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르세뉴 시의 악마
시트라의 검. 성기사 론멜.
그는 에드가 끓여준 라볶이를 먹고는 그 맛에 푹 빠져서인지 일행에 동참했다. 마침 가는 방향이 같다고 했던가?
그런데 이 론멜이라는 이의 태도가 덱스랑 다를 바가 없어서 그런지 둘이 아주 죽이 잘 맞았다. 시시덕거리며 말을 모는 둘을 보고 에드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론멜은 처음 만남과 다르게 어딘가 가벼워 보였다. 그래서 덱스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지만.
그런데 진짜로 마젤타 왕국에 들어오고 난 후에는 악마와 마물들이 습격하지 않았다.
덕분에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론멜은 브란트와 덱스가 대련하는 것을 보고 끼어들었다가 둘에게 박살 난 뒤로는 매일 대련에 나섰다가 얻어터지는 중이다.
미래 예지와 전투 예측을 하는 둘을 상대하는 것은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에드나 아린 정도나 되어야 둘을 상대할 정도의 신체 능력이 있으니까.
매일 깨지면서도 론멜은 포기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성기사인 주제에 회복 마법은 쓰지 못해서 아린에게 회복 주문을 매일 같이 받는 중이었다.
중간에 아린에게 치근덕거리다가 해머질 한 번에 기절한 뒤로는 그런 것도 없어졌다.
그렇게 론멜이라는 새로운 일행이 생겼다고 혈마석의 악마를 추적하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렇게 사흘 만에 일행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르세뉴 시.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저 객식구였던 론멜의 가치가 빛나기 시작했다.
르세뉴 시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론멜을 보자 검지와 중지를 이마에 대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론멜은 그들에게 축원 한 마디씩을 해주고는 검문도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마젤타 왕국에서 활동에 제약을 받을 줄 알았는데 론멜 덕에 쉽게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여기가 목적지라고?”
“예.”
“그런데 악마를 잡는 거라면 내가 도와주지.”
에드는 그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이곳에서 만나게 될 혈마석의 악마는 최소한 중급 이상. 강화된 혈마석을 사용한 녀석이라면 론멜 정도의 실력이라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브란트는커녕 덱스에게도 얻어터지는 그에게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에게 도움은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에 악마가 있다면 아마도 뭔가를 꾸미고 있었을 텐데 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흐음. 정보? 그거라면 어렵지 않지. 내가 교단에 가서 알아보고 올 테니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어.”
론멜이 손을 휙휙 내젓고는 후다닥 떠났다. 론멜을 떨어트려 놓는 데 성공한 에드가 일행을 돌아보았다.
“우선은 여관을 잡고 각기 흩어져서 알아보도록 하죠.”
여관을 잡은 일행은 팀을 나눠서 르세뉴 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에드는 디에고와 한 팀을 이룬 채 도시를 돌아다니며 탐문을 하는 중이었다.
아직 낮이라 제리의 도움을 얻을 수 없어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디에고의 감지력도 많이 올랐으니 탐문과 병행하기로 했다.
소문을 듣기 좋은 곳은 시장이기도 하기에 에드는 시장을 찾아갔다. 디에고가 시장에서 파는 사탕을 탐내기에 사탕을 하나 사주니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내밀기에 에드는 결국 두 개를 사줘야 했다.
엠마 것까지 사탕을 산 디에고가 희희낙락하는 사이에 에드는 사탕 가게 주인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혹시 도시 내에 이상한 일은 없었습니까?”
에드의 물음에 사탕 가게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일?”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진다거나 하는 일 말입니다.”
사탕 가게 주인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답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치안대가 나섰겠지. 하지만 내가 들은 것은 없네.”
“그렇습니까?”
악마라고 사람들을 다 잡아먹지는 않는다. 저급한 하급 악마는 닥치는 대로 잡아먹지만, 중급 악마만 돼도 사람들에게 뒤섞여서 잘 티가 나지 않는다.
특히나 라그록스의 혈마석을 얻은 악마들은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쉽게 발각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에드도 막대 사탕 하나를 사서 입에 물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시장을 돌면서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사면서 물었는데 역시나 악마에 대한 것은 찾지 못했다.
그래도 시장을 다 돌아본 결과 적어도 시장 근처에는 악마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드가 디에고와 별다른 소득도 없이 돌아왔을 때 다른 이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아린도 교회에서 쓸만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고 했다.
브란트와 함께 나갔던 덱스도 별다른 건 알아내지 못했고, 모두 모이니 군것질거리만 잔뜩 사 왔다. 아무래도 뭔가를 물을 때는 뭐라도 하나 사야 하다 보니 일행이 모아온 것들이 한가득하였다.
그렇게 모은 걸 늘어놓고 간식 시간을 가졌다. 디에고가 사온 사탕을 먹으며 엠마가 행복한 미소를 지을 때 에드는 양고기 꼬치구이를 먹고 있었다.
마젤타 왕국의 향신료들이 매운맛이 많아서인지 입맛에 잘 맞았다.
그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론멜이 후다닥 달려들었다.
“아니! 내가 없는데 간식 타임이야?”
론멜도 꼬치구이를 들어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르세뉴는 도시이면서 보급 기지 역할도 하다 보니 시장이 장군이거든. 특이점이라면 얼마 전에 왕도에 다녀왔다는 것밖에 없더군.”
에드는 그 말에 론멜을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 시장을 만날 수 있습니까?”
“시장?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야 있지. 우리 교단이 본국의 국교니까. 그리고 시트라 교단의 성기사는 장군과 대등한 위치라 귀빈으로 대접받을 수 있거든.”
“그럼 저희가 함께 만나볼 수 있게 자리를 주선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건 아니지만, 시장은 만나서 뭐하려고?”
