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84화 (284/308)

< 제41장 전설, 그의 아름다운 향기 - 1 >

“정후, 파일을 보니까 아빠가 공무원으로 되어 있던데, 어디서 근무하세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반장 엄마를 비롯해서 학급위원회에 소속된 엄마들이 전부 서지영을 바라봤다.

학교가 개학한 후 그녀들은 서로 여러 번 교류했지만, 서지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그녀들은 공식적인 논의사안이 끝나자 서지영에 대한 청문회로 들어갔다.

“통일부에 근무하세요.”

“통일부요?”

그녀의 대답에 모여 있던 엄마들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통일부는 요즘 들어 가장 언론에 많이 나오고 있는 정부 부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가운데에 앉아 있던 여자가 불쑥 나서며 급히 입을 열었다.

“통일부 어디요. 우리 남편도 거기에 근무하는데, 그게 정말이에요?”

약간의 의심이 담긴 질문이다.

현재 통일부는 가장 잘 나가는 인재들이 모인 곳으로 유명했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인재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부서이기도 했다.

그런 의심의 발단은 서지영의 수수한 차림 때문이었다.

청바지에 면티를 입고 나온 그녀의 모습에서 엄마들은 자신들과 동등한 지위를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남편은 대북협상팀의 팀장이에요. 정후 아빠는 어디에서 근무하세요?”

“저는…. 잘 몰라요.”

“남편이 어디서 근무하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정말 통일부에 근무하는 것 맞아요?”

“정후 아빠가 회사일은 잘 말해주지 않아서요…….”

곤란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최강철의 정체를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여자들은 서지영이 말꼬리를 흐리자 약점을 잡은 것처럼 곤란한 질문을 계속 던져왔다.

사는 곳과 집안 형편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소개를 핑계로 그녀들은 돌아가며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여자들인지 자랑하고 있었다.

자리를 일어서고 싶었다.

이곳에 있어봤자 강남 부유층 엄마들의 갑질이 점점 역겨워질 뿐이었다.

“정후 엄마는 대학교 어디 나왔어요?”

남편과 자신에 대한 가정사에 이어, 이제 질문이 그녀쪽으로 돌아왔다.

슬그머니 짜증이 일어났다.

그랬기에 서지영은 서울 명문대를 나왔다는 반장 엄마를 향해 시선을 똑바로 던졌다.

“나는 펜실베니아대를 나왔어요. 경영학을 전공했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서지영의 대답에 반장 엄마를 비롯해서 나머지 여자들이 놀란 눈을 숨기지 못했다.

사실 그녀들이 서지영을 더욱 깔보고 싶었던 것은, 수수한 차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그녀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의 특성이다.

대부분 여자는 외모와 몸매가 안 되면 다른 것으로라도 찍어 누르고 싶어 하는 질투심이 폭발한다.

“그래요. 펜실베니아대를 졸업하고 세계 최고의 투자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어요. 비록 남편을 잘 못 만나 지금은 한국에서 평범한 주부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저도 잘 나갔던 사람이에요.”

한번 입을 열자 그녀들을 놀려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서지영은 얼굴을 뻔뻔하게 만들고 그녀들을 향해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한 해 연봉은 최고 삼백만 달러까지 받았어요. 제가 꽤 유능했거든요.”

“이제 보니 정후 엄마는 농담도 잘하네요. 설마…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믿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캘리포니아대 출신에 연봉이 삼백만 달러라니…. 무슨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도 아니고, 호호…. 정후 엄마는 개그우먼이 됐으면 딱 이겠네요. 아니면 혹시 드라마 작가가 꿈이었어요?”

엄마들이 그녀의 대답에 마음껏 비웃음을 날리기 시작했다.

없는 것에 대한 자존심이 상해서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

연봉을 삼백만 달러나 받았던 여자가 한국에서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런 여자가 청바지에 면티를 입고 학부모회에 나온다는 건 절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때 서지영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 저에요…. 어쩐 일이에요. 이 시간에… 뭐라고요? 회사를 그만뒀다고요? 왜요? 그러는 게 어디 있어요. 나하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슬쩍 엄마들을 바라본 서지영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럼 우린 뭘 먹고 살아요. 무슨 사람이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요! 놀아주긴 뭘 놀아줘요? 회사까지 그만둔 사람이. 여기를 온다고요? 내가 이곳에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급히 엄마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서지영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들어오지 마요. 내가 나갈 테니까. 글쎄, 들어오지 말라니까요. 어머…….”

