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사도
달려오던 자 중 하나가 죽는 것을 보고 알론이 헛웃음을 흘렸다.
“저거 크로셀의 손가락 맞습니까?”
달려오는 속도를 보고 보통 놈들은 아닐 거라고 여겼는데 막상 화살 한 방에 고꾸라지는 것을 보니 별거 아닌 것들 때문에 이렇게 긴장한 건 아닌가 싶었다.
교회의 정문에 선 성기사 둘과 뒤에 늘어선 수사들은 전투에 능한 이들로 스무 명이다. 게다가 수습 성기사 여덟 명.
이만한 전력이 움직이는 일은 드물다.
아론 사제의 신성력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으나 그것도 멀리서 느꼈기에 알론은 자신이 잘못 느낀 게 아닌가 싶었다.
이게 모두 저렇게 맥없이 쓰러진 놈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 둘이 그들의 앞에 왔을 때는 알론은 자신이 허튼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앞에서 나타난 자들이 품고 있는 악마의 힘.
그것이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특히 뒤편에 서 있는 여인.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 차려라!”
말콤의 외침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잘못하면 싸워보기도 전에 질뻔했다. 그만큼 상대가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인은 흘끔 교회의 지붕을 올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열째가 당한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여인은 헛웃음을 흘렸다. 혈마석이라는 것을 얻고 그들은 가공할 힘을 얻었다. 기본적으로 혈마석이 가지고 있는 보호막은 상시 가동 중이었다.
그런데 단 한 발의 화살에 죽었다?
“악마 사냥꾼인가 보군.”
여인은 그리 중얼거리고는 손짓했다.
“저 둘은 혼자 상대할 수 있겠나?”
“혼자서는 조금 버겁겠는데요?”
“그럼 시간 끌고 있어. 악마 사냥꾼만 잡고 나서 도와주지.”
그 말을 끝으로 여인이 도약하는 것을 보고 말콤이 막으려고 할 때 덩치 큰 사내가 움직였다. 여인을 막다가는 전차처럼 돌진해 오는 사내를 막지 못한다.
그래서 말콤은 에드를 믿고 전차처럼 돌진해 오는 사내를 향해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돌진했다.
꽈앙!
충격에 뒤로 밀려난 말콤은 인상을 굳혔다. 맨몸으로 돌진해 온 상대와 부딪쳤는데 중갑을 입고 있는 자신이 밀렸다. 신성력으로 몸을 강화하는 강체술을 쓰고 있는 와중임에도.
그에 대해 놀라고 있을 때 위로 뛰어올랐던 여인이 뒤로 튕겨 바닥에 내려섰다. 그녀의 손에는 화살이 하나 잡혀 있었다.
“대단하군.”
여인의 가슴에는 구멍이 나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들린 화살대를 꺾어서 바닥에 던지고는 지붕 위를 올려다 보았다.
이미 다음 화살을 걸고 있는 에드를 쏘아보던 여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디에고가 말한 악마가 누군지는 여인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생긴 것은 분명 인간이었으나 그녀가 품고 있는 힘이 악마에 버금간다고 한 것은 그만큼이나 강한 악마의 힘을 품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교회 앞에 나타난 여인을 본 순간 에드는 알았다. 상처 투성이였던 후안이 떠오르게 할 정도의 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이 상급 악마의 영역에 들어섰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차후의 문제다. 그녀는 혈마석을 가지고 있었고, 아론이 그 위치를 알려줬다.
혈마석의 위치는 제각각이었는데 그녀는 심장 부위에 있었다.
그래서 심장 부위로 이기어시로 화살을 날렸다. 그녀가 단검으로 쳐낸다고 한다면 피해서 꿰뚫을 생각으로 날린 화살이었는데 그녀의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가슴에 화살이 꽂힌 다음에 화살대를 잡더니 뽑았다. 그녀의 괴력은 굉장해서 에드의 이기어시로 조종하는 힘만으로는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화살대를 꺾어서 바닥에 던졌다.
에드의 최강 병기가 막혔다. 역시 상급 악마급 존재라 그런지 보통내기가 아니다.
에드가 미간을 찌푸릴 때 아론이 입을 열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그대에게 전해질지니. 빛날지어다.”
아론이 뒤에서 읊조리는 축원에 에드가 손에 들고 있던 빙결의 활 위로 푸른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검푸르게 빛나는 활을 보고 에드가 씨익 웃었다.
화살에 일일이 축원을 받기 어려웠는데 활에다 걸어주는 것을 보니 역시 아론은 센스가 있었다.
