.

아직 차를 몰고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발렛 파킹 문화도 낯설었다.

하지만 강남에서는 어딜 가나 발렛 파킹이 생활화 돼 있다.

그는 차를 맡기고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말이 미용실이지 유럽풍의 저택이나 다름없었다.

압구정 뒷골목에 이런 식으로 개조된 건물이 다닥다닥 모여 최고급 미용실 거리를 이루고 있었다.

강남 여자들 사이에서는 샵 골목이라 불린다고 한다.

한지호는 그런 샵들 중에서도 비싸고 호화롭기로 유명한 미용실에 들어온 것이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혹시 찾으시는 디자이너 선생님 계신가요?”

입구에서부터 생기발랄한 20대 초반 여자 직원이 달라붙었다.

한지호는 여직원의 밀착 마크에 살짝 당황했다.

늘 동네 블루클럽에서 머리를 자르던 그에게 트렌디한 압구정 미용실 문화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그게 아니고…….”

“아, 저희 샵은 처음이세요?”

“약속이 있어서 왔습니다. 머리 자르러 온 게 아니라.”

한지호의 말에 여자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이내 미소를 회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친구 분 기다리러 오셨죠? 성함 말씀해주시면 머리 하고 계신 곳으로 안내해드릴게요.”

보아 하니 여자 친구를 기다리러 미용실에 오는 남자들이 종종 있는 모양이었다.

한지호는 실소가 흘러나왔다.

있지도 않은 여자 친구 대신 약속 상대의 이름을 말하면 눈앞의 여직원이 꽤 놀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지은 씨 여기에 있죠? 약속을 잡고 왔습니다.”

“네?”

아니나 다를까.

20대 초반의 여직원이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지호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쿡쿡 웃음을 흘렸다.

“저기… 잠시만요……. 안에다가 물어보고 올게요.”

“그러세요.”

당황한 여직원이 미용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지은은 한창 잘 나가는 여자 솔로 가수다.

아이돌 그룹이 대세인 가요계에서 여자 솔로로 독보적 인기를 누리는 20대 초반의 아이콘이다.

유럽풍 저택을 본딴 이 미용실은 그녀가 주로 찾는 단골 샵이었고, 오늘도 이지은은 별도의 룸에서 특별 관리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깔끔한 차림의 남자가 대뜸 이지은과 약속이 있어서 왔다고 말한 것이다.

고객 응대를 맡은 초보 스텝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곧이어 방금 전의 여자 직원이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나왔다.

“안녕하세요. 알렉산드르의 실장 디자이너 미진이에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실장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인사를 건네 왔다.

굉장히 쎈 인상의 여자지만 말투는 의외로 조곤조곤했다.

물론 자기 밑의 디자이너와 스텝들을 휘어잡을 때는 무시무시한 마녀가 될 것 같았다.

한지호는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한의사 한지호라고 합니다. 이지은 씨와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야기가 안 된 건가요?”

“아니에요. 지은이는 지금 위에서 관리 받으며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직접 모시려고 나왔어요. 안으로 들어가셔요.”

“감사합니다.”

한지호는 미진의 안내를 받으며 알렉산드르라는 독특한 이름의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그를 맞이했던 젊은 여자 스텝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 다른 고객을 응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유럽의 동화 속 저택을 컨셉으로 삼은 미용실은 무척 넓었고, 철저하게 분업이 이뤄져 있었다.

가장 어린 스텝들은 고객을 한 사람씩 밀착 마크해서 응대한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지루하지 않도록 원하는 잡지나 책, 커피와 비스킷 등을 가져다주는 것도 그들의 임무다.

조금 경력이 쌓인 스텝은 디자이너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고객의 머리를 감겨줄 정도가 되면 스텝 중에서는 최고참인 셈이다.

디자이너라고 불리며 사람들의 머리를 자르기까지 몇 년을 고되게 일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동네 미용실과는 다른 분위기가 풍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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