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3화 (3/221)

3. F급 플레이어의 회귀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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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 계단을 오르며, 박준모는 식은땀이 흘렀다.

“저, 이현욱 상병님······.”

“응?”

“오늘 당직 부관, 곽진철 상병입니다.”

“어, 알아. 아침에 봤어.”

박준모가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낸 건, 부디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곽진철 상병은 이현욱 상병을 극히 싫어한다.

그건 전입해 온 지 3개월밖에 안 된 분대 막내, 박준모도 익히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곽진철 상병이 이현욱 상병한테 무참히 깨졌다지. 이등병 때지만.’

결투 훈련에서 최하 등급인 F급에게 진다는 건 굉장히 쪽팔린 일이었다.

어쨌든, 그 일이 벌어진 뒤 당시 2분대장이 2분대 막내였던 곽진철을 꽤 갈궜던 모양이었다. 곽진철에겐 다시 없을 수모였고 그날 새벽, 그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물론 이건 무려 1년 전 일이었으며, 그 이후 판도가 달라졌다.

점차 성장해나간 곽진철은 D급으로 한 계단 승급했다. 그리고 중대 내 최고의 ‘딜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 뒤로, 명예 회복을 위해 다시금 이현욱에게 결투 훈련을 요구했는데······.

‘이현욱 상병이 전부 거절해서, 더 증오하게 되었다고······.’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곽진철은 자신이 일구어낸 중대 내 입지를 바탕으로 하여 이현욱을 은근슬쩍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부족한 이현욱으로선 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현욱 상병님도 참다 참다 폭발하시는 게 아닐까?’

박준모는 복도를 걸어 나가는 이현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런 걱정을 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아무런 입지가 없는 이현욱 상병으로선······ 역시나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마 더 큰 수모를 당하고 말 거다.

꿈틀거리다가, 더 세게 짓밟히고 말 거다.

하지만 그런 박준모의 걱정과 달리, 이현욱은 아주 평온한 상태였다.

‘아침에 삼킨 금속을 소화하려면 아직 더 운동해야 하는데, 귀찮게 됐군.’

이현욱은 이깟 애들 수준의 부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겪어 왔다. 이런 잡스러운 충돌로 사사로이 열 받을 만큼, 내면이 유약하지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방해 요소가 될 테니까, 이참에 끊어내야겠어.’

부조리는 자유를 구속한다.

그리고 구속된 자유는 시간을 원활하게 쓸 수 없게 만든다.

즉, 성장에 방해가 된다.

그건 묵과할 수 없다.

‘내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다들 의아하겠지만, 뭐, 상관없다.’

회귀 이후, 어딘가 달라진 것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사방에서 그런 소리가 들릴 정도라면 확연하게 티가 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현욱은 자신이 180도 달라졌다는 걸 구태여 숨길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꽤 생겼지만, 허투루 쓰면 안 돼.’

앞으로 그가 상대해야 할 적은 전 세계를 잠식한 악의 축이다. 고작 중대 내의 완력 다툼 속에서 인과관계나 질서를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차라리 부대를 빠르게 장악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병사가 부대를 장악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기는 A·M·T이다. 언제나 전투가 벌어지며 그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 게 바로 ‘입지’가 된다.

이제는 강력한 한 명의 병사가 최첨단 전투 병기보다 가치 있는 시대이다.

가령, 수백 대의 전차보다 단 한 명의 A급 ‘탱커’ 플레이어가 훨씬 큰 전력으로 평가된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일어날 크고 작은 전투에서 최고의 공을 세운다면, 남아 있는 ‘플레이어 의무 임무 기간’ 중에도 꽤 다양한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었다.

능력, 아이템, 동료, 돈, 세력 등······.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빌런. 능력만 키운다고 해서, 이겨낼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다.’

절대, 최악의 미래를 바꿀 수 없다.

***

한편, 나머지 5분대원들은 중앙 복도에 집합해 있었다.

딸깍- 딸깍- 딸깍-

불편한 심기를 가득 담긴 주기적인 볼펜 버튼 소리, 그 소리를 내는 건 곽진철이었다.

