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51화 (151/202)

#151

초대

후욱. 후욱.

일행은 무리해서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이미 왕도까지 한 번 왔던 길. 전력을 다해서 이동하기보다는 느릿하게 말을 몰면서 이동했다.

그렇게 가는 중에 들리는 숨소리는 덱스의 것이었다.

덱스는 이번에 장비들을 싹 바꿨다. 한 자루 검과 한 자루 칼. 그리고 팔찌를 구해왔다. 검과 칼의 사용법은 다르지만, 검과 칼을 다루는데도 불구하고 덱스는 아무렇지 않게 다뤄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무기는 총 세 개. 고통을 주는 레이피어까지 더해서 무기 세 자루를 챙긴 덱스는 무식하게 무겁게 만든 흉갑을 입은 채 달리고 있었다.

성기사도 아니면서 성유물을 세 개씩 들고 다니지만, 그가 밉지 않은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덱스는 말을 타지 않고 뛰어오는 중이었다.

이것저것 유물까지 더하면 덱스도 이제 능력치가 제법 준수해졌다. 게다가 그는 지금도 노력하면서 능력치를 끌어올리고 있으니 더 높이 오를 수 있으리라.

“오늘은 이쯤에서 쉬죠.”

숲을 지나가는 중이라 해가 지기 시작하면 금세 해가 떨어진다. 근처에 마침 냇가가 있으니 오늘 밤을 보내기 좋을 것 같았다.

서쪽으로 크게 돌았다가 왕도로 갔었기에 지금 가는 길은 처음 가는 길이라 이렇게 쉴 수 있는 곳이 나오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혈마석의 흔적을 찾았기에 그곳으로 향하는 중이기는 했는데 이게 서두른다고 될 문제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그리 무리해서 달리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야영 준비를 마치는 중에 에드는 론멜에게 다가갔다.

“뭘 그리 생각하세요?”

“교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시트라 교단은 지금 홍역을 치르는 중이라고 볼 수 있었다. 교황 밀로토의 편에 섰던 이들이 숙청되거나 구금되었으니까. 그나마 교황 프레디와 그를 따르는 추기경, 성녀 리베라가 힘을 쓰고 있으니 차차 좋아질 것 같지만 성기사단은 거의 박살이 났으니 회복하는 데 오랜시간이 걸릴 터였다.

아직 준비가 안된 이들이 성기사로 올라올 테고.

리베라는 론멜이 남아서 마스터 팔라딘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아직 여정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일행과 함께 떠나왔다. 그러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성녀님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흐흠. 무슨 소리야?”

괜히 얼굴이 붉어져서는 딴소리하는 그를 바라보던 에드는 그의 거짓말을 믿어주기로 했다.

그때 디에고가 에드에게 다가왔다.

“형. 저 엠마랑 같이 주변 좀 돌고 와도 될까요?”

뭐 때문에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알았기에 에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렇게 해.”

“다녀올게요.”

“주변에 혹시 위험한 것들 없는지 톰도 꺼내서 확인해 보고.”

“알겠어요.”

디에고는 에드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엠마에게 다가갔다. 엠마와 디에고가 야밤의 데이트를 하겠다면 오늘은 자신이 더그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라볶이나 해볼까?

엠마는 디에고를 따라서 걸으며 물었다.

“어디를 가는 거야?”

“여기쯤이면 되겠다.”

말을 마친 디에고는 닉과 퓨리를 소환했다. 엠마는 당시에 지옥문을 닫으러 가는 길에 따라오지 않았었기에 닉과 퓨리를 처음 보았다.

“우와!”

신기한 마음에 다가와 그리핀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보려고 하지만 만져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엠마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디에고가 가지고 온 안장을 얹어주며 말했다.

“타 봐.”

엠마는 디에고의 손을 잡고 안장에 올라서 고삐를 잡았다. 신기하게도 사령의 등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럼 가볼까?”

