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아큘라의 목걸이
라르스는 가만히 에드의 눈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소란과 자네는 연관이 없다는 얘기인가?”
“소란이요?”
에드가 고개까지 갸웃거리며 묻는 말에 라르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에드가 의뭉을 떨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를 강제할 방법이 없으니 이만해야 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자신이 국왕이 되게 해준 이니까.
“좋아. 그럼 온 김에 묻지. 장례식까지 남아있을 생각인가?”
“남아있으라 하셔서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만 실은 저희도 바쁜 일정이 있어서요.”
“퇴마행?”
“예. 다음 목표를 발견한 이상 굳이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는 합니다.”
라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에드 일행은 탐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지닌 이들이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이들이기도 했다.
손에 넣을 수 없다면 멀리 보내는 것이 옳다.
라르스가 손짓하자 다가온 글로웰이 발론의 금화 상자를 꺼내고 있었다. 저번에 받았던 골드도 다 못 썼는데 여기다 10만 골드를 더 준다고?
이제 차기 국왕이 되었으니 돈을 더 팍팍 쓸 수 있다는 건가?
이 정도 금액이라면 왕국에서도 가벼이 쓸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그대들의 퇴마행을 이런 일로 붙잡아 둘 수는 없을 것 같군. 이건 내 후원금이니 퇴마행을 진행하도록 하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라르스는 미소를 지은 채 에드와 눈을 마주쳤다. 에드는 그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랑 눈빛으로 대화할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이번 일은 그렇게 묻기로 했다.
라르스는 아린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총본회로 돌아간다면 추기경을 한 명 보내주면 좋겠군. 아스트론 교단과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으니.”
에드는 새삼 라르스가 시트라 교단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스트론 교단 입장에서도 마젤타 왕국의 국교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총본회에 연락해 놓겠습니다.”
“그럼 그대들의 퇴마행이 성공하기를 기원하지.”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시길.”
라르스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손을 슥 내저으며 돌아서 떠났다. 그를 따라서 이곳에 왔던 기사들이 썰물 빠지듯 빠지는 것을 바라보던 에드는 아린을 돌아보며 발론의 금화 상자를 흔들어 보였다.
“입막음 비용이 짭짤하네요.”
“그러게요.”
아무리 아린이 퇴마행을 진행 중이라고 해도 이만한 큰돈을 만져본 적은 없었다.
에드는 이번 마젤타 왕국행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레벨도 많이 올렸고, 돈도 넉넉히 번 데다가 장비도 수준이 크게 올랐다.
레벨과 스텟이 높아진 덕분에 어지간한 유물급 장비들은 그 효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신들의 눈에 들어서인지 활과 화살, 칠채비도까지 얻은 상황.
에드는 아린을 돌아보며 말했다.
“론멜이 돌아오면 떠나도록 하죠.”
“그래요.”
라르스가 왔을 때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내려왔던 아린은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길었던 밤을 뒤로하고 잠을 청한 에드는 해가 높이 뜨고 나서야 눈을 떴다. 다들 밤이 길었는지 깨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에드도 눈을 뜬 이유는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 때문이었다.
1층 로비로 내려가던 에드는 곧 복도를 나와 따라오는 아린을 볼 수 있었다. 이 정도 소리라면 대부분 들었겠지만, 브란트와 디에고는 이곳에 오는 이들이 시트라 교단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안 내려온 것이리라.
덱스는 이미 호텔 뒤편에서 훈련 중이었고, 테인은 쉬는 중이었으리라.
에드와 아린이 연회장으로 나가니 낯익은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모르는 이도 있었다. 가장 낯익은 론멜이 먼저 말을 건넸다.
“잘들 잔 표정이군.”
론멜을 본 에드는 그의 복장이 달라진 것을 보았다. 그의 망토 아래로 보이는 갑옷은 어제 마스터 팔라딘이 입고 있던 갑옷 같았는데 언제 저걸 또 챙겨 입었나 싶었다.
“론멜 경은 잠을 제대로 못 잔 얼굴인데요?”
