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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40화 (40/202)

#40

단서

디에고는 아린의 몸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며 본능적으로 물러났다. 인간이 저런 신성한 힘을 품어도 되는 걸까?

저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그리고 그 강대한 빛이 닿자 엄마가 몸을 부르르 떨고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디에고가 놀라 다가가려 하자 아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디에고의 어머니 몸에 보라색 반점이 급격하게 올라왔다. 더 안 좋아지는 것 아닌가 싶을 때 어머니의 입에서 보라색 핏물이 쏟아져나왔다.

흘러나온 보라색 핏물이 입가를 타고 흐르다가 푸른 빛에 휘발되어 사라졌다. 그 뒤로 어머니의 안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도한 디에고는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빈민가에서 아버지가 사라지고 사람들을 등쳐먹던 부랑자 둘이 화살을 이마에 꽂은 채 나란히 쓰러져 있었다. 빈민가에서 아버지가 사라지고 왕 노릇을 하던 둘이 저리도 허망하게 죽어버릴 수 있나 싶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종아리에 화살이 박힌 채 비명을 지르는 자신을 괴롭히던 녀석들. 에드는 그들의 종아리에 난 상처를 칼로 다시 째고 화살을 뽑아내면서 뭐라고 속삭이고 있는데 그 속삭임에 소년들은 입술을 깨물고 비명을 참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저거 아무리 봐도 후유증을 더 남기지 않을까 싶은 치료였다.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년들을 보니 어째 불쌍해 보였다. 지금까지 자신을 그렇게 괴롭힌 녀석들이 불쌍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때 뒤에서 푸른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디에고가 돌아보니 아린이 어머니를 편히 눕혀놓고는 말했다.

“이제 잘 먹이기만 하면 금세 좋아지실 거야.”

디에고는 그 말에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린은 그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녀의 눈이 푸르게 빛나는 것을 보고 디에고가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사람의 눈이 저렇게 빛날 수도 있나 싶어서 물러나던 디에고를 보던 아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아이에게는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보니 이 아이의 심장에 작은 조각이 느껴졌다. 마기의 조각은 어머니에게서 느껴졌던 마기보다 더 작았다.

아린이 손을 내밀어 디에고의 어깨를 잡고는 신성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한 반발력과 함께 서로 반대로 튕겨 날아갔다.

디에고는 가슴을 부여잡고 피를 왈칵 쏟고 있었는데 그 핏물이 붉은색이었다. 그리고 심장에 있는 마기의 조각은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린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이 저릿거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 전해진 탓이다.

“왜 이러세요?”

아린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에드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둘의 상태를 보더니 물었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디에고의 엄마와 디에고까지 데리고 일단은 테인을 만나기 위해서 ‘잠 못 드는 밤’으로 향했다.

홀로 술잔을 기울이던 테인이 늘어난 일행에 당황해 할 때 에드는 더그에게 부탁해서 디에고의 어머니와 디에고의 방을 잡아줬다.

빈민가에서 그렇게 일을 벌였으니 일단은 떠나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깨어나거든 물을 것이 많았다.

그녀와 디에고를 윗층에 보낸 후에 일행이 다시 자리에 모였다.

에드는 테인이 권해주는 술을 한 잔 비우고는 물었다.

“혹시 악마와 인간 사이에도 아기를 가질 수 있습니까?”

테인은 에드의 물음에 웃음을 터트렸다.

“악마의 사생아를 얘기하는 건가? 그런 미친 악마 놈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악마의 사생아는 태어날 때부터 다르네. 뿔이 있거나, 아니면 붉은 피부를 가지거나 해서 눈에 쉽게 띄지. 그래서 어렸을 적에 다 죽네.”

악마 연구가인 테인에게 물으면 뭔가가 나올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도 이런 사안은 겪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건가?”

아린이 대신 답했다.

“조금 전의 그 아이. 몸에 마기를 품고 있어요.”

“마기를 품고 있어? 중급 악마란 말인가?”

“아뇨. 악마라면 바로 알아봤죠. 하지만 심장에 마기가 심겨 있어요. 마치 씨앗처럼.”

테인은 그 말에 인상을 굳혔다.

“악마 추종자나 악마 종속자는 아니고?”

“예. 그것도 아니었어요.”

