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82화 (282/308)

< 제40장 달려라, 대한민국 - 5 >

남북한의 경제공동구역이 오픈되던 날 세계의 모든 시선이 한꺼번에 몰렸다.

거의 2,000여 명의 외신기자들이 대한민국으로 날아왔고 국내 기자들까지 한꺼번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준공식장은 일반 참석자보다 기자들의 숫자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

정말 대단한 규모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 규모에 놀랐었지만, 막상 모든 기업체의 공단이 완성되어 자태를 드러내자 참석자들은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놀라움은 휴전선 북쪽에 마련된 신도시를 확인하는 순간 탄성으로 변해갔다.

최첨단의 메머드한 도시 모습은 아름다웠고 깨끗했다. 그 모습이 눈으로 들어오자 외신기자들은 ‘원더풀’이란 단어를 수없이 토해냈다.

정말 대단하다.

단순히 근로자들이 머문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고급스러운 환경이었다.

널찍한 공간으로 고층아파트들이 쭉쭉 올라갔고 그 공간 사이로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이 자리했다.

북한은 오랜 시간 동안 사상검증을 끝낸 사람들을 추려내어 경제공동구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렇게 함으로 체제에 균열이 가는 것을 막고자 했다.

더불어 별도의 치안대를 마련해서 근로자들의 감시체제를 마련했는데, 그 숫자가 무려 2,500명에 달했다.

비록 경제를 살리려고 남한과의 협약을 통해 공단에 참여한 것이지만, 북한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최강철은 계속된 실무협상에서 그들의 주장을 가로막지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상대를 무리하게 압박할 필요도 없었고, 주장을 내세워 각을 세울 필요도 없었다.

대신 최강철은 북한 근로자들의 통금시간을 10시까지 늘렸다.

북한 정부에서는 8시에 무조건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을 내밀었지만, 최강철은 그것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최강철이 경제공동구역을 만들어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한 것은 단순히 싼 임금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어떤 것인지 알게 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를 터득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랬기에 공단 근처에는 근로자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음식점과 편의점, 운동시설, 쇼핑센터, 오락시설을 충분하게 마련해 놨다.

* * *

정우석 대통령의 연임은 당연한 것이었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그가 추진한 정책들은 하나씩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아 대한민국 사회를 한 단계 성숙한 경지로 이끌었다.

공무원의 부정?비리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고 조폭들은 아예 씨가 말랐다.

범죄율은 사상 최저였으며 대학입시 때문에 학생들이 괴로워하던 시간도 사라져버렸다.

더군다나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경제공동구역이 준공되며 본격적인 남북경협이 시작되자, 국민들은 정우석 대통령을 압도적인 지지로 연임시켰다.

정우석 대통령이 대선에서 다시 정권을 잡자, 최강철은 본격적으로 북한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바로 북한으로 올라가 김정일을 만났는데, 2차 경협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주석궁으로 들어서자 김정일은 버선발로 뛰어나올 만큼 그를 반겼다.

이제 그는 최강철을 마치 친동생처럼 여기고 있었다.

“최 장관, 요새 왜 이리 뜸했어.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대선 때문에 상당히 바빴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정권이 바뀌면 안 되잖습니까?”

“하하…. 그건 그렇지. 그러지 않아도 내가 대통령께 축하인사를 전하고 화환도 보냈어. 그랬더니 그 양반 무척 좋아하더구만.”

“말씀 들었습니다.”

“자네가 온 건 분명 일 때문이겠지. 그러나 우리 오늘은 허리띠 풀어놓고 마음껏 마셔보세. 좋은 술 가져왔지?”

“예, 위원장님께서 좋아하시는 발렌타인 30년산을 준비해 왔습니다.”

“잘했어, 역시 최 장관은 내 마음에 쏙 든단 말이야.”

오후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저녁 9시까지 계속되었다.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9명으로, 현재 북한을 주무르고 있는 실세들이었는데 당과 군의 책임자들이었다.

김정일의 최측근들인 그들은 남북경협이 시작된 이래로 무려 20여 명의 반란주동자를 숙청했다.

자신들의 위치에 불안함을 느낀 군부의 장성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주도면밀한 김정일은 사전에 계획을 눈치챈 상태였다. 결국, 그들은 즉각 사형대로 올려 보내졌다.