늦었다.

그녀가 말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최강철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 * *

“당신 미쳤어요?”

“왜?”

“그렇게 사람들 많은 곳에 무조건 들어오면 어떡해요.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알아요?”

“미안해.”

최강철이 입맛을 다시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나타나는 순간 카페는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창가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먼저 그를 알아본 후 벌떼처럼 일어섰는데 예전 복싱을 할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 반응은 그녀와 같이 있던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 대한민국 모든 여자가 꿈꾸던 결혼 상대자 1위를 독점했던 최강철의 등장에, 엄마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최강철이 천천히 다가와 서지영의 손을 잡았을 때, 몇몇 엄마들이 너무 놀라 바닥에 쓰러지는 일까지 생겼다.

그중에는 서지영을 향해 가장 많이 비웃음을 짓던 반장 엄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어떡해요. 거기에 있던 사람들 학부모회 엄마들이었다고요. 정후한테 아빠에 대해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시켰었는데, 이젠 큰일 났어요.”

“괜찮아.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숨길 수 있는 건 아니었잖아. 정후도 이젠 상황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해.”

“그래도… 아직은…….”

“우리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먹을까? 나 때문에 점심 못 먹었지?”

“그것보다 먼저 따져야 할 일이 있어요. 회사는 왜 그만둔 거예요. 상의도 없이?”

“할 일이 있어서…….”

“그게 뭔데요?”

“응…. 그게, 지영 씨. 일단 맛있는 거부터 먹자. 내가 잘 아는 파스타 가게가 있어. 거기 가서 내가 지영 씨 좋아하는 카르보나라 사줄게.”

“이 남자 봐.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네. 좋아요. 일단 접수. 먹고 나서 말합시다. 패는 것도 힘이 있어야 팰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죠.”

예감이 이상했지만 오랜만에 최강철과 데이트를 한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서지영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분위기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가 맛있게 밥을 먹었지만, 곧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서지영이 터트린 고함에 비상이 걸리고 말았다.

서지영은 절대 이해하지 않았고 화를 참지도 않았다.

“나이 들더니 판단력이 흐려졌어요. 그게 무슨 주책이냐고요. 일국의 장관까지 한 사람이 왜 그래요? 좋아요, 그건 문제도 아니지. 지금 당신 나이가 몇인지나 알고 그런 결정을 한 거예요? 43살이라고요, 43살. 말해봐요. 누가 꼬신 거예요?”

“꼬시긴 누가 꼬셔…….”

“윤 관장님이죠? 아니, 성일 씨인가. 하여간 누가 되었든 걸리면 가만 안 둘 거야. 절대로!”

“그러지 마. 내가 결정한 거야.”

“다치면요?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당신 정말…. 나한테 왜 이래요!”

* * *

최강철의 갑작스러운 통일부 장관 사임 소식에,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의문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장관직을 사퇴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가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대통령과 최강철의 불화설부터,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의 관계 악화설이 흘러나왔고 최강철의 건강 이상설까지, 온갖 루머가 생산되며 대한민국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어떤 입장표명도 하지 않았고, 최강철도 굳게 입을 다문 채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언론과 국민들은 그냥 있지 않았다.

어떤 이유때문에 최강철이 장관직을 그만두었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며 대통령과 정부를 압박했다.

인터넷은 그로 인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최강철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은 최강철이 누군가의 음모로 인해 장관직을 그만두었다며 집단으로 모이기 시작했는데, 그대로 둔다면 시위까지 일으킬 기세였다.

그 와중에 신임 장관이 선임되었고 보름이란 시간이 금방 흘렀지만 국민들의 여론은 점점 악화될 뿐이었다.

