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루카스
악마를 느끼는 건 에드와 아린만이 아니다.
브란트와 디에고를 처음 본 순간 악마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을 감지할 정도로 론멜은 실력보다 감지력이 뛰어난 이였다.
그런 그가 혈마석의 악마를 눈앞에서 보고도 반응하지 못할 리가 없다. 과연 예상대로 악마를 파악한 론멜은 반사적으로 검을 뽑으려고 했다.
그래서 에드가 그 손목을 잡아야 했다.
론멜이 바라보자 에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만나보니 알겠다.
심안으로 본 상대의 혈마석이 강화된 것도 문제지만, 이 자 중급 악마가 아니다.
일행과 함께 최초로 만난 상급 악마였다.
여기서 검을 뽑으면 론멜은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컸다. 에드가 그를 말린 것은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지만, 시장이자 장군인 토란에게 말을 건 자는 알아보았다.
성기사가 둘이나 있으니 그들이 악마를 알아보듯 악마도 그들을 알아본 것이 틀림없었다.
“무슨 일인가?”
토란의 물음에 사내가 대답했다.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뒤에 계신 분들은 누구십니까?”
“시트라의 성기사와 아스트론의 성기사님이네.”
사내는 검지와 중지를 모아 미간에 가져다 대고 고개를 숙였다.
“파괴는 끝이 아닌 시작일지니. 루카스라고 합니다.”
론멜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에드의 눈빛을 이해한 건지 그도 검지와 중지를 미간에 모으고 인사를 받았다.
“파괴는 끝이 아닌 시작일지니. 시트라의 검 론멜이라고 합니다.”
루카스는 토란에게 시선을 주었다.
“급한 내용입니다.”
토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에게 시선을 주었다.
“잠깐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먼저 식사들하고 있는 것이 어떻겠소?”
“기다리죠. 차를 내주시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하리다.”
토란이 손짓하자 집사 하나가 다가와 그들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에 도착해서 시종이 차를 가져다주자 론멜이 손짓했다.
론멜의 손짓에 시종이 물러나자 그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아까 루카스가 너희가 말한 중급 악마 맞지?”
아린이 고개를 끄덕일 때 에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린이 무슨 소리냐는 듯 돌아보기에 에드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중급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상급 악마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린이 그 말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상급 악마란 어떤 존재들인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탓이다.
후안에게 들은 대로라면 상급 악마는 홀로 도시를 파괴할 수 있는 자다. 후안이 사령술을 익혀서 더 빠르고 쉽게 파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상급 악마라면 적어도 그에 준하는 자들이다.
“상급 악마라고요?”
“예. 이렇게 갑자기 마주칠 줄은 몰랐습니다.”
에드는 자신이 꾸준히 강해졌음을 안다. 이번에 펠만을 죽이면서 레벨이 하나 더 올랐으니 상급 악마랑과도 해볼만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자리에서 싸워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만약 상급 악마와 싸운다면 다른 이는 몰라도 토란과 론멜은 그 자리에서 죽었으리라.
론멜의 실력은 아직 중급 악마랑과 싸우는 것도 무리다. 그건 그의 뛰어난 악마 감지와는 다른 얘기였다.
에드는 론멜을 바라보며 말했다.
“악마를 사냥하는 것은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냥해야지. 계획 없이 일을 벌인다면 그 피해는 주변으로 퍼집니다. 조금 전에도 토란 시장이 죽을 수 있었습니다.”
론멜도 죽을 수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에드의 말을 들은 론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할 건가?”
“우선 그자가 누군지 파악한 후에 조사부터 해야죠.”
론멜은 지금까지 악마를 둘 잡았고, 마물도 숱하게 잡았다. 하지만 중급 악마도 아니고 상급 악마라는 놈들은 상대해본 적이 없었다.
“좋아. 그럼 그자가 누군지는 내가 시장에게 물어보지.”
에드는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에 토란이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악마인 루카스는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시작하지.”
토란이 손짓하자 곧 식사가 준비되어 나왔다. 에피타이저로 입맛을 돋우는 사이에 론멜이 물었다.
“시장님. 루카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루카스? 내 부관 말인가?”
“예.”
토란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의욕이 넘치는 친구지. 중앙에 있어도 될 친구인데 내 곁에 남아있는 친구일세.”
“의리가 있는 친구군요.”
“그렇지. 의리가 있네.”
그 뒤로도 식사가 끝날 때까지 토란은 루카스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루카스에 관한 신뢰가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장군의 총애를 받는 루카스. 덕분에 그가 이곳뿐만 아니라 마젤타 왕국의 군대에서 가지고 있는 입지도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간 일행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테인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시장이 악마던가?”
에드는 고개를 내젓고는 답했다.
“아뇨. 하지만 시장의 측근이 악마였습니다.”
덱스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물었다.
“그럼 지금 당장 치러 갈 거야?”
“아니.”
에드는 딱 잘라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 악마는 상급 악마야. 애초에 상급 악마였는지 아니면 상급 악마로 올라선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해.”
에드의 말에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덱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움찔거렸고, 브란트는 심각하게 표정이 굳어졌다. 디에고는 살짝 긴장한 게 보였고, 테인은 눈을 번뜩였다.
지금까지 상대한 악마도 대단하지만, 상급 악마에 비할 데가 아니었다. 상급 악마는 트라비아 왕국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데 이렇게 마젤타 왕국에서 만나게 됐으니 테인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이해가 갔다.
