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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76화 (176/202)

#176

구출

무시무시한 속도로 불빛 하나 없는 동굴을 달리는 에드는 활의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심안으로 확인해 본 결과 제압했던 젝스 대장군이 풀려났고, 캄벨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 캄벨이 에스터 공주를 지키고 있었다. 막다른 동굴의 입구를 지키고 선 캄벨의 몸에 꽂힌 화살만 일곱 발이었고, 바닥에 떨어진 화살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집요한 레인저들의 화살 공격을 좁은 복도에서 모두 받아내며 에스터 공주를 지키고 있었다.

이래서 마음을 약하게 먹으면 안 된다.

악마와 계약한 것을 알았을 때 젝스를 죽였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탈출할 때 인질로 쓰려고 남겨 뒀더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

네프사엘을 너무 갑작스럽게 만났고, 놈과 싸우는 데 일행 전부가 필요했다.

다행이라면 테인이 더그와 함께 그곳에 따라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그들마저 따라왔다면 구출 난이도가 몇 배는 올랐을 테니까.

에드는 앞으로 달리면서 두 발의 화살을 날렸다.

퍼퍼퍼퍽.

에드가 쏘아낸 화살이 레인저들의 오른 팔뚝, 어깨, 손등을 뚫었다.

그들이 활을 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힌 에드가 그들의 어깨를 밟으면서 달려갔다.

동굴에 가득 차 있는 레인저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에드의 화살은 잠깐의 시간 동안 족히 수십 명이 넘는 레인저들을 쓰러트렸다.

두 발의 화살로 이뤄낸 업적. 그들이 신음을 흘리며 굽힌 몸을 뛰어넘은 에드는 캄벨을 죽이라며 소리치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난 소란에 고개를 돌리는 젝스와 눈이 마주쳤다.

악마와 거래한 놈을 살려둔 것이 실수였다. 조금만 수고한다면 얼마든지 에스터 공주를 구해서 빠져나갈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은 쉽게 가려고 했던 탓이 컸다.

에드는 젝스를 향해 석화의 비도를 날렸다. 젝스가 황급히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의 미간에는 비도가 어렵지 않게 박혔다.

젝스의 머리가 돌로 굳어버리는 사이에 에드는 오히려 놀랐다. 젝스가 달리아 왕국군의 총지휘관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로 많은 경험치가 들어올 줄은 몰랐다.

네비로스를 죽이며 얻었던 경험치에 젝스 대장군의 경험치가 더해지니 레벨이 올랐다.

그의 가치가 이 정도로 높았던 건가?

대륙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지간한 국왕보다 높다는 건 뜻밖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즉에 죽여서 레벨을 올리고 네프사엘과 싸울 걸 그랬다. 그랬다면 훨씬 더 쉽게 싸울 수 있었을 텐데.

에드가 캄벨의 앞에 내려섰을 때 뒤편에서 아린이 튀어나왔다. 돌진하는 아린에게 휘말려 동굴 벽으로 튕겨 날아간 레인저들이 서로 뒤엉켜 바닥을 굴렀다.

노리스는 에드처럼 동굴의 벽과 쓰러지는 레인저들을 밟고 건너와 캄벨의 앞을 지켰다.

그렇게 레인저들을 지나온 아린은 머리가 돌로 굳은 채 죽어있는 젝스 대장군을 보고는 시선을 돌려 캄벨을 살폈다. 캄벨은 그래도 급소는 피한 상태라 금세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린은 네프사엘의 시체를 캄벨의 뒤편으로 던지고는 그의 상처에 박힌 화살을 잡아 뽑기 시작했다. 몸에 박힌 화살이 뽑히는 데도 캄벨을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아린은 캄벨의 몸에 박힌 화살을 모두 뽑아내고는 신성력을 일으켰다. 그녀의 신성력이 스며들자 캄벨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아스트론의 화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기적적인 치료를 하는 동안 에드는 노리스와 함께 그녀의 앞을 막았다. 그들의 앞에는 백이 넘어가는 레인저들이 여기저기 상처를 끌어안고 신음을 흘리는 중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나 삽시간에 자신들을 무력화한 에드 일행을 보면서 당황하고 있었다. 뭐에 당한 지도 모르고 당한 이들도 태반이고, 성기사의 돌진에 여기저기 튕겨 날아가다 보니 당황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와중에 젝스 대장군이 죽었다.

