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강화 성공
에드와 노리스가 돌아온 것은 아침 해가 밝기 전이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둘이 돌아왔을 때 아린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안 잤어요?”
“예. 기도하는 중이었는데 둘이 워낙에 빠르게 사라지더라고요. 뒤쫓아 가려고 했는데 엄두도 안 나서 포기했어요.”
아린은 성기사로서 그 신체 능력은 일행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균형잡힌 능력치의 그녀는 일행 중 에드를 제외하고는 가장 민첩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에드가 노리스와 작정하고 달려가는 것을 뒤에서 보았을 때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마치 물찬 제비처럼 치고 나가는 둘을 보니 도저히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노리스와 에드가 함께 움직였다면 악마를 상대하러 가는 길이었을 터. 에드가 갔으니 위험할 일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는 오래지 않아서 그 둘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에드처럼 심안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기감도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아린 앞에 에드가 천에 쌓인 물건을 내려놓았다. 그걸 본 아린은 눈매를 살짝 좁혔다.
“이건···.”
“상급 악마에요. 혈마석을 가지고 있었죠.”
아린도 그걸 느꼈기에 말을 잇지 못한 것이었다. 다음 혈마석을 추적하지 못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혈마석을 가진 악마를 잡아 올 줄은 정말 몰랐다.
“혈마석을 꺼내도 될까요?”
아린이 묻자 에드가 노리스를 돌아보았다.
“이 악마는 노리스의 나침반으로 찾았으니 아무래도 노리스도 나침반에 기록해야 될 것 같습니다. 노리스. 기록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노리스는 그 물음에 대답 대신 나침반을 악마의 시체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답했다.
“이대로 십 분 정도 있으면 됩니다.”
“시체가 사라진다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하하하하. 그런 것은 없습니다.”
에드는 그 말에 안도했다. 이렇게 되면 노리스가 함께한다고 해도 아린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건 상급 악마였다. 상급 악마를 기록했다면 노리스의 나침반은 최소 상급 악마만 쫓는다는 얘기였다. 사실 상급 악마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노리스의 나침반은 앞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가 확실히 전력이 된다는 것은 이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악마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거침이 없다는 것과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도.
그래서 에드는 쌍룡사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악마의 시대 1에서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던 쌍룡사인데 그들이 가지는 무게감이 남다르니 조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침반이 십 분이 지나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리스는 그것을 품에 넣고는 한발 물러났다.
아린은 살짝 목례하고는 악마의 배를 갈라서 혈마석을 꺼냈다. 혈마석을 손에 쥔 아린이 가만히 집중하며 혈마석을 살피는 것을 보며 노리스는 감탄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악마들에게는 혈마석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저 혈마석을 통해서 아린 일행은 지금까지 아스트론의 예언에 따라 퇴마행을 다녔다고 했다.
홍련왕 카루아리스가 내건 예언과는 다른 예언이었지만, 그 예언을 차근차근 추적하다 보면 어떻게든 대악마와 만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대악마의 수를 어떻게든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최선이다.
여섯 영웅 중에 적어도 둘 이상이 이 팀에 있다고 확신했기에 노리스는 가만히 아린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아린이 그렇게 혈마석을 이용해서 추적을 마쳤다.
에드는 그녀가 눈을 뜨자 물었다.
“이번에는 어딥니까?”
아린은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답했다.
“아무래도 트라비아 왕국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정말요?”
“예. 위치는 트라비아 왕국에 돌아가서 지도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에드는 그 말에 표정을 잠깐 굳혔다. 트라비아 왕국으로 돌아가면 네프사엘이 보내는 마물과 또 싸워야만 한다. 지난한 여행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상급 악마들을 처리하다 보니 이제는 슬슬 대악마가 직접 움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각보다 상급 악마의 수는 얼마 되지 않으니까.
혈마석을 통하고 악업을 쌓아서 상급 악마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슬슬 그것도 바닥이 날 때가 되었다.