론멜은 잠시 에드를 바라보다가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그 자리를 대신해 에드와 아린에게 낯선 이가 앞으로 나섰다.
“교황 예정자인 프레디라고 하오.”
프레디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에게 아린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스트론의 검인 아린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에드도 자신을 소개했다.
“에드입니다.”
프레디는 아린과 에드를 돌아보았다. 론멜이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보고는 그도 대충은 들어 알고 있었다. 교황과 그를 따르는 추기경들을 통해서 대충으로만 전해 들었지만, 그것만 보아도 보통 인물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젤타 왕국에서 지옥의 문도 닫았다고 하니 그들의 업적은 위업이라고 할 만한 일.
“그대들이 본국에서 해준 일을 생각하면 교단에서 그리 대해서는 안 되었던 일이오. 다시 한번 교단을 찾아주시면 안 되겠소?”
에드는 그 말에 뺨을 긁적이고는 답했다.
“라르스 차기 국왕께서 퇴마행을 이으라고 하셔서 곧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는 말이오. 그대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알고 있으니 교단의 보물 창고를 열 생각이오.”
“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것도 좋겠군요. 지금 바로 갈까요?”
프레디는 그 말에 미소를 짓고는 옆을 돌아보았다. 그 옆에는 성녀 리베라가 서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는 그 둘의 관계를 보고 왜 그들이 시트라 교단의 보물 창고를 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성유물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일행에게 도움이 된다.
브란트와 디에고는 총본회에 못 들어간다고 해도 다른 일행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아린이야 아스트론 교단의 성유물을 세 개나 가지고 있는 데다가 아스트론의 성기사니 굳이 시트라 교단의 성유물이 필요 없겠지만, 에드와 덱스는 다르다.
시트라 교단의 성유물은 특히나 파괴와 저주, 신체 강화에 특화된 만큼 도움이 될 것이 제법 되리라.
대여 형식이라도 상관없었다. 악마를 사냥하는데 도움만 된다면.
시트라의 총본회는 전과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교황 취임을 하지 않았지만, 권력 구도가 완전히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론멜에게 들어보니 어제 그가 제압한 현직 성기사들은 모두 감옥에 갇힌 상태였다. 교관들도 저항을 포기했기에 성기사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늘 시트라 교단의 총본회를 찾아온 것은 이곳에서 어떤 성유물을 얻을지 몰랐기에 아린과 에드, 노리스, 덱스와 테인이 함께했다. 테인은 함께 싸우지는 않을 테지만 그의 안목도 필요하다 싶어서 함께 했다.
에드는 성녀 리베라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그런데 보물 창고까지 열 생각은 어떻게 한 겁니까?”
성유물이란 악마를 상대하기 가장 좋은 무기들. 그런데도 대부분의 성유물은 각 교단의 창고 안에 잠들어 있다. 쓸만한 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빤히 악마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그것들을 창고에 쌓아두기만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아끼다 X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보물 창고에 그것들을 쌓아만 놓아두었다.
그런 창고를 연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것부터 바꾸려고요.”
리베라의 눈빛을 본 에드는 그녀가 이번에 정말 단단히 마음을 먹었음을 알았다. 개혁에 가까운 바람이 시트라 교단의 총본회에 불고 있었다.
그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소를 짓던 에드는 흘끔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보물 창고로 가는 길의 천정에 그려진 벽화를 보던 에드는 그곳에 그려진 벽화에 묘사된 시트라를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무척이나 예쁘고 신성하게 그렸지만, 그녀는 훨씬 아름다웠다.
여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미적 관점에서는 완벽했다. 게다가 뭔가 위험한 분위기까지 풍기는 여신이니 그림으로 묘사할 수 있는 한계가 있으리라.
에드는 어디선가 보고 있을 시트라에게 살짝 감사를 표한 후에 그들이 안내한 보물 창고 앞에 섰다. 보물 창고를 지키고 있는 것은 수도승들이었는데 엄청난 근육질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에드가 보기에 저들은 오직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오는 이들 같았다. 그들은 프레디가 건넨 증표를 확인하고는 문을 밀기 시작했다.
