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06화 (106/202)

#106

엘피아

펠만 국왕.

그는 장대한 체구와 탄탄한 근육을 지닌 이였다. 남부 귀족 연합의 장이 되면서 전장에 나설 일이 없었던 그는 이제 옆구리에 살이 조금 붙기는 했지만, 사실 전장이 그리운 이였다.

펠만 국왕은 왕궁 안에 악마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주저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어 놓은 창을 뽑아 들었다. 단지 창을 들었을 뿐인데 그는 전장의 장군이 되었다.

이번에 새로 얻은 힘 때문인지 젊었을 적의 패기가 치솟았다.

“어딘가?”

만나면 직접 창을 들고 싸우기라도 할 기세라 에드는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의 실력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으니까.

아린과 에드는 무기를 돌려받았다. 무기를 돌려받았다고 해도 그들 주위를 펠만 국왕의 수호 기사 열 명이 포위하듯 감싸고 있었다.

그들은 무기까지 뽑아 든 상태라 무슨 상황이 벌어진다면 에드와 아린을 노릴 생각인가 본데 어림도 없다. 에드나 아린 둘 중 누구든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를 죽여버릴 만한 실력자들이었으니까.

에드가 아린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그녀는 지금 악마를 쫓느라 에드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에드는 결국 심안으로 주위를 살폈다.

디에고가 말하길 왕도 내에서 몇십은 되는 악마의 힘을 감지했다고 했다. 아린은 지금 혈마석의 악마를 쫓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악마의 힘을 지닌 자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에드는 자신들의 뒤에서 창을 들고 따라오는 펠만 국왕을 떠올렸다. 그는 악마의 힘을 손에 넣었다. 태자보다 늦게 힘을 접했을 텐데도 에드가 알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악마의 힘을 내비쳤다.

그래서 심안으로 펠만 국왕을 살폈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그의 외형을 살피고, 그 내부를 뚫어 본다.

그리고 그제야 그 안에 뭔가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악마의 힘을 가진 자들을 눈동자에 어리는 붉은빛으로만 판단해 왔다.

그렇게밖에 구별할 수 없었고.

하지만 심안으로 그 내부를 뚫어 보니 그 안에 깃든 이질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이질적인 힘이 아마도 악마의 힘으로 생각되지만, 그건 한 번 교차 검증이 필요한 일이었다.

에드는 심안으로 그를 지키는 수호 기사들을 살폈다. 열 명의 기사들.

과연 그들의 내부에도 같은 힘이 있다. 좋은 걸 혼자 가지지 않고 수호 기사들에게도 사용한 것을 보면 이걸 좋은 군주로 봐야 하는가 싶지만, 오히려 수호 기사들의 명줄을 줄였다.

열 명의 수호 기사. 그리고 그 중심에 있을 펠만 국왕.

모두 처리해야 할 이들이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에 아린이 걸음을 멈췄다. 그런 아린의 뒷모습을 보고 펠만 국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린 경. 그대는 악마를 찾았다고 했다.”

“그렇습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아는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안에 악마가 있습니다.”

펠만 국왕이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나의 빈이 있는 곳이네. 자네가 잘못 파악한 것 같군.”

펠만 국왕이 왜 저런 말을 하는 건가 싶어 에드는 심안으로 방안을 살폈다. 옷장 앞에 서 있는 여인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내부를 관조한 에드는 인상을 굳혔다.

펠만 국왕과 같은 기운이 있는 것도 알았지만, 그 외에 다른 힘이 있다. 이것이 아린이 말한 혈마석의 힘인가?

그제야 펠만 국왕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악마의 힘을 얻은 것처럼 빈에게도 그걸 내주었나 보다.

그걸 오해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안에 있는 여인은 단순히 악마의 힘이 아니라 혈마석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 태생이 악마였다.

“그럴 리 없습니다.”

아린이 방패와 해머를 뽑아드는 것을 보고 펠만 국왕도 인상이 굳어졌다.

“자네. 선을 넘는 행동을 하고 있군.”

“그럴 리가요. 저 문 뒤에 있는 여인은 어젯밤에 저와 싸웠던 여인입니다.”

“그녀는 어젯밤에 짐과 함께 있었네.”

