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후안
도시 지하에는 하수도가 있었다.
도시에서 나오는 수많은 오폐물을 버리는 곳으로 악취가 코를 찔렀다.
횃불을 든 채 하수도에 들어선 에드가 잔뜩 이끼가 끼고 거미줄이 쳐진 하수도를 살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악취도 악취지만, 이 하수도의 어디에 후안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찾아가려면 얼마나 긴 시간 이 더러운 하수도를 돌아다녀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 아린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잠깐만요.”
아린이 기도문을 읊는 것 같더니 곧 그녀의 머리 위로 작은 빛 덩어리가 나타났다. 신비술사나 부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신성 주문으로도 빛무리는 만들 수 있는가 보다.
횃불보다 먼 거리를 밝혀주는 빛 덩어리라 양손이 자유로울 수 있었다. 에드도 횃불을 끄고, 아린이 만들어준 빛에 의지해 주위를 살폈다.
레벨이 오르면서 감각이 뛰어나졌지만, 그렇다고 어둠을 뚫고 보는 능력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 더 멀리까지 볼 수는 있었다. 화살을 뽑아 시위에 살짝 걸고 아린의 뒤를 따라 걸었다.
빛을 부리는 신성 주문도 신성 주문이지만, 역시 전위는 성기사가 서는 것이 옳다.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걸으며 에드가 입을 열었다.
“혹시 마기가 감지 됩니까?”
“아니요.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목표 지점을 찾으면 쉽게 가나 했는데 이곳까지 방향은 제시해주었지만, 여기서부터는 수작업을 해야겠다. 그 전에 이 악취에 코가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부터 고민해야 했다.
에드는 앞장서 걷고 있는 아린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하수도의 악취도 악취지만, 흐르는 물살이 발목까지 차오른 곳이었다.
이 찝찝함 속에서 아린은 태연하게 주위를 견제하며 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오직 악마를 찾아 처단한다는 올곧은 신념으로만 움직이며 자신의 몸에 오물이 묻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에드는 그런 그녀의 뒤를 따르며 감각을 일깨우고 있었다. 어두운 하수도에서 시각만 의존해서는 반응이 늦을 수 있다. 모든 감각을 일깨운 채 걷던 에드는 찰팍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 더러운 오물이 넘치는 하수도에도 분명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다. 처음에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뭔가하고 관심을 가졌을 때 그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하나에서 열로, 열에서 순식간에 수십이 넘어갔다.
“뭔가 다가오고 있어요.”
아린도 그 말에 긴장한 채 방패를 앞으로 당기고, 해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수십에서 백이 넘어가는 소리가 이제는 아린의 귀에도 들렸다.
에드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그녀의 옆에 섰다. 다행히 길은 앞뒤로 쭉 뻗은 길이라 앞뒤만 조심하면 됐다.
“뒤는 제가 막을게요.”
아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시뻘건 눈을 번뜩이며 달려오는 것들은 시궁창에 사는 쥐들이었다.
다만 그 쥐가 소형견만큼이나 컸으며 그 수가 수십을 헤아린다는 점이었다. 인간 따위 걸리면 삽시간에 뼈만 남을 만큼 섬뜩한 기세를 뿌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빙결의 활에 마력을 주입하고 날렸다. 바닥에 꽂힌 화살을 중심으로 하수도의 오염된 물이 얼어 나갔다.
쩌저저적.
달려오는 쥐들의 다리가 얼어붙으며 모조리 멈춰졌다. 그러자 쥐들은 자신들의 다리를 물어 뜯어내고는 얼어붙은 오수 위를 기어오기 시작했다.
그 집요함에 에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쥐가 아니라 마물이네.”
다리를 잃고 기어오는 쥐들 따위 상대하기 어려울 것도 없다. 에드는 또 한 발의 화살을 전방으로도 날렸다. 전방에서 달려오던 마물 쥐들도 다리가 얼어서 더는 달려오지 못하게 됐다.
에드는 마물 쥐에게 다가가 샐러맨더의 검을 휘둘렀다. 불이 붙어 죽은 마물 쥐에게서는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마물이라도 죽으면 경험치가 들어오는데 어째서인지 경험치도 주지 않는 쓸모없는 녀석들이었다.
아린이 에드에게 물었다.
“직접 죽이실 건가요?”
“아뇨. 이 녀석들은 그냥 같이 죽이죠.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아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해머를 들고 걸어가 기어오는 마물의 머리들을 내리찍었다.