에드는 그들의 분위기를 읽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그는 내성에 사는 것이 아니라 외곽에 나와서 따로 저택에 살고 있다고 하니 사냥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상급 악마를 처음 상대하는 것이다 보니 무턱대고 돌입하기보다는 계획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에드의 시선이 디에고를 향했다.
“후안 좀 부탁해.”
디에고가 후안을 소환했다. 전에 역소환 된 뒤로는 보지 못했었는데 그간 디에고도 모두 회복했고, 후안도 회복이 되었다.
후안이 모습을 드러내자 론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디에고가 악마의 힘을 지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령술사 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소환한 것이 상급 악마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에드가 이번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상급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상급 악마를 상대해 본 적이 없어서 그 강함을 정확히 모르겠는데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요?”
-상급 악마? 이름은?
“모릅니다.”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는 아나?
“아뇨.”
후안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일행들을 돌아보고는 물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어떻게 그 자의 전력을 예측할 수 있겠나?
에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마젤타 왕국에는 중급 악마조차 구경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런 곳에서 갑자기 상급 악마가 튀어나왔다는 것은 믿기 힘들더군요. 혹시 중급 악마가 상급 악마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까?”
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악업을 쌓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악업이요?”
-악마들이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올라와 있는 이유지. 악업을 쌓으면 격을 올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어지간한 악업으로는 격을 올리지 못하네.
에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마젤타 왕국에서 파견한 5만의 병력. 그들의 매복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큰 피를 흘렸을 것이다. 물론 그 5만의 병력은 매복이 발각되어 트라비아 왕국군에 전멸당했다고 한다.
그 계획을 루카스가 해낸 것이라면 어떨까?
그 5만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다면?
“5만 명 정도를 불에 태워 죽이는 일에 가담했다면 가능하겠습니까?”
후안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악업이라면 가능하지. 하지만 그만한 악업을 저질렀다면 들키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후안의 시선이 론멜을 향했다.
-이곳이 마젤타 왕국이라면 시트라의 검이 그걸 가만두고 봤을 리가 없잖은가?
론멜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거 나 들으라고 한 말이야?”
에드는 론멜을 말리고는 후안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상급 악마에 올라온 자라면 얼마나 강할까요?”
후안은 그 말에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 내게 물었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었을 거라고 확언해 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 보니 그정도는 아니군.
후안은 냉정하게 말했다.
-너희 전부 나선다면 하나나 둘 정도 죽는 선에서 잡으면 다행이겠지.
그 말을 들은 모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디에고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그렇게 강해요?”
-상급 악마가 되면 격이 달라져. 그 강함은 상상 이상일 거다.
테인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말은 사실이야. 처음 상급 악마를 마주한 날 일행을 하나 잃었다. 펜드래건이 그렇게 강했는데도 말이지.”
에드는 그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악마의 시대에서도 상급 악마를 만나는 것은 이벤트로 다뤄질 만큼 중요한 일이다.
동료 중 하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피나는 레벨 업과 좋은 장비를 갖추지 못하면 순삭당하는 경우가 있다. 간격을 보는 에드도 주인공은 살렸지만, 자신이 다루지 못하는 조연들은 살리지 못했었다.
그만큼 상급 악마는 강하다.
에드는 후안의 얘기에 주눅이 든 이들을 보고 손뼉을 쳤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에드가 입을 열었다.
“이미 악마들과 싸운 경험으로 미루어서 우리는 호흡이 잘 맞아요. 아린이라면 능히 상급 악마의 공격도 받아낼 수 있을 테니 전처럼 형님이 봉인의 사슬로 힘을 줄이면 저와 덱스가 공격할게요.”
에드는 디에고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디에고.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으니 이번에는 이곳에서 엠마를 지켜. 괜찮지?”
디에고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 악마가 강하니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엠마를 혼자 이곳에 둘 수는 없었다.
“알겠어요.”
브란트가 디에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줬다.
“너니까 믿고 맡긴다.”
엠마를 지키는 일. 브란트는 그것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곁에 있다가 폭주하면 더 위험하다고 여겼기에 디에고에게 엠마를 부탁했다.
디에고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드가 론멜에게 시선을 돌렸다.
“론멜.”
론멜은 그 말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난 악마를 상대하는데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론멜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이 시트라를 섬기는 검인 내 의무다.”
론멜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를 안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제발 자기 앞가림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좋습니다. 그럼 론멜은 덱스와 함께 형님이 루카스의 힘을 봉하고 나서 공격해주세요.”
“합을 맞춰달라는 것은 들어주지.”
그렇게 확답을 들은 에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상급 악마를 사냥하러 가보죠.”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카스는 저택의 테라스에 서서 자신의 집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읽고는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움직이는군.”
저녁에 만났던 성기사 둘. 그 둘이 자신을 인지했으니 바로 반응이 올 거라 여겼더니 역시나 밤이 깊어지니 다가오고 있었다. 루카스는 군복을 정돈하고는 허리에 차고 있는 레이피어를 뽑아 든 채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이들을 향해 먼저 움직였다.
저들이 손발을 맞추도록 기다려줄 마음은 없으니 선공을 취하기로 했다.
이번에 격이 오른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기에 딱 좋은 상대, 딱 좋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