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23화 (23/255)

# 23

1장, 자룡을 얻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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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운을 만나고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한지호는 추가로 청우단 주문을 받았고, 유건영과 정확한 약속을 잡았다.

플래티넘 홀딩스의 VIP 고객을 만나게 된 건 새로운 기회다.

한지호에게 관심을 보인 VIP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상류층 사람일수록 소문에 민감하기 마련이라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어쨌거나 유건영은 약속을 지켰고, 한지호는 반드시 주어진 기회를 낚아 챌 작정이었다.

황만금을 처음 만난 날 태자병을 밝혀내며 주치의가 됐던 것처럼 또 다른 VIP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건,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건 상관없다.

한지호의 의술로 딱 맞는 해답을 찾아주면 그만이다.

그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유건영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경동시장 약재상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성큼성큼 발을 내딛은 그는 명징약초 앞에 다다랐다.

경동시장에 올 때마다 감각을 활성화시키지만, 다른 약초상에선 매번 저급 중국산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에 반해 명징약초에선 깨끗한 자연산 약초의 소나무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최 사장님.”

“오오! 자네 왔는가!”

한지호가 최치우를 부르자 안쪽에 있던 그가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명징약초 최 사장에게 한지호는 최고의 고객이자 이야기 상대다.

매번 대량으로 약초를 구매하기 때문은 아니다.

제대로 된 약초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만큼 좋은 한약을 만들기에 최 사장이 한지호를 좋아하는 것이다.

얼마 전 청우단 몇 알을 선물해준 뒤 최 사장은 더욱 한지호를 각별히 여기게 됐다.

그도 청우단의 즉각적인 효능을 체험하고 한지호 신봉자가 된 것이다.

“청우단, 그거 아주 끝내주더군!”

“효과가 괜찮죠?”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이게 왜 그렇게 잘 팔리는지 알겠네. 천연 한약으로 이만한 효능을 내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매번 대량으로 약초를 사가는 게 이해가 되고말고.”

최 사장의 칭찬에 한지호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우단은 처음 스무 명에게 천만 원 매출을 올린 뒤 추가 주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유건영이 보답 차원에서 1000알을 더 산 것 외에도 최소 주문 단위인 50알 씩 판매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한 번 효능을 체험한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며 야금야금 판매가 늘어났다.

특별히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원활한 판매에 문제가 없었다.

순수하게 약의 효능만으로 승부를 봤고, 청우단만 팔아도 웬만한 한의원보다 매출이 잘 나올 것 같았다.

“몸에 잘 맞으셨어요?”

“잠이 오고 노곤할 때 한 알씩 먹으면 기운이 솟더구만. 직장인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겠네.”

“체질을 개선하는 약은 아니라서 효능이 오래 가진 않습니다.”

“이 가격에, 이 약초로 체질까지 개선하는 약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만큼의 효능이라도 확실히 내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네. 아무 효능도 없는 약을 비싸게만 팔아먹는 사이비 한의사들이 허다한 세상에서 자제는 정말 귀한 존재야.”

계속되는 칭찬에 한지호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최 사장은 괜히 허튼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한지호와 그가 만든 청우단에 감탄했기 때문에 칭찬을 하는 것이다.

약초꾼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최치우가 이렇듯 호들갑을 떠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는 한지호라는 젊은 한의사의 능력을 알아보고, 약초꾼으로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장사꾼들이 판을 치는 한의학 바닥에서 한지호는 최치우의 열정을 다시 불타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아이고, 밖에 너무 오래 세워뒀구만.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하지.”

“네. 그러죠.”

한지호는 웃으며 최치우를 따라 명징약초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쪽에서는 소나무 향이 더욱 짙게 맡아졌다.

최 사장이 좋은 약초를 별도의 진열대에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오직 코 하나에 의지해 냄새로 깨끗한 약초를 찾아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최 사장과 이렇게 가까워질 줄 몰랐었다.

전생을 각성하며 얻은 의술은 그에게 새로운 인연을 선물해줬다.

