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42화 (142/202)

#142

뻔뻔하게

왕도 시무스의 밤하늘을 환하게 밝힌 푸른 빛줄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시트라 교단의 총본회에서 바로 알아보았다.

최소 상급 악마를 제물로 바쳐서 신의 축복이 신성력의 형태로 떨어져 내린 것이라는 것을.

왕도에 상급 악마가 나타났다? 이건 시트라 교단의 총본회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첫 째로 자신들의 무능이 알려질 일이고, 둘 째로 하필이면 떨어져 내린 신의 축복이 아스트론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시트라 교단이 국교로 있지만, 실질적으로 저만한 신의 축복을 내려받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새벽에 일어난 일이라 그걸 본 이들은 많지 않다고 해도 그들이 곧 입소문을 내다보면 아스트론 교단의 입김이 조금씩 커질 수 있었다.

그래서 곧장 성기사를 파견했다.

마스터 팔라딘 블레이크가 다른 성기사들을 데리고 급히 출동한 이유다.

그렇게 달려온 마스터 팔라딘 블레이크는 심기가 불편했다.

이곳에 이미 아스트론의 성기사가 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스트론의 예언을 수행하는 성기사라고 들었는데 론멜과 함께 있다고 했다.

날이 밝으면 만나기로 했는데 오늘 이곳에서 상급 악마를 사냥하고 제물로 바쳤다?

론멜이 함께 있는데?

상급 악마를 잡았다고 해도 시트라 교단의 총본회에 알렸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아스트론의 성기사를 만났을 때 좋게 대할 수 없었다. 자신을 소개하고 이유를 따져 물었다.

그런데 멍청한 론멜이 엉뚱하게 대신 끼어들고 있었다.

“마스터 팔라딘. 날이 밝으면 총본회로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하겠습니다.”

“론멜. 물러나라. 너에게 묻는 것이 아니다.”

론멜은 블레이크의 눈빛을 보고 인상을 굳혔다. 블레이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그 눈빛도 사납기 그지없었다. 저 표정은 극도로 화가 났을 때 보이는 표정이다.

저런 표정을 왜 짓는 걸까?

에드가 론멜의 어깨를 잡았다. 론멜이 돌아보기에 에드가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론멜이 물러나자 에드가 앞으로 나섰다.

“질문의 의도를 명확히 밝혀주시죠.”

블레이크의 시선이 에드를 향했다. 일행 중에 악마 사냥꾼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 자에 대해서는 들었다. 그런데 그 자가 성유물로 된 활을 가지고 다니는 줄은 몰랐다.

아니, 아스트론 교단에 성유물인 활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대에게 묻지 않았다.”

에드는 웃는 낯으로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선 겁니다.”

블레이크는 에드를 가만히 쏘아보았지만, 그는 태연하게 눈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조금 전 보였던 신의 축복은 최소한 상급 악마를 제물로 바쳤을 때 보일 수 있다.”

“맞습니다.”

순순히 응하자 블레이크는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물었다.

“상급 악마는 어디서 만난 건가?”

“왕도에서 만났습니다.”

“어디냐고 물었네.”

에드는 웃으며 답하고 있었지만 조금씩 눈빛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블레이크는 그 질문에 입을 열려다가 잠시 다물었다. 위치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상급 악마를 왜 지금, 이곳에서 제물로 바친 건가? 그것도 아스트론 교단의 성기사가.”

에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블레이크가 무슨 마음으로 조사하듯 말을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상급 악마의 시체가 탐이 난 거다. 그걸 제물로 바쳤을 때 얻을 수 있는 신의 축복이 탐이 났던 거다.

“아스트론 교단의 예언에 따른 퇴마행 중이었습니다.”

블레이크는 그 말에 긴 숨을 토했다. 아스트론 교단의 협조 공문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저들이 마젤타 왕국으로 넘어왔을 때.

다른 신이라고 해도 신을 모시는 처지에서 도움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젤타 왕국에서 잡은 상급 악마를 보고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제물로 바친 것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잡기 어려운 것은 둘째 치더라도 사냥한 상급 악마의 가치는 놀라울 정도니까.

“예언이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블레이크는 시선을 돌려 론멜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날이 밝는 대로 일행들과 함께 총본회로 출두해라.”

