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10화 (110/202)

#110

론멜

국경을 지키는 성을 지나 다음 도시는 보급 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트라비아 왕국과 가까워서인지 이곳에는 아스트론 교단의 교회가 있었다.

아린은 교회를 찾아가서 마젤타 왕국의 지도를 통해서 혈마석의 위치를 특정하기로 했고, 일행은 여관을 잡았다.

그래도 도시라서 여관은 잘 갖춰져 있었다.

여관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켰는데 나온 음식을 먹어본 에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는데?”

“이게? 너 혀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덱스가 맥주를 벌컥거리며 소리쳤다. 에드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른 이들도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니 에드는 오히려 즐거웠다. 마젤타 왕국의 음식은 매웠다. 혀가 아릴 정도로 매운 것이 아니라 매콤한 것이 한국의 음식을 떠올리게 했다.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음식이라 에드는 즐거웠지만 다른 이들은 혀를 내두르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더그와 엠마는 몇 마디 얘기를 나누더니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향신료들을 사왔다.

남부에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매콤한 향신료들이 있는 것 같아 에드도 그들이 사 온 향신료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향을 확인한 에드는 미소를 지었다.

고춧가루와 비슷한 향을 내는 것이 있다.

“이거 이름이 뭐야?”

“메트라? 뭐 그런 이름이었어요.”

“이거 더 구할 수 있을까?”

“주방에서 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라고 했어요.”

“그래? 그럼 이거 사려면 어디로 가야 돼?”

“제가 알아올게요.”

엠마가 주방으로 가서 주방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더니 미소 지은 채 말했다.

“가까운 곳에 식료품 파는 곳이 있데요. 그곳에서 판다는 데 같이 가요.”

“그래.”

엠마가 나서니 디에고가 자연스레 따라왔고 더그도 어쩐 일인지 뒤를 따라왔다.

그렇게 도착한 식료품 파는 곳에서 더그와 엠마가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구경하기 시작했다. 에드는 그들과 다르게 향신료 앞에 서서 후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대략 여섯 개의 향신료를 찾을 수 있었다.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들이었는데 그중에는 마라처럼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도 있었다. 에드는 그것들을 넉넉히 주문하면서 더그와 엠마가 골라온 향신료와 식재료들도 모두 계산해줬다.

더그와 엠마는 양손 가득 식재료와 향신료를 가져가면서도 즐거워했다.

여관으로 돌아온 에드가 방에 들어가자 브란트가 침대에 앉아 있다가 손을 들어 보였다.

“아린은 아직 안 왔습니까?”

“아직. 그보다 뭘 사러 간 건가?”

“향신료 좀 샀어요.”

“요리에는 관심 없지 않아?”

에드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요리는 잘하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해 먹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어떤 요리든 적당히 향신료를 넣으면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지금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떡볶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아린이 돌아왔기에 우리는 가장 큰 방에 모두 모였다. 아린은 교회에서 얻은 마젤타 왕국의 간이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혈마석의 위치가 느껴지는 곳은 르세뉴에요. 내일 출발한다면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나요?”

아린이 쓴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가능한 시트라 교단과 마찰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들과 마찰이 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그들도 악마를 잡는 일이라면 환영할 텐데요?”

“그들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마스터 팔라딘의 말로는 사이가 안 좋다고 했어요. 괜히 시비가 걸릴 수도 있으니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죠. 그들은 말이 안 통하는 이들이라고 했으니까요.”

에드도 시트라의 성기사들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마젤타 왕국에 들어온 것도 처음.

악마의 시대 2에서는 세계관이 확장된 덕분일까?

기대도 되면서 걱정도 됐다.

마을을 떠난 첫 야영지.

에드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면을 튀겼다. 에드가 요리하겠다는 말에 다들 모여 앉아서는 구경하는 중이었다.

에드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일단 면을 튀겼다. 그냥 면을 익혀서는 원하는 맛이 나지 않으니 기름에 튀긴 후에 채소를 끓여서 만든 육수에 다시 익혔다.

그렇게 익힌 면에 고추처럼 매운맛을 내는 메트라를 넣고 꿀도 넣었다.

떡볶이는 해먹을 수 없지만, 라볶이는 가능한 것.

그렇게 만든 라볶이를 내놓자 모두가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불기 전에 먹어요.”

