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장 달려라, 대한민국 - 6 >
최강철의 대답을 들은 대통령은 두 눈을 껌뻑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기가 막혀 말조차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관님, 정말 그걸 한단 말입니까. 왜요?”
“제 가슴속에 들어 있는 용기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커다란 축제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장관님의 나이를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그런 일을…….”
“끝나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저 역시 제가 벌여 놓은 일을 무책임하게 남겨두고 편히 살 생각은 없으니까요.”
“허어, 허어…. 이것 참…….”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최강철의 지위로 본다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속으로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최강철이 자리를 비운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때 더 말릴 새도 없이 최강철의 입이 불쑥 열렸다.
“대통령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제가 자리를 비우려고 마음먹기 전에 몇 가지 생각해 놓았던 게 있습니다. 그걸 추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직 나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이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반드시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남은 삶에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해해 주십시오.”
“아뇨, 나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끝나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니 허락해 주십시오.”
“음…. 장관님과 오랜 시간을 같이했지만, 범인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분입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러겠습니다. 하지만, 이왕 입을 열었으니 제가 부탁드릴 말씀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장관직을 그만두겠다면서 참 염치도 없으십니다.”
대통령이 헛기침을 하면서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최강철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먼저 군을 개혁해 주십시오.”
“군을 개혁하라니요?”
“현대전에서 육군의 필요성은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과의 대치상황 때문에 무려 60만이란 병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외형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60만이란 병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기득권층의 욕심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병력이 줄어들면 자리보전을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군부에서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이죠. 현대전은 미사일 한 방으로 사단 병력을 괴멸시킬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비룡에서 만들어낸 미사일과 최첨단 무기들이 속속들이 전진 배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병력의 유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대통령님, 그 예산을 줄여서 첨단무기의 개발과 공군, 해군의 전력증강에 사용해야 합니다.
”
“얼마나 줄이란 말입니까?”
“제가 개략적으로 계산해 본 결과, 병력은 20만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그럼 40만이나 줄이란 말입니까?”
“20만도 많습니다. 향후 지속해서 첨단무기들이 전진 배치되고 남북한 평화 무드가 계속된다면 더 줄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방북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먼저 병력을 줄일 테니 북쪽도 병력을 줄여달라고 말입니다.
줄인 병력은 저희가 만든 경제자치구에서 전부 일 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한답디까?”
“남쪽이 먼저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쪽도 병력 유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까요.”
“허어…….”
이건 뭐 갈수록 태산이다.
장관직을 그만두겠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고 있었는데, 최강철의 말을 듣게 되자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군 개혁, 그리고 북한의 병력감축.
만약 이것이 현실화 된다면 전 세계가 놀라 자빠질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건 산적한 일들이 태산처럼 많았기 때문이었다.
“군부의 반대가 심할 겁니다.”
“당연히 반대를 할 겁니다. 밥그릇을 뺏긴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동안 이전 정권에서 병력수를 조절하지 못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군부가 예전처럼 쿠데타를 일으키는 미친 짓은 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게 될 겁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군부가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으니까요.”
“장관님은 저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주시는군요. 혹시 내가 대통령에 있을 때 힘든 일을 다 시킬 생각입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 시꺼먼 마음을 읽으신 모양이군요. 역시 대통령님은 눈치가 빠르십니다.”
“허허…. 이런 쯧쯧…….”
능글맞게 웃는 최강철을 향해 대통령이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군부는 대한민국을 장악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유린한 전력이 있었다.
오죽하면 대장은 장관급이고, 중장은 차관급이란 말까지 나돌았단 말인가.
그렇기에 군 개혁 작업은 엄청난 반대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위험 부담성이 큰 사안이었다.
안보문제는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더 없이 민감한 사안으로, 자칫 잘못하면 국론분열로 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결연한 표정으로 의지를 다졌다.
그 역시 언젠가는 반드시 해내야 할 개혁이란 걸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부 개혁은 저도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을 뿐이지요. 좋습니다. 그건 내가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다음은 또 어떤 게 있습니까. 이제 장관님 말을 듣는 게 겁이 나는군요.”
“두 번째는 세계인들을 한국으로 끌어모으는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우리나라는 비참한 역사로 인해 제대로 남아 있는 유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나마 있는 것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엉망이죠. 관광은 쉽게 말해서,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무지막지한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관광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해야 합니다. 전국의 관광지 주변을 완벽하게 정비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면 저절로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 겁니다.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클린한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군사독재 시절 무분별하게 전봇대를 만들어 도시 전체를 거미줄로 만들어 놨습니다.
이것을 지중화하면 도시의 미관이 대폭 개선될 것입니다. 또한, 한강변에 산재되어 있는 아파트와 건물들을 정비해서, 한강을 관광명소로 재탄생시키는 작업도 병행해야 됩니다. 아름답고 특별한 건축물들로 한강변을 채우고, 화려한 조명시설을 갖추게 되면 세계인들이 꼭 오고 싶어 하는 한강관광특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겠군요.”
“그렇습니다. 상당한 예산이 소요될 겁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시행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관광지의 정비와 전선의 지중화 사업은 국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지만, 한강변 정비계획은 민자를 유치하면 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저희 피닉스 그룹이 나서겠습니다.
정부에서 인허가를 비롯해서 조금만 도움을 준다면 나설 그룹들은 부지기수일 겁니다.”