그는 당직 부관 완장을 찬 채 한 손에 볼펜을 들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

“흠······.”

그는 짜증 어린 숨을 내뱉으며 손목시계를 슬쩍 보았다.

꿀꺽-

그 행위에, 5분대원 몇 명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콧속에서 이미 두 줄기의 스팀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좋지 않은 징조였다.

“내가 너희를······ 이렇게까지 기다려줘야 하냐?”

“······.”

긴장이 가득한 침묵 속에서 곽진철의 이빨이 용광로의 강철처럼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응? 왜 대답이 없어? 너희도 날 무시하냐?”

“아닙니다!”

“지원 분대, 너네······ 김 병장 후송 가고 나서부터 정신 못 차리지?”

“죄송합니다!”

김호종 병장, 현재 군 병원에 입원해 있는 5분대장이었다. 워낙 고분고분하게 잡일을 도맡았던 사람으로서, 악습의 주체들이 참으로 좋아했던 인물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농담 삼아 말하길, 김호종은 양치기 관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양 떼의 우두머리’라고 했다.

양치기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지 않더라도 알아서 원하는 방향으로 무리를 이끌고 가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현욱, 그 대타 새끼가 세상 물정 모르고 나대기 시작해?’

자칭 차기 양치기 후보 곽진철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곽진철이 혀를 끌끌 찼다.

“저기 봐라, 길 잃었던 멍청한 양 두 마리가 이제야 기어오고 있네.”

이현욱과 박준모였다.

그 순간, 곽진철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야! 안 뛰냐!”

과함과 함께, 곽진철의 입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응? 뭐야? 저 새끼들이 진짜 돌았나······.”

두 사람은 뛰지 않았다.

박준모는 곽진철에 고함에 화들짝 놀라며 뛰려고 했지만, 이현욱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곽진철이 보기에는 정말이지, 기가 막히는 장면이었다.

“······.”

박준모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이현욱은 느긋하게, 그 둘은 천천히 걸어왔다.

이내 이현욱과 곽진철, 두 동기가 마주 보았다.

“우리 분대, 왜 불렀어?”

이현욱의 짧은 물음에 곽진철이 콧방귀를 뀌었다. 역시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왜? 왜? 작업이지 뭐겠냐? 이현욱, 그 짬에 그것도 몰······.”

“아니.”

이현욱이 한 걸음 다가서며 말을 끊었다.

“나는 왜 우리냐고 물어본 거다. 오전에도 우리가 본청 뒤쪽 배수로 작업 했잖아. 근데 우리가 또 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뭐?”

“딴 애들 시켜. 이거 부조리다.”

이현욱의 말에 곽진철은 순간 말을 잃었다.

‘역시나, 강하게 나가면 당황한다.’

이현욱의 예상대로였다. 곽진철은 입을 열었다가 재차 닫았다.

아무리 부조리가 팽만한 조직이라고 해도 당하는 자가 직접 입 벌려 정당함을 요구한다면, 가해자는 일순간 당황하기 마련이다.

멍청이가 아닌 이상 열에 아홉은 그렇다.

부조리라는 게 웬만해선 가해자도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항하지 않는 사람을 주로 건드리며 ‘침묵’ 속에서 괴롭힘을 이어나간다.

‘전생의 나를 비롯한 모두가 한 번도 이렇게 강하게 나가지 않았었지.’

쉽게 말해서, 곽진철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이게 부조리라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지? 곽진철.”

이현욱이 재차 물었다.

“······.”

곽진철은 벌써 뭔가 말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야, 이현욱. 하루 이틀이냐? 이 새끼 이거 아,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

그래, 대개 이런 식이다.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자신의 잘못이 까발려졌을 때, 원래 다 그런 거라는 식으로 합리화하려고 한다.

그 지점에서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더 문제지. 그래서 부조리고. 우리 분대도 전투력을 유지할 휴식 시간과 전투력 증진할 훈련 시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공평하게. 그러니까 작업도 공평하게 나눠.”

“훈련? 하하! F급이 훈련을 한다고? 야, 지나가던 고블린이 웃겠다. 네가 훈련을 하겠다고?”