그러나 대악마를 만나봤던 에드는 아직은 부족함을 알았다. 이번에 오른 스탯을 민첩에 투자한 에드는 아린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악마는 어떻게 할 거죠?”
“제물로 바쳐야죠.”
“그런데 제가 한 게 없어서요.”
에드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린의 성장은 자신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 터였다. 그런 그녀에게 상급 악마의 시체는 제물로 바치기에 좋았다.
론멜이 일행이 되었다고 하지만 에드에게는 역시 아린이었다. 에드는 그런 아린에게 말했다.
“이번에 지옥의 문이 열렸을 때 아린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죽을 뻔했어요. 그래서 알았죠. 내 앞을 막아줄 사람이 있을 때 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요.”
아린도 대악마의 손가락을 막을 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달려가서 날아오는 손가락을 막았고, 론멜의 도움으로 확실히 잘라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린도 그때 그 손가락은 절대로 에드가 피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건 일종의 육감이었고 에드의 말을 들으니 그도 그걸 알고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에드는 어떤 전투에서도 적에게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었다. 그런 에드가 피하지 못할 공격은 자신이 막아야 했다.
그러자면 자신도 더 강해져야만 했다. 고작 손가락 하나도 간신히 막았으니까.
“알겠어요.”
에드가 웃으며 빙결의 활을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 성화로 제물을 바칠 때 이 활도 같이 놓을 수 있을까요?”
“예?”
성화는 삿된 것을 태우는 것이다. 그러니 빙결의 활이 탈리는 없지만 그래도 불길 속에 활을 넣는다는 생각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에드는 슬쩍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활에 깃들지 않을까 싶어서요.”
사실 가장 뛰어난 활을 찾으라고 한다면 사냥의 신인 다이아나의 성유물인 활을 찾는 것이 좋을 테지만, 그걸 얻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러니 빙결의 활에 아스트론의 축복이 담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스트론이 칠채비도 모두에 귀환의 권능을 담아준 것을 보니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진짜로 빙결의 활에 어떤 식으로든 아스트론의 축복이 담긴다면 도움이 될 테니까.
“타서 없어질 수도 있어요.”
에드는 그 말에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만약 그렇다면 칠채비도를 믿으며 다른 활을 구해봐야죠.”
사실 칠채비도를 얻지 못했다면 주력 무기인 빙결의 활로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성유물인 칠채비도가 있기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아린은 살짝 걱정됐지만, 자신이 믿고 있는 아스트론을 믿었다.
“내 탓 하기 없어요.”
“당연하죠.”
이건 일종의 강화다. 그리고 모든 강화는 물건이 깨질 각오를 하고 돌리는 것.
그걸 각오하고 돌리는데 남 탓이라니? 그것도 아린에게?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에드의 진심이 담긴 대답을 들은 아린이 기도를 시작했다. 푸른 성화가 타오르며 상급 악마의 몸이 타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드는 가만히 빙결의 활도 성화의 불길이 옮겨붙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상급 악마 정도 되니 그녀에게서 하늘로 솟구친 빛줄기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빛줄기가 만나 연결되었다. 상급 악마를 제물로 바치면 신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는가 보다.
그렇게 하늘과 연결된 빛줄기를 바라보며 에드는 양손을 모아 잡고 기도했다. 제발 빙결의 활에도 아스트론의 축복이 깃들기를.
그 정도는 되어야 대악마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으려니 일행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도 이제는 이 정도 규모의 푸른빛이 내려올 때는 최소 상급 악마는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보니 대체 저 상급 악마의 시체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궁금했다.
에드는 그들의 관심에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상급 악마를 제물로 바치는 일인 데다가 지금은 빙결의 활 강화까지 걸려 있었다.
괜히 떠들다가 부정이라도 타면 안 된다.