그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젝스 대장군의 명령으로 공주의 수호 기사를 공격하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그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그때 몇몇이 앞으로 나왔고, 가장 앞에 선 자가 소리쳤다.

“대장군을 죽인 자들이다! 무엇하는가! 죽여···!”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마에 화살이 박히며 뒤로 넘어가고 있었으니까.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걸 못 본 자가 또 이어서 소리쳤다.

“복수를 해···.”

그 또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렇게 연달아 둘이 죽자 그제야 그들은 상황을 파악한 듯 했다.

젝스 대장군의 무력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손도 못 쓰고 죽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들이 지금은 그저 부상을 입은 정도에서 그친 것도 상대가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휘를 위해 나서는 이들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죽었다. 지휘관은 지휘관답게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누구도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모두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자 에드가 입을 열었다.

“공주님. 나오셔도 됩니다.”

그 말에 에스터 공주가 다가왔다. 그녀는 에드의 옆에 머리가 돌이 되어 죽은 젝스 대장군을 보고 죽은 둘을 더 보았다. 고작 셋만 죽었고, 나머지는 모두 크고 작게 다친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스터는 에드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 이해했다.

대악마를 잡겠다고 달려갔던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대악마를 잡았다는 것. 대악마가 등장과 함께 느꼈던 지독한 공포를 생각하면 얼마나 강한 자를 잡고 온 것인가 싶었다.

그런 대악마를 잡는 이들이 인간을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달았다.

달리아 왕국 내에서 손에 꼽히는 수호 기사인 캄벨도 겨우 도망치다 몰려서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키던 중이 아니었던가?

대악마의 등장과 그녀가 뿜어낸 격에 캄벨과 에스터의 몸이 굳었을 때 악마와 거래했던 젝스 대장군은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몸을 빼내더니 병사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망의 연속이었는데 에드가 나타나서 그걸 간단히 정리했다.

저들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젝스 대장군이 죽었으니 달리아 왕국군을 손에 넣었다. 이들이 더는 사고를 치고 다니지 않게 단속하면서 협상을 끌어낸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앞으로 나선 에스터가 나서자 다친 자들도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젝스 대장군의 명령은 캄벨이 에스터 공주를 납치하려 한다는 말이었기에 따랐지만, 그들이 보기에 캄벨은 어떻게든 에스터 공주를 지키려고 했다.

몇몇은 그래서 화살을 쏘는 것을 주저하다 보니 캄벨이 에드가 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었기에 에스터 공주가 앞으로 나서자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반역을 저지른 젝스가 죽었군요.”

에스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지금 동굴에는 쥐죽은 듯 조용한 침묵만이 가라앉아 있었다. 횃불이 타들어가는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그녀의 목소리가 좌중에게 뻗어나갔다.

그렇게 좌중을 돌아보던 에스터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젝스의 명령을 따른 것뿐이에요. 그대들을 탓할 마음은 없습니다.”

좌중이 안도하는 사이에 에스터는 명령을 이었다.

“하지만 반역을 저지른 젝스 휘하의 장군들을 모두 체포해야겠습니다. 젝스의 죽음이 전해지기 전에 그들을 구속하세요.”

에스터의 시선은 무릎을 꿇은 자 중 가장 후미에 있는 자를 향했다.

“당신에게 내리는 명령입니다. 바튼 공.”