부와 명예를 노리게 해줬을 뿐 아니라 최 사장이나 유건영, 황만금, 그리고 조기운과 같은 사람을 얻게 해준 것이다.

사람이 곧 재산이다.

한지호는 전생을 깨우치고 번 1억 원 이상의 돈보다 더 큰 값어치의 인연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잠시만 기다리게. 차를 내오겠네.”

“최 사장님의 차라면 돈 주고도 마시기 힘든 건데, 매번 감사합니다.”

“커허허, 그렇게 말해주니 진짜 찻집으로 전향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구먼.”

호탕하게 웃은 최 사장이 가게 구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그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따뜻한 찻잔을 들고 나왔다.

한지호는 얼른 찻잔을 받아 향을 음미했다.

확실히 좋은 찻잎으로 우려내서 그런지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우리 몸에 좋은 건 자연에 다 있다니까요.”

“그렇지, 그렇고말고!”

한지호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을 들은 최 사장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몰라서 그렇지 우리 강산에서 나는 약초와 찻잎들이 얼마나 좋은데! 죄다 조금이라도 싸면서 또 효과는 좋길 바라니까 약초상들도 중국산을 국산이라 속여 파는 거지. 제대로 값을 치르고 국내에서 채집한 약초를 쓰면 몸에 안 좋을 수가 없구만. 안 그런가?”

“그렇죠. 한편으로는 원산지를 속이는 약초상이나 막무가내로 약을 지어주는 한의사들도 문제가 심각하지만.”

“역시 자네와는 말이 잘 통한단 말이야.”

별다른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최 사장은 무척 좋아했다.

그는 한지호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믿을 것 같았다.

한 모금 차를 마신 최치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 알려줄 일이 있었네.”

“저에게요?”

“후배 녀석 중 한 놈이 진짜 물건을 찾았다고 하더군. 아무에게나 돈을 받고 팔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야. 그래서 내게 물어왔는데… 내가 아는 사람 중 자네만큼 약초를 제대로 다루는 사람은 없어서 말일세. 혹시 관심이 있는가?”

“진짜 물건이라고 하시면…….”

“산삼이지 또 뭐가 있겠나.”

“역시 그렇군요.”

한지호의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산삼은 여전히 구하기 힘든 희귀한 약초다.

특히 명징약초 최치우가 보증하는 것이라면 최상품일 가능성이 높다.

최상품의 산삼은 수천만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르는 게 값이다.

당장 산삼이 필요하진 않지만 그만큼 좋은 약초라면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솔직히 산삼을 구입할 여력은 안 됩니다만, 한 번 보고 싶기는 합니다.”

“걱정 말게. 꼭 사라는 이야기가 아니니. 자네처럼 유능한 한의사가 직접 봐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걸세.”

“그래도 될까요?”

“내가 자리를 한 번 만들어 보겠네. 어차피 산삼이 하루 이틀 사이에 팔릴 물건은 아니지 않나.”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나도 기대가 되는구만, 커허허.”

최치우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만족한 얼굴로 유쾌하게 웃었다.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명징약초에서 두 시간 가량 머무른 한지호는 청우단의 재료가 되는 약초를 받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도 넉넉하게 만들어서 좀 드릴게요.”

“나야 고맙지. 후배 녀석과 약속을 잡으면 알려 주겠네.”

“네. 늘 고맙습니다.”

“내가 더 고마워야지, 요즘엔 자네 덕에 먹고사는 것 같은데 말이네.”

한지호는 최치우의 배웅을 받으며 경동시장 약재상 거리에서 빠져 나왔다.

명징약초에 방문할 때마다 든든한 응원을 받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약초를 거래하는 사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삭막한 세상에서 마음 편히 이야기를 하며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는 곳.

명징약초는 한지호에게 또 하나의 고향 같은 장소가 되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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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날짜가 됐다.

한지호는 설레는 마음으로 연남동 자취방을 나섰다.

유건영이 소개해준 VIP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이사를 갈 계획이었다.

