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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86화 (186/202)

#186

새 생명

대악마 수르판은 열린 지옥의 문을 통해서 빨려 나갔고, 다른 마물과 악마들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마물들을 향해서 공격이 쏟아졌다.

아린이 던진 해머가 폭발하며 마물들이 휩쓸려 나갔고, 덱스가 파고들어 튀어나오는 악마들을 도륙했다.

론멜도 주위를 시커멓게 물들이며 마물과 악마들을 떼로 죽이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디에고가 소환한 닉과 퓨리까지 가세하니 삽시간에 마물과 악마들이 줄어나간다.

마물과 악마들이 튀어나오는 속도보다 줄어나가는 속도가 더 빠를 지경이다.

그들의 압도적인 무력을 보며 에드는 화살을 날리지 않았다. 저들의 틈바구니에서 화살을 날려서 악마들을 잡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테지만, 마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대악마를 추방하고 지옥의 문을 닫겠다는 헬레나의 계획 자체는 좋았다. 그대로만 된다면.

하지만 항상 문제는 이런 곳에서 터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악마 수르판.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대악마는 대악마다. 그런 자가 이리 쉽게 추방당하고 끝날 리가 없었다.

에드는 검은 수면처럼 변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마물과 악마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요! 곧 문을 닫을게요!”

헬레나는 아린 일행의 압도적인 무력에 다행이다 여기면서 글렌시아의 배 속 태아에서 수르판이 거의 밀려난 것을 확인했다.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술식이 성공하리라.

그때 수르판의 목소리가 헬레나와 메르헨에게 들렸다.

[크흐흐. 하하하하. 이렇게 지옥의 문이 열린다면 굳이 그 아이의 몸을 택할 필요는 없다.]

콰직.

바닥이 부서지고 지옥의 문을 막던 막이 찢어진다. 그리고 튀어나온 것은 단 한 마리의 대악마. 흉측할 정도로 뚱뚱한 존재. 그 거대한 육체는 그 자체로 무기가 되었다.

신장만 20미터가 넘어가는 거체.

수르판이 등장에 다른 악마들이 숨을 죽였다.

그렇게 등장한 수르판을 향해서 에드가 연달아 화살을 날렸다. 네프사엘을 잡으면서 강화된 활은 확실히 전보다 위력적이었다.

쇄폭시를 쓰지 않았음에도 수르판의 몸에 박힌 화살에서 신성력이 빛나면서 그 몸을 부수기 시작했다. 분명 치명적인 공격이었지만, 상대가 너무나 거대했다.

20미터가 넘는 거대한 육체라 그런지 신성력이 폭발해도 치명상은 입히지 못했다.

그러나 수르판도 고통에 힘겨워했다.

“크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수르판이 휘두르는 손바닥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노리스가 그곳에 있던 이들을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헬레나와 메르헨, 글렌시아까지 데리고 몸을 빼내는 노리스가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뻔했다.

헬레나와 메르헨도 지금은 추방 술식을 만드느라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저들은 일단 이탈하고 나머지가 전투에 임하는 것이 좋았다.

다행이라면 이미 대악마와의 전투도 경험이 있었기에 아린이 전위에서 수르판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대악마가 튀어나온 여파로 지옥의 문에는 꽤 큰 구멍이 뚫렸고, 그곳에서 악마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에드가 빠르게 소리쳤다.

“덱스! 론멜! 악마들을 맡아줘요!”

에드의 외침을 들은 덱스와 론멜이 빠르게 움직였다. 둘 다 이제는 상급 악마에 비견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상급 악마가 튀어나오지 않았기에 충분히 그 둘이서 악마들을 막을 수 있었다.

“디에고!”

“준비 중이에요!”

혼령박을 사용하기 위해 디에고가 크리스탈 해골을 꺼내 쥐었다.

수르판이 휘두르는 팔에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이 박살 났다. 그 질량 자체가 무기나 다름없었다.

바닥이 부서지고, 휩쓸린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다.

거기 휘말릴 만한 수준의 인물들은 없었다. 다들 거리를 두고 물러나서 수르판의 공격에 당하지 않았다. 그걸 알아서였을까?

수르판이 코웃음을 치며 바닥을 향해 발을 굴렀다.