그렇기에 에드도 진심으로 아스트론에게 기도했다. 제발 빙결의 활에 축복을 걸어달라고.
그렇게 한참 기도하고 있으려니 곧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던 신성력의 폭포가 끝났다. 상급 악마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빙결의 활만 남아있었다.
에드는 빙결의 활 색이 아예 바뀐 것을 보았다. 은은한 하늘빛이 도는 활대를 본 에드가 조심스럽게 활을 집어 보았다.
그때 아린이 눈을 뜨고는 에드가 들고 있는 활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는 감탄했다.
“이게 되네요?”
“어떤 것 같아요?”
에드가 건네준 활을 받아서 살피던 아린이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성유물이나 다름없어요. 진짜 아스트론께서 축복을 내려주신 것 같아요.”
에드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외형만 바뀐 것이 아니라 활이 품은 신성력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이 활은 빙결 속성과 신성 속성을 함께 품었다.
악마를 상대하는데 있어서는 최고의 무기가 되었다고 봐도 좋았다.
아린은 그제야 자신이 이번에 얻은 신성력의 크기를 알 수 있었다. 상급 악마를 이미 제물로 바쳐봤기에 알았다.
자신이 이번에 얻은 신성력의 크기가 저번보다 줄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신성력이 저 활의 축복에 쓰였다는 것도.
그랬기에 아린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이번 상급 악마 사냥에는 그녀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는데 제물로 바쳐서 신성력을 얻으려고 하니 마음에 걸렸는데 그 신성력이 활에 전해졌으니 다행이었다.
그래도 상급 악마라서 나뉘었다고 해도 상당한 양이었다. 아직 대악마의 손가락을 바치고 얻었던 신성력도 다 체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 얻은 신성력이었다.
이걸 체화하는 것도 일이었다.
“대체 상급 악마는 어디서 잡아 온 거야? 그 활은 또 뭐고?”
론멜이 가장 먼저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에드는 그런 론멜을 바라보았다. 론멜의 눈에는 순수한 의문만 담겨 있었다.
질투는 보이지 않았기에 에드가 순순히 답해주었다.
“노리스의 나침반으로 쫓은 악마입니다. 무리 없이 잡았고, 혹시나 해서 빙결의 활을 성화로 제물로 바치는 악마와 함께 놓았더니 축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신의 축복이 그렇게 간단히 받는 거라고?”
간단 하다고는 할 수 없다. 상급 악마를 죽이고 그걸 바치면서 얻은 축복이니까.
기브 앤 테이크였다.
론멜이 어이없어했지만 여기 결과물이 있었다. 에드가 활을 챙기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왕도를 이렇게 요란하게 말을 달릴 수 있는 이들이 누굴까?
에드는 호텔의 창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그리고 달려오는 이들을 보았다.
검은색의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이다. 시트라의 성기사들.
아마도 왕도에서 갑자기 솟구친 아스트론의 신성력에 급히 나온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론멜이 날이 밝으면 볼 수 있을 거라고 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만나게 됐다.
일행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호텔 로비로 내려갔고, 다가온 성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다섯 명의 성기사들이었다. 에드의 시선은 그들의 가장 선두에 선 이를 향했다.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남달랐다. 한 자루 검과 같은 기세를 뿜어내는 이였다.
신성력만으로 따진다면 론멜이 더욱 뛰어났다. 하지만 실력은 확실히 달라 보였다. 보는 순간 그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시트라 교단의 마스터 팔라딘이다.
“마스터 팔라딘! 무슨 일이십니까?”
론멜이 놀라 외치며 묻는 말에 상대는 투구의 바이저를 올리고는 일행 중 아린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시트라 교단의 첫 번째 검. 블레이크라고 하네.”
“아스트론의 검인 아린이라고 합니다.”
블레이크는 아린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거두절미하고 묻지. 조금 전 나타난 신의 축복은 어떻게 된 건가?”
얼씨구? 갑자기 취조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