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F급 플레이어의 회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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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을까?
‘글쎄······.’
어느 날, 게이트가 열리며 세상이 뒤집혔다.
뒤이어 초능력을 지닌 자들,
‘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사회의 권력 구조가 재정립되었다.
하지만 인간 군상만은 그대로였다.
이기적인 이들은 재앙을 이용하여 더 큰 몫을 챙기려고 눈동자를 굴려댔고, 냉소적인 이들은 여전히 모든 게 못마땅한 듯 푸념을 쏟아내기만 했다.
소수의 영웅이 나름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앞선 두 부류를 비롯한 수많은 장애물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렇다. 여전히 많은 문제는 몬스터가 아닌 사람 때문에 발생했다.
플레이어는 인류의 유일무이한 무기였다만, 그들 모두가 영웅은 아니었다.
플레이어 출신 정치인과 기업인이 권력을 움켜쥐고 흔들었으며, 플레이어에 의한 범죄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예상 가능한 문제였다.
플레이어도 결국 한낱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긴 시간 동안 수많은 경험을 한다면야 어떤 식으로든 사고방식이 바뀌긴 하겠다만, 적어도 하루아침 만에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시대를 막론하고 유효한 격언이었다.
그런데······.
‘이현욱 상병님······ 어딘가 달라졌다.’
갓 일병을 단 박준모는 자신의 사수, 이현욱 상병이 정말 하루아침 만에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4일 전, 저녁 식사 집합을 앞두고 깨웠을 때 이상한 반응을 보인 이후부터였다.
“······후!”
그는 지금 막사 뒤쪽 공터에 있는 철봉에서 홀로 턱걸이하는 중이었다.
그게 대체 뭐가 특별하겠느냐마는······.
‘원래는 언제나 무기력하게 지내셨는데 갑자기 눈빛이 달라지더니 매일 운동까지 하고,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박준모가 평소에 알고 있던 이현욱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3개월을 지켜보았지만, 그동안 훈련이나 작전 때 빼고는 움직이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최근 행동거지도 자못 수상했기도 했다.
마치 기억이 흐릿하다는 듯 1년이 넘게 몸담은 부대에 관해서 이것저것 캐물어 댔으며 종종 무언가를 메모하곤 했다. 그리고 난데없이 미래의 날짜를 되뇌며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매가 변했다.
‘하도 선임들 눈치를 보다 보니 표정만으로도 그 사람의 기분을 알 수 있다. 이현욱 상병님······ 확실히 달라졌어.’
언제나 무기력하고 자신감 없던 인간이었거늘, 지금은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것처럼 침착하고 차가운 눈을 뜨고 있었다.
그건 뭐랄까······ 과장을 보태서 늙은 맹수의 눈이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이현욱이 돌아보았다.
“준모, 무슨 일이야?”
저 한 마디 음성마저 괜스레 단단하다고 느껴졌다.
“······아!”
박준모는 괜스레 놀라며 볼을 긁적거렸다.
“그게, 곧 저녁 식사 집합 시간입니다.”
이현욱이 시계를 확인했다.
“그래, 고마워.”
그가 가볍게 어깨 스트레칭을 하며 다가왔는데, 기분 탓인지 단 며칠 사이에 덩치가 상당히 불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저, 이현욱 상병님?”
“응?”
“저, 그, 갑자기 왜 운동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질문에 이현욱은 피식 웃었다.
“왜? 내가 운동하는 게 이상해?”
“아, 그건 아닙니다. 그냥, 저······.”
그가 박준모의 어깨를 툭, 쳤다.
“언제 전투를 치러야 할지 모르잖아. 너도 운동 좀 해. 그 몸으로는 고블린 한 마리도 제압하기 어렵겠다.”
“아······ 알겠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플레이어로 구성된 ‘대 몬스터 부대(Anti Monster Troop)’
약칭 A·M·T는 한 달에도 몇 번씩 실전 임무에 투입되어 몬스터를 상대해야만 했다.
