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성기사 아린
“죽여야 할 놈들을 죽인 것뿐입니다.”
에드가 담담히 대답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깊이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맞네. 죽여야 할 놈들이니 죽이는 것이지. 그건 순리야.”
테인의 시선이 에드에게 향했다.
“자네가 악마 사냥꾼 에드인가 보군.”
“저를 아십니까?”
“악마는 16년 전 크게 줄어든 이후로 은밀하게 숨어들었지. 하지만 그들은 더욱 은밀하게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악마들을 죽이는 이가 나왔으니 내 어찌 관심을 가지지 않겠는가?”
에드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은 진짜다. 악마의 시대 1에서의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악마를 연구하고 그들의 씨를 말릴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사람은 진짜다.
“악마를 사냥하는 이들을 모두 살펴보고 계십니까?”
“악마를 사냥하는 이들은 언제나 환영이지.”
에드는 테인의 말에 이 사람이면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불려온 순간이 악마의 시대 2가 시작된 시점이라면 그 시점에서 악마의 시대 2 주인공들도 활약을 시작했을 터였다.
자신은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엑스트라의 몸에 들어왔지만, 주인공들은 다르다. 자신처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들도 분명 악마를 잡고 있을 터였다.
“1년 사이에 악마를 사냥하고 다니는 이들이 있습니까?”
테인은 그 물음에 턱을 괴고는 물었다.
“기간을 한정하는 이유라도 있나?”
“그런 건 없습니다. 하지만 호기심이 일어서요.”
내 대답을 들은 테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몇 명이 있기는 하네만 자네처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수준은 아닐세.”
있다. 악마의 시대 2 주인공들이.
“혹시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겠습니까?”
“천공의 신 아스트론의 신입 성기사가 지금까지 악마를 일곱이나 죽였지. 그리고 난파된 배의 생존자인 야만전사는 악마를 다섯을 죽였고, 신비술사 하나가 악마를 다섯, 쌍룡사의 수도승이 악마를 셋, 마지막으로 그로브 숲에서 나온 주술사가 셋을 죽였다고 들었네. 어쩌다 악마를 하나나 둘을 죽이는 경우는 많아서 그런 경우는 제외하고 특별히 악마랑 자주 엮이고 그들을 잡는 이들은 그만큼이 있지.”
성기사, 야만전사, 신비술사, 수도승, 주술사.
다섯 개의 직업군에서 악마를 사냥한 이들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촉이 왔다. 저들이 진짜 주인공들이다.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저들은 메인 퀘스트를 따라 움직일 이들. 저들과 어떤 식으로든 엮이는 것이 좋으리라.
다행히 아칼란에 관련된 자는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대체 뭐에 죽었는지 모르게 악마를 찢어 죽이는 자가 있네. 지금까지 잡은 수는 여섯. 그런데 누구인지 특정이 힘드네.”
1년이라는 기간을 한정했다고 하자마자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적어도 악마에 대한 테인의 연구는 놀라울 정도다. 게다가 16년 전 악마의 시대에 종결을 가져왔던 자유 기사 펜드리건의 조언자라면 그가 지금 가지고 있을 정보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그조차 상대가 누군지 파악하지 못했다?
게다가 악마를 찢어 죽이다니? 인간의 힘으로는 야만 전사라고 해도 힘 스탯에 투자하지 않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것도 꽤 많은 스탯을 투자해야 가능한 일.
지금 수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시기에는 전설의 3영웅이나 가능한 일을 해내는 자가 있다.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주인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인은 따뜻한 시선으로 에드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같은 길을 걷는 동지를 바라보는 눈빛이다.
“그중 자네가 발군이지. 그들 모두를 합친 만큼 잡았으니까. 그런 자네를 이렇게 만나다니. 아스트론님이 보살핀 것 같군.”
“그런데 제가 얼마나 악마를 사냥했는지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냥 보였네.”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에드는 말을 돌렸다.
“마테 시로 간다던데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아, 그쪽에 조사할 것이 있어서. 실은 손녀가 이번에 아이를 낳았다는 얘기를 듣고 고향에 다녀오는 길이거든.”