성유물로 만든 화살촉을 잃었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유효타는 먹일 수 있다.
에드가 두 발의 화살을 시위에 거는 사이에 여인이 단검을 들어 올리더니 에드를 빤히 바라보며 손으로 검날을 감싸고 천천히 단검을 빼냈다.
그녀의 손에서 흥건히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 혈마석을 다루는 자들. 특히 크로셀의 인간들은 피를 이용해야 강한 위력을 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의 발밑으로 한 방울의 피가 떨어진 순간 에드가 화살을 날렸다. 두 발의 화살을 날린 에드는 여인의 발밑이 쩍 벌어지는가 싶더니 그 아래로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인은 아스트론의 증표에서 불쑥 튀어나오며 단검을 휘둘렀다.
에드는 뒤로 훌쩍 물러나며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악마의 힘을 다루는 주제에 교회에 걸려있는 아스트론의 증표로 공간 도약을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에드를 향해서 손바닥을 뿌렸고, 핏물이 교회 지붕 곳곳에 떨어졌다.
에드는 연달아 화살을 날리지 않고 두 발의 화살을 다시 날렸다. 그리고 여인은 다시 사라졌다.
어딘가?
그걸 파악하기 전에 옆에서 단검이 날아들었다.
에드는 단검이 날아드는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왼발로 여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뻑!
여인의 몸이 반쯤 구겨진 채 튕겨 날아갔다. 저 멀리 날아가던 여인의 눈이 핏빛으로 반짝인다 싶은 순간 그녀는 에드의 뒤에 나타났다.
그녀가 정수리를 향해 단검을 내리찍는 것을 느끼고는 뒤로 뛰어서 등으로 그녀를 받아 버렸다.
쾅!
아스트론의 증표에 부딪힌 여인이 반쯤 몸이 박힌 채로 미소 지었다.
“살려서 잡아가기 힘들겠는데?”
에드는 여인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연발이 필요한 순간이니까.
에드는 그녀의 말에 화살로 대꾸했다. 역시나 그녀는 공간 도약을 통해서 사라졌고, 에드는 뒤돌아서며 화살을 연달아 날렸다.
퍽!
공간 도약을 통해 나타났던 여인은 어깨에 화살을 맞고 뒤로 밀려났다. 그녀는 어깨에 박힌 화살을 바라보다가 에드에게 시선을 줬다.
“어떻게 알았지?”
“그렇게 노골적으로 피를 뿌려 놓고 모르기를 바라면 안 되지.”
크로셀의 단원들이 피를 매개로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에 공간 도약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뛰어오르던 중에 화살에 맞으면서 튀었던 피가 아스트론의 증표에 튀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붕에 올라와서는 피부터 뿌렸다. 처음에는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오랜 시간 게임으로 다져진 경험으로 그녀가 공간 도약하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공간 도약할 수 있는 곳들을 파악했고, 그곳들을 향해 날린 화살에 그녀는 공간 도약하자마자 화살에 적중당했다.
여인은 화살을 맞은 곳이 얼어붙는 것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화살을 잡아 뽑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에드를 향했다.
혈마석을 얻은 후에 움직임이나 모든 것이 뛰어나 졌는데 그런 자신을 넘어서는 움직임을 보이는 자였다. 자신의 장기인 공간 도약도 통하지 않을 만큼 민첩한 자다.
“너도 크로셀의 손가락이냐?”
에드는 말을 걸면서 마력을 조금씩 회복시켰다. 그런 에드를 향해 여인이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아니. 나는 사도 에밀리다.”
역시 손가락과는 수준이 다르다 했더니 사도였나 보다. 그런 만큼 기대가 됐다. 적어도 손가락보다는 경험치를 많이 주겠지.
그보다 빨리 처리하지 못하면 밑에서 싸우고 있는 손가락은 성기사 손에 죽을 수도 있다. 이제 결착을 낼 때가 됐다.
“이 새끼가!”
덩치 큰 사내를 향해 말콤과 알론이 협공을 했음에도 그는 쉽게 제압할 수 없었다. 엄청난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민첩해서 도망치기 시작하자 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자가 이제는 수사들을 노리고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전투 수사들이라고 해도 그 수준은 수습 성기사 정도. 그리고 그 정도로는 덩치 큰 사내의 일격을 감당하지 못한다.
벌써 죽은 이가 일곱.
알론으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집중해라!”
말콤이 사내를 쫓아가며 소리치자 알론은 생각을 멈췄다. 자신이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수사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사내를 제압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사내의 허벅지에 박혔다.