에드의 말에 다들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는데 덱스가 가장 먼저 나가떨어졌다. 매운맛에 취약한 덱스를 제외하고는 다들 매워서 혀를 내밀면서도 그 맵고 단맛에 중독되었는지 헥헥 거리면서도 잘 먹었다.

에드도 라볶이를 한 입 먹었다. 그 맛에 에드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그리움의 맛이다.

프로 게이머로서 앉은 자리에서 게임만 하던 에드가 주로 시켜먹던 것. 주력으로 먹던 것은 떡볶이였지만, 가끔 라면이 먹고 싶을 때는 라볶이도 먹을 수 있었다.

어묵이 없어 채소만 넣은 육수라 맛을 온전히 내지 못했지만, 이것만 해도 그리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형. 울어요?”

“응?”

디에고가 묻는 말에 에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냐. 매워서 그래.”

“형. 아까 이거보다 매운 것도 잘 먹던데요?”

에드는 디에고의 머리를 슥슥 비벼주고는 라볶이에 집중했다. 그때 디에고의 어깨에 올라있던 제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건 신호가 되어 모두가 먹던 것을 멈추고 디에고에게 시선을 줬다. 디에고는 잠시 눈을 감더니 말했다.

“악마 하나가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악마만?”

디에고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아뇨. 누군가 뒤를 쫓는데 이건 저도 처음 느끼는 거라서 잘 모르겠어요.”

악마의 뒤를 쫓는 자?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한다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관계란 없다.

에드는 남은 라볶이를 포크로 돌돌 말아서 한입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에드의 심안에도 악마가 잡혔다.

특출난 악마는 아니다.

하급 악마인 것 같은데 굉장히 빨라서 뒤를 쫓는 이에게서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런데 악마도 우리의 기척을 감지하는 것 같았다.

방향을 트는 것을 느낀 에드가 말했다.

“여기 있어요.”

악마가 아무리 재빠르다고 해도 에드에 비할 바는 아니다. 에드가 화살을 시위에 걸고 그쪽으로 달렸다. 에드는 기척을 죽이고 움직였기에 악마는 에드가 다가가고 있음을 몰랐다.

에드는 악마의 뒤를 쫓는 기척까지 감지하고는 숨을 죽이고 대기했다.

악마가 달려오는 경로를 읽은 에드가 먼저 자리를 선점하고 화살의 시위를 당긴 채 기다렸다. 곧 심안으로 살핀 에드는 다가오는 악마의 형체를 읽었다.

하급 악마답게 인간의 형상도 하지 못한 악마는 켄타우로스를 떠올리게 했다. 말의 다리를 했는데도 숲속에서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대단했다.

하지만 에드의 심안에 잡힌 순간 이미 시위에서 화살이 떠났다.

화살은 나뭇가지 사이를 마치 뱀처럼 휘어 들어가서는 악마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 미간을 꿰뚫었다.

에드는 악마가 달려오던 관성을 숨기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읽었다. 경험치가 미세하지만 들어오는 것을 읽은 에드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악마의 이마에서 화살을 뽑아냈을 때 그제야 그곳에 도착한 이가 있었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그러나 새하얀 피부는 한국인을 떠올리게 하지 않았다. 왼쪽 눈썹 위에서 시작해 턱 아래까지 길게 그어진 흉터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그는 에드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악마를 잡은 게 그대인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사내는 자신의 망토를 젖혀 갑옷을 보여주었다. 검은색 풀플레이트 메일. 저런 걸 입고 그만한 속도로 움직인 것을 보면 보통 체력이 아니다.

그런데 그 갑옷에 그려진 문양.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까마귀의 문양.

그건 시트라의 문양이었다.

“난 시트라의 검. 론멜이다.”

“에드라고 합니다. 악마 사냥꾼이죠.”

악마 사냥꾼이라는 말에 론멜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일을 하는 친구였군. 자네가 잡은 악마니 사체에 값을 치러야 하나?”

“이게 필요하십니까?”

론멜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에드는 순순히 악마의 시체에서 물러났다.

“제겐 필요 없습니다.”

론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마를 사냥하는 용병들은 드물지만 존재했다. 악마의 시체는 제법 돈이 되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악마를 사냥하겠다고 하는 이들 중에 진짜 악마 사냥꾼은 거의 없다. 어지간해서는 경력자가 되기도 전에 죽어버리니까.

