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각오
에드가 쏘아낸 화살은 일반 한철 화살이었다. 이기어시까지 더해서 날린 화살은 돌진해 가는 아린보다도 빠르게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날아간 화살에 괴물이 왼팔을 들어 막았다. 왼 팔뚝에 박힌 화살에서 일어난 냉기가 왼팔 전체를 얼려버렸고 그 내부를 신성력이 파괴했다.
쩌정!
얼어붙은 화살에 왼팔이 얼어버리고 그 안이 부서지고 있을 때 아린이 돌진해서 괴물을 들이 받았다.
콰앙!
괴물의 왼팔이 깨져나가며 뒤로 밀려났다.
에드는 시트라가 건네준 화살은 쓰지 않았다. 자동으로 시트라에게 제물로 바쳐지다 보니 아린을 성장시켜야 하는 에드로서는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어차피 시트라의 화살이 아니라도 저 정도 괴물은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에드는 심안으로 괴물을 살피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 괴물은 라그록스와 연관이 있는 괴물이었다. 몸에 품고 있는 혈마석이 세 개나 되는 존재.
왼팔이 얼어서 깨졌지만,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태연하게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머리가 셋 달린 괴물은 아린의 돌진을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가 곧장 마주 달려들었다. 사람들의 머리를 으깨버리던 주먹이 날아들자 아린이 방패로 그걸 막아내고는 무릎을 해머로 후려쳤다.
그런 아린의 해머를 손톱을 휘둘러 막아내려 했던 탓에 손톱이 박살 났지만, 기회는 잡을 수 있었다.
팔이 하나 얼어서 깨졌지만, 세 개나 있는 데다가 날개까지 있어서 기상천외한 방향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아린의 단단한 방패는 뚫리지 않았다.
에드가 다음 화살을 꺼낼 때 노리스가 디에고를 옆구리에 낀 채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디에고를 내려놓고 곧장 앞으로 튀어나갔다.
세 개의 혈마석을 품은 괴물이지만, 느껴지는 격은 상급 악마 수준이다. 아린도 노리스도 무리한다면 상급 악마 정도는 잡을 수 있는 존재들.
에드는 그들의 손에 저 괴물이 죽어버리는 것을 대비해서 긴장한 채 화살을 준비했다. 처음 보는 괴물이니 경험치도 기대할 만할 터.
에드가 바라보는 가운데 괴물의 거대한 주먹이 아린을 노렸다. 그 괴력은 아린도 경시할 수준이 아니라서 방패로 흘려내야만 했다.
방패로 공격을 흘려낸 아린이 휘두른 해머에 괴물도 이제는 손톱으로 막지 않았다.
아린의 성유물도 아스트론에게 악마들을 제물로 바치고,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축복을 통해서 강화되어서 전과는 비할 수 없이 강해진 상태였다.
뒤로 물러난 괴물의 측면에서 노리스가 달려들어 발로 걷어찼다. 괴물이 두꺼운 팔로 막았지만, 노리스가 걷어찬 곳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옆으로 쭈욱 밀려난 괴물의 세 개의 머리가 동시에 입을 벌렸다.
“쿠어어억!”
세 개의 혈마석을 몸에 담으면서 강력한 힘을 손에 얻은 대신 괴물은 이지를 잃은 것 같았다. 아니 이지라기 보다는 말을 잃은 것 같았다.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옆에 떨어져 있던 시체를 잡아 노리스에게 던졌다.
노리스가 그걸 피하고 파고들 때 에드는 화살의 시위를 한껏 당겼다. 한철 화살은 빙 속성과 성 속성을 동시에 품었다. 아스트론의 활에 마력을 불어 넣으니 신성력과 냉기가 동시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노리스가 괴물의 두꺼운 팔이 날아드는 것을 피한 후에 오른쪽 어깨의 머리를 석장으로 후려쳐서 부숴버릴 때 아린도 방패로 손톱을 흘려내고 왼쪽 머리를 날려버렸다.
둘이 동시에 노린 머리들이 날아갈 때 에드가 쏜 화살이 남은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가운데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에 괴물이 두꺼운 팔과 날개로 막아냈다.
화살은 날개를 뚫고 두꺼운 팔을 관통했다. 괴물은 자신의 코앞에서 멈춘 화살촉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웃기는.”
