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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49화 (149/202)

#149

긴밤

모든 걸 포기한 듯 보였던 블레이크의 검이 검게 변하는 순간 에드는 주저하지 않고 화살을 날렸다. 블레이크가 그대로 포기했다면 이기어시로 날린 화살이었으니 거뒀을 테지만, 그는 기어이 살의를 품은 채 론멜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래서 화살의 속도를 높였다. 날아가는 방향으로 이기어시를 사용하면 그 속도는 한줄기 섬전이 된다. 그대로 상대의 뒤통수를 뚫는 것을 보고 에드는 활을 거두고 잠시 기다렸다.

론멜이 자신이 숨은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그에게 발각될 일은 없었다.

리베라와 론멜이 떠나는 것을 본 에드는 블레이크의 시체로 다가가서 이마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냉기로 얼어있던 머리가 화살을 뽑아내니 박살 났다.

교황 밀로토에 비하면 미천했지만, 마스터 팔라딘이라 그런지 제법 경험치가 들어왔다. 에드는 기척을 지운 채 총본회를 나와 호텔로 향했다.

국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에 갑자기 일어난 지반의 붕괴로 인해서 건물들이 쓰러진 탓인지 왕궁에서 나온 병력들이 왕도 곳곳에 불을 켜고 모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에드는 그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히 움직였다. 어차피 어두운 밤에 움직이는 에드를 볼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기에 돌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왔던 에드는 자신의 방에 모인 이들을 볼 수 있었다.

“형.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에드는 디에고가 대표로 나서서 묻는 물음에 뺨을 긁적였다.

입이 무거운 노리스는 이번 일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었는지 그들은 모두 에드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걸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할까? 이들에게 숨긴 것은 이 일이 권력에 대한 암투였기 때문이었는데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화살집에서 화살을 하나 꺼냈다. 시트라가 직접 뽑아낸 화살. 성물이 열 개 넘게 들어간 데다가 제대로 신성을 담아 준 화살.

그걸 본 아린은 단번에 보통의 물건이 아닌 것을 알아본 것 같았다.

“그게 뭐죠?”

“시트라가 강림해서 직접 만들어준 화살입니다.”

“예?”

에드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강림의 여파로 왕도 일부가 파괴됐고, 그것 때문에 일어난 소란입니다.”

테인이 아린에게서 화살을 넘겨 받고는 외눈 안경을 돌리며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는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진짜로 신이 강림한 건가?”

“예.”

“대악마라도 잡았나?”

에드는 그 물음에 미소를 지었다. 3영웅 중에서도 신의 강림을 보는 것은 펜드래건 혼자다. 그때는 아스트론이 강림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악마를 잡고 나서야.

그랬기에 테인이 저리 물어보는 것이리라.

에드는 그 물음에 고개를 내젓고는 답했다.

“조금 갑작스럽게 나타났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해드리기 힘들지만, 덕분에 좋은 무기를 얻었습니다.”

테인은 잠시 에드를 바라보았다. 악마와 관련된 일이었다면 에드는 숨기지 않았다. 그런 에드가 말을 돌리는 것을 보면 분명 이번 일은 일행들에게 별로 알리고 싶지 않은 내용이리라.

“신이 직접 만들어줬다고 하니 보통 물건은 아니겠군. 앞으로의 사냥에 큰 도움이 되겠어.”

덱스도 테인의 손에서 화살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만졌을 때는 특별한 것이 없었기에 돌려주며 물었다.

“그런데 론멜은 어디 간 거야?”

“볼 일이 있어 총본회로 갔습니다.”

성기사단의 권력 구도에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었다. 마스터 팔라딘이 무력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잘못된 길을 택했으니 교황이 바뀌면서 그들의 구조도 변화가 오리라.

론멜이 어찌 될지는 그가 돌아오고 나야 알 것 같았다.

리베라를 따라서 결국 프레디 추기경을 만나러 간 론멜은 그녀의 뒤에 말없이 서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성기사단의 선배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온 데다가 마스터 팔라딘 블레이크는 죽었다.

그가 먼저 살의를 내비쳤고, 위계를 무시했으니 마땅하다 여겼지만, 자신이 존경해 온 이가 죽었으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무거운 표정으로 서 있는 론멜을 바라보던 프레디 추기경은 리베라에게 시선을 주었다.

왕도에 큰 소란이 있는 지금 그녀가 자신을 왜 찾아왔을까?

자신의 거처 앞을 성기사단이 막고 있던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대체 그들을 어떻게 뚫고 이곳까지 온 건가 싶기도 했다.

“무슨 일로 성녀님께서 이 늦은 밤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리베라는 프레디 추기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파괴의 신 시트라와는 잘 맞아 보이지 않지만, 추기경에 오를 정도의 신성력을 품은 이였다.

게다가 그를 따르는 이들도 제법 된다. 다만 교단의 고위층에서는 그를 따르는 이들이 없었을 뿐이다.

“오늘 밤. 교황 성하께서 태자 라르스를 암살하기 위해 총본회를 나섰어요.”

프레디 추기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말입니까?”

리베라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프레디 추기경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선을 넘었군요.”

“국교에서 내려오는 것은 물론이고 탄압까지 당할 수 있는 일이죠.”

“그걸 막아달라고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프레디 추기경의 물음에 리베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교황 성하와 그분의 그림자들은 제가 막았습니다.”