그 말을 남기고 블레이크가 떠났다. 떠난 건 그뿐이고 나머지 네 명의 성기사는 말을 탄 채 호텔 앞에서 대기했다. 날이 밝기까지 오래 남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뭘 하려는 건지 깨달은 에드가 미미하게 인상을 굳혔다.

에드는 론멜을 돌아보았다.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건 예상과 달랐다.

“론멜 경. 시트라는 예상과 다르군요.”

론멜은 그 말에 일행을 돌아보았다. 이들은 악마를 사냥한다는 것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로지 악마를 사냥하는 것에만 목적을 둔 에드와 아스트론의 예언을 따르는 이들의 숭고한 퇴마행이다.

이런 이들과 함께 움직이다가 다시 만난 마스터 팔라딘은 실망스러웠다. 지금까지는 오직 그만 믿고 따라왔는데 이렇게 실망을 안겨 줄 줄은 몰랐다.

론멜은 주먹을 꼭 쥐고는 밖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선배들이 마치 감시하듯 호텔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고 론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시트라 교단의 총본회.

그 신전의 크기는 왕궁보다 더 크고 높았다. 검은색의 벽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신전에 온 것은 론멜을 필두로 에드와 아린, 테인, 노리스가 성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신전 앞에 도착했다.

모두가 올 필요는 없다고 여겨서 덱스, 브란트, 디에고, 엠마, 더그는 호텔에 두고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디에고와 브란트를 총본회에 데리고 오는 것은 분명한 위험이었으니까.

성기사들도 아린과 에드가 함께하는 것을 보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니 어째 날이 밝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어두워서 회랑을 지나가는 길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더 밝게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비치는 빛을 지나서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신전의 대전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한 에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전의 중앙에 도착하고 보니 대전의 한 편. 시트라의 증표 아래에 높은 단이 있고, 그 위에 모여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스터 팔라딘 블레이크가 오른쪽에 서 있었고, 중앙에는 흰 수염이 가득한 노인이 서 있었다. 그의 의복을 보니 그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시트라 교단의 교황.

교황의 뒤로 비슷하게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 두 명 서 있었다. 범상치 않은 기세로 보아 아마도 추기경들이리라.

그리고 왼쪽에는 검은 옷에 얼굴도 망사로 가리고 있는 여인. 몸매가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어서 상당히 고혹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시트라 교단의 성녀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다섯 명의 인물은 그곳에서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론멜이 이를 뿌득 갈고는 말했다.

“이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론멜! 여기가 어디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입을 여는가!”

론멜은 마치 재판장처럼 꾸민 대전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들은 아스트론 교단의 예언에 따라 숭고한 퇴마행을 하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재판이라도 열 생각이십니까?”

블레이크가 이를 뿌득 갈고는 입을 열었다.

“아스트론 교단의 퇴마행을 하고 있음을 알기에 그들의 무기를 거두지 않았다.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마라!”

론멜이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리며 입을 열려고 할 때 에드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론멜은 그 손길에 에드를 돌아보고는 입을 닫았다.

에드는 자신들의 손에 무기가 들려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이 인원들이라면 얼마든지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모두 죽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왕이나 왕자에게 걸린 경험치를 생각하면 이곳에 있는 이들도 그 가치는 충분히 그에 견줄 만했다. 다만 저들을 죽이면 시트라의 노여움을 살 것 같아서 참는 것일 뿐이다.

아스트론이 실제 한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시트라도 실존할 터.

악마 잡기도 바쁜데 신을 상대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괘씸하게 구는 이들에게 굽히고 나갈 마음은 없었다.

에드가 뭔가 말을 꺼내려고 할 때 앞으로 나서는 것은 아린이었다. 그녀의 표정도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스트론의 검 아린입니다.”

아린이 자신을 소개하며 앞으로 나서자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교황 밀로트가 미소를 지었다.

“반갑네. 시트라의 가장 충실한 종인 밀로트라고 하네.”

교황 밀로트는 슬쩍 아린과 일행을 돌아보더니 말을 이었다.

“뭔가 오해가 있어 보이는데 오늘 이 자리에 그대들을 부른 것은 사실 왕국 내에 생겼던 지옥의 문을 닫아 준 것에 대해 치하하고자 하였던 것이네.”

“그런 것 치고는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군요.”