에드가 이번에 익힌 필살기는 쇄폭시다.
꽈아앙!
화살촉이 폭발하며 그 조각이 괴물의 머리를 터트려버렸다. 마지막 남은 머리가 터지면서 괴물이 뒤로 쓰러졌다.
역시 새로운 괴물이라 그런지 경험치가 쏠쏠했다.
괴물이 바닥에 쓰러지자 아린이 그제야 긴 숨을 토해냈다.
“이것도 혈마석이 있네요.”
아린이 시체를 내려다보며 하는 말에 에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이건 사람으로만 만든 게 아니네요. 마물과 악마까지 섞었어요.”
그 셋을 섞는 데에 혈마석을 썼다. 고작 인간과 마물, 하급 악마에 혈마석을 섞는 것만으로 상급 악마에 필적하는 괴물을 만들어냈다면 그 자체로도 굉장한 일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인간과 마물, 악마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아린이 괴물의 배를 가르려고 할 때 에드의 심안에 그 혈마석의 안에서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혈마석은 말 그대로 돌덩어리인데 그 안에서 두근거리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위험해 보였다.
에드는 아린의 허리를 끌어안고 뒤로 몸을 날렸다. 노리스도 디에고를 품에 안고 신전 밖으로 몸을 날렸다.
콰콰쾅!
강렬한 폭음과 함께 신전이 무너져 내렸다. 혈마석 세 개를 이용한 연쇄 폭발은 그 위력이 신전 하나를 완전히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아린은 무너져 내리는 신전을 보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들이 찾아왔음에도 신전을 지키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에드는 대충 생각나는 대로 답했다.
“핵심인 인간은 크로셀의 손가락 수준은 될 거예요. 악마나 마물의 수준도 낮았는데 혈마석을 이용해서 급격하게 끌어올린 것 같아요.”
크로셀의 손가락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사도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마물이나 악마는 충분히 수급할 수 있을 정도.
“이건 어쩌면 실험작일 지도 몰라요.”
“실험작이요?”
“전에 두 개의 혈마석을 품었던 악마도 고작 중급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세 개의 혈마석을 품은 인간과 마물, 악마를 섞어 만들면서 상급 악마 수준으로 끌어올렸어요. 게다가 원하는 곳을 요격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고, 죽으면 혈마석을 공명시켜 연쇄 폭발까지 일으킬 수 있는 괴물을 만들어낸 셈이죠.”
노리스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 악마의 개체 수를 생각한다면 새롭게 대악마가 되고자 하는 라그록스는 수하가 부족할 수밖에 없을 테니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낸 것 같군요.”
“지옥의 문을 열려고 했던 것도 수하로 둘 상급 악마를 얻으려고 한 것 같은데 부지런도 하네요. 동시에 대체 몇 가지 일을 진행한 것인지.”
“대악마가 부지런하기까지 하니 쉽지 않겠습니다. 이게 실험작이라면 성공을 거뒀으니 더 많은 괴물을 만들었을 테고, 이보다 쓸만한 것들을 곁에 두고 있겠군요.”
“혈마석이 무한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몇 이상은 데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네요.”
에드가 노리스와 대화하고 있을 때 무너진 신전을 바라보던 아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괴물을 몇 마리나 데리고 있든 라그록스는 제 손에 죽을 겁니다.”
아린의 각오를 들으며 에드가 그녀의 곁에 섰다.
“그때 옆에 내가 있을게요.”
아린이 에드를 돌아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일 때 디에고가 입을 열었다.
“저기 봐요.”
에드와 아린이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을 본 아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린이 그곳으로 달려가니 아린을 본 이가 인사를 건넸다.
“아린 경이오?”
“예. 무사하셨군요.”
아린의 인사를 받은 이는 오블로 시 신전의 주교 제이븐이었다. 그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답했다.
“라야 경의 연락을 받고 신전을 관리하던 이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몸을 피해 있었네.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지.”
신전에서 서로 연락할 방법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연락이 닿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큰 인명 피해는 막았다. 신전을 온전히 비우지 않았던 탓에 몇 명은 죽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할 일이었다.
아린이 무너진 신전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전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해요.”
제이븐은 그 말에 고개를 내젓고는 신전이 무너진 곳을 바라보며 답했다.
