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09화 (109/202)

#109

마젤타 왕국

브란트와 덱스의 대련은 매일 이어지고 있었다. 재능이 폭발한 덱스는 이제 브란트의 미래 예지를 전투 예측으로 맞서고 있었다.

덱스는 그저 브란트와 싸우는 것 자체가 즐거웠지만, 브란트는 덱스와 대련으로 땀을 뻘뻘 흘리고 탈진할 정도가 되면 머릿속을 파고드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기에 대련에 집중했다.

새로운 악마의 피가 주입된 뒤로 매일 밤이 되고 별이 하늘에 모습을 드러내면 귓가에,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 예지를 할 수 있는 브란트가 지칠 정도로 상대해 줄 수 있는 것은 덱스 밖에 없었다.

브란트가 그렇게 누워있자 엠마가 다가와 수건을 건넸다. 시원한 물에 적신 후에 짜내서 그런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고맙구나.”

“매일 이렇게 지쳐 쓰러질 정도로 대련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다른 이들과 다르게 엠마는 그의 사정까지 짐작하고 있었다. 브란트는 손을 들어 엠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디에고는 어때?”

“디에고요? 몸은 다 회복되었고, 자기 말로는 더 강해졌다고 하는데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아빠는 씻고 갈 테니 돌돌이 빵 부탁해도 될까?”

“알겠어요.”

활짝 웃은 엠마가 물러가자 브란트는 작은 냇가로 들어가 물을 끼얹었다. 그렇게 땀을 식힌 브란트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견딜 수 있어.”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는 그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이렇게 후련할 정도로 땀을 빼고 나면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이런 식으로 버티면 되리라.

그렇게 땀을 식힌 브란트가 돌아오니 이미 모두 모여서 돌돌이 빵과 함께 스튜를 떠먹고 있었다. 브란트가 자리에 앉자 테인이 입을 열었다.

“마젤타 왕국의 국경에 내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걸세. 다만 마젤타 왕국은 나도 정보력이 부족하네.”

테인은 악마 연구가로서의 능력도 뛰어났지만, 그가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은 정보력이었다. 하지만 그 정보력도 트라비아 왕국에 한해서다.

테인의 말에 아린도 동의했다.

“마젤타 왕국은 아스트론 교단의 힘도 약해요. 그곳에서 명맥만 유지할 뿐이니까요.”

마젤타 왕국 내에서 혈마석의 악마를 찾아내서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듯 말하는 둘에게 에드가 담담히 답했다.

“혈마석의 악마 위치만 찾을 수 있다면 그자를 잡고 돌아오면 될 일이죠. 그리고 정보가 필요하다면 켈베로스의 인물 중 연이 닿은 자가 있으니 정보를 구할 수도 있겠죠.”

“켈베로스라면 마젤타 왕국의 특첩부대 아닌가?”

“예.”

“그들이라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도움을 받으면 도움을 주어야 하니 가능한 빚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군.”

에드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무작정 그들의 도움을 받지는 않을 겁니다.”

“하긴 자네라면 쉽게 당할 리 없겠지.”

테인은 그리 말하고는 돌돌이 빵을 스튜에 찍어서 한입 베어 물었다. 에드도 이야기가 일단락되었음을 깨닫고 빵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용히 식사가 끝나자 브란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브란트는 잠을 잘 때는 일행에게서 떨어져 지냈다. 잠이 든 동안에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면 반응하지 못할까 봐 며칠째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브란트가 자리를 피해서 멀찍이 떨어진 채 오늘 머물 바위 위에 앉았을 때 테인이 다가왔다.

“하실 말씀이라도?”

테인은 브란트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며칠 째인가?”

브란트가 빤히 바라보자 테인이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잠을 자지 못하여진 지 며칠째인가?”

“···7일째입니다.”

브란트는 숨기지 않고 답했다. 테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을 뒤적였다.

“하긴 악마의 피를 더 주입 당했다고 했는데 멀쩡할 리가 없겠지. 페스톨레스의 피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얼마나 통할지 모르겠지만, 오는 길에 환몽초를 구했네. 그걸 말린 후에 빻아서 만든 가루인데 이건 악마도 재울 수 있는 풀이라고 하니 한 번 맡아보게. 잠을 잘 수 있을지도 모르니.”

브란트는 그 말에 테인이 건네준 가루를 바라보았다. 보라색 가루를 바라보던 브란트는 가루에 코를 가져다 대고 깊이 들이마셨다.

콧속으로 보라색 가루가 빨려 들어가자 브란트는 움찔 몸을 떨었다. 가늘게 몸을 떤 브란트의 눈이 스르륵 풀렸다.

7일간 잠을 자지 않고 버틴 것은 어디까지나 잠이 든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랬던 것.

그런데 이 환몽초의 향을 맡자 그런 긴장의 끈이 풀어졌다. 그리고 가장 안락했던 시절. 꿈에 그리던 아내와 어린 엠마가 함께 돌돌이 빵을 만들고 자신은 장작을 패던 그 시절.

꿈꾸는 것만으로 행복한 순간. 브란트는 그 순간에 빠져 들었다.

브란트가 바위에 기댄 채 잠이 드는 모습을 보고 테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난 테인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뭘 그리 긴장들 하는 건가?”

테인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에드와 아린이 서 있었다. 에드는 화살을 시위에 건 채로 아린은 해머와 성검을 뽑은 채로 바라보고 있다가 무기들을 회수했다.

테인은 잠이 든 브란트를 돌아보며 말했다.