그러나 에드의 분위기는 달랐다. 노련한 사냥꾼처럼 보였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네.”

론멜이 다가와 악마의 사체에 가지고 있던 검을 꽂아 넣었다. 검이 꽂힌 곳을 중심으로 악마의 시체가 소멸하는 것을 보니 론멜이 가지고 있는 저 검도 성유물인가 보다.

그렇게 론멜은 악마의 시체를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론멜은 자신의 이마에 검지와 중지를 가져다 대고는 낮은 목소리로 기도했다.

그 모든 걸 마친 론멜의 시선이 에드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군.”

“트라비아 왕국에서 건너왔습니다.”

론멜이 웃음을 터트렸다.

“트라비아 왕국에 악마가 한둘이 아닐 텐데? 대악마만 여섯이 있는 끔찍한 왕국 아닌가?”

역시나 시트라 교단의 성기사라 그런지 악마에 대해서만 말했다. 에드는 그의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시트라 교단과 가능한 시비가 붙으면 안 된다고 하니 굳이 그를 붙잡고 있을 마음이 없었다.

“그럼 저는 이만.”

에드는 그를 두고 일행에게 돌아왔다. 디에고가 에드를 보고는 말했다.

“누구였어요?”

에드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시트라 교단의 성기사.”

에드는 그리 말하고는 다시 면을 튀겼다. 급하게 먹느라 라볶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니 다시 라볶이를 해 먹을 생각으로 면을 튀기고 있는데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심안으로 상대를 확인한 에드는 계속 면을 튀겼다.

다른 이들은 식사를 마쳤기에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기를 챙겨 들었다.

“조금 전에 만났던 시트라의 성기사에요. 무기는 거두죠.”

에드의 말을 들은 일행이 무기를 거뒀을 때 론멜이 숲을 가로질러 모습을 드러냈다. 론멜은 모인 이들의 면면을 보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악마 사냥꾼이라는 이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그쪽을 향해 다가가다 보니 좋은 냄새가 풍겨와서 무심코 다가왔는데 이곳 야영지에 있는 이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론멜은 무기에 손을 얹은 채 물었다.

“뭐하는 놈들이야?”

에드는 튀긴 면을 건져내며 답했다.

“악마를 사냥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들이 일행이라고?”

“예.”

론멜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일행을 돌아보았다.

“아스트론의 성기사야 악마 사냥에 나서는 걸 이해한다지만, 저 녀석에게서는 악마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인간보다 악마에 더 가까워.”

론멜의 시선이 브란트에서 디에고를 향했다.

“그리고 저쪽 꼬마도 악마의 힘이 느껴지는데?”

론멜이 어이없다는 듯 일행을 돌아보다가 에드에게 시선을 주었다.

“악마를 데리고 다니면서 악마를 잡는다는 거냐?”

에드는 론멜이 자신을 쫓아 올 줄은 몰랐다. 이 자리에서 론멜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에드는 만약의 경우에 그를 죽이는 것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때 테인이 앞으로 나섰다.

“시트라 교단의 성기사라면 혹시 베일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나?”

론멜은 테인의 말에 그를 돌아보았다.

“수석 수녀님을 어떻게 아는 거지?”

“난 테인이라고 하네. 베일라와는 악마에 관한 연구로 편지를 주고받았었지.”

론멜은 그제야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테인에 대해서는 들은 바 있었다. 트라비아 왕국에 존재하는 대악마 중 하나를 죽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악마 연구가라고. 그를 초청한 적이 있었는데 만약 그가 왔다면 마젤타 왕국의 악마들도 씨가 말랐을 거라는 수석 수녀 베일라의 말이 떠올랐다.

악마를 잡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인물이라는 말도.

그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론멜이 씨익 웃었다. 시트라 교단은 파괴의 신이다. 그리고 그 파괴에 수단을 묻지 않는다.

어째서 수석 수녀 베일라가 테인을 그리 칭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돌아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순수하게 악마를 사냥하는 이들이라는 것도.

론멜은 검의 손잡이를 놓고는 일행의 중심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스스로 악마 사냥꾼이라고 소개했던 사내. 그가 이 일행의 중심에 있었다.

론멜은 그들을 지나쳐 사내의 앞으로 가서는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출출한데 혹시 내 것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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