이 역시도 너무 뻔한 레퍼토리였다. F급을 들먹이며 인신공격을 하는 것, 이미 전생에 수도 없이 당해봤다. 데미지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래, 지금부터 우리 분대는 훈련할 거니까 작업은 다른 애들로 구해. 참고로 이건 보장된 훈련 시간이다. A·M·T 병영 생활 규정에 명기된 사항이니까 불만 있으면 나한테 말고 더 위쪽에 가서 따지던가 해라.”

“뭐, 이 미친 새끼가······.”

너무 맞는 말로 반박하니 말로는 이길 수 없었다. 참다못한 곽진철이 눈이 부라리며 머리를 디밀었다.

하지만 이현욱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곽진철과 기 싸움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냉정함이 담겨 있었고 곽진철은 저도 모르게 눈을 피하며······ 애꿎은 박준모를 노려보았다.

“······허! 이 새끼 봐라? 갑자기 입이 터졌네? 사람들이 요즘 이현욱 그 새끼 좀 이상하다, 뭔가 바뀐 것 같다, 하더니만 진짜로 바뀌었어. 아주 그냥······ 도, 돌아버렸네? 응?”

당황과 흥분, 곽진철의 목덜미가 부풀어 오르며 목구멍 안에서 주황색 열기가 부글부글 끓었다.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기세였다.

“이, 이현욱 상병님. 이제, 그만 좀······.”

그러자 분대원들은 이현욱을 말리기 시작했다.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화를 입을 쪽은 보나 마나 이현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현욱은 눈 하나 꿈쩍 안 했다. 오히려 그렇게 흥분한 곽진철의 모습이 우습다는 듯,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야,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그냥 딴 애들 불러. 우린 들어간다. 가자 얘들······”

“야! 지금 당직 부관 명령을! 거역······ 아니, 반항해?”

당직 부관의 명령이라······ 곽진철도 나름 논리적으로 반박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똑똑하지는 못했고, 헛수를 두고 말았다.

“그래? 그럼 당직 사관님 계시냐?”

“······뭐?”

“당직 부관은 당직 사관 대리자인 거 몰라? 계시면, 당직 사관님 명령이겠지. 그럼 내가 한 번 가서 직접 여쭤보게. 우리 분대한테 명령하신 건지.”

곽진철은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갑자기 어디서 규정 같은 걸 공부를 하고 온 건가? 뭐야 대체······ 어디서 주워듣고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로 열 받게 하는 거지?’

단순히 악다구니를 내뱉으면서 하는 기 싸움, 그런 거라면 곽진철은 자신 있었다. 그의 성격상 한평생 그런 무식한 식의 기 싸움을 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논리와 근거를 대고 덤벼드니 말문이 턱 막히고 그러다 보니 당황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괜스레 기가 죽기 시작했다.

“······.”

곽진철은 당직 사관이 있는 곳, 행정반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 당직 사관은······ 젠장, 하필이면 서은하 중위인데!’

이런 문제에 시큰둥한 간부, 특히나 병사 출신의 부사관이었다면 곽진철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었다. 곽진철의 머릿속에도 그런 간부 몇 명이 스쳐 지나갔다.

‘내일 근무 예정인 강성춘 상사라든지······.’

하지만 서은하는 아니었다.

그녀는 ‘성기사’라는 특성을 가진 B등급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그 특성을 닮았는지 가치관마저도 아주 지고지순한 인물이었으며, 심지어 <육군 신성 기사단>의 사령관, 서백진 장군의 둘째 딸이기도 했다.

즉, 중위라는 계급 이상으로 엄청난 입김을 가졌다.

‘망할······.’

그런 여자가 이 상황을 알게 되면······ 골치 아파지는 걸 넘어서 곽진철의 신상에 아주 큰 문제가 생기고 말 것이었다. 그녀는 부조리를 용납할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 새끼 설마, 그것도 알고 이 수작 부리는 건가? 설마 전부 계획하고 날 엿 먹이려는······.’

당황하니까 온갖 피해의식이 다 들기 시작했다.