아린은 더는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여긴 것인지 뒤돌아서며 해머로 그 문을 후려쳤다. 문이 박살 나는 사이에 에드는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고는 아린의 뒤를 막았다.

펠만 국왕과 뒤의 수호 기사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지만, 에드는 가만히 서 있었다.

펠만 국왕이 창을 잡는 것을 보고 에드가 입을 열었다.

“퇴마가 끝나기 전까지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곳은 내 빈의 방이네. 분명 잘못 안 것이 틀림없네.”

에드는 그 말에도 비켜서지 않고 말없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펠만 국왕은 더는 말로 될 상황이 아님을 알았다. 이미 아린이 방문을 부수고 안으로 진입한 상황이니.

그래서 창을 들어 에드를 겨눴는데 에드의 입가에는 흐릿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옆에 선 수호 기사들도 무기를 뽑아든 채 삼엄한 기세를 뿌리고 있음에도 에드는 여유가 있었다.

말없이 화살을 시위에 건 채로 에드는 가만히 서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나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 깨닫기도 전에 안쪽에서 폭음과 함께 비명이 들렸다. 창밖으로 자신의 빈인 엘피아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펠만 국왕의 눈빛이 변했다.

“비켜라.”

에드는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퇴마행을 막아선다는 것은 아스트론 교단에 맞서는 행위입니다.”

“감히 내 빈을 악마로 몰아서 공격한 것은 아스트론 교단이다!”

이미 엘피아를 쫓아서 아린이 창밖으로 뛰어내린 상황. 에드는 더 막을 필요가 없었지만, 분명히 경고했다.

“다가오신다면 제 화살이 무정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길을 열어라!”

그 와중에도 펠만 국왕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앞장서지 않았다. 수호 기사들이 뽑아든 검을 들고 달려드는 것을 보고 에드는 연달아 화살을 날렸다.

레벨이 오르면서 민첩에 투자했기 때문인지 연사로 날아가는 화살은 열 개나 되었다. 달려들던 열 명의 수호 기사들의 허벅지에 줄줄이 화살이 박혔다.

“크윽!”

이렇게 근거리에서 쏘는 화살은 눈으로 보고 반응하기 힘든데 에드가 쏜 화살에 어찌 반응할 수 있었을까? 열 명이 모두 허벅지에 화살이 꽂혀 다가오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에드는 지금 당장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에드는 한 발의 화살을 더 시위에 건 채 말했다.

“이건 경고입니다.”

펠만 국왕은 악마의 힘을 손에 얻었으니 언젠가 죽일 대상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띄게 죽여서 좋을 것이 없다. 앞으로의 행보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

그래서 경고로 그쳤다.

펠만 국왕은 에드가 쏘아낸 화살에 몸이 굳었다. 자신이 가장 앞장섰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비드가 투약한 액체를 통해서 젊음을 되찾고 몸도 좋아졌다.

과거의 기량을 되찾은 것을 넘어 더 강해진 것 같았음에도 마주한 화살을 눈에 담지도 못했다. 게다가 한호흡에 열 발의 화살을 연사하는 실력.

그리고 그 화살은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펠만 국왕은 앞으로 나서는 대신 창을 비스듬히 내린 채 말했다.

“내 빈이 악마가 아니라면 그대는 물론이고, 아스트론 교단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거다.”

“그건 보시면 알 겁니다.”

말을 마친 에드는 그대로 뒤돌아 달려 열린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펠만 국왕은 어이가 없었다. 이곳은 5층이었다.

그런데 에드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이 높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펠만 국왕이 서둘러 창가까지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믿기 힘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루비처럼 결정화된 피부의 엘피아가 아린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화살이 날아들고 있었다.

진짜로 그녀는 악마였다. 인간이 저런 모습을 할 수는 없으니까.

펠만 국왕은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몸을 기대야만 했다.

“빈. 그대가 진짜 악마였소?”

창밖으로 뛰어내린 에드는 엘피아와 아린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중급 악마가 강화된 혈마석을 가지고 있을 때는 아린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게 생각하고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거는 중이었는데 아린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가 루비처럼 결정화한 채로 계속 밀리는 중이었다.

그제야 에드는 아린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움직임, 그녀가 뿜어내는 신성력 모두 전보다 강해졌다. 하긴 그때 혈마석이 두 개인 녀석을 포함해 혈마석을 가진 자 둘을 동시에 성화로 태워버렸으니 그만큼 강해진 것도 이해가 갔다.