숨통을 끊는 데 있어서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마치 기계와 같은 반복적인 내려치기로 전방의 쥐들을 처리하는 모습에 에드도 기어오는 마물 쥐들을 모조리 죽였다.
아린은 마물 쥐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건 마기에 노출되어서 변형된 것일 뿐 마물이라고 보기 어렵겠네요.”
“그냥 쥐가 마물화 된 겁니까?”
“예.”
에드는 그 말에 어째서 이 녀석들이 경험치를 주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일반 쥐가 마물화 되면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뭔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네요.”
에드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섰다.
“제가 앞장서죠. 그 빛나는 것 혹시 제가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까?”
“잠깐만요.”
아린이 손짓하자 에드는 자신의 앞으로 이동한 빛의 무리를 볼 수 있었다. 자체 발광하는 빛의 구슬을 앞에 둔 에드가 걸음을 옮겨 보았다.
걸음을 따라 이동하는 것을 확인한 에드는 이 마물 쥐들의 발소리가 들렸던 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어서는 한참이 걸릴 것이 뻔했기에 속도를 높였다. 에드를 따라 아린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에드는 달리면서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중점적으로 이동했다. 마기에 노출되어서 마물화 된 것들의 수가 많은 곳을 방향으로 잡는다.
경험치를 주지 않는 것을 보았으니 화살도 아까운 놈들이다.
에드는 달려가는 중에 반쯤 썩은 개를 보았다. 에드가 반응하기도 전에 뒤에서 해머가 날아와 썩은 개를 박살 내고는 말했다.
“단순히 마기가 아닌 것 같아요. 죽은 것들이 일어날 정도라면 사령의 기운도 함께 있는 것 같아요.”
죽은 자를 깨울 수 있는 것은 악마 중에서도 특별한 자들이 가진 힘이다. 사령의 기운.
사령의 기운은 아직 에드도 만나보지 못했다. 최소 중급 악마 이상 되어야 다루는 힘.
혈마석의 흔적을 따라 쫓아왔으니 중급 악마 이상일 가능성이 컸는데 사령의 기운을 다루는 것을 보면 만만치 않은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이쪽으로 가보죠.”
사령의 기운에 깨어난 썩은 개가 있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곳으로 가다 보니 죽었다 살아난 해골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반쯤 썩은 시체를 보고 인상이 절로 굳어졌다.
“구울이에요. 제가 앞장설게요.”
뒤에서 달려오던 아린이 방패를 던졌다. 푸른 빛의 방패가 날아간 궤적에 걸린 구울들이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신성력을 품고 있어서 그런지 산산이 조각나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사령의 힘을 읽은 아린이 위치를 잡았다. 달려가면서 방패를 집어 든 그녀가 외쳤다.
“저쪽이에요.”
뭔 놈의 하수도에 시체를 이리도 많이 버렸는지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구울들을 상대로 아린이 무섭게 날뛰었다. 그런 아린을 따라가던 에드는 천장에 매달린 거미를 보았다.
거미들도 크기가 커져 있어서 거의 어린 아이만한 크기였고, 입에서 독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기에 화살로 쏴서 떨어트렸다. 아린은 구울에 집중하고 머리 위로 나타나는 녀석들은 에드가 처리하면서 그들은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게 달려가던 아린이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멈춘 곳은 하수도의 물들이 모이는 곳. 넓은 공터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슬에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내가 매달려 있었다. 천장이 다른 곳보다 높아서 그렇게 매달려 있는 사내의 발은 더러운 오수에 닿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내의 전신은 피투성이였고, 그런 그의 몸에 붉게 빛나는 룬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걸 본 아린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저 사람의 몸에서 마기와 사령의 기운을 뽑아내고 있어요.”
그의 전신에 그려진 룬 문자와 바닥의 더러운 오수 밑에서 핏빛으로 일렁이는 빛이 꾸준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술법진을 가동하고 있어서 지금 하수도에서 마물이 일어나고, 사령의 힘이 넘쳐나고 있어요.”
아린은 술법진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아직 제대로 발현된 것도 아니에요. 그저 술법진에서 넘쳐나는 마기와 사령의 힘만으로 그렇게 된 거예요.”
에드는 그 말에 인상을 굳히고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른 자는 없죠?”
“없어요.”
에드가 매달린 자를 향해 소리쳐 물었다.