“야, 곽진철. 왜 말이 없어?”

“······.”

“할 말 없어? 그럼 내가 직접 당직 사관님께 말씀드려야겠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고 곽진철을 지나쳤다.

“야! 야! 야! 거기 안 서냐?”

그때였다.

“······당직 부관.”

행정반에서 누군가 나왔다.

키 큰 여자였다.

그녀는 A·M·T의 검은 군복을 입고 검은색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화장기가 전혀 없음에도 새하얀 피부, 또렷한 이목구비.

그래서 한 번쯤 눈길이 가지만 그녀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치면 절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거기. 무슨 일 있어?”

당직 사관, 서은하 중위가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닙니다!”

곽진철이 부정했지만, 서은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음, 나 지금 잠깐 본청 올라갈 일 생겼거든.”

“아! 그렇습니까?”

“행정반 좀 잘 부탁해. 그런데 유류고 작업 그렇게 많이 필요 없어. 그쪽에서 3명만 보내달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오전에 작업했던 인원들도 보이는데······ 음, 설마 이등병들만 굴리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합리적으로 잘 처리하겠습니다.”

서은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고, 곽진철은 그녀를 향해 거수경례를 해 보였다.

이렇게, 서은하의 등장과 몇 마디만으로도 곽진철의 심경은 훨씬 복잡해졌다. 그는 서은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 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현욱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합리적으로 처리한다고 네가 직접 말했으니까, 우리는 걱정하지 않고 들어간다.”

“······.”

“얘들아, 뭐해? 들어가자.”

이현욱이 몸을 돌렸고, 곽진철은 더는 붙잡지 못했다.

중앙 복도에 서 있던 5분대원들은 눈치를 보다가, 어쩔 수 없이 이현욱이 뒤를 어기적어기적 따라 들어갔다.

박준모는 식은땀에 절은 채,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제일 마지막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곽진철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저······ 개새끼가······.”

악에 받친 음성이었다.

박준모는 이보다 앞으로 더 큰 일이 벌어질 것이란 걸, 직감했다.

***

“이현욱 상병님, 요즘 대체 왜······ 아니, 방금은 무슨 생각으로 그러신 겁니까?”

이현욱의 맞후임, 안민철이 물었다.

이처럼 가장 당황한 건 당연하게도 5분대원들이었다. 부조리를 온몸으로 막아준 게 고맙다기보다 차라리 부담스러웠다.

앞으로의 곽진철 저 인간이 어떻게 보복해올지 벌써 눈앞에 깜깜했다. 곽진철은 중대 실세인 병장들과도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지 않은가?

“민철아.”

“······예.”

“걱정하지 마. 다 괜찮을 거다.”

“······이현욱 상병님 말을 못 믿겠다면, 기분 나쁘십니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지. 그냥 기다려 봐. 모든 게 정상이 될 거야.”

그가 그렇게 장담했지만, 그날, 5분대의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했다.

하지만 정작 이현욱은 눈치가 없는 건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훈련과 운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

그날 밤이었다.

박준모는 야외 건조장에 빨래를 걷으러 갔다가 바로 옆, 흡연장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었다. 우연이었다.

“······시발! 이현욱 그 새끼, 뭘 잘못 처먹은 게 분명합니다.”

곽진철의 목소리였다.

그는 역시나 오늘 오전 그 사건 이후로 여전히 열을 내고 있었다.

화르르!

순간, 짙은 불빛이 건조장 안까지 번져 들어왔다.

“어! 야! 담배 다 태운다, 인마!”

“아무리 열 뻗쳐도 영내에서 능력 조심해라! 혹시나 대대장이 보면 난리 난다.”

“······후, 알겠습니다.”

곽진철과 대화 중인 이들은 2분대장 오상국 병장, 3분대장 김강준 병장인 듯했다. 그들은 이 중대의 실세라고 불릴만한 이들이었다.

“후······ 아무튼, 그 새끼가 진짜로 그랬다는 거지?”

“진짜입니다. 이거 그냥 넘어가야 합니까?”

“안 되지. 어디서 F급 새끼가 감히 우리 에이스한테 대들어?”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2분대장인 오상국이었다.

