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88화 (188/202)

#188

마리포사

밤에 이동하고, 낮에도 도보로 이동하다가 쉰다.

디에고가 무리하는 대신 그만큼 이동 속도는 말을 타고 달리는 속도의 몇 배에 달한다.

그렇게 사흘을 날아왔다.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닉과 퓨리를 공터에 내린 후에 일행은 한자리에 모였다.

“어떻게 된 거야?”

덱스가 투덜거리며 묻자 노리스는 굳은 표정으로 나침반을 살펴보다가 답했다.

“거리가 오히려 멀어지고 있소.”

“그게 뭔 소리냐고!”

소리를 지르는 덱스를 말리며 에드가 입을 열었다.

“놈도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죠. 우리를 피해서 도망가는 겁니까? 아니면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겁니까?”

노리스는 잠시 나침반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침반의 바늘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히 도망이라면 방향이 일정할 텐데 그러지 않고 있소. 혹시 지도에는 이상이 없소?”

에드는 그 물음에 지도를 꺼내 펼쳤다. 지도에 나침반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대악마의 행적을 따라가 보았다.

“허.”

어떤 대악마가 나침반에 기록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사흘간 움직인 궤적을 따라 성기사들의 표시가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 성기사들을 잡아 죽이고 있는 겁니까?”

“그래 보이오.”

노리스의 대답을 듣고 일행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행이 지금까지 이동하면서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은 놈이 낮에도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침반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놈은 또 다른 곳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궤적을 따라가면 또 다른 성기사가 나왔다. 지금까지는 성기사들이 하나둘 정도가 모여서 움직였다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성기사들이 한 점으로 모이고 있었고, 그곳으로 놈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늦어도 오늘 저녁에는 대악마가 그들을 습격할 터였다.

에드는 지도를 살피다가 말했다.

“멀지 않은 곳에 도시가 있어요. 그곳에 있는 신전을 통해서 알려야 합니다.”

밤을 새워서 날아왔다고 하지만 일행은 몇 날 며칠을 잠을 자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움직여야 했다.

덱스가 디에고를 등에 업고 일행이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일행은 말을 타고 달리는 것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었고, 지도에 그려진 길을 따라 달릴 필요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도시를 향해서 직선으로 가로지를 수 있었다.

그렇게 달린 일행이 가까운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높이 떠올랐지만,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에드는 그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악마가 덮친 것 같은데요?”

어떤 악마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모습은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악마가 아니라 나침반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 하나를 해치우는 데는 상급 악마로도 충분하다.

도시의 신전이 아직 무사하다면 최대한 서둘러서 도시를 되찾아야 한다.

“가죠.”

에드는 심안으로 도시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도시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도 감각을 교란하는 종류의 것인가 보네요.”

에드처럼 심안을 다룰 수 있는 노리스도 안쪽을 확인하지 못했다.

“가죠.”

에드가 먼저 비도를 던져 성벽에 발을 디딜 곳을 마련했다. 에드가 먼저 비도를 밟고 올라가자 그의 뒤를 따라서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하나둘 올라왔다.

성벽에 올라서 도시를 바라보았지만, 역시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드는 가까운 집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행 모두 근처의 집을 확인하고 한 자리에 다시 모였다. 집안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신전으로 가보죠.”

에드의 말에 아린이 앞장섰다. 어떤 도시든 신전이 있는 위치는 정해져 있으니 그녀가 앞장섰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들이 걷는 동안 안개는 그들의 주위에서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고를 반복했다.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면 반응하겠지만, 어떤 낌새도 없었기에 일행은 신전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만한 도시라면 적어도 사는 이들이 2천 명은 될 터. 그만한 인원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신전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이미 아스트론 교단에서 이 일에 대해서 듣고 성기사들을 파견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성기사들이 부족하다. 연락이 닿았다고 해도 제때에 오지 못했을 터.

신전에 도착한 아린이 문을 천천히 밀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간 아린은 그 안에서도 아무런 기척이 없는 것을 보고 인상을 굳혔다. 그러나 누군가 싸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감쪽같이 사라진 사람들.