즉, 언제든지 죽음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능력과 육체의 단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근데, 우리는 그럴 일이 거의 없는데······.’
하지만 이현욱과 박준모는 플레이어 중에서도 최하 등급인 F급이었으므로, 직접 몬스터와 싸울 기회는 드문 편이었다.
이들은 하급 플레이어 병력으로 구성된 ‘지원 분대’ 소속으로써 전투 시 다른 분대를 보조하는 임무를 맡을 뿐이었다.
쉽게 말해, 지원 분대 소속은 사실상 ‘잡부’다.
그런 의아함을 눈치챘는지, 이현욱이 덧붙여 말했다.
“사실 별 이유 없어. 그냥 뭐, 바뀌려고 노력해보는 거야.”
‘······바꾼다니, 어떻게?’
박준모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은 달리 나왔다.
“아, 바뀌려는 노력······ 멋집니다.”
“입에 발린 말은 됐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저도 부사수로서 꼭 본받겠습니다.”
실은 입에 발린 말이 맞았다. 세상에는 엄연히 바꿀 수 없는 게 존재한다.
‘F급은 노력해서 바뀔 게 아니란 걸, 모르시지 않을 텐데?’
플레이어에도 ‘등급’ 분류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우선 <레벨 성장 특성>인 A, B, C, D, E이다.
이 등급은 ‘플레이어’라는 이름답게 ‘레벨’을 올려서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약한 능력을 얻었더라도 열심히 노력하여 레벨을 올린다면 등급을 격상시킬 수 있었다.
이어서 <레벨 외 성장 특성>인 S다.
이들에겐 레벨이 없었다. 대신 각기 다른 특별한 성장 방법이 ‘제시’된다.
가령, 가장 유명한 비 레벨 성장 특성 플레이어인 부산의 구원자 ‘인페르노(Inferno)’는 불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능력이 향상된다.
즉, 자는 동안에도 잠자리에 불만 피워 둘 수만 있다면 능력 향상이 가능한, 엄청난 이점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의 저택에는 거대한 ‘용광로’가 있으며 휴식을 취할 때마다 그곳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히든 클래스’인 셈이었는데, 이러한 S급 능력은 아주 희귀하여 전 세계를 통틀어 단 31명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F등급······.
‘비 성장 특성······.’
<비 성장 특성>, 이는 말 그대로 성장하지 않는 특성이다.
S가 ‘히든 클래스’라면 F는 ‘꽝’이었다.
‘대학에서도 F는 재수강이다. 즉 점수가 없다.’
아무리 발악해도 발전할 수 없는 운명이라니······ 이것만큼 서러운 게 또 있을까?
랜덤 뽑기에서 뽑은 ‘꽝’은 그 어떤 상품으로도 교환할 수는 없었다.
박준모는 씁쓸함을 느끼며 자신과 같은 운명인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외딴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생각이 많아 보이신다. 무슨 고민을 하고 계시는 걸까?’
박준모는 그렇게 제멋대로 감정이입을 했다. 같은 F급이기에 왠지 이현욱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정작, 이현욱은 별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877g
눈앞에 떠오른 한 줄의 상태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음, 역시 운동을 하니까 흡수 속도가 더 빠르다.’
어느새 300g에서 거의 2배에 이르는 양, 577g이나 증가했다.
‘이대로면 모아놓은 금속을 이틀 안에 다 먹겠네.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선······ 훨씬 더 질 좋은 금속이 필요해. 이른 시일 내에 휴가를 나가서 잔뜩 구해놔야겠어.’
이처럼 사실은, F급이라고 분류된 특성의 능력은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진실은 앞으로 6년 뒤에나 밝혀진다.
일명 ‘F급 플레이어 재발견 사건’이다.
