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을 먹는 플레이어 - 지점장
1. F급 플레이어의 회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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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천재성을 품고 있다.
다만, 대다수가 그 천재성을 일평생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만약, 인생의 말로에 들어서야 그 천재성을 깨닫게 된다면 삶은 어떻게 변할까?
느지막이 찾아온 기쁨으로써, 삶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아니, 아니다.’
그에 대해 이현욱은 단언할 수 있었다.
‘반대로 지독한 고통이다.’
그가 경험한바, 재능의 늦은 발견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함과 후회로써 희망 고문만이 존재하는 고통의 굴레에 묶이게 된다.
‘내 능력을 깨달아 봤자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이현욱은 지금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마천루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동료들이 차가운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살아 숨 쉬는 건 이현욱뿐인듯했다.
그때, 대여섯 명의 인물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와 현욱의 주변을 에워쌌다.
‘빌런(Villain)’
인간 플레이어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기고 지구 침공을 주도한 이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서울의 마지막 영웅, 강철 대제가 녹이 슬어 무너지고 말았군.”
강철대제(鋼鐵大帝), 그건 이 세상이 이현욱을 부르는 말이었다.
‘좀 유치하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인정받아서 좋았는데······.’
이내 구둣발이 현욱의 눈앞까지 당도했다.
그는 힘겹게 시선을 움직여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포마드 머리의 키 큰 남자, 그는 세계적인 기업 ‘블루 트리’의 총수인 고든 프라이스였다.
“고, 고든, 이 배신자 새끼······.”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부를 움켜쥔 자이자 한때 영웅들의 최대 후원자였던 고든, 그가 ‘빌런’이라는 게 밝혀졌을 땐 이미 그가 휘두른 ‘암수’에 의해 수많은 영웅이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인류의 패망이 시작되었다.
“현욱, 지금에야 고백하건대, 당신은 정말 까다로운 적수였어.”
그가 그렇게 말하며 양팔을 하늘 위로 뻗었다.
“당신의 손끝을 따라 수천 개의 칼과 창이 일제히 치솟아 장대비처럼 쏟아졌던 그 광경······ 각성한 강철대제의 힘은 솔직히 우리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야.”
그가 천천히 팔을 내리며 신사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말이야, 당신에게 언젠가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어.”
그가 이현욱의 귓가로 얼굴을 들이밀더니 작게 속삭였다.
“······그 대단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 해줘서 정말이지, 고마워.”
그가 빙긋 웃었다.
인류를 몰살시킨 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다니······.
속에서 울분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득-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 잇몸이 움푹 팰 정도로······.
뒤늦게 깨달은 재능은 이렇듯 최악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적들에게는 크나큰 행운이 되었다.
‘만약 조금만 더 빨리, 이 능력의 사용 방법을 깨달았다면······ 달라졌을까?’
막연한 후회였다.
약 12년 전, 이현욱은 ‘플레이어’로 각성하여 300g의 금속을 조종하는 능력을 얻었다.
물론 300g 따위로는 기껏해야 단검 하나 움직일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무릇 모든 능력이 그렇듯 점차 성장해나가며 조종할 수 있는 ‘양’과 ‘방식’이 늘어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무려 10년간, 이현욱의 능력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능력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천 번씩 금속을 움직이는 연습을 했고 심지어 강철로 만들어진 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렇게 온갖 방법을 수도 없이 시도했다.
하지만, 죄다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 설마······ 강철을 삼키는 게 해답이었을 줄이야.’
강철을 ‘먹어서’ 흡수한다. 그 기상천외한 방법을 깨달은 건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었다.
직후, 이현욱은 집요하게 강철을 집어삼켰다.
소화 시키는 시간도 있었기에 무한정 먹을 수는 없었다만,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강철을 삼켰고 조종할 수 있는 금속의 무게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증가했다.
그렇게 현재 4,145kg을 조종할 수 있게 된 그는 트럭을 장난감처럼 집어 던지고 건물을 뒤흔들어 허물어뜨리고 수천 개의 강철 무기를 움직여 폭풍처럼 휘몰아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강철대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잠재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참 앞서나간 이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현욱, 당신에게 조금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우리가 밟고 선 이 빌딩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마치 거대한 운석처럼 떨어뜨리지 않았을까? 하하하······ 당신으로선 꽤 아쉽겠는걸?”
나긋나긋하게 비꼬는 고든······.
‘그래, 아쉽다! 미치도록 아쉽다!’
적어도 3년만, 아니 2년만 일찍 깨달았다면 몇십 배에 달하는 강철을 먹고 소화하여 수백, 수천 톤에 달하는 강철을 움직였을 거다. 그렇다면 정말로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저기를 봐. 당신의 도시, 서울이 무너지고 있어.”
고든이 그의 머리를 움켜쥐고 어딘가로 돌렸다.
쿠-구-구-구-구-
육중한 굉음과 함께, 여의도의 빌딩들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피어오른 뿌연 먼지 폭풍이 파도처럼 밀려오며 시체로 가득 찬 한강, 그 붉은 물결 위를 뒤덮었다.
도시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괴성과 비명이 한 대 뒤엉키며 기괴한 합주곡으로 울려 퍼졌다. 그 지옥의 오케스트라가 현욱의 귓바퀴를 타고 기어 들어왔다.