“알았습니다. 그것도 검토해서 바로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죠. 휴우,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일들이라 걱정이 태산이네요. 혹시 이것보다 더한 것도 있습니까?”
“그리고 이왕 총대를 메신 김에, 한 가지 더 해주십시오.”
“하는 김에 다 해 보세요. 이왕 시작한 거 갈 데까지 가 봅시다.”
“이게 가장 중요하고 힘든 일입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진짜 겁이 나는군요.”
“우리나라는 서울과 수도권에 전 국민의 절반이 몰려 있습니다. 기형적인 구조가 된 것이죠. 이것을 해결해야 대한민국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음…….”
기어코 최강철의 입에서 수도권 분산정책이 나오자, 대통령이 무거운 신음을 흘려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산다는 것은 분산정책이 펼쳐졌을 때 그만큼의 국민들에게 원성을 산다는 뜻이다.
분산정책이 펼쳐질 경우 재산의 손실이 발생하고 뜻하지 않은 주말부부, 인재의 수급불균형 등을 비롯해서 수많은 문제가 터지기 때문이다.
“대통령님, 힘들지만 반드시 해내야 할 일입니다. 분산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발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구상하고 있는 방안이 있습니까?”
“개략적으로 구상한 것은 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을 전국으로 분산 배치하는 겁니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절대 대학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공기업들도 마찬가집니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공기업들을 전부 지방 도시로 이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주요그룹들의 본사와 계열사들도 차례대로 내려보내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물론 반대가 극심하겠지만, 이것은 반드시 해내야 할 일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칼을 빼 주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는 제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
“그 말은… 드디어 마음을 굳혔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이 절 필요로 한다면, 저는 어떤 일도 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판을 벌여 놓겠습니다. 일을 벌이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습니까. 수습해야 할 사람이 피곤한 것이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나는 참 행운압니다.
국민들한테 선심이란 선심은 다 쓰고, 장관님한테 모든 걸 떠넘기면 되니까요. 어쨌든, 결심을 굳혔다니 고맙습니다. 기대되는군요. 장관님이 이끌어 나갈 대한민국의 미래가 말입니다.
”
대통령이 활짝 웃었다.
그동안 한 번도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애를 태우던 최강철이, 드디어 처음으로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었다.
이젠 되었다.
자신은 지금 한 말처럼 칼을 빼 들고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무궁무진한 능력을 지닌 최강철이 하나씩 정리해 줄 테니, 이젠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방금 한 최강철의 약속에, 그동안 이야기를 들으며 무거워졌던 마음이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어려움도 최강철이 나서면 해결될 것이다.
그는 그만한 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자신은 그의 뜻대로 마음껏 칼춤을 출 자신이 생겼다.
* * *
서지영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 처음엔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감에 젖어갔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더없이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최정후는 무럭무럭 자라며 언제나 그녀의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 주었다.
비록 남편은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었으나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를 위해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남자 둘과의 일상.
낮에는 아이와 밤에는 남편과 살아가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고 아름다웠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한동안 마이다스 CKC의 업무에 관여했지만, 완전히 손을 뗀 건 벌써 5년이 넘었다.
어차피 마이다스 CKC는 그녀의 손을 떠난 공룡이었다.
시스템으로 인해 움직이는 공룡을 굳이 손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최정후는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었기에 아이가 학교를 가고 여유로워 지는 시간은, 그간 하지 못했던 취미들을 즐겼다.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고 요리학원도 다녔으며, 사랑스러운 아내로 남기 위해 요가도 하면서 열심히 몸매도 가꾸었다.
최정후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서지영은 최강철의 정체를 숨겼다.
아이가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강철이 챔피언에 군림할 때 몇 번 화면에 잡힌 적은 있었지만, 아직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강남초등학교.
서초동에서 가장 유명한 초등학교로, 유명인사들의 자제들이 많이 다닌다고 알려진 곳이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재벌가와 고위공무원의 자식들이 많이 다녔기에, 치맛바람이 거센 곳이기도 했다.
오늘 그녀는 학부모회의 호출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모임에 나갔다.
두 번이나 불참했더니 학급 반장 엄마가 전화를 걸어, 신경질을 내면서 아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냐며 협박을 해왔던 것이다.
모임 장소는 서초동에 있는 카페였는데, 커피와 더불어 가볍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편한 차림으로 나갔다.
학부모 회의는 학교운영과 관련해 부모들이 만나 의논하는 자리였으니 외모를 꾸미고 나가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페에 나온 엄마들의 차림새는 런웨이에 나서는 모델들을 연상시킬 만큼 화려했다.
잘사는 동네답게 엄마들의 몸매는 늘씬했고, 옷들도 명품으로 도배되었는데 누가 더 잘 사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온갖 보석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회의는 별것 없었다.
봄 소풍에 관한 것들과 반에서 소요되는 비품들에 관한 경비, 곧 다가올 스승의 날에 선생님한테 줄 선물과 식사대접에 관한 것들이었다.
서지영은 엄마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굳이 나서서 의견을 개진할 내용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엄마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귀 기울였을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왕따가 되어갔다.
처음으로 나왔기 때문에 엄마들의 얼굴도 생소했지만, 수수하게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에서 차별의 시선이 무참하게 날아왔다.
반장 엄마에게서 어이없는 말이 나온 것은 경비 각출에 관한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