그 사건 이후 F급 플레이어는 상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즉, 현시점에서 알려진 것처럼, F급은 능력 성장이 불가능한 ‘꽝’이 아니었다. 오히려 S급과 마찬가지인 히든 클래스로, 능력 성장 방법이 감추어져 있는, 일종의 ‘퍼즐’이다.
이현욱은 이미 한 번 시도해보았던 퍼즐 조립을 훨씬 빠르게 풀어나가는 중이었다.
이전에 시도했을 때는 끝내 완성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야.’
그는 남몰래 금속을 삼켰다.
***
다음날, 토요일 점심 무렵이었다.
누군가 5생활관 문을 두드렸다. 전입해 온 지 며칠 안 된 이등병이었는데, 아무래도 심부름을 온 모양이었다.
그가 생활관 안으로 쭈뼛쭈뼛 머리를 디밀었다.
“이병, 최성민!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문가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던 안민태 상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5분대장님 계십니까? 행정반에서, 그, 당직 부관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그 말에 안민태가 생활관을 둘러보았는데, 분대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야, 준모야. 이현욱 상병님 어디 가셨냐?”
얼마 전에 5분대장이 군 병원으로 호송을 간 뒤, 이현욱이 ‘임시 분대장’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가 맡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가장 계급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아! 지금 운동하러 가셨을 겁니다.”
박준모의 대답에 안민태가 피식 웃었다.
“또 운동 갔다고? 그 양반 요즘 왜 그러시냐? 야, 신병아. 당직 부관님이 무슨 일로 찾는대? 급한 거냐?”
“그, 당직 부관님께서 그냥 시키신 일이라서 저는 잘······ 그, 유류고 청소 어쩌고 말씀하시는 건 들었습니다.”
그 대답에 휴식을 취하고 있던 5분대원들은 무언가를 직감했는지 쭈뼛쭈뼛 몸을 일으켰다.
“아 씨! 그럼 작업인가 본데?”
“뭐야, 또 작업입니까? 아니! 저희 아까 오전에도 작업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저기서 한탄이 터져 나왔다.
“아, 오늘 당직 부관 곽진철 상병님이잖아. 그분이 좀 아무래도······.”
곽진철 상병, 그는 E급이나 F급 등, 등급이 낮은 병사들을 유독 괴롭히는 편이었다. 그리고 등급이 낮은 병사 대다수는 5분대에 몰려 있었기에 5분대 전체가 표적이 되곤 했다.
“아, 우리가 진짜 노예는 아닌데······.”
누군가 푸념을 섞어 중얼거렸다.
5분대 속칭 ‘지원 분대’가 잡부 취급을 받는 건 사실이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작전 중에 ‘전투 부대’를 ‘지원’하는 개념이었다.
전투 물자를 수송하고 부상자를 옮기는 등, 그래도 전투 간에 없어선 안 될 임무를 수행한다.
즉, 이렇게 휴일 간 잡일까지 시키는 건 엄연한 부조리였다.
부조리, 일반 군부대에서는 오래전에 청산됐을 법한 악습이었다.
하지만 A·M·T는 언제든지 전투 상황에 투입되어야 하는 만큼 상명하복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규율과 위계가 완강했는데, 그런 면에서 병영 생활 간 어느 정도의 부조리는 용인되는 편이었다.
그리고 곽진철은 그런 면을 이용하는 악독한 선임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말입니다. 그 곽진철 상병님께서 화장실에서······ 그······.”
일병 한 명이 말을 하다가 머뭇거렸다.
“왜 뭔데?”
그가 머뭇거리자 안민태가 물었다.
“······아, 이현욱 상병님이 임시 분대장 달고 나대는 것 같다고 뭐라고 하는 거 들었습니다. 오늘 영 불길합니다.”
“아 젠장, 꼽 주려나 보다. 우리까지 덩달아 고생하겠네, 망할······.”
그때, 머리 위에서 스피커가 켜질 때 들리는 특유의 전자음이 울렸다.