쩌저적!
그리고 허벅지를 통째로 얼리면서 사내의 움직임을 제약했다. 알론은 그게 누구의 화살인지 알 수 있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했다.
알론이 달려들 때 사내가 씨익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주먹을 휘둘러 오는데 몇 배는 커져 있었다. 핏빛 기운을 두른 주먹의 크기는 알론의 상체보다 컸다.
그래서 피할 곳이 없어 방패로 막았다.
꽈앙!
방패가 박살 나고 튕겨 날아간 알론이 왈칵 피를 토했다.
“개새끼가 이 능력을 지금까지 숨겼어?”
지금까지 싸우는 중에 몇 번이나 위기에 몰렸음에도 사내는 이 기술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자신들의 강체술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방심시키다가 날린 일격은 유물급 방패를 박살 내고 알론의 왼팔을 부러트렸다.
뼈가 조각나면서 근육을 찢어놓아서 왼팔을 지금 당장은 쓰기 힘들게 생겼다.
알론이 물러난 사이에 말콤이 사내에게 접근해서 싸우고 있었다. 어떤 능력인지 안 이상 말콤은 그 공격을 흘려내면서 조금씩 그의 몸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발이 묶인 사내는 곧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밀리의 몸에는 이미 일곱 발의 화살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집요하게 심장만큼은 막아내고 있어 숨통을 끊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아래쪽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을 보고 한 발의 화살을 날려서 사내의 발을 묶었다.
에밀리는 몸에 박힌 화살을 뽑으면서 아래쪽을 흘끔 살폈다. 그리고 다시 에드를 바라보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공간 도약이 더는 통하지 않는 데다가 자신의 몸놀림보다 더 빠른 자라니?
에드는 그런 에밀리를 향해 활을 겨누며 말했다.
“그런데 왜 현신을 하지 않는 거지?”
“현신?”
에드는 에밀리의 반응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너희들의 동의를 얻은 것은 아닌가 보군.”
에밀리는 그제야 에드가 한 말의 뜻을 이해하고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에드는 그런 에밀리를 바라보며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화살을 쏴 날리기 시작했다. 에밀리는 날아드는 화살을 정신없이 튕겨냈지만, 두 발의 화살이 종아리와 어깨에 또 박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여긴 그녀가 다시 피를 뿌렸다. 에드는 어차피 상관없다는 듯 다시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에밀리는 그런 에드를 향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다음에 또 보자고.”
에밀리는 그리 말하고는 곧장 사라졌다. 에드가 그녀가 나타날 새로운 방위를 훑어보며 활을 겨누는데 이번에 피를 뿌린 곳 중에는 아론의 옆도 있었다.
아론을 끌어안은 에밀리가 에드를 향해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공간 도약을 하려했다.
퍽!
하지만 그녀의 이마에 화살이 꽂히는 것이 빨랐다. 고개가 뒤로 젖혀진 그녀의 팔이 톰에 의해 잘려나갔다.
기습적으로 달려든 톰의 일격에 팔이 잘려나간 에밀리가 단검을 휘둘러 아론을 노릴 때 디에고가 달려와 아론을 껴안고 지붕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때 아론도 에밀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은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품고 있는 악마의 힘을 봉하는 능력.
에밀리는 재차 공간 도약을 하려고 하다가 그것이 먹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에드는 그걸 깨닫기 무섭게 화살이 아니라 검을 휘둘렀다.
스걱.
에밀리는 자신의 몸이 반으로 갈리는 것을 보았다. 화살이 날아올 줄 알고 막으려고 했던 손짓이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그렇게 반으로 잘린 에밀리는 자신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그 의식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에밀리가 바닥에 쓰러지자 에드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혈마석이 반으로 잘리는 동안에도 라그록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라그록스가 나타나면 분명 힘들었겠지만, 상당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냥 죽어버렸다.
그래도 사도라 그런지 경험치가 중급 악마보다 더 들어오기는 했다.
“바로 현신을 또 못하는 건가?”
현신을 연이어서 못한다면 이것도 중요한 내용이다.
에드가 교회 지붕의 끝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디에고가 아론과 함께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둘의 안전을 확인한 에드는 지붕 아래로 화살 한 발을 날렸다. 성기사 말콤과 알론이 몰아붙이던 사내의 양팔이 묶여 있을 때 에드가 쏜 화살이 혈마석이 들어있는 머리에 박혔다.
머리가 통째로 얼어붙었다가 깨지면서 경험치가 들어왔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