김정일과 그의 측근들은 전부 주당이다.

발렌타인 30년 산이 10병이나 동이 났지만, 술에 취한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최 장관은 언제 돌아갈 건가?”

“내일 가야 합니다. 제가 워낙 바빠서요.”

“공단일도 마무리됐는데 뭐가 그리 바빠. 며칠 더 쉬다 가게. 내가 자네하고 할 말이 많아.”

“이번에는 진짜 안 됩니다. 이러다가 마누라한테 쫓겨날 것 같습니다. 대선 때문에 집에 안 들어간 지 한 달이 넘어요. 그리고 바로 여기에 왔잖습니까. 위원장님, 그러니까 이번엔 좀 봐주십시오.”

“하아, 자네 공처가구만 그래.”

“애처가라고 해 주십시오.”

“좋아, 그럼 시간이 없을 테니 지금부터는 자네가 가져온 이야기를 해 봐. 이번엔 뭘 들고 온 거야?”

최강철의 대답에 웃음을 머금고 있던 김정일이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

이런 시선이 철혈의 지배자의 눈에서 나온다는 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위원장님. 공동경제구역이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북한경제도 숨통이 트이기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어렵죠. 지금은 남쪽의 기업들이 주가 되어 북한 주민을 고용하는 정도였지만, 본격적으로 북한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북한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됩니다. 독립적인 기업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 남한 정부는 서울과 평양을 잇는 고속도로와 원산까지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2차 경협의 시작입니다. 그 교통망을 이용해서 개성과 원산, 신의주 등에 경제자치구를 설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위원장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음… 우리는 돈이 없어.”

“엄살떨지 마십시오. 그래도 공짜는 없습니다. 국가와 국가가 움직이는데 공짜가 어딨습니까?”

“그럼 어떡하잔 말이야?”

“고속도로와 철도 건설에 필요한 비용은 우리가 대겠습니다. 대신 북한은 그 비용의 대가로 자원을 주시고 인력을 동원해 주십시오. 자치구의 공장들도 일단 우리 남한 기업이 먼저 들어가서 운영하겠습니다. 힘들면 북한기업들은 그다음에 들어와도 됩니다.”

“우리 인민들을 동원해서 건설할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꿩 먹고 알 먹는 것이죠. 우리는 북한의 자원을 가져가고, 북한 주민들에게 임금을 제공하겠습니다.”

“괜찮군.”

당연히 괜찮은 제안이다.

남한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제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당장 중국만 하더라도 경제지원을 한다면서 알짜 지하자원을 전부 자신들의 수중에 넣는 만행을 저질렀다.

배고파 죽을 지경이 아니었다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손해인 제안이었으나, 김정일은 눈물을 머금고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북한에 고속도로와 철도가 개통된다면 누가 좋겠는가?

당연히 북한 땅에 설치되는 것이니 이익 대부분은 북한이 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김정일은 쉽게 최강철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이면에 깔려 있는 저의.

그 저의가 그의 고개를 선뜻 끄덕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아예, 우리 인민들을 전부 선동해서 자본주의에 빠져들게 만들 생각이구만. 이봐, 최 장관. 자네 너무 급하게 나가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뜻이 없다고?”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이 준비될 때까지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 그리고 우리 남한정부는 북한이 잘살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통일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먼저 잘 사십시오. 그렇게 되기까지 남한이 무조건 도와드리겠습니다.”

“휴우…….”

김정일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남한의 이전 정권은 언제나 적대심을 불태웠다.

그들은 북한을 주적으로 놓고 정치에 이용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최강철이 나타나고 난 후부터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제 전쟁이 벌어질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

현재 대한민국의 개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북한과 비교한다면 50배나 넘는 격차였다.

더군다나 군사력도 비교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중국에서 건네받은 정보에 따르면 남한은 최근 들어 전투기를 자체 생산했고, 최첨단 구축함과 전차 그리고 미사일까지 개발하면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구축하는 중이었다.

그랬기에 김정일은 최강철을 빤히 바라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북한의 교통망을 개방하고 남한의 기업들이 진출하기 시작한다면 체제의 붕괴는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이봐, 최 장관. 우리에게 얼마나 시간을 줄 텐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시간은 위원장님께서 결정하십시오.”