그는 맞후임인 곽진철을 어여삐 여기며 차기 분대장으로 낙점해두기도 했으니, 이번 일을 잠자코 넘어갈 리가 없었다.

“진짜 그 새끼 면상, 녹여버릴 뻔했습니다.”

“진철아, 이런 일은 네가 직접 부딪쳐서 처리하는 게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짜 너무 열 받습니다. 밤에 잠도 안 올 것 같습니다.”

이에 오상국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은 다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새끼가 갑자기 자존심이 생겼다면 뭐, 그 자존심을 짓밟아줘야지. 잘 됐다. 이런 일 있으면 눈 뒤집고 난리 칠 최영준 그 자식도 지금 병가 나가서 없잖아? 으흐흐!”

“아, 하긴 이럴 때 최영준 병장님 계셨으면 더 골치 아팠겠습니다.”

“그렇지. 그 선비 새끼가 있었으면, 어휴······.”

마치 악당들이 음모를 꾸미는 것만 같았다.

박준모는 빨래를 천천히 걷으면서, 새어 나오는 숨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이현욱, 걔 요즘 꼴에 훈련장 드나든다며?”

“맞습니다. F급 주제에 훈련은 지랄.”

“음, 그렇다면 훈련 열심히 하는 일병 애들, 그, 원석이랑 걔 동기 애들 있잖아?”

“아, 바바리안 말씀입니까? 그 자식 벌써 C급으로 올라가느니 마느니 말 나오던데.”

바바리안(Barbarian), 근접 전투 계열 중에서는 꽤 상위 특성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이원석 일병은 일병 3호봉이었는데, 벌써 중대 에이스로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심지어 소문에 의하면 조만간 부사관으로 임관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선임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간부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 걔 진짜 존나 세더라. 지난 작전 때 맨손으로 고블린 찢는 거 봤냐?”

“예······ 그건 진짜 미쳤었습니다. 아무리 힘이 세도 누가 맨손으로 찢을 생각을 합니까? 그 새끼, 또라이 기질도 있습니다.”

지난 작전, 이원석 일병은 그런 기행을 펼치며 꽤 유명해졌다.

살육을 즐기는 미친놈으로.

“어쨌든 걔들 보내서 꼽 좀 주면서 결투 훈련하게 만든 다음에 패버리면, 그 알량한 자존심 알아서 거두겠지. 안 하겠다고 하면 또 그걸로 쫄보 만들어 버리면 되고.”

“오, 그거 진짜 좋은 방법 같습니다.”

“그래, 진철아. 문제는 이렇게 처리하는 거다. 침착하게. 원석이한텐 내가 말해둔다.”

“감사합니다. 오 병장님 덕분에 군 생활 잘 버티는 겁니다, 진짜.”

박준모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거기까지만 듣고 건조장에서 나왔다.

“아······ 어, 어떡하지······.”

이현욱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박준모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스스로 지킬 힘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

오후 10시.

“취침 소등하겠습니다.”

불이 꺼지자, 이현욱은 베개 뒤에 넣어두었던 자물쇠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아주 과감하게, 그걸 입에 넣었다.

꿀꺽-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마치 지폐를 빨아들이는 자판기처럼 그 묵직한 자물쇠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금속 흡수 능력인 만큼, 먹고자 하는 의지가 동반되면 이렇게 쉽게 삼킬 수 있었다.

물론 입에 넣을 수 없는 크기의 금속은 불가능했다.

- 금속 흡수까지 (03:59:59) 남았습니다.

‘딱 야간 경계 근무 출발할 무렵이면, 한 60g 정도가 더 늘어 있겠군.’

자는 시간에도 능력을 올릴 수 있다는 건 솔직히 너무 편리했다.

그는 잠들기 전에 현재 능력 현황을 확인했다.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1,297g

이 정도면 이제 단검 4개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새벽에 벌어질 그 사건에 대응할 수 있겠어.’

오늘 야간 근무 간, 작은 소동이 하나 벌어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소동을 잘 이용하기만 한다면······.

‘아주 큰 이득이, 그것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작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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