에드는 거리를 보았기에 훌쩍 몸을 뒤로 빼며 화살을 날렸지만, 다른 이들은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수르판의 발끝에서 시작된 것은 마기의 촉수였다.

덱스와 론멜은 검으로 마기의 촉수를 잘라냈고, 디에고는 톰에 올라탄 채 솟구쳐서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칸은 카일과 리프를 지키다가 마기의 촉수에 묶였다. 칸이 해머로 내리쳐서 끊어내려 했지만, 마기의 촉수는 끊어지지 않은 채 줄어들었다.

칸이 주르륵 딸려가는 모습을 보고 에드가 화살을 날려 촉수를 잘라냈다. 신성력이 깃들어 있는 화살이라 칸을 끌어당기던 촉수가 잘려나갔다.

하지만 좁혀진 거리 탓에 수르판의 손이 날아들었다. 손바닥의 크기가 칸보다도 컸기에 그 손길을 칸은 배틀 해머를 휘둘러 막아야 했다.

쾅!

수르판의 커다란 손바닥에 맞은 칸이 피떡이 되어 날아가는 사이에 아린이 돌진했다. 수르판이 아린의 돌진에 뒤로 주춤 물러났다.

에드는 가장 멀리서 싸우고 있었기에 날아오는 칸이 전장 밖으로 이탈하기 전에 받아낼 수 있었다.

“커헉!”

피를 왈칵 토하는 칸을 바닥에 내려놓은 에드가 소리쳤다.

“아론!”

칸이 날아갔을 때부터 달려오던 아론이 칸의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바닥을 구른 칸에게 붙은 것은 아론이었다. 아론이 그의 상처에 손을 올리고 신성 회복 주문을 걸어줬다. 신성력 자체는 아린에게 많이 부족했지만, 전문적으로 신성 회복 주문을 익힌 그의 주문은 빠르게 칸을 회복시켰다.

칸은 자신을 치료해주는 아론의 손목을 잡고는 말했다.

“사제님. 나 통증 좀 막아주쇼.”

“회복 중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전투에 끼어서는 후유증이 심해질 겁니다.”

“괜찮으니까 얼른 일어나야겠소. 다른 친구들은 이렇게 못 버틸 테니까.”

아론은 한숨을 내쉬고는 칸의 통각을 잠깐 멈추게 했다. 통각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싸우게 되면 아무래도 멈춰야 할 때를 모르게 되기 때문에 이건 성전에서나 쓰는 주문이었다.

광전사로 만드는 주문.

칸이 주문을 받더니 그대로 튀어나갔다.

“으아아아!”

칸이 다시 전장에 끼어들었다.

아린의 공격에 뒤로 휘청거리며 밀리던 수르판을 향해서 칸이 도약했다. 높이 뛰어올라 배틀 해머를 내리치는 것을 보고 황급히 손을 들어 휘둘렀다.

퍼억!

수르판이 쳐낸 일격에 칸이 다시 튕겨 나갔다. 바닥을 구르는 칸이 다시 벌떡 일어나 달려드는 동안에도 수르판을 향해 달려든 이들의 공격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발목이 베이고, 옆구리가 갈라져 내장이 쏟아진다.

에드는 수르판을 몰아치다 보니 알 수 있었다.

네프사엘은 고사하고 라그록스보다도 약하다. 일행이 전에 비할 수 없이 강해진 것도 있었지만, 이렇게 약할 수 있나?

에드는 이정도 수준이라면 혼자서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아론이 소리쳤다.

“놈의 왼쪽 눈 뒤에 핵이 있어요!”

아론의 보는 능력은 대악마의 핵조차 읽을 수 있는 건가?

마침 그동안 준비했던 것이 끝났는지 디에고의 혼령박이 펼쳐졌다. 크리스탈 해골의 원혼을 이용해서 상대를 속박하는 사령술사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속박기.

저 거대한 수르판조차 움직이지 못할 만큼 꽁꽁 묶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만 끝을 볼 때가 됐다. 에드는 활의 시위를 한껏 당기며 말했다.

“아스트론. 당신께 영광을.”

그 한 마디에 활에는 세 가닥 빛의 화살이 맺혔다. 에드는 그렇게 맺힌 화살로 수르판을 겨눈 채 시위를 놓았다.

