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85화 (185/202)

#185

추방

“엄마?”

메르헨의 물음에 헬레나는 초췌한 안색으로 답했다.

“딸. 오랜만이구나.”

메르헨이 달려가려 할 때 헬레나가 손을 들어 올렸다. 에드가 그 손길의 뜻을 읽고 메르헨의 로브를 덥썩 쥐었다. 달랑 들려서 발버둥 치는 메르헨을 바라보던 헬레나가 에드를 돌아보았다.

“고마워요. 지금 가까이 오는 것은 무리가 있어서.”

에드는 헬레나가 손을 쥐고 있는 다크 엘프를 바라보았다. 피부가 까맣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이지 굉장한 미인이었다. 그런 미인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흔들리는 이들이 있었다.

덱스가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가려다가 론멜에게 붙잡혔다.

“놔 봐.”

“정신 차려라.”

그래도 성기사라 그런지 론멜은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에드도 느낄 수 있었다. 저 앞에 있는 다크 엘프가 문제가 아니라 그 배 속에 있는 태아가 문제다.

“현혹인가요?”

아린의 물음에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에드는 새삼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화염계 신비술사다. 즉 화끈하게 싸우는 것에 특화된 여인이었는데 지금 보이는 것을 보니 저 대악마가 튀어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술식도 그녀가 만든 것으로 보였고, 대악마의 능력을 일정 부분 봉하고 있는 것도 그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펜드래건이나 드레드가 성장했듯이 그녀 또한 16년의 시간 동안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상황 설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미안해요. 내가 지금 이 곁을 떠날 수 없어서.”

그 말에 노리스가 앞으로 나섰다.

“잠깐 정도라면 봉인해 둘 수 있을 겁니다.”

그리 말하고 앞으로 나선 노리스가 석장을 바닥에 찍더니 손목에 두르고 있던 염주를 던졌다. 허공에서 흩어졌던 염주가 날아가 다크 엘프의 배에 들러붙자 노리스가 합장하고는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노리스의 능력을 보면 그가 호법승으로 무력에 특화된 것 같지만 브란트의 몸에 깃든 대악마도 봉인해 버릴 정도로 뛰어난 봉인술을 가지고 있었다.

홍련왕이 한 예언을 막기 위해서 봉인술도 지극히 높은 경지까지 익힌 것이 아닌가 싶은 인물이었다.

노리스가 진언을 모두 외우자 다크 엘프의 안색이 편안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잠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헬레나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헬레나는 그들을 안내한 다크 엘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호법승의 봉인술이 제법이야. 잠깐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으니 이곳을 지키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기면 얘기하고.”

“알겠습니다.”

헬레나는 걸어 와 가장 먼저 메르헨을 안았다. 메르헨은 헬레나의 품에 안긴 채 코를 훌쩍였다. 헬레나는 그렇게 메르헨을 잠시 안고서 뭔가 휴식을 취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들어 일행을 돌아보았다.

“시간이 많지는 않아 보이니 이쪽으로.”

헬레나는 메르헨의 손을 잡고 그들을 데리고 이동했다. 멀리는 못 가겠는지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근처의 바위에 앉았다.

일행들이 모두 대충 자리를 잡고 서자 헬레나는 메르헨을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채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부터 하죠.”

에드가 일행을 대신해 앞으로 나섰다. 헬레나는 그런 에드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악마 사냥꾼이죠?”

“예. 에드라고 합니다.”

“소문은 들었어요.”

헬레나가 눈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고 에드는 순간 당황했다. 얼굴은 16년 전 게임을 할 때와 달라지지 않았지만, 묘하게 완숙한 느낌이 전해진 그녀는 굉장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건 팬심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헬레나는 원거리 공격을 가하기에 에드의 최애캐였다. 거리를 보는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영광이군요. 그보다 어쩌실 계획이십니까?”

헬레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에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에게는 진심이라고 하더니 그 소문이 진짜인가 보네요.”

“상종 못 할 놈들이니까요.”

사실 경험치 때문이 더 강했지만.

헬레나는 그 말에 메르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글렌시아는 내 오랜 지기에요.”