도시의 낮은 이들을 조사한 결과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렇다면 귀족들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마젤타 왕국에서는 귀족과의 접점이 없다.
그러니 론멜의 도움으로 내성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악마가 내성에 숨어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흐음. 아스트론 교단에서 예언한 악마가 마젤타 왕국에 있는 것도 신기한데 그게 내성에 있을 거라고?”
“인간으로 둔갑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론멜이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인간이 악마로 바뀐다고? 그런 악마가 대륙에 얼마나 된다고 이곳에 있다는 거야?”
마젤타 왕국의 크기 자체로만 본다면 트라비아 왕국에도 비견될 정도로 크지만, 게임상에서도 트라비아 왕국을 중요하게 다룬 것은 그곳이 대륙의 중심이기 때문인가 보다.
악마조차 중급 악마 이상은 시트라의 성기사 조차 그런 걸 마주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에드는 그런 론멜에게 진실을 말해줬다.
“예언에 따라서 만나고 있는 악마들은 중급 악마 이상입니다. 아직 상급 악마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머지않아 만날지도 모르죠.”
“푸하하하. 진짜 중급 악마를 만났다고?”
웃으며 농담하지 말라는 듯 굴던 론멜은 일행의 눈빛을 보고 이것이 농담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론멜은 브란트와 덱스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싸우면서 매일 깨지고 있는 상대들.
그러고 보면 일행 중 둘만 매일 대련했는데 다른 이들의 실력은 보지 못했다. 다른 이들도 그 둘에 비견된다면 충분히 중급 악마도 사냥할 수 있는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트라의 검으로 성기사가 된 후로 악마 사냥을 다녔지만, 지금까지 만난 것은 하급 악마 몇 마리와 마물들이 전부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을 보니 벌써 중급 악마도 상대해봤다는 건가?
역시 악마가 넘치는 트라비아 왕국답다고 여기면서도 이곳에서 중급 악마를 죽이고 그걸 제물로 바칠 수 있다면 자신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파괴의 신인 시트라께서 바라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자신이 이들을 만난 것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오라는 계시와 같다고 여겼다.
“도와주지. 하지만 한 가지만 약속해줘.”
모두가 빤히 바라보자 론멜이 웃으며 말했다.
“악마를 잡거든 그 시체를 시트라에게 바칠 수 있게 허락해줘.”
그 말에 에드가 살짝 인상을 굳혔다. 아린은 지금도 강하지만 앞으로 상대할 놈들은 훨씬 더 강하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악마를 양보해도 되는 걸까?
에드가 고민할 때 아린이 대신 나섰다.
“혈마석만 넘겨주신다면 그건 가능한 일이에요.”
“혈마석?”
“그 악마가 품고 있는 대악마의 씨앗이죠. 그걸 이용해서 대악마를 쫓고 있으니까요.”
론멜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중급 악마는 마스터 팔라딘이나 잡았다고 전해질 뿐 동기는 물론이고 선배들도 중급 악마를 잡았다고 허풍으로도 떠는 이는 없었으니까.
“좋소. 그럼 지금 갑시다.”
“지금요?”
론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녁은 내성에서 먹읍시다.”
론멜의 큰소리에 에드와 아린이 일어섰다. 덱스가 쿠키를 먹으며 말했다.
“간 김에 처리하지 말고 이번에는 같이 잡자.”
에드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전투 예측이라는 재능이 깨어난 덱스는 지금 한창 몸이 근질근질한 상황이다.
“가능하면.”
누가 악마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상황이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쉽게 약속할 수는 없었다.
“귀족이 악마라고 해도 그냥 막 죽일 수나 있겠어? 뭘 그런 걱정을 하고 그래?”
론멜의 말에 덱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까지 악마 사냥꾼 손에 죽은 악마들이 어떤 자들인지 안다면 그런 말 안 나올 텐데?”
“왜? 어디 일국의 왕이라도 죽였어?”
덱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론멜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허풍도 적당히 떨어야 맞장구를 쳐주지.”
에드는 덱스가 허튼소리 하기 전에 론멜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론멜과 함께 내성으로 갔을 때 과연 시트라의 성기사가 마젤타 왕국에서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시장을 만나러 왔다는 말 한마디에 병사들이 직접 그들을 안내해줬으니까.
그렇게 안에 가서 만난 시장이라는 이는 장군이 겸임한다고 하더니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심으로 싸운다면 론멜과도 싸워볼 만 해 보였다.
“하하하하. 시트라의 성기사를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군. 파괴는 끝이 아닌 시작일지니. 내가 시장인 토란일세.”
“파괴는 끝이 아닌 시작일지니. 성기사 론멜입니다.”
토란의 시선이 뒤에 선 아린과 에드를 향했다.
“그런데 뒤에 있는 이들은 누구신가?”
“이쪽은 트라비아 왕국에서 온 아스트론의 성기사입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내는 악마 사냥을 업으로 삼은 이입니다.”
“아스트론의 성기사?”
토란이 아린을 바라보자 그녀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그 모습에 토란이 탄성을 터트렸다.
“아스트론의 성기사라고 하더니 확실히 다르군.”
“아스트론의 성기사 아린입니다.”
토란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귀한 이들이군. 마침 저녁 전이니 함께 저녁이나 듭시다.”
토란이 먼저 앞장섰고, 아린이 에드에게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에드도 이미 심안으로 확인해 보았다. 토란은 악마가 아니었다.
디에고를 데리고 와야 했나 고민할 때 일행에게 다가오는 자가 있었다.
“장군.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시장님이 아니라 장군이라고 부르며 다가오는 존재. 검정색 군복까지 입고 있는 사내를 본 에드와 아린은 동시에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 자다.
악마는 언제나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