수르판이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 빛으로 만든 화살은 확실히 달랐다. 단숨에 그 팔뚝을 뚫고 들어가 수르판의 왼쪽 눈에 박혔다.

이기어시의 힘으로 그 눈을 그대로 뚫고 들어간 세 발의 빛의 화살이 쇄폭시에 의해 폭발했다.

번쩍.

그것은 한줄기 섬광이었다. 빛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수르판의 머리가 절반이 사라진 상태였다.

뒤로 넘어가는 수르판의 시체를 보며 에드는 밀려오는 경험치를 느꼈다.

이제는 레벨이 확실히 많이 올랐나 보다. 대악마를 잡았는데도 고작 1레벨밖에 못 오르는 것을 보면.

그때 헬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닫을게요.”

헬레나가 술식 대로 주문을 외는 순간 지옥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사실 정식으로 지옥의 문을 연 것은 아니었다.

지옥과 현세에 구멍을 하나 뚫어서 그곳을 통해서 수르판을 날려 보내려고 했던 것. 하지만 수르판은 그 구멍을 통해서 다시 튀어나왔었다.

덕분에 구멍이 커졌었지만, 수르판이 죽었기에 어렵지 않게 문을 닫을 수 있었다.

헬레나의 술식은 과연 뛰어나서 단숨에 검게 물들었던 지옥과의 틈이 좁혀졌다. 단숨에 작아진 공간이 완전히 닫혀서 사라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남은 것은 튀어나왔던 수많은 마물과 악마의 시체뿐이었다.

끔찍한 현장이었지만, 이제는 익숙했다.

에드는 새삼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칸과 카일, 리프도 나중에는 활약했지만, 대악마를 상대하기에는 확실히 아직 부족했다. 일행들이 대악마 수르판과 싸우는 동안 튀어나온 마물과 악마들과 싸우다가 여기저기 다친 곳이 있어서 아론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수르판에게 집중하는 동안 저들을 제대로 굴리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웠다.

에드가 그쪽을 보고 있을 때 글렌시아의 비명이 들렸다. 모두가 그쪽으로 몰려들었을 때 아린이 먼저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잠깐만요. 아이가 나오려나 봐요.”

여인들이 글렌시아에게 몰려들었고, 다크 엘프들도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모여드는 동안 에드는 심안으로 그들을 넘어 상태를 살폈다.

저 아이는 다크 엘프의 순혈을 이은 아이지만, 지금까지 수르판이 몸에 깃들어 있던 아이였다. 그렇다면 저 아이가 이상이 없기가 더 힘들다.

대악마가 깃들어 있었기에 설령 대악마가 빠져나갔다고 해도 저 아이가 온전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만약 저 아이가 악마로 태어난다면 그때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에드가 심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글렌시아가 아이를 낳았다.

악마들의 시체와 마물의 시체가 널브러진 곳에서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났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모두가 반가워할 때 에드도 심안으로 그 아이를 읽고 있었다.

그때 에드는 아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느꼈다. 심안으로 바라보는 중이었음에도 아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에드는 그 감각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대충 피를 닦은 채 글렌시아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가 있었다.

만약 악마의 기운을 품었다면 에드가 어떤 방법이라도 강구 했을 아이가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별빛을 품은 것처럼 반짝이는 눈을 한 채로 바라보는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가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다크 엘프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인간과 같은 기준으로 보면 안 된다고 여기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글렌시아가 아이를 내밀었다. 에드의 시선이 글렌시아를 향하자 그녀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안아주세요.”

에드는 그 말에 손을 내밀어 아이를 받아 보았다. 아이는 에드의 품에 안긴 채 손을 내밀어 에드의 얼굴을 만졌다. 에드는 자신의 거친 피부를 만지는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입도 못 열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였다.

심안을 감지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 그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였으니까.

에드는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들도 알고 있는 거다.

자신들이 싸우는 이유를. 이 세계에서 악마들과 싸우는 이유가 사실은 이렇게 새로이 태어날 새 생명을 위해서라는 것을.

에드도 단순히 경험치가 아니라 이 사냥의 목적이 이 세계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에드는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독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 같았다.

품에 안겨있는 아이의 눈에서, 저 하늘에서 함께 빛나는 별을 보며 에드는 미소를 지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따라 유독 보람찬 악마 사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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