윙-
- 후! 행정반에서 전파합니다. 5생활관······ 5분대 전원, 지금 즉시 중앙 복도로 집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전달 끝.
곽진철 상병의 목소리였다.
“아······ 조금 늦었다고 또 부글부글하시는 모양입니다.”
어기적어기적 일어난 안민태 한숨을 내쉬며 박준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준모야, 빨리 네 사수 모셔와라. 오늘 당직 부관 누군지 알지?”
“예! 곽진철 상병님이십니다.”
“그래, 그 인간, 입에서 불 뿜는다. 우리 임시 분대장 형님 머리 타는 꼴 보기 싫으면 빨리 뛰어라. 생전 처음으로 철봉에 매달렸다가 그대로 숯불구이 되시겠다.”
제 분대장을 무시하는 발언이었음에도 분대원들도 피식 웃었다. 평소에 이현욱의 이미지가 어떤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입에서 불을 뿜는다는 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곽진철 상병은 화염 계열 능력자로, 후임들을 갈굴 때마다 ‘드래곤’처럼 붐을 뿜어대곤 했다. 그 괴이한 이미지 덕분에 후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선임 중 한 명이었다.
박준모는 그 장면을 생각하며 서둘러 막사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무리 그래도 곽진철 상병이랑 이현욱 상병은 동기인데······.’
한 명은 후임들에게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거늘, 다른 한 명은 방금처럼 이렇게 무시 받고 희화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현욱 상병님, 정말 괜찮은 분인데······.’
그가 아는 한, 이현욱 상병은 못난 사람은 아니었다.
충분히 박식했으며 눈치나 센스도 있었다. 심지어 플레이어 능력을 제외한 전투 훈련 등에서 그 누구보다 나은 성적을 내지 않던가?
사격도 매번 만 발이었다.
평범한 군대였다면 분명 신임받는 에이스가 되었을 것이었다.
다만, 여기는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부대, A·M·T였다.
‘하긴, A·M·T에선 우리 같은 F등급이 설 자리는 없다.’
몬스터들과 싸울 때, F급을 등 뒤에 두고 싶어 하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나 역시 짬이 차도 저런 대우를 받겠지······.'
철봉 근처에 도착하자 이현욱 상병이 보였다.
어제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이처럼 며칠 전부터 정말 꾸준히 턱걸이하고 있었다.
심지어 ‘포상 포인트’로 ‘군용 아이템 상점’에서 ‘회복 물약’을 사서 마시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몇몇 선임이 비웃는 걸 들었다.
“······후! ······후!”
실제로 그 정도로 운동하는 건, 근접 전투 계열의 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며칠 전과 비교했을 때, 팔뚝이 상당히 두꺼워졌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새삼스레 그가 정말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달라진다고 하셨었지······.’
그가 말한 변화가······ 일어나긴 할까?
“······저, 이현욱 상병님?”
이현욱이 철봉에서 내려와 돌아보았다.
“준모, 왜? 점심 식사 집합 시간은······ 아직 멀었잖아.”
그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아, 그게······ 작업 집합입니다.”
“음, 설마 또 우리 분대만 불렀어?”
“예, 맞습니다.”
이현욱은 역시 맥락을 정확히 짚었다. 박준모는 그의 눈매를 보았다.
순간, 약간의 환멸이 느껴졌다.
‘왜지? 평소엔 군말 없이 하시던 분인데.’
이게 부조리라는 건 누구나 알았다. 그리고 이현욱 정도 되는 짬이면 사실 어느 정도 대우를 해주는 게 맞았다만······.
곽진철은 워낙 막무가내인 인간이었다. 당직 부관 완장만 차면 제 동기고 뭐고 등급이 낮은 병사들을 못살게 굴곤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게 바로 F급의 운명이었다.
“그래, 가자.”
이현욱은 생활복 지퍼를 올리며 앞서 나갔다.
박준모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왠지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