다크 엘프는 악마의 시대 1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존재다. 하긴 헬레나는 게임 중에도 신비주의 컨셉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다크 엘프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요. 그들의 여왕인 글렌시아가 아기를 가진 것은 축복할만한 일이었죠. 그녀가 태어나고 600년 만에 가진 아기였으니까요.”

다크 엘프가 장생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을 줄은 몰랐다. 보기에는 3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크 엘프 중에서도 하이 엘프, 순혈 중에도 순혈인 그녀가 가진 아이는 그 자체로 굉장한 축복을 받은 아이예요. 그리고 그걸 대악마 수르판이 탐을 낸 거죠. 다크 엘프 일족의 술법진을 뚫고 들어오느라 약해졌던 녀석은 그 아이에 깃들었어요.”

에드는 살작 미간을 찌푸렸다.

“그 아이를 죽여야 놈을 죽일 수 있다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에드가 어떻게 배 속의 태아를 죽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헬레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글렌시아가 나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늦었죠. 내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면 분명 놈이 왔을 때 막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탓이었어요. 글렌시아가 아기와 함께 대악마 수르판을 죽이고자 했다면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강제로 아이를 낳게 하고 약해진 수르판을 죽이면 될 일이었으니까.”

“설마 아이를 낳을 생각인 겁니까?”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문제는 수르판이 뿜어내는 마기였죠. 그냥 두면 그곳으로 악마들부터 시작해서 다른 대악마까지 나타날 판이었죠. 다른 대악마도 탐을 낼 만큼 수르판이 약해져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메르헨에게 말도 못하고 떠난 겁니까?”

“맞아요. 그리고 사실 메르헨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메르헨의 도움이요?”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팔을 내밀어 보였다. 그녀의 양쪽 손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메르헨에게는 얘기해주지 못했지만, 우리 혈족은 악마를 죽이면 그 마기를 흡수해서 마력이 강해지죠.”

그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악마의 시대 1에서 그녀가 분명 밝혔던 내용이니. 경험치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나 했더니 실제로 그런지는 몰랐다.

하긴 주인공인 자들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강해질 방법이 있었다. 다른 이들을 추월해서 강해질 방법이.

그래서 헬레나는 메르헨에게 악마들을 던져줬던 걸까? 하나씩 잡아서 마력을 강하게 만들라고?

“저 혼자의 힘만으로는 대악마 수르판을 지옥으로 보낼 수 없었어요. 추방 술법을 펼치려면 저와 비슷한 수준의 마력을 지닌 메르헨이 필요했죠.”

“추방 술법이요?”

“아이의 몸에서 수르판을 떼어내어 지옥으로 추방하는 술법이에요.”

“그게 가능한가요?”

“말했듯이 저 혼자는 불가능하지만, 메르헨이 꽤 성장해서 가능할 거예요. 사실 지옥으로 추방하는 동안 잠깐이지만 지옥의 문이 열리게 돼요. 다크 엘프들에게 그걸 막아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사실 조금 위험한 계획이었어요.”

헬레나의 시선이 메르헨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메르헨에게 동료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우군을 얻었네요.”

에드는 헬레나의 위험한 계획에 뭐라고 하고 싶었다. 지옥의 문이 열린다고 해도 잠깐 정도라면 헬레나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술법을 진행 중이라면 없는 셈 쳐야 할 터.

헬레나라고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진행해야 할 만큼 매우 급한 상황이라는 얘기이리라.

“곧 출산입니까?”

“늦춰도 사흘 정도가 한계였어요.”

에드는 한숨을 내쉬고 아린을 돌아보았다. 대악마를 죽일 기회다. 하지만 지옥으로 추방해 버린다면 대악마를 놓아줘야 하는 상황.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 돌아보니 아린은 고민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저희가 지옥문에서 나오는 악마들을 잡겠어요. 그러니 수르판을 추방하도록 하죠.”

다행이다. 아린이 악마를 죽이는데 진심이라고 해도 아이를 희생해서까지 악마를 죽이자는 말은 하지 않아서.

헬레나는 아린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아린 경.”