테인의 표정이 굉장히 심각해졌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경우군. 그럼 이곳으로 향하게 했던 혈마석의 기운이 가리키는 것이 그 소년은 아니라는 것이겠군.”

“일단 디에고의 엄마가 깨어나면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아이는 몰라도 그녀는 알고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 남자 이름이 뭔지 알 수 있겠나? 나도 한 번 정보를 모아보지.”

“후안이라는 남자입니다.”

에드는 부랑자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답해줬다. 테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잔에 잔을 채워줬다.

“우선 한잔하면서 쉬게. 어차피 그 아이 엄마도 깨어나야 알 수 있을 테니까.”

에드는 술잔의 술을 비우면서 ‘잠 못 드는 밤’을 돌아보았다. 테인이 이번에 그들을 데리고 온 곳에 모인 이들은 상인 아니면 귀족들로 보였다.

테인은 어떤 도시를 가든 딱 한 가지만 보고 숙소를 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직 술. 술맛만 보고 골라서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달랐다.

‘어부들의 밤’은 강가에서 열심히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지친 몸을 끌고 와 에일을 들이키는 곳이었고, 지금 이곳은 와인을 마시는 곳이었다.

에드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다가 생각난 듯 아린을 돌아보았다.

“만찬이 있다고 안 했던가요?”

아린이 헛웃음을 흘리고는 답했다.

“짓궂네요.”

“찰리 주임 사제가 뒤끝 있어 보이던데요?”

“뒤끝이 있으면 어쩔 건데요?”

아린은 술이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당차게 얘기했다. 그 모습에 에드와 테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누구도 성기사를 건드릴 수는 없지.”

대륙을 아우르는 아스트론 교단에서도 고작 한 줌밖에 안 되는 성기사들이다. 그들은 아스트론의 검이라 칭하며 감히 누구도 그들을 건드릴 수는 없다.

그것이 설령 대주교라고 해도.

고작 주임 사제 하나 정도가 어쩔 수 없는 상대다.

다시 잔이 채워지고 술잔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디에고의 어머니 소피아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그 방에 모였다. 테인이 더그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디에고를 데리고 가서 아침이라도 사 먹이고 있게.”

“엄마 옆에 있겠어요.”

디에고의 말에 에드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 형이 함께 있을 테니까. 여기는 스테이크가 맛있더라. 더그랑 가서 먹고 있어.”

디에고는 에드의 두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고 했지만, 자신과 어머니에게 한없이 베풀어 준 사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 진짜 형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부탁할게요.”

“그래.”

에드는 디에고의 머리를 슥슥 헝클어트리고는 더그와 함께 내려보냈다. 소피아는 디에고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멀어지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디에고가 더그와 함께 내려간 뒤에 아린이 소피아의 손을 잡고는 말했다.

“저는 아스트론 교단의 성기사 아린입니다.”

소피아가 긴장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성기사를 만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분위기였다. 겁에 질린 표정.

아린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린이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할 때 에드가 대신 물었다.

“한 달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 날은···.”

주저하는 소피아에게 에드가 물음을 이었다.

“한 달 전 당신은 악마의 마기에 노출되어서 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당신의 남편 후안은 사라졌죠.”

“그게···.”

에드는 잠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소피아는 고민하다가 결국 두 손으로 아린의 손을 꼭 쥐었다.

“남편은 아무런 죄가 없어요.”

“우리는 그 날의 상황을 알고 싶은 겁니다.”

아린이 그 손을 꼭 쥐고 묻자 소피아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 날 남편을 찾아온 자가 있었어요. 마치 안개를 얼굴에 두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어요. 그의 눈이 핏빛처럼 붉었다는 것을요. 게다가 그 눈은 세 개였어요.”

소피아는 당시를 떠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아린이 손을 잡아주고 있자 그녀는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끔찍한 목소리로 자신을 따르라고 말했고, 남편은 거절했어요. 그랬더니 남편과 그가 싸우기 시작했죠. 그러나 남편이 너무나 쉽게 제압당했어요. 남편이 누군가에게 진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았는데 너무나 쉽게 제압당했고 그자에게 끌려갔죠. 그를 막고 싶었지만, 그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손발이 덜덜 떨려서 움직일 수 없었어요.”

“남편분이 어디로 끌려간 건지 혹시 아시나요?”