지금 통장에는 6천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있다.

새로운 VIP가 황만금처럼 통이 클지는 모르겠지만, 치료비로 째째하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한지호는 적당히 보증금을 만들어 넓고 깨끗한 최고급 오피스텔로 들어가고 싶었다.

월세는 청우단을 판매하는 돈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야도 달라진다.

그는 대한민국 상류층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지역에서 원대한 야망을 성취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부우우웅-

골목 너머에서 묵직한 배기음이 울렸다.

연남동 골목에서는 쉽게 듣기 힘든 고배기량 엔진 자동차의 소리였다.

이윽고 유건영의 하얀색 벤츠 CLS가 유려한 라인을 뽐내며 나타났다.

미끄러지듯 골목을 헤집고 한지호 앞에 멈춰선 벤츠의 창문이 내려갔다.

“한 선생님, 타시죠.”

“네, 유 팀장님.”

한지호는 반가운 표정으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벤츠를 타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느 차를 타는 것과 크게 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한 번 경험한 것은 당연하게 여기는 습성을 갖고 있다.

어느새 한지호는 벤츠 정도를 자동차의 기준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높을 곳을 올려보며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한 선생님. 저의 VIP 고객을 뵙고 놀라시면 안 됩니다.”

유건영이 핸들을 돌리며 사뭇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한지호는 고개를 돌려 유건영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황만금을 만나러 갈 때에도 주의를 줬지만, 그때와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어떤 분이신지 궁금합니다.”

“저도 의외였습니다. 몇 몇 VIP 고객들께 한 선생님 이야기를 했지만, 하필 이 분이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황만금 회장님을 치료했다는 말을 듣고 꼭 만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황 회장님처럼 까다로운 병을 앓고 계신 겁니까?”

“그런 건 아니고… 음, 제가 말하기 상당히 난감한 문제라서 말입니다.”

유건영이 난처한 듯 입맛을 다셨다.

그가 이럴수록 한지호의 호기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섣불리 재촉하지 않았다.

유건영은 생각이 가벼운 사람이 아니다.

그가 머뭇거리는 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유건영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정확한 병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황 회장님처럼 눈에 드러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뭐라고 더 말씀드리기 참 어렵습니다. 한 선생님께서 직접 보시는 게 제일 빠를 듯 합니다.”

“유 팀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더는 묻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지금 VIP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요.”

“혹시나 싶어 말씀드리는데 황 회장님을 치료할 때보다 더 보안에 신경을 써주셔야 합니다. 소문이 돌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분이라서…….”

“비밀 유지는 기본이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지호는 진지한 얼굴로 입이 무거움을 어필했다.

상류층을 상대하면서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두 번 다시 기회를 잡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궁금증이 더 커져만 갔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황만금보다 더 비밀 유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일까.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한지호는 벤츠의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추측을 거듭했다.

플래티넘 홀딩스의 VIP 고객이라면 대한민국 1% 안에 드는 상류층이 확실하다.

대한민국 1% 중에서 소문에 민감하고, 병세가 드러나지 않았으며 다른 의사들 대신 한지호에게 관심을 가진 인물.

그 사람이 바로 황만금에 이어 한지호에게 내려온 두 번째 동아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유건영은 끝내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끼이익-

묵묵히 운전을 한 그가 남산의 특급 호텔에 차를 세웠다.

정복을 입은 호텔 직원들이 허리를 숙였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차에서 내린 유건영은 키를 호텔 직원에게 맡겼다.

한지호는 그를 따라 로비로 들어섰다.

웅장한 장식의 특급 호텔 로비가 기를 죽였고, 비싼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특급 호텔은 외국이나 다른 도시에서 온 손님뿐 아니라 서울의 상류층들이 모이는 장소다.

이곳에 유건영의 VIP 고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유건영은 프런트로 걸어가 카드 키를 받아왔다.

미리 말을 해둔 모양이었다.

“그 분은 방에 계십니까?”

“약속된 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지호의 물음에 유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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