에드는 이 미스테리한 상황에 인상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섣불리 움직이면 위험하니 일단은 이곳에서 쉬도록 하죠.”

에드의 말에 다들 신전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드는 아론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신전에서 총본회로 연락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나요?”

“알고 있습니다.”

아론은 주임 사제로 지냈었고, 지금은 주교로 승급했으니 그런 부분을 알고 있을 거라 여겼다.

아론을 따라서 이동한 곳은 신전의 주교가 머무는 서재였다. 아론은 그곳으로 들어가 서재의 벽에 걸린 칠판 앞에 섰다. 그리고 왼쪽 손을 대고 낮게 주문을 외우자 곧 칠판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론은 칠판이 빛을 발하고 나자 옆에 놓인 펜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신성력이 나타나자 펜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론이 성기사들이 모이는 곳으로 대악마로 추정되는 존재가 이동 중이라는 것을 칠판에 적고 나서는 천천히 손을 뗐다.

“연락은 했습니다.”

대악마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으리라. 위험하면 몸을 빼내는 것도 가능할 테고.

에드는 아론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연락은 없었던 겁니까?”

도시 르비아노.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천 명은 살만한 도시가 사람 하나 없어지도록 연락이 안 갔을 리는 없다고 여겼다. 아론이 다시 칠판 앞에 서서 칠판에 글을 적었다.

이 도시에서 온 연락이 없는지. 지금 이 도시에 아무도 없음을 알리고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상하군요.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에드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곳에서 보낸 연락이 총본회에 닿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이 짓을 벌인 놈이 어떤 놈인지 몰라도 이만큼의 사람을 사라지게 했다면 보통 놈은 아닐 테니까요.”

만만한 놈은 아니다.

“우선 내려가서 합류하죠.”

신전에 모여 있던 일행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 에드는 그곳에 있어야 할 일행이 없는 것에 솔직히 놀랐다. 지금 이 일행은 대악마도 때려잡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사라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에드가 아론을 돌아보자 그도 당황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다가 소리쳤다.

“아린!”

그의 외침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무도 남겨두지 않고 이동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론.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일행에게 아론을 데려다주고 이곳을 조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전에 일행이 사라졌다.

함께 있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일행에게서 떨어질 때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았다. 무엇이든 곤란한 상황이다.

에드는 혹시 몰라 신전을 뒤져 끈을 찾아 아론과 자신을 묶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으리라.

“잘 따라와요.”

에드는 굳이 속도를 높이지 않고 신전을 샅샅이 뒤졌다. 역시나 일행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에드는 심안을 확인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것에 처음으로 당황했다. 일행도 자신과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론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에드가 돌아보니 아론의 눈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뭐가 보여요?”

아론은 적어도 ‘보는’ 것만이라면 누구보다 뛰어나다. 아론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고, 에드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따라가던 에드는 앞장서 걷던 아론이 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았다.

신전을 나와 그 앞 공터에 선 아론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오시죠. 그렇게 숨어 있다고 뭔가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

[내가 보여?]

불쑥 들려오는 물음에 에드는 반사적으로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그 화살이 잡혔다.

에드는 자신의 화살을 잡은 존재를 인지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존재가 다시 보이게 된 것을 보면 아마도 그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위험한 아이네?]

“일행을 어떻게 했지?”

[낙원으로 보내줬지.]

활짝 웃고 있는 것은 마치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표정이었지만, 그 존재가 가진 격은 예사롭지 않았다. 에드가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걸며 말했다.

“모두 돌려보내 줘. 그러지 않으면 쏜다.”

에드의 말을 들은 존재는 꺄르르 웃더니 말했다.

[나랑 놀아주겠다고?]

파르르 떨리는 것은 나비의 날개로 보였다. 아니, 나방인가?

이 안개도 모두 환각인 걸까?

에드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숨기지 않고 상대를 향해 화살을 겨눴다.

그런 에드를 바라보던 존재. 마치 요정과 같은 존재는 허공에서 우뚝 멈춰 서서 옆구리에 손을 올린 채 에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검지로 에드의 코를 콕 찍으며 말했다.

[그런데 넌 뭐하는 애야?]