“약속할 수 있겠나?”

“원하신다면 국제사회가 모두 알 수 있도록 협약서를 체결하겠습니다.”

* * *

최강철은 평양에서 돌아온 후 곧장 청와대로 들어갔다.

워낙 중요한 임무였으니 그 결과를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고생하셨습니다.”

“제 일인걸요.”

“앉읍시다.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정우석 대통령의 얼굴에서 조바심이 묻어났다.

그만큼 최강철이 들고 간 제안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최강철은 불쑥 찾아와 그에게 재선기념으로 선물을 주고 싶다며 2차 경협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무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경제공동구역이 가동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남북한을 연결하는 교통망을 건설하고, 북한에 경제자치구를 만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북한의 반대가 심할 것이다.

경제공동구역을 마련한 것과 아예 북한 땅에 경제자치구를 만든다는 건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조바심을 숨길 수 없었다.

만약, 북한에서 최강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통일의 길에 바짝 다가설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정말이요?”

“그렇습니다.”

“허어… 허허허…….”

최강철의 대답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정우석 대통령의 입에서 이상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쉽게 일이 해결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비록 최강철이 북한과의 관계를 물 흐르듯 유지해 왔지만, 이번 경제자치구의 추진은 수많은 난제가 첩첩산중처럼 쌓여있었다. 그래서 정우석 대통령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그 불가능한 일들을 식은 죽 먹은 것처럼 해치워 버렸다.

“다음 달에 실무협상을 시작하는 것으로 협의했습니다. 추진방안은 교통망과 경제자치구를 동시에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나 빨리요? 최 장관님, 그러다가 북한이 변심이라도 하면 우리 기업들은 엄청난 손실을 볼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이렇게 전향적으로 나올 때 밀어붙여야 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우리에게 올지 모릅니다. 그러니 대통령님 재가를 해 주십시오.”

“잘하실 수 있겠죠?”

“이번에도 피닉스 그룹이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손실을 보더라도 피닉스 그룹이 책임을 지겠습니다.”

“휴우…. 난, 이제 겁이 납니다. 일이 이리 무섭게 추진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어요.”

“대통령님, 제가 해 내겠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래요, 그래 주세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최 장관님 정말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최강철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자 정우석 대통령이 마주 인사를 했다.

진정에서 우러나온 상대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뒤늦게 차를 가져오라고 시킨 대통령은, 북한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김정일 위원장을 경제공동구역 준공식 때 만난 적이 있지만, 대부분의 일 추진은 최강철이 모두 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서는 궁금한 것 천지였다.

최강철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북한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최근에 벌어진 숙청부터 현재 북한을 이끌고 있는 지도층의 특성, 김정일이 추구하고 있는 이상에 관한 것들이었다.

김정일은 최강철에게 이미 여러 번 북한에 대한 통치 권력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취중에도 했었지만, 맨정신으로도 자신의 뜻을 말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권력을 자식에게 줄 생각이 전혀 없다며, 인민들만 잘살 수 있다면 권력을 포기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번 말했지만, 대통령과 각료들은 최강철의 말을 믿지 못했다.

북한을 50년 동안 철권통치 해왔던 백두산 혈통의 말을 믿기에는 그들이 그동안 자행해 왔던 무자비한 일들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최강철이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을 때, 대통령의 얼굴은 여전히 무거웠다.

어찌 그렇지 않을까.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북한과의 관계진전은 그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전혀 예상 밖의 말이 최강철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한숨을 길게 내리 쉰 대통령이 메마른 입술을 적실 때였다.

“대통령님, 저는 이제 장관직을 사임하고자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사임이라니요!”

“제가 당분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지금 북한과의 관계는 최 장관님이 다 진행해 왔는데, 그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말씀입니까. 안 됩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사임이라니요!”

“이미 보고드렸듯이 커다란 문제는 다 해결했습니다. 나머지는 실무협상에 관한 것뿐이고 경제자치구에 관한 것들은 피닉스 그룹이 나서도록 다 조치를 해 놓겠습니다.”

“도대체… 그게 뭐요. 해야 할 일이 뭐기에 장관직을 사임한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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