그러고 보니 자식들이 악마에게 죽은 것 때문에 눈이 돌아가서 악마를 연구한다고 들었었다. 자식들이 죽을 때 살아남았던 손녀가 벌써 아이를 낳을 정도로 컸다는 걸까?
이쪽 세계가 현실과는 다르게 열다섯부터 성인으로 치고, 열일곱 정도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문화다 보니 그러려니 했다. 악마의 시대 1이 나온 지 벌써 16년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테인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자네 앞으로 뭘 할 생각인가?”
“지금처럼 악마들을 사냥할 겁니다.”
“역시!”
테인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세.”
어차피 테인의 마차를 얻어탄 마당이다. 그와의 동행 중에 악마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의 사냥에 이득이니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죠. 그보다 그 책 제가 볼 수 있겠습니까?”
“악마 총람 말인가?”
“예. 제가 모르는 악마들도 많을 텐데 그들의 습성이나 그런 것에 대해 알면 사냥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맞네. 맞아. 펜드리건 그 친구처럼 무작정 돌진해도 되는 친구들이 있기는 한데 그건 무모한 짓이지. 자네 뭘 좀 아는 친구구만!”
테인은 자신의 옆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리 와서 앉게. 내가 직접 설명해 주지.”
에드가 테인의 옆에 앉자 그는 손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악마 총람을 펼치고 설명을 시작했다.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그림이 어찌나 생생한지 딱 보는 순간 무슨 설정집을 보는 느낌이었다.
악마의 시대 1에서 펜드리건이 잡았던 녀석은 거의 다 있다고 봐도 좋았다. 게다가 마침 악마 총람에는 등급도 나눠져 있어서 확인하기 좋았다.
테인과 함께 여행하니 여러모로 편했다.
아칼란과 완전히 척을 진 상황이라 혹시 국경을 넘는 데 문제가 있을까 싶었지만, 테인과 함께니 그 또한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가는 길에 에드는 자신도 모르던 수많은 악마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관통 스킬이 있어 어지간해서는 잡을 수 있는데 악마들의 약점을 알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큰 장점이었다.
그렇게 마테 시를 향해 가는 이 주의 시간은 생각보다 알찼다. 그리고 왜 마테 시에 가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쪽에서도 중급 악마가 출현한 것으로 보고 그자를 찾아 나섰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이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호위가 그 정도로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마차 안에서 속삭이듯 묻는 물음에 테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맞네. 솔직히 실력은 하급 악마나 잡을 수 있을 걸세.”
솔직히 그것도 무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냥 봐서는 토미오보다 크게 나을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물론 그만한 이가 마차를 모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기는 하다. 그래도 악마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사실 이곳에 가려고 하는 게 전에 말했던 신인 중 하나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일세.”
“신인이요?”
“자네가 묻지 않았나? 1년 사이에 두각을 드러낸 악마를 잡는 이들. 그들 중 하나를 만날 것 같아서 그리로 가고 있었네. 수도로 돌아가기 전에 만나보고 싶어서.”
“그중 누구를 만나러 가시는 건데요?”
“신입 성기사. 자네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악마를 잡은 유망주지.”
에드도 솔직히 기대됐다. 어쩌면 주인공 중 하나일 터.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약속 잡으신 건가요?”
“아니. 하지만 그 신입 성기사도 그 중급 악마에 대한 것을 조사하고 있는 것 같더군. 도착할 때쯤에 해결했든 아니면 해결하는 중이든 마주칠 것 같았지.”
“운에 기대시는 거네요.”
테인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와 만난 것만 보아도 내 운이 나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 않나?”
테인은 악마의 시대 1에서 자유 기사 펜드리건과 만나서 그의 조언자로 역할을 하면서 복수를 이뤘다. 대악마 리펠라스를 잡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운이 좋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럼 그 운빨에 기대어 가보기로 할까?
“그런데 악마를 파악하셨으면 교단에 알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도 해결할 수는 있지만, 의심만 가는 거로는 그들을 움직일 수 없다네. 그리고 그들도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 신입 성기사를 보내는 거겠지.”