분명 에드의 간격 밖에 있던 요정은 에드의 코앞으로 공간 이동해와서 말했다. 이런 움직임이라면 에드도 손을 쓰기 까다로운 존재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환각이 아닌가 싶었다. 에드의 심안조차 속일 수 있는 존재.

그제야 아스트론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대의 존재들이 깨어날 거라고 했던 말.

전투력 자체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지만, 감각을 이 정도로 교란하는 존재라면 그 자체로 굉장한 능력을 지닌 존재다.

에드는 천천히 활을 내리고는 눈앞에 떠 있는 요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난 에드. 악마 사냥꾼이다. 내 일행은 그 낙원이라는 곳에 원해서 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시 돌려보내 줘.”

요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낙원이 싫다면 돌려 보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야. 그보다 너에 대해서 말해줘. 대체 너 같은 존재가 어떻게 가능한 거지?]

대체 어디까지 읽고 그리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에드는 이 요정을 제압할 방법을 생각했다.

칠채비도를 모조리 꺼내면 해볼 만 할 것 같았지만, 죽여버리면 낙원이라는 곳으로 간 일행을 찾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에드는 아스트론의 말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고대의 존재들이 튀어나올 때 그들이 적이 될지 아군이 될지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될 일이다.

에드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해?”

[그래. 너 같은 존재는 있을 수 없거든.]

“그럼 내가 누군지 알려줄 테니 일단 일행부터 돌려줘.”

요정은 그 말에 날개를 펄럭였다. 마치 바람이 부는 것처럼 안개가 밀려나더니 그곳을 통해서 일행들이 튀어나왔다. 그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에드는 아린을 보고는 물었다.

“괜찮아요?”

“예. 갑자기 신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어요.”

아린이나 그곳에 있는 이들 누구 하나 만만한 자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만든 것을 보면 이 요정의 능력은 공간과 감각 교란에 특화된 것 같은데 그쪽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이건 가히 신의 권능에 비견되는 능력이 아닌가?

에드는 일행들이 돌아왔기에 활을 거두고는 요정에게 물었다.

“그보다 넌 누구지?”

[나? 요정왕 마리포사. 지옥으로 변할 이곳에서 너희를 낙원으로 안내해줄 안내자지.]

대혼란이 일어날 대륙을 지옥으로 평가하고 자신이 아는 낙원으로 보내준다는 걸까?

일행이 저항도 못 하고 넘어간 것을 보면 그쪽에 관한 권능에 한해서는 대악마도 울고 갈 정도의 존재다.

“우리는 그 지옥을 막을 이들이다.”

마리포사는 가만히 에드를 바라보다가 주위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에드에게 시선을 멈췄다.

[예정된 지옥을 막고자 한 의지가 널 만든 건가? 너라는 변수가 있으니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는 하네.]

마리포사는 그리 말하더니 날아와 에드의 머리 위에 앉았다. 에드가 시선을 위로 올리자 마리포사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정말로 지옥을 막을 수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보인다면 나도 도와줄게. 사실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으니까. 모두를 살릴 수는 없거든.]

이만큼 감각을 교란할 수 있는 존재가 도와준다면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마리포사. 그렇다면 이 안개부터 없애 줄래? 이것 때문에 중요한 연락이 아스트론의 총본회로 가지 않은 것 같은데.”

마리포사가 양손 검지로 관자놀이를 짚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답했다.

[막았던 연락은 보냈어. 그런데 그 연락 보내도 이번 일은 못 막아.]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마리포사. 다시 한번 안개를 펼쳐줘봐.”

마리포사가 다시 주위로 안개를 퍼트렸다. 에드는 디에고를 돌아보며 물었다.

“닉과 퓨리 소환이 가능해?”

이 안개 속으로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물으니 디에고가 닉과 퓨리를 소환했다.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닉과 퓨리를 보고 에드가 손을 내밀어 디에고의 어깨에 얹었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디에고가 씨익 웃더니 말했다.

“이 정도는 가능해요. 얼른 타요. 서둘러야죠.”

일행 모두가 닉과 퓨리에 오르자 닉과 퓨리가 하늘로 솟구쳤고, 일행의 주위로는 안개가 둘려 있었다. 일행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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