블랙 와이번 퓨리의 등에 오른 디에고가 손짓하자 그리핀이 날개를 펄럭이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꺄아!”

그것은 당혹스러움의 비명이었다가 금세 즐거움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꺅꺅거리는 엠마를 보며 디에고가 미소를 지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온다고 했어. 가보자.”

디에고는 이미 퓨리를 타고 많이 움직여 봤기에 놀라운 비행 실력을 보여주었다. 엠마는 그런 디에고를 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에서 일행들이 야영을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서 앞을 바라본 엠마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세상 모든 것이 작아 보이고, 달빛 아래 드러난 지평선을 보는 것은 처음 경험해 보는 짜릿함이었다.

엠마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꺄호!”

디에고는 엠마가 오른손으로 고삐를 잡은 채 왼손을 입에 가져가 내지르는 소리에 자기도 양손을 입에 모으고 소리쳤다.

“야호!”

처음 엠마의 비명이 들렸을 때 브란트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곧 숲 안쪽에서 솟구쳐 날아오르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닉과 퓨리.

악마나 마물을 상대할 때도 그 흉흉한 위력을 보여주었던 존재들. 하급 악마 정도는 저 둘이서 찢어버릴 정도로 대단한 녀석들이었다.

마물이면서 사령이 되었고, 사령술사인 디에고의 지원을 받으면 중급 악마와도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녀석들.

그런 녀석들이 솟구치는데 그리폰의 등에 안장이 얹어져 있고, 그 위에 엠마가 타고 있었다. 브란트의 고개가 날아오르는 그 둘을 따라 올라갔다.

저 멀리 올라간 엠마의 웃음소리와 함께 기쁨의 탄성이 들리자 브란트는 가만히 그 모습을 올려다만 보았다.

그때 옆에서 덱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밌겠는데? 나도 태워 달라고 해야겠다.”

브란트는 덱스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 재미있으면 된 거지.”

브란트는 힘이 봉인 되어서인지 뭔가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악마의 속삭임이 없어진 것은 좋은 일이었으나 모든 것이 무력했는데 엠마가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정할 수 있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행복한 삶.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

브란트는 고개를 돌려 다른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에드가 오늘은 오랜만에 실력 발휘 한다고 향신료들을 꺼내고 있었고, 그런 그의 옆에는 아린이 돕겠다고 하고 있었다.

노리스는 근처의 죽은 나뭇가지들을 구해 와서 불을 붙이는 것을 돕고 있었고, 테인은 악마 총람을 펼쳐보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 악마를 잡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나 그들 덕분에 새 삶을 얻었으니 언제고 기회가 되면 갚아야겠다. 그럼 우선 작은 것부터 돕기로 했다.

브란트는 노리스를 도와서 잔가지를 구해왔다.

돌아가는 길은 순탄했다. 노리스의 나침반에 나타난 악마는 트라비아 왕국을 가리키고 있으니 그 전에 그만한 악마를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이게 맞았다.

에드가 아린을 만나고 메인 스트림에 올라타기 전에는 악마 하나 만나는 데 들어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이들과 함께 하면서 정말 악마를 발에 차이도록 만났는데 그게 이상한 것이었다. 그래서 악마 하나 만나지 못하는 이런 여행이 일행에게는 오히려 힐링이 되고 있었다.

마물이 가끔 보이기는 했지만, 보통 일행이 발견하기 전에 에드가 처리해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경험치는 소중했으니까.

노리스가 라볶이를 먹고 나서 조르는 것 말고 에드에는 여유로운 여행이었다.

오늘도 야영할 장소를 잡고 나니 덱스와 엠마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디에고는 엠마와 밤마다 비행을 하고 왔었는데 덱스가 자기도 한 번 태워달라고 계속 조르는 중이었다.

순번을 정해서 타기로 했는데 덱스가 또 조르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린은 입만만 다셨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품은 신성력을 온전히 갈무리하지 못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신성력이 있다는 뜻이었는데 덕분에 그녀는 신성력이 은연중 뿜어 나와서 사령에 올라탈 수 없었다.