론멜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녀가 에드의 방에서 나온 것을 떠올렸다. 하긴 에드가 움직였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일이다.

프레디 추기경은 가만히 리베라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설마 죽은 겁니까?”

리베라는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예. 마지막에는 시트라께서 은총을 거둬가셔서 신성 주문조차 펼치지 못했죠.”

프레디 추기경은 그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교황 밀로토의 신성력은 굉장히 뛰어났다. 죽이고 싶다고 죽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트라가 은총을 거둬갔다면 그는 죽지 않았다고 해도 교황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직접 죽이신 건 아닐 테고, 누구의 도움을 받으셨습니까?”

“그건 알려드릴 수 없어요.”

프레디 추기경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 교인입니까?”

리베라가 고개를 내젓는 것을 보고는 프레디 추기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시트라께서 은총을 거둔 다음에 죽었습니까?”

리베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프레디 추기경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교황을 죽인 이를 잡아야만 했으니까.

“그는 실종으로 처리될 거예요. 신의 은총이 사라지고, 그의 몸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으니까요.”

“그럼 교황 성하와 그림자들을 죽인 이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리베라는 에드를 믿었다. 그가 교황의 죽음에 대해 떠벌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프레디 추기경은 리베라의 말을 듣고 마음을 굳혔다.

“그럼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리베라는 지금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을 꺼냈다.

“제 32대 교황에 올라주세요.”

프레디 추기경의 표정이 싹 굳었다. 리베라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교단을 바꿔요. 함께.”

프레디 추기경은 그 말에 리베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흔들렸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신성력이 특출나게 뛰어났고, 그런 그녀를 눈여겨보았던 교황 밀로토의 손에 이끌려 성녀가 되었다.

성녀의 뛰어난 신성력과 신성 주문을 다루면서 밀로토는 그녀를 자신의 입맛대로 굴렸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 부려왔던 것.

그런데 지금 그녀는 밀로토에게 짓눌리던 것을 뿌리치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를 안타깝게 여기던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리베라를 바라보던 프레디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선 블레이크 경을 설득해야겠군요.”

마스터 팔라딘은 시트라 교단의 실질적인 무력을 담당하는 이들. 그의 발언도 상당한 무게가 실린다.

교황 밀로토가 사라졌다고 해도 그의 편에 선 추기경들이 있다. 그런 그들을 누르기 위해서라면 성녀의 발언권도 필요했지만, 마스터 팔라딘도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마스터 팔라딘이 성기사들과 함께 거처를 막고 있었는데 이들은 어떻게 들어온 걸까?

그때 론멜이 입을 열었다.

“마스터 팔라딘은 위계를 무시하고 성녀님을 해하려는 하극상을 벌였기에 즉결 처형했습니다.”

“즉결 처형?”

“성녀님에게 살의를 품었던 만큼 어쩔 수 없었습니다.”

프레디 추기경은 가만히 론멜을 바라보았다. 성기사단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가 성기사단의 말단이라는 것은 기억이 났다. 그런 그가 마스터 팔라딘을 즉결 처형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프레디 추기경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말했다.

“그럼 우리를 막을 사람은 없겠군요. 성기사단의 대표로는 자네가 올 건가?”

“그러겠습니다.”

부단장이나 몇몇 선배들이 남았지만, 그들은 모두 제압당한 상태. 지금이라면 남아있는 성기사라고는 교관들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프레디 추기경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리베라와 론멜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밤이 가기 전에 마무리 지읍시다.”

검은 제복을 입은 채 창가에 서서 왕궁 너머 왕도를 바라보던 라르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지 파악이 됐나?”

“무너진 건물 아래로 지하 통로가 발견되었습니다.”

“지하 통로?”

“예. 왕궁으로 진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라르스는 그 말에 인상을 굳혔다.

“다른 쪽은 어디로 이어지던가?”

“시트라 교단의 폐 사원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라르스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왕궁으로 들어오는 길은 폐쇄하도록.”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왕권 이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왕궁의 비밀 통로들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 왕궁의 비밀 통로이기 때문에 차기 국왕인 자신이 직접 확인해야 할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나?”

“공간이 도려내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반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라르스는 잠시 고민하며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왕도에서 갑자기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준비해라. 잠깐 다녀올 곳이 있다.”

“예. 준비하겠습니다.”

호텔에서 일행들에게 설명해주고 그제야 쉴 시간이 생긴 에드가 편히 침대에 누웠을 때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수많은 말발굽 소리.

못해도 백은 되어 보이는 말발굽 소리에 에드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 소란을 들은 이들이 하나둘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제가 가보죠.”

에드가 먼저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그의 뒤로 아린이 따라 붙었다.

“같이 가요.”

에드는 그 말을 듣고 로비로 내려갔다. 말발굽 소리가 멈추고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빠르게 로비의 좌우로 늘어섰고, 곧 라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제복을 입고 들어오는 라르스는 전과 또 달라 보였다. 태자였던 때와는 다른 분위기.

국왕이 죽고 그 자리에 내정된 것만으로 저렇게 제왕의 기도를 뿜어낼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라르스는 마치 잘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으로 서서 일행을 돌아보았다.

“오늘 밤 있었던 일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에드는 태연하게 답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엄청 시끄럽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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