“별의 악마 페스톨레스의 피를 더 주입 받았다면 견뎌낸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주의 깊게 살펴야겠지. 스스로 의지가 대단하지만, 방심은 금물일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와 있는 것이고요.”

테인은 브란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환몽초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인간보다 악마에 더 치우쳐 있을지 모르네. 하지만 악마의 힘을 지녔다고 해도 그 의지가 인간이고, 그 칼이 악마를 향한다면 나는 훌륭한 인간이라고 여기네. 그러니 이 친구가 잘 버틸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에드는 그 말에 화살을 다시 화살집에 돌리고는 잠든 브란트의 옆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다들 돌아가 쉬세요. 오늘 밤에도 마물들이 나올 수 있으니.”

테인이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도 마젤타 왕국에 가면 끝나지 않을까 싶군.”

“마물의 습격이요?”

“네프사엘의 손은 그곳에 닿지 않네. 마치 다른 대악마라도 있는 것마냥.”

“그럼 다른 대악마가 그곳에 있다는 겁니까?”

테인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답했다.

“대륙에 알려진 대악마의 수는 여섯이네만 알려지지 않은 놈들이 더 있을 거라는 학설이 있지. 특히나 그 여섯의 대악마가 트라비아 왕국에 몰려 있고, 다른 왕국에 손을 뻗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대악마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다른 왕국에서는 아직 대악마의 꼬리를 잡아낸 이들이 없네. 그래서 아직도 기록된 대악마는 여섯뿐이지.”

“더 있다면 끔찍한 일이군요.”

“모를 일이지. 하지만 마젤타 왕국에는 네프사엘의 손이 닿지 않네.”

“그것만 해도 다행이네요.”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 하루나 이틀이라면 모를까 그 기간이 길어지면 정신이 피폐해진다.

에드도 펠만 시를 나온 뒤로 아직 마을에 들르지 못해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마물들을 상대하는 중이었으니까.

에드는 잠든 브란트의 옆에 앉아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가득 총총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던 에드는 옆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아린이 옆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좀 자두지 그래요?”

“괜찮아요.”

아린은 그저 말없이 옆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만 보았고, 에드는 그런 아린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신성력을 온전히 갈무리하지 못한 덕에 그녀는 신비로운 푸른빛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체 발광 중.

쉽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의 뺨에 홍조가 어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니 아린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빤히 바라봐요?”

에드도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시선을 돌렸다.

“미안해요.”

“미안할 건 아니고요.”

아린은 고개를 돌려 에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에드도 그 모습에 따라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마젤타 왕국.

대륙의 남쪽에 자리한 마젤타 왕국에 대해서는 악마의 시대 게임상에서 텍스트로만 나올 뿐이었다.

실제로 본 마젤타 왕국의 국경에 위치한 성은 전투에 특화된 곳. 상주한 병사들의 수도 많고, 검문도 삼엄하다.

하지만 그들의 검문은 어렵지 않게 지나갈 수 있었다. 아무리 아스트론 교단의 위세가 약한 곳이라고 해도 아스트론 교단의 성기사가 신성력을 품은 마차를 타고 가는데 그 앞을 막을 수는 없었으니까.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 에드는 성안에 여관 하나 없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곳은 오직 전투를 위해서만 돌아가는 곳이다.

국경을 넘는 이들이라고 해도 성에서 머물지 않고 이곳을 지나야만 하는가 보다.

“그냥 지나가야겠네요. 여기는 머물 곳이 없어요.”

전부 다 전쟁에 관련해서 움직이는 성. 특히나 마젤타 왕국군 5만이 전선을 넘어서 베리코 왕국으로 넘어갔었으니 지금 이곳의 경계가 이렇게 삼엄한 것도 이해가 갔다.

오히려 아직도 통행을 통제하지 않는 것이 다행인 일이었다. 아마도 5만이나 되는 병력을 투입한 것이 비밀이다 보니 이렇게 통행을 시켜주는지도 몰랐다.

어차피 쉴 곳도 없기에 성의 대로를 따라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성을 나갈 때도 별다른 제지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성을 나가는 길에 병사들에게 물어 다음 마을이 어딘지 확인했다. 마을은 오늘 밤 안에 도착할 수 없었지만, 가는 길에 야영하면 될 일이라 마차를 출발했다.

그렇게 국경을 지키고 있는 성을 지나서 대로를 따라 이동했다. 병력이 이동할 수 있게 잘 닦인 대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니 길가의 바위에 앉아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에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기다린 건가?”

에드의 물음에 바위에 앉아 있던 자가 몸을 일으켰다.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에드는 일행에게 기다려 달라 말하고 홀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에드가 다크에서 내리자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정말 와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스트론 교단의 예언에 따른 퇴마행이 이곳을 가리킨 것일 뿐 그런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건 아니야.”

“어찌 되었든 말입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됐어. 방해나 하지 마.”

밀러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품에서 작은 깃발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에드가 그것을 받아들자 밀러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어디서 묵으시든 필요한 것이 생기시면 창밖에 그걸 걸어 놓으시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에드는 밀러가 건넨 깃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인간은 요구하는 것 없이 내준다. 이렇게라도 끈을 연결해 두고 싶은 마음을 읽은 에드는 깃발을 품에 넣고는 말했다.

“기억하지.”

에드가 돌아서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밀러가 입을 열었다.

“잊지 마십시오.”

에드가 손을 휘휘 내젓고는 다크에 올라 일행과 합류해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밀러가 입을 열었다.

“샤샤. 이건 기회다.”

에드만이 아니라 그 일행을 돌아보는 밀러의 눈은 기회를 포착한 맹수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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