안장을 여럿 구해달라고 말했기에 그녀는 틈이 날 때마다 기도하는 중이었다.

온전히 신성력을 갈무리하면 강해지는 것도 강해지는 것이지만, 닉을 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오늘은 노리스의 부탁을 들어줄 마음으로 새로운 뭔가를 만들 계획이었다. 누군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에드는 밀가루를 반죽하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같이 반죽하던 노리스가 고개를 끄덕였고, 에드는 일행에게서 떨어져 나와 야영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달빛이 만든 나무 그늘 아래 숨어있는 밀러가 있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밀러에게는 할 수 있는 만큼 말을 해주었다. 그가 엠버의 편에 선 것은 에드와 상관없는 일.

에드의 물음에 밀러가 앞으로 나서며 답했다.

“엠버 왕제님께서 뵙고 싶어합니다.”

에드는 뺨을 긁적였다. 라르스가 지금쯤이면 국왕에 올랐을 테고, 동생을 어떻게 할지는 온전히 그의 뜻이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그 싹을 자르자고 한다면 가장 먼저 숙청당할 것이 엠버였으니까.

“왜?”

밀러는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엠버 왕제님은 지금 큰 뜻을 품고 계십니다.”

“큰 뜻?”

“제 3군단과 4군단을 통합하실 생각이십니다.”

“내란을 일으킨다는 말이군.”

에드의 확언에 밀러가 한숨을 내쉬었다.

“국왕 전하의 서거는 급작스레 일어났고, 왕위 이양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라르스 태자 저하께서 왕국 서열 2위였고,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다고 하지만 순조롭게 넘어간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계승이었기 때문에 잡음이 많았습니다. 엠버 왕제님을 따르는 이들도 많았고요.”

에드가 팔짱을 낀 채 귀를 기울이니 밀러가 말을 이었다.

“그런 와중에 라르스 태자 저하는 왕위에 오르셨고, 엠버 왕제님을 왕도로 부르셨습니다.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추모식까지는 오라는 말씀이셨죠.”

“가면 죽을 거라고 여긴 건가?”

“예. 라르스 국왕 전하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으셨으니 후계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왕제이신 엠버님을 그냥 고이 보내주실 리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래서 3군단과 4군단을 모아서 내란을 일으킬 생각인가 본데 나는 왜 찾는 거지?”

밀러는 잠시 주저하다가 답했다.

“에드님은 트라비아 왕국으로 돌아가시는 길이 아니십니까?”

에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밀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엠버 왕제님은 진상을 알고 싶어 하십니다. 아무래도 명분이 있어야 하니까요.”

“진상을 알아도 내란의 명분이 되지는 않아.”

왕가의 치욕이라 라르스와 묻기로 한 일이다. 그런데 엠버가 그 진상을 안다고 뭐가 달라질까?

무엇보다 엠버가 그 진상을 알아내고 들고 일어나면 그때는 라르스와 적이 되어야만 한다.

밀러도 그래서 트라비아 왕국으로 가는 거냐고 묻는 거겠지만, 라르스에게 20만이나 되는 골드를 받은 상황에서 엠버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엠버 왕제님은 선왕의 사랑을 듬뿍 받아오신 분입니다. 선왕을 사랑하는 마음도 지극했던 분이고요. 명분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진상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 아들 된 도리 아니겠습니까?”

밀러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에드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그만 가봐.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밀러는 가만히 에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순순히 물러났다. 에드는 더는 귀찮은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사흘 후에 그들의 앞에 나타난 대군을 등지고 말을 탄 엠버가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딘가 수척해 보이던 엠버는 군말하지 않고 에드를 향해 말을 몰아 다가왔다.

전대 국왕이 죽어서 왕위에 오른 라르스도 그렇지만 제 3군단과 4군단을 끌어 모아 군대를 만들어낸 엠버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가까이 다가온 엠버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얼굴 한 번 보기 힘들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