소피아는 그 물음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기를 내서 그 뒤를 쫓았어요. 칼림 시의 지하 하수도로 내려가는 것을 봤어요. 그곳에 내려가기 전에 돌아보는 그 눈빛이 제 마지막 기억이에요. 깨어났을 때는 디에고가 저를 집에 옮기고 난 뒤였죠.”

“왜 교회에 알리지 않았죠?”

소피아는 주저하며 말했다.

“교회는 빈민가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그리고 제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서 교회까지 갈 수도 없었고요. 그리고 후안을 믿었어요. 그는···.”

소피아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는 힘겹게 답했다.

“그는 보통 남자가 아니었어요. 후안은 빈민가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남자였죠. 하지만 그는 교회를 싫어했어요. 처음에는 찰리 주임 사제를 싫어해서 그러는가보다 싶었는데 그는 교회 자체를 싫어했어요.”

에드는 그 말에 소피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후안이라는 남자가 악마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지만 같이 살을 부대끼고 사는 그녀는 그의 이상함을 알아보았다.

빈민가의 영웅이었던 후안. 그는 과연 정말 악마였을까? 그가 악마였다면 테인도 처음 볼 정도로 디에고가 이례적인 사례다.

“디에고가 그의 아들이 맞나요?”

소피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와 저의 사랑의 결실이에요.”

아린이 혹시나 해서 물었다.

“두 분이 정말 사랑한 건가요?”

“예. 그는 나를 아끼고 사랑해줬어요. 디에고도 사랑받으면서 컸고요.”

디에고는 빈민가 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컸다. 그걸 보면 부모가 잘 교육했다 싶은 상황이라 후안이 악마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빈민가의 정신적 지주이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식 교육 잘하는 악마?

그런 악마는 인간보다 낫지 않은가?

탐욕에 찌든 찰리 주임 사제와 비교하니 오히려 더 인간 같은 악마다.

백해무익하던 악마와는 다른 자. 하지만 후안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모른다. 일단은 찾아서 확인해 봐야 한다. 그리고 후안을 끌고 갔다는 또 다른 악마.

아마 그자가 진정 아린이 쫓고 있는 자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혈마석을 추적해서 도착한 곳이 이곳이다. 이곳에 악마는 있다.

“지하 하수도. 확인해 보죠.”

에드의 말에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린의 손을 소피아가 꼭 잡았다. 아린이 돌아보자 소피아가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남편을 구해주세요.”

아린은 아무런 답도 해주지 못했다. 소피아는 그녀의 손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했다.

“제발 부탁드려요.”

홀린 건가 싶었지만, 그녀의 눈에 이상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랑하는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의 눈빛으로만 보였다. 아린은 잠시 주저하다가 소피아의 손을 마주 잡고는 답해주었다.

“그가 악마와 연관이 없다면요.”

아린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대답이었다.

소피아는 힘없이 손을 놓고는 고개를 숙였다. 성기사에게 악마 남편을 구해달라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지 스스로도 깨달았나 보다.

그녀를 두고 밖으로 나온 에드는 테인을 돌아보았다.

“그녀와 디에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려고?”

“예.”

테인은 외눈 안경을 만지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모은 정보로 보면 후안은 빈민가의 정신적 지주이자 그들을 대표하는 자임은 틀림없었네. 10년 정도 빈민가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이라고 하더군. 그러면서도 외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어. 빈민가를 온전히 통제했어. 그래서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나도 못 알아낼 정도로 완벽한 빈민가의 지배자였네.”

“빈민가에서 뭘 했는데요?”

에드의 물음에 테인이 낮게 웃었다.

“빈민가의 이익을 대변했지. 빈민가를 노리던 자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네. 그렇게 몇 번 진행되고 나자 사람들은 감히 빈민가를 노리지 않았지.”

테인은 1층에서 식사를 하는 이들 중 디에고를 발견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곳 빈민가에는 약도 없었고, 도박도 없었고, 매춘도 없었다는군. 그 모든 것은 그가 사라진 한 달 사이에 바짝 엎드려 있던 것들이 일어나며 생긴 변화였어.”

에드도 디에고를 바라볼 때 녀석이 고개를 들어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양 볼이 가득할 정도로 스테이크를 쑤셔 넣고 씹는 모습에 에드가 헛웃음을 흘렸다.

“빈민가의 왕자님이었네.”

아린도 옆에 서서 디에고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아니면 악마의 아들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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