“살아있나?”
에드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든 사내는 콧수염이 멋들어진 갈색 피부의 사내였다. 디에고를 닮은 그의 눈이 에드와 아린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죽을 때가 다 됐나 보군. 성기사가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을 하면서도 왈칵 피를 토하는 그를 바라보던 에드가 물었다.
“후안?”
“성기사는 그렇다 치고, 자네는 누군가?”
“에드.”
에드는 말 한 마디하는 것도 힘겨워하는 것 같아 아린을 돌아보았다.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그동안 술법진을 살피던 아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들어가면 술법진의 힘에 휘말리게 될 거예요.”
에드는 그 말에 화살을 뽑아 쏘았다. 두 발의 화살이 날아가 후안을 매달고 있던 사슬을 잘라냈다.
후안은 바닥에 떨어져서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후안은 고개만 든 채 물었다.
“···날 죽이러 온 건가?”
에드는 그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후안이 악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중급 악마 정도가 아니다. 이 마법진에 모인 마기와 사령의 기운을 생각하면 상급 악마 수준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 용할 정도로.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악마니까 일단 때려잡는다? 지금까지라면 주저 없이 그랬을 터였다.
그런데 후안은 이 술법진에 마기와 사령의 힘을 갈취당한 거지 그가 원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건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린도 그걸 알았는지 곧장 그에게 무기를 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디에고와 소피아를 만났다.”
에드의 말에 후안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후안의 두 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들은 괜찮은가?”
“괜찮아. 소피아는 그대를 구해달라고 청했다.”
후안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성기사에게 날 구해달라고 했다고?”
“그래.”
후안의 시선이 아린을 향했다.
“그래서 성기사께서는 뭐라고 답해주었나?”
아린은 소피아가 꽉 잡았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악마가 아니라면 구해주겠다고 했지.”
후안은 그 말에 가만히 아린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진짜 성기사로군.”
후안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발아래 술법진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날 찾아온 거지? 숨어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래. 믿기 힘든 이야기들을 들었지. 10년 동안 빈민가의 지배자로 지내면서 약도, 도박도, 매춘도 없는 깨끗한 빈민가를 만들었다고. 잘 숨어있었더군. 혈마석의 흔적을 쫓지 못했다면 못 찾았을 거야.”
후안은 술법진에 손을 가져다 댔다가 붉은 스파크와 함께 손을 뒤로 빼고는 중얼거렸다.
“혈마석. 그래 그것 때문에 찾았군.”
후안은 힘없이 말을 이었다.
“디에고를 낳고 나서는 빈민가를 바꿀 수밖에 없었지.”
후안은 술법진을 더 살피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에드에게 물었다.
“디에고와 소피아는 무사한가?”
“소피아는 당신이 싸웠을 때 마기에 노출되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 아린이 치료해주지 않았다면 죽었을 거야.”
후안은 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살면서 성기사의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군. 그래도 고맙네.”
후안은 그리 말하고는 양팔을 벌리며 물었다.
“혹시 이 술법진을 해체할 수 있겠나?”
아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술법진에 기운이 거의 가득 찬 상황이야. 잘못 건드리면 오히려 진이 작동하게 될 거야.”
에드는 그 말에 후안에게 물었다. 대답은 아린이 해주었다.
“이 술법진 위력이 얼마나 돼?”
“지금까지 모인 기운만 해도 영주성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도시의 삼할 이상이 일거에 죽을 거예요.”
후안이 그 뒷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령의 기운에 의해 죽은 자들은 살아날 거고, 도시 전체가 죽음의 땅이 되는 데는 하루면 족하지.”
상급 악마의 마기와 사령의 기운을 모조리 끄집어내서 만든 술법진. 그 위력은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라고 했다.
“이걸 막을 방법은?”
후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시 그릇에 담아야지.”
아린이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어. 그리고 지금 당신 몸은 그걸 견디지 못해.”
후안이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배를 잡고 웃던 후안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아린을 바라보았다.
“지금 성기사가 악마 걱정을 해주는 건가?”
아린이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는 답했다.
“다시 기운을 흡수하다가 잘못되면 술법진이 폭발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도시는 끝장이야!”
후안은 웃음을 그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기세가 달라졌다. 그가 뿜어내는 격에 피부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처음 만나본 상급 악마. 후안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나 후안 레트리아스야. 악마 중의 악마. 이건 내가 흡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