“신전이야 다시 세우면 될 일. 라야 경의 말을 믿고 모두가 몸을 피했다면 죽은 이들이 없었을 것을. 그게 아쉬울 따름이네.”
제이븐은 그리 말하고는 기도했다. 그런 제이븐을 따라 아린을 비롯해 모두가 기도를 올렸다. 노리스도 옆에서 반장하는 것을 보고 에드도 묵념했다.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어준 에드는 고개를 들고 무너진 신전을 바라보았다.
가는 길이 대흉일 거라고 하더니 라그록스가 생각보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악마와 싸우기 위해 필살기 쇄폭시를 익혔음에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상급 악마 수준이 되는 괴물이 그의 곁을 지킨다면 그를 죽이기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기어시와 관통으로 적의 몸에 화살을 꽂아 넣고 쇄폭시로 터트려 버리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지만, 놈을 지킬 방패가 너무 많다.
아무래도 놈을 만나기 전에 함께 할 아군을 구해야 할 것 같았다.
디에고의 마력이 바닥났기에 돌아오는 것은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해가 지기 무섭게 닉과 퓨리를 소환해서 아조렐 시로 향했다.
그렇게 급하게 갈 것이 없었기에 돌아올 때는 여유 있게 날아왔는데 그리핀인 닉의 등은 생각보다 어지러웠다. 출렁출렁이며 날아가는 통에 멀미가 다 날 지경이었다.
고속으로 날 때는 이런 흔들림이 적더니 지금은 흔들림이 너무 심했다. 사령은 죽은 영혼인데도 살아생전의 기억대로 움직이기에 비행이 어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어지럽게 나는 데도 덱스와 엠마는 이걸 타겠다고 서로 싸웠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뒤편에 탄 아린은 별로 어지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로 십 일이 걸리는 거리를 하룻밤 만에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먼 거리까지 와서 실험작을 상대할 수 있었고, 적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라그록스가 크로셀의 손가락 정도 되는 자를 실험작으로 쓴다는 것은 크로셀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는 얘기. 손가락이 저 정도라면 사도를 이용하면 더 강한 존재를 만들 수도 있으리라.
에드는 자신의 허리를 안고 있는 아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물었다.
“그런데 라그록스가 왜 아스트론 교단을 공격한다고 생각해요?”
아린은 에드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다가 자신의 손등 위로 전해지는 에드의 체온에 깜짝 놀랐다가 답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대악마라고 해도 지금까지 먼저 신전을 공격한 이들은 없었거든요.”
“자신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생각해 보면 아린이 이만큼이나 강해져서 그렇지 아린이 강해지지 않았다면 대악마에 비견될 자는 교단 내에 없다. 시트라 교단의 전력을 직접 겪어 봐서 아는데 그 정도 수준이라면 대악마 하나도 감당하지 못한다.
물론 총본회가 당하는 꼴을 신들이 지켜보고 있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이제 신을 마주할 준비가 된 걸까?
그래서 이렇게 겁도 없이 선공을 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드는 닉의 고삐를 쥔 채 아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하지만 그런 놈이라도 결국 우리 손에 죽을 겁니다.”
“당연하죠.”
아린의 대답을 들은 에드가 고삐를 잡아채자 닉이 속도를 높였다. 밤하늘을 날며 시원한 바람이 둘을 감싸고 뒤로 흘러갔다.
원탁에 앉은 이들을 바라보는 라그록스는 옆에 앉은 토끼의 털을 쓰다듬으며 앞에 앉은 이를 바라보았다.
“당신을 이리 만날 줄은 몰랐군.”
라그록스의 앞에는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곰 가죽을 두르고 있는 사내는 붉은 눈으로 라그록스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없는 동안 그런 잡것들을 만들었군.”
라그록스는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뒤편에 서 있는 이들을 돌아보았다. 사도를 이용해서 만든 자신의 역작이다. 그 수가 모두 여섯.
손가락으로 만든 자들은 아스트론의 교단을 습격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자신을 찾아온 이 사내는 자신도 경시할 수 없었다. 사도로 만든 것은 아니라고 하나 손가락으로 만든 수하 둘을 한 손으로 때려잡고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라그록스는 그런 상대의 붉은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내 아군인가? 적인가? 드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