바튼 공이라 불린 이가 고개를 들었다. 왼쪽 뺨에 길게 흉터가 남아 있는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에스터를 바라보았다.

“명을 받듭니다.”

바튼도 손등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지만, 그가 당당히 일어나자 그를 따라 다른 이들도 몸을 일으켰다.

그때 아린이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에스터가 그녀를 돌아보자 아린이 그녀를 지나쳐 바튼에게 다가섰다.

그녀가 바튼에게 내민 것은 에드가 따서 주었던 잎이었다. 아직도 은은하게 녹색 빛을 뿜어내는 잎을 건네자 그걸 받아든 바튼이 시선으로 에스터에게 물었다.

에스터도 그게 뭔지 몰라 답하지 못할 때 아린이 바튼의 손등에 손을 올리고는 신성력을 일으켰다. 거세게 일어난 신성력에 바튼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기적에 가까운 일. 바튼이 놀랄 때 아린이 입을 열었다.

“그 잎을 상처 난 이들에게 먹이세요. 회복에 도움이 될 거예요.”

에드가 급하게 뜯어간 넝쿨이라 그곳에 달린 잎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십 장은 달려 있으니 그것만 해도 도움이 되리라.

바튼은 아린이 보여준 이적에 감동한 상태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사들에게 잎을 먹이기 시작했다. 에스터 공주를 구한 일행이라 믿는 것도 있었지만, 아스트론의 성기사가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바튼이 전한 잎을 먹은 병사들의 상처가 눈에 띄게 아물기 시작했다.

아린의 신성 회복 주문에 비하면 느리다고 하나 착실히 회복되는 것을 보며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아린을 향해 고개를 숙일 때 아린은 그들을 축원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당신과 함께하길.”

신관이 아니라 그저 축언일 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나를 따라와라.”

바튼은 달리아 왕국의 귀족으로 사병을 이끌고 에스터 공주를 지키기 위해 왔다가 젝스 대장군이 귀족들을 약탈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랬던 그였기에 젝스 대장군이 죽고, 그의 휘하 장군들을 체포하라는 말에 기쁜 마음으로 나섰다.

바튼의 말에 회복이 된 이들이 그를 따라 멀어지는 것을 보고 아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에드를 돌아보며 물었다.

“시간이 날 때 기도를 올려도 될까요?”

“그래요. 어차피 드레드가 일행을 데리고 올 때까지 시간이 있을 거예요.”

아린이 쓰러진 시체를 향해 성검을 뽑고 다가가자 에드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이건 아스트론에게 바치도록 하죠.”

에드가 레벨이 무섭게 오르며 아린보다 더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뒤쳐저서는 전위에 서기가 힘들다.

앞으로 어떤 자들을 만나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위에 서는 그녀의 강화가 가장 우선이었다.

아린은 에드의 말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들은 악마를 잡으러 갈 거고, 다음에도 기회는 있을 테니까.

아린이 네프사엘의 시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자 푸른 성화가 피어올랐다. 동굴에 있으니 하늘에 닿지 않을 거라고 여겼지만, 지하 폭포와 같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니 동굴 천장을 향해서 푸른 빛의 기둥이 치솟았다.

에드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에스터에게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대악마와 싸울 생각만 했지. 이렇게 위험에 처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에요. 그런 위험한 존재가 우리를 지휘했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벌인 일들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달았어요. 그런 대악마를 잡아주셔서 고마워요.”

달리아 왕국군은 악업을 쌓고 있었다.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으니 감사한 마음이 가득할 뿐이었다.

에스터는 아린이 기도를 올리며 성화에 타오르는 대악마의 시체를 보며 그녀를 따라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비록 믿는 신은 다르다고 해도 신의 축복이 내리는 장면을 본다면 모두가 마음에 신심이 일기 마련이니까.

에드는 에스터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다가 죽은 병사에게 다가가 미간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이번에 화살을 많이 썼으니 알뜰히 챙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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