무기를 거두지는 않았지만, 지금 대전의 주위로 늘어선 이들의 수가 많았다. 수도승과 성기사의 종자들까지 족히 백 명이 넘는 이들이 이곳을 포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밀로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대들이 어젯밤 상급 악마를 죽이고 보고도 없이 그걸 아스트론에게 바친 것에 대해서는 경위를 묻고 싶군. 듣자 하니 왕도 내에서 상급 악마를 찾았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어딘가? 상급 악마를 발견한 곳이.”

아린은 그 말에 입술을 꾹 다문 채 밀로트를 바라보았다. 사실 아린도 상급 악마를 어디서 잡았는지 몰랐다.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밀로트는 그 물음에 솔직히 인정했다.

“왕도에 상급 악마가 살고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본 교단의 무능함을 알리는 일이니 바로잡고자 하려 해서 그러네.”

에드는 가만히 이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이미 상급 악마의 시체는 제물로 바쳐졌다. 아스트론이 가져간 상급 악마에 왜 욕심을 내는 걸까?

아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상급 악마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저들은 이미 의심하고 있다. 상급 악마가 어디서 나왔는지.

시트라 교단 총본회의 눈이 닿지 않는 곳.

왕궁뿐이다.

그래도 그곳에 눈과 귀를 심어 놓았을 터. 그런 그들이 왕의 죽음에 대해서 들은 걸까?

그렇다면 이해가 갔다.

상급 악마를 놓친 것은 분명 시트라 교단의 문제지만, 그 악마가 왕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면 여론몰이를 할 수 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에드는 잠시 고민했다.

라르스와 시트라 교단의 수장들.

라르스의 첫 인상은 좋았다. 그가 귀족적이었다는 것은 둘째치고 그는 10만 골드를 쾌척했으니까. 그리고 호의로 초대를 하고 떠났다.

그런데 저들은 어떤가?

지옥의 문을 닫은 일은 사실 다른 누구보다 저들에게 중요한 일이다. 그 피해는 왕국민들이 보겠지만, 제때 그것을 막지 못했다면 누가 시트라 교단을 믿었겠는가?

그런데 상급 악마의 시체를 제물로 바치면서 얻은 신의 축복을 질투하고, 이렇게 불러내서는 라르스의 약점을 잡고자 한다.

어쩌면 이들이 밀고 있는 이가 따로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저울의 추는 라르스에게 기울었다.

에드가 앞으로 나섰다.

모두의 시선이 에드에게 집중되었다.

“할 말이 있는가? 악마 사냥꾼.”

블레이크의 물음에 에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 악마를 잡은 것은 저와 노리스입니다.”

밀로트와 성녀, 블레이크를 비롯해 모든 이들의 시선이 에드를 향했다.

밀로트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랬나? 그렇다면 어디서 상급 악마를 잡았는지 알려줄 수 있겠나?”

에드는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지하수로에서 만나 잡았습니다.”

성녀가 그 말에 고개를 내젓고는 입을 열었다.

“지하수로에서 상급 악마가 나타났다면 제가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어요.”

에드는 그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성녀라면 그 정도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지금 제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겁니까?”

저들이 뻔뻔하게 나온다면 자신도 뻔뻔하게 나서기로 했다.

성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에드가 노리스를 가리켰다.

“아니면 쌍룡사의 호법승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겁니까?”

쌍룡사의 호법승.

그 이름의 무게는 시트라 교단조차 무시할 수 없다.

에드는 시트라 교단의 이들을 등진 채 노리스를 바라보며 윙크를 날렸다. 노리스는 그런 에드를 바라보다가 왼손을 들어 반장하며 답했다.

“쌍룡사의 호법승 노리스라고 합니다. 에드의 말대로 상급 악마는 지하수로에서 잡았습니다.”

블레이크가 이를 뿌득 갈더니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다!”

노리스는 반장한 채 눈을 들어 기세를 풀어냈다. 쌍룡사의 호법승인 그가 작정하고 뿌린 기세가 사방으로 뻗어갔다. 그 기세에 그곳에 있던 이들이 모두 한 걸음씩 물러났다.

특히 그 기세를 고스란히 받은 블레이크는 반사적으로 검을 반쯤 뽑았다.

“지금 호법승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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