머리가 아팠다.
쿵······.
무려 천만 명이 살아 숨 쉬던 대도시가,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아······.”
이현욱은 그저 작게 탄식을 내뱉을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현욱, 수고 많았어. 하지만 솔직히······.”
고든이 피식, 냉소를 지었다.
“······너무 형편없었어.”
고든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와 거대한 목각 망치를 들어 올렸다. 놈의 왼발이 현욱의 가슴팍을 짓밟았다. 벗어날 수 없었다.
이내 그의 머리 위로 망치가 낙하했다.
콰-직!
그게 끝이었다.
천재적인 능력을 지녔지만, 그걸 제대로 쓰지 못한, 그런 형편없는 인생이 막을 내렸다.
***
찰나의 시간 동안 이현욱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다음 순간, 저 멀리 어딘가에 빛이 보였다.
그는 그곳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헉!”
그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동시에 반사적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어?”
산산이 조각났어야 할 머리가······ 아주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분명 정확하게 맞았을 텐데?’
머리를 으스러뜨리는 강력한 일격, 이현욱은 그걸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데미지는 쉽게 회복될만한 게 아니었다. 아니, 회복이고 자시고 즉사했어야 마땅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설마 사후 세계에 떨어진 건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곳, 꽤 익숙한 장소였다.
눈을 비비고 다시 살피니 여기는······.
“미친······.”
그가 군 생활을 했던 곳, 생활관이었다.
“왜 하필······.”
만약 사후 세계에 떨어졌다면 지옥에 떨어진 게 분명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검은색 전투복 차림의 까까머리 일병이었다.
“이현욱 상병님, 일어나셨습니까? 마침 저녁 식사 집합입니다.”
이현욱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야······ 주, 준모? 너 박준모 맞아?”
“일병, 박준모! 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녀석은 군 생활 중 몬스터와 싸우다 전사했던 분대 후임이었다.
“어······ 예! 당연히 저 맞습니다!”
진짜로 사후 세계에 떨어져서 먼저 간 지인들이 반겨주기라도 하는 건가?
그런데 이 녀석, 그때의 어리바리한 모습 그대로였다.
뭐랄까, 마치······
과거로 돌아온 것처럼.
“······어?”
덜컹!
이현욱은 서둘러 관물대를 열고 안에 달린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
‘미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거울에 비춘 얼굴은 확실히 한층 젊었다. 이십 대 초반의 얼굴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이현욱 상병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괜찮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이현욱은 속이 안 좋아서 저녁을 못 먹겠다고 보고 한 뒤, 생활관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그 짧은 머리를 감싸 쥔 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후······. 침착하게 생각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든 지금 보이는 그대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과거로, 정확히는······ 8년 전, 22살 때로 돌아왔다.”
이내 그의 시야 한쪽에 ‘플레이어’만이 볼 수 있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300g
역시나 아직은 300g에 불과했다.
‘그리고 전생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 내용은 향후 6년간 바뀌지 않는다.’
그 6년간, 그의 삶은 기구하기만 했다. 지금으로부터 7개월 뒤 병장 만기 전역한다. 그리고 F급 플레이어라는 낙인을 단 채 ‘헌터 길드’의 계약직 잡부로 취직하게 된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였다만, 그 실상은 유명한 영웅들을 뒷바라지만 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똑같이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그 누구도 관심과 응원을 주지 않는 엑스트라······.
‘그래도 능력 성장 방법을 깨달은 뒤부터 영웅들과 나란히 설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이제 그 모든 걸 바꿀 방법을 알고 있잖아?”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는 관물대를 열고 작은 클립을 하나 꺼냈다.
‘금속을 먹고, 금속을 흡수하여, 금속을 조종한다.’
단순하지만 상식을 벗어난 기상천외한 방법이다.
클립을 입에 넣었다.
혀와 이빨에 그것이 닿자 쇠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과거의 몸뚱이는 아직 이 낯선 감각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이 비정상적인 행위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래에서 온 이성이 그 기행을 억지로 밀어붙였다.
꿀꺽-
그러자······.
- 축하합니다! 능력 성장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 금속 흡수까지 (00:09:59) 남았습니다.
그의 눈앞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그 시간이 전부 사라지자······.
-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301g
변했다.
무게가.
고작 1g이었다만, 다룰 수 있는 금속의 무게가 증가했다.
처음 이 메시지를 봤을 때가 떠올랐다. 한평생 동안 그를 옭아매고 있던 그 지독한 퍼즐이 이리도 간단하게 풀리는 것이었다니······ 허망하면서도 감격스러웠었다.
“후······.”
그는 숨을 참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웅-
손끝에 전해지는 이질적인 감각······ 간질거림, 저릿함, 차가움, 뜨거움, 이 오묘한 느낌들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대상’과 연결되었음을 뜻했다.
그가 눈을 뜨자,
그의 손바닥 위,
클립 수십 개가 떠올라 회전하고 있었다.
“그래, 이번 생에는······.”
그가 왼손을 앞으로 뻗자 허공을 날아다니던 클립들이 손바닥 위로 가지런히 모였다.
“······진짜 천재가 되어주마.”
본디 잠들어 있어야만 했던 천재성이 다소 이르게 눈을 떴다.
그리고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