최강철이 직접 언론에 나와 사임한 이유에 대해서 인터뷰를 가진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 여러분, 제가 사임한 이유는 제 일신상의 이유 때문이지 여러분이 생각하신 것처럼 어떤 정치적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일신상의 이유가 뭡니까? 그걸 밝혀주시지 않으면 음모론은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밝힐 수 없습니다. 일이 완전히 진행된 후에 다시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먼저 원했고, 저에게 도전해야 할 새로운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국민 여러분,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 * *

최강철의 전화를 받은 돈킹의 목소리는 놀람으로 인해 벌벌 떨렸는데, 몇 번이고 사실을 재확인할 정도로 흥분에 사로잡혔다.

“이보게, 허리케인. 자네 날 놀리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지?”

“아닙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메이웨더와 접촉해 주세요.”

“이 사람아, 자네는 은퇴한 지 7년이나 지났어. 잘 생각해 봐. 자네 같은 사람이 돈 때문에 그럴 리는 없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놈이 저와 싸우고 싶어 하잖습니까? 그 친구 시합을 여러 번 봤습니다. 정말 좋은 선수더군요. 피가 끓을 정도로. 그래서 싸우려는 겁니다. 그 정도의 레벨을 가진 선수의 도전은 피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 답답하게 만들지 말고!”

“하하하…. 진짜 이유를 말하면 추진할 겁니까?”

“그래, 그러니까 빨리 말해.”

“심심해서요. 인생이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복싱 때문이었어요. 유일한 나의 기쁨이었죠. 그래서 그걸 다시 느껴보고 싶은 겁니다. 더 늙기 전에.”

“자네 우울증 왔는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시간이 흐르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더 이상 의심 갖지 마시고 추진해 주세요.”

“알았네. 자네 뜻이 정 그렇다면 내가 추진하지. 하아, 자네로 인해 돈 버는 건 오래전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지는군. 돈벼락 말이야.”

“좋으시겠습니다. 그런 벼락은 언제든지 맞아도 좋은 거 아닙니까?”

“푸하하… 당연한 말일세. 그런데 허리케인, 자네 정말 괜찮겠나? 너무 오래 쉬었잖아. 메이웨더, 그놈은 정말 미친놈이라고. 옛날 자네가 상대했던 놈들과 똑 같이 생각하면 안 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합 날짜는 넉넉하게 잡아주십시오.”

“얼마면 되겠나?”

“9개월 후면 좋겠군요.”

“오케이, 그렇다면 경기 스케줄은 거기에 맞추는 거로 하지.”

* * *

세상은 누군가의 용기로 인해 역사가 변한다.

그리고 최강철은 그런 용기를,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향해 터트렸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항간에 자자했던 메이웨더의 도발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전 세계가 들썩였다.

이미 은퇴한 지 7년이나 된 최강철의 복귀 소식은 충격을 넘어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고, 더 없이 설레이는 소식이기도 했다.

복싱 팬들의 환호성이 지구촌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41전 41승, 41KO승에 빛나는 전설, 허리케인 최강철.

그가 현재 무적을 구가하며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메이웨더와 싸운다는 사실만으로도, 복싱 팬들은 잠자리에 들지 못할 정도의 흥분을 느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한동안 충격으로 인해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단 말인가.

장관직을 사임한다고 했을 때 국민들은 음모론을 들먹이며 시위까지 감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임한 이유가 메이웨더와의 시합 때문이라는 게 밝혀지자 한동안 충격으로 인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침묵도 잠시. 국민들은 곧 벌떼처럼 일어섰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들은, 직접 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낸다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시합. 지옥으로 걸어가는 그의 결단. 우리가 원하는 건 지옥이 아니라 통일이다.”

“당신은 그 시합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우리의 영웅이다. 왜 우리에게 시련을 주려고 하는가.”

“메이웨더의 비겁함. 그 비겁함에 이끌려 간 우리의 영웅. 전설은 비겁한 도전을 그저 넉넉한 웃음으로 넘겨도 부끄럽지 않다. 허리케인, 그대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니, 절대 그의 비겁함에 현혹되지 않길 바란다.”

전 국민이 날마다 최강철의 결단을 반대하고 나섰다.

언론이 앞장섰고, 인터넷에서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시합 반대서명을 하면서 최강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를 썼다.

진정이었다.

국민들이 최강철의 결단을 반대한 것은, 그가…. 자신들의 영웅이…. 누군가에게 쓰러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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