네 명의 수도승이 전신의 근육을 꿈틀거리면서 밀어내니 그제야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무식하게 무거운 문을 만들어놓았으니 몰래 들어오기는 힘들 곳이었다.
그렇게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문이 나타났다. 그곳은 성녀 리베라가 앞으로 나서서 품에 가지고 있던 증표를 꺼내 그 문에 난 구멍에 집어넣었다.
철컥. 끼리릭. 그그그그긍.
뭔가 작동하는 것 같더니 곧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창고는 야명주가 사방에 박혀있어 어둠을 몰아낸 곳. 그곳에는 성유물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갑옷부터 시작해서 투구를 비롯해 각종 무기.
시트라는 그래도 교단을 생각해준 것인지 생각보다 성유물이 많았다. 성유물의 아래에는 그 특징들이 적혀 있었다.
“성유물은 술법진으로 보호되고 있어요. 그냥 만지면 위험해요. 그러니 성유물의 특징들을 살피고, 필요한 것들을 말하세요.”
도난 방지 장치가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에드는 그 설명들을 하나하나 읽어 보았다. 노리스는 관심이 없는 듯 반장을 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하긴 쌍룡사도 그 역사만 놓고 본다면 시트라 교단에 버금가고 그곳의 호법승인 노리스는 가장 강력한 법구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이런 것에 관심이 없으리라.
아린도 성유물들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에드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시트라에게 이미 화살을 받았지만, 그것 외에 더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찾아보던 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쌍의 팔찌였다. 아튤러스의 팔찌.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을 약간 향상해주고 두 개를 부딪치면 1분 동안 폭발적으로 신체 능력을 높여주는 대신에 후유증이 10분이라.”
악마의 시대 1에서 약간이라는 것은 5% 내외, 폭발적이라는 말은 20%까지 올려준다는 말이다.
후유증이 높은 것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라면 에드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때 불쑥 덱스가 얼굴을 옆으로 내밀더니 말했다.
“이건 근접에서 싸우는 내가 써야 하는 거 아냐?”
에드는 그 말에 뺨을 긁적였다. 생각해 보면 에드는 원거리에서 싸우니 신체 능력이 올라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럴 바에는 마력을 높일 수 있는 장비가 더 필요했다.
필살기는 그에 걸맞게 막대한 마력이 필요하니까.
이기어시에 더해서 쓰려고 한다면 지금 마력으로도 잘해야 두 번 정도일 터였다.
에드가 그렇게 안을 돌아보는데 론멜이 다가왔다.
“어떤 걸 찾는 거야?”
“마력을 높일 수 있는 물건을 찾고 있어요.”
“마력이라면 아무래도 아큘라의 목걸이가 좋지 않을까?”
아큘라의 반지가 봉인에 특화된 물건이었는데 그 목걸이는 마력에 특화되어 있다는 건가?
“3대 보물에는 들지 못하는데 마력에 관련해서라면 그만큼 뛰어난 성유물은 없을 거야.”
기본적으로 성유물이라 하면 신성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마력만 품고 있다면 신성을 품고 있지 않으니 성유물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
에드가 론멜의 안내를 받아서 아큘라의 목걸이 앞에 설 수 있었다.
“초대 교황 아큘라의 모든 마력이 담긴 목걸이. 마력 회복 속도가 크게 높아진다.”
에드는 그 설명을 읽고는 미소를 지었다.
“리베라님. 이거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덱스에게 아튤러스의 팔찌를 건네준 리베라는 에드의 말을 듣고 다가와 자신의 증표를 설명문의 옆에 난 홈에 집어넣었다. 그제야 아큘라의 목걸이를 두르고 있던 보호 마법이 풀렸다.
에드는 아큘라의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걸 목에 건 에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마력이 1,000이 늘어났다. 게다가 마력 회복 속도도 높아졌으니 이건 다른 성유물보다 에드에게 더 필요한 물건이었다. 이 정도라면 필살기도 한 번 더 쓸 수 있게 됐다.
“전 이걸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