그걸 본 에드는 새삼 다짐했다. 경험치를 얻어서 레벨을 올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지금 어느 날인가 아린이 자신을 앞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절대로 뒤처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린이 악마의 시대 2의 주인공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녀에게 맡기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러자면 막타는 자신이 차지해야 했다.

에드는 일단 저 결정화한 악마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화살을 날려 보았다. 디에고를 위험하게 만들었던 악마는 화살이 날아들자 피해 보려 했지만, 에드의 화살이 날아드는 속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한 발의 화살은 피했지만, 두 번째 화살이 허벅지에 꽂혔다.

루비처럼 결정화해서 방어력을 올렸는지 몰라도 에드의 화살은 그걸 관통하고 허벅지에 박혔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지 당황하는 그녀를 향해 방패를 앞으로 내민 아린이 돌진해서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꽈앙!

아린의 돌진을 주먹으로 마주친 여인이 뒤로 튕겨 날아가며 눈에서 붉은빛을 뿌렸다. 그 눈빛이 굉장히 강렬한 것이 뭔가 술수를 부린 것 같았지만, 눈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는 아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린은 그대로 해머를 휘둘렀다. 황급히 뒤로 물러나는 여인을 본 에드는 상대가 생각보다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젯밤 디에고와 싸우면서 상처를 입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특화된 부분이 전투가 아니라 현혹이나 다른 방면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오로지 전투에 특화된 성기사에게 애를 먹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아린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마스터 팔라딘이라고 해도 과연 지금 그녀만큼 강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 루비 결정화한 여인의 몸이 급격하게 부풀어 올랐다. 몸집이 두 배는 부풀어 오른 상황.

그리고 그대로 결정화된 주먹을 휘둘렀다.

쾅!

아린이 방패로 막았음에도 뒤로 밀려났다. 그 모습을 보고 에드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브란트의 괴력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

다비드가 태자에게 권했던 장생의 비결. 악마의 힘을 품은 브란트의 피다.

그 피를 투여해서인지 여인은 괴력을 자랑했다. 그녀가 아린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고 에드가 아펠라의 이빨로 만들어진 화살을 날렸다.

마력을 잔뜩 담아서 날린 화살을 보고 여인이 팔을 들어서 막았다. 결정화된 팔에 박힌 화살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냉기가 터져 나오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괴력을 가지고 있으니 금세 뿌리칠 수 있을 테지만, 잠깐의 시간이면 족했다.

아린이 이미 방패를 날리고 있었으니까.

빠각!

아린이 날린 방패가 여인의 발목을 부수는 동안 아린은 이미 검을 뽑고 해머와 검을 들고 여인을 향해 달렸다.

아린이 달려드는 것을 보며 에드는 두 발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두 개의 성유물.

발목이 부서진 여인이 얼음을 깨고 팔을 휘두를 때 아린은 검으로 팔을 베고 해머를 휘둘러 그녀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그 충격에 옆으로 날아가 성벽에 처박힌 여인을 향해서 아린이 쫓아갔다.

한 호흡만 늦어도 아린의 손에 여인이 끝장날 판이다. 에드가 쏘아보낸 성유물이 여인을 쫓아가는 아린의 어깨를 타 넘어가 여인의 미간과 가슴에 차례로 박혔다.

푸른 빛과 주위의 빛마저 빨아들이는 검은 빛이 동시에 번쩍였다. 벽에 처박혔던 몸을 빼내려던 여인의 몸을 뚫은 화살이 그녀를 벽에 박아 놓는 것과 거의 동시에 아린의 검이 그녀의 목을 잘랐다.

아슬아슬했다.

아린도 전투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막타는 양보하기로 한 것도 잊어버렸나 보다.

그래도 늦지 않았는지 경험치가 들어오는 것에 흡족해할 때 아린이 바닥에 구르는 여인의 머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에드가 활을 내리는 모습을 보고 아린이 그제야 생각난 듯 당황스러워했다.

“미안해요. 깜빡했어요. 어쩌죠?”

조금 전까지 악마와 혈전을 벌였던 모습과는 다르게 당황하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는 걸 보면 자신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쩐지 그녀에게는 막타도 양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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