에드는 새삼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다크 엘프들과 이동하면서 모두의 이목을 속였다. 테인 조차 그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랐으니.

그만큼 다크 엘프들의 움직임이 은밀하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그렇게 숨어다니면서 아린과 에드는 물론이고 메르헨의 소식까지 듣고 있었다는 건 그녀의 능력이 그만큼이나 뛰어나다는 얘기였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메르헨에게 추방 술식 보조를 할 수 있을 만큼 이해시켜야만 해요. 하루 정도는 걸릴 거예요.”

헬레나가 노리스를 돌아보았다.

“혹시 하루 정도 봉인해줄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하루면 돼요. 그러면 대악마 수르판을 추방할 수 있어요.”

“그럼 오늘은 이곳에서 지내면 되는 겁니까?”

“버려진 마을이니 어디서든 지내셔도 돼요.”

헬레나가 메르헨을 데리고 다른 집을 찾아 나선 사이에 노리스는 글렌시아에게 가서 봉인술을 조금 더 강화했다.

에드 일행은 그런 노리스의 곁을 지켰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가차 없이 죽여버릴 각오를 한 채로.

메르헨은 헬레나와 마주 앉아서는 물었다.

“정말로 악마를 제게 보낸 게 엄마예요?”

“그랬단다.”

“친구 때문에 딸을 사지로 내몬 거예요?”

헬레나는 메르헨의 물음에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던 헬레나가 메르헨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는 악마와 대적할 때 마력이 더욱 상승한단다. 너도 알지 않니? 악마와 대적할 때 네가 더 강해진다는 걸?”

메르헨이 고개를 끄덕이자 헬레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는 악마를 상대해야 했어. 엄마가 하나하나 가르쳐주지 못했지만,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만났잖니.”

메르헨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카일과 리프, 칸까지 만난 것은 확실히 그녀에게 있어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라는 건 그만큼이나 소중한 이들이란 얘기니까.

그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도 있으니까.

“엄마에게도 글렌시아가 그런 친구란다.”

메르헨은 한숨을 내쉬었다. 카일이나 리프, 칸이 자신을 찾아온다면 그들을 위해서 자신도 목숨을 걸 수 있다. 그러니 헬레나를 이해하기로 했다.

헬레나는 메르헨의 손을 꼭 쥐고는 말했다.

“그래도 제대로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그러니 날 도와주겠니?”

“그럴게요. 추방 술식이 어떻게 돼요?”

헬레나는 메르헨을 한 번 꼭 안아주고는 추방 술식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술식진. 그 크기는 반경 50미터에 달하는 크기였다.

잠깐이라지만 지옥의 문이 열린다고 한다면 어마어마한 수의 악마들이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이미 지옥의 문을 한 번 닫았던 경험이 있기에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일행들은 잘 알았다. 하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에드는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이미 한 번 지옥의 문을 닫아 봐서 그런지 일행들은 그나마 긴장하지 않았는데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카일과 리프. 칸까지 긴장한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다크 엘프들이 원을 그리며 포위한 상태.

에드는 중앙에 위치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노리스는 봉인 술식의 이해가 높아서 추방 술식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헬레나와 메르헨이 왼손을 마주 잡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둘이 맞잡은 왼손의 팔뚝의 피부가 갈라지며 둘의 피가 떨어져 글렌시아의 배를 적셨다.

그리고 그 피는 바닥까지 떨어지더니 술법진을 만들었다. 둘의 낯빛이 창백해질 때가 되어서야 술법진이 완성되었고, 곧 바닥이 검게 물들었다. 마치 검은 수면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지옥과 연결되었고, 곧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글렌시아의 배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에드는 인상을 굳힌 채 활을 들어 올렸다.

헬레나와 메르헨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그 둘을 휘감았을 때 둘의 손이 글렌시아의 배에 닿았다.

드드드드드.

글렌시아의 배에 올려진 손길을 따라 전해진 마력이 술식에 따라 움직이더니 태아 안에 깃든 수르판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꾸어어어!

대악마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검은 수면이 요동치며 그곳에서 마물과 악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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