“중급 악마면 쉽지 않을 텐데요?”
“아, 자네 그 신입 성기사에 대한 소문 못 들었나?”
“예. 제가 뭐 그런 부분까지는 귀를 열어놓지 않아서요.”
테인은 괜찮다는 듯 에드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괜찮네. 자네는 그 시간에 악마에 대한 소문을 쫓고 있던 것 아닌가?”
어색하게 웃고 있으려니 테인은 알아서 오해하고는 말을 이었다.
“중급 악마를 잡은 전적이 있네. 일곱 중 하나가 중급 악마 데보라였네.”
데보라는 악마 총람에도 있었기에 기억을 떠올렸다. 중급 악마인데 인간형이 아니라 중형의 크기를 자랑하는 놈이었다. 그만한 놈을 성기사가 잡기 쉽지 않았을 텐데 생각보다 실력이 좋은가 보다.
“혼자서요?”
“그렇지. 혼자서 잡았다고 하더군.”
“대단하네요.”
“일단 만나보면 알겠지.”
마부로 함께 하는 기사는 마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관심도 없었고, 그들의 안내를 도맡아 했다. 왜 그런가 물어보았더니 펜드리건이 붙여준 수행 기사라고 했던가?
덕분에 이 세계에 들어와 가장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마차는 마테 시에 도착하기 무섭게 곧장 아스트론 교단의 교회로 향했다.
“도착했습니다.”
테인이 지팡이를 짚고 악마 총람을 가방에 넣은 채 어깨에 걸치는 것을 보고 에드도 짐들을 챙겼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아스트론 교단의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베른 시에 비교하면 몇 배나 되는 크기의 교회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사제와 그 뒤로 두 명의 수행 사제가 있었다.
확실히 다른 곳보다 월등한 크기의 교회인 것 같았다.
사제는 테인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길. 마테 지구를 맡은 주임사제 프랑크라고 합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길. 테인이오.”
“대주교 마틴님에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허허. 그 친구는 요즘 잘 지내는지 모르겠소. 못 본 지 벌써 16년이 지났으니.”
대주교 마틴은 펜드리건과 함께 싸웠던 전설적인 사제였다. 그때는 사제였는데 대주교까지 올라갔나 보다.
“안으로 드시죠.”
“그럼 신세 좀 지겠소.”
테인을 따라서 교회의 문을 지나 뒤편의 숙소로 갔다. 그곳에서 프랑크가 차를 대접해 줬다. 마차를 몰고 온 기사는 수행 사제들과 함께 움직였지만, 에드는 테인의 권유로 함께 가서 차를 대접받을 수 있었다.
“이쪽 분은···?”
에드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에드라고 합니다.”
“에드라면 혹시 그 악마 사냥꾼이십니까?”
프랑크가 눈을 크게 뜨고 묻는 말에 에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들 부르시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아론 사제가 교단에 악마를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알려서 전 교회에서 에드님에 대한 편의를 봐 드리라는 교단의 명이 있었습니다.”
에드는 그 말에 그저 미소로 답했다. 아론이 주었던 징표가 있어서 어떤 교회를 가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굳이 그게 없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손을 써놓았나 보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역시! 대단하시오.”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오빠!”
크게 오빠를 부르며 들어온 이는 가죽 갑옷에 흉갑과 완갑 정도를 갖춰 입어 활동력을 높인 복장이었다. 여행자용 망토를 두르고 있던 여인은 밝은 얼굴로 뛰쳐 들어왔다가 에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성큼 다가와서는 에드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이거 오빠의 성물인데? 이걸 왜 당신이···?”
에드는 그제야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어지간한 미녀도 울고 갈 아론을 닮은 미녀였다.
“아론 사제에게 받았습니다.”
에드가 옷 안으로 손을 넣어 아론이 전해준 아스트론 징표를 꺼내 보이자 그걸 본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빠가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걸 줬다고요?”
“신은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한 거지 이런 기물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프랑크는 그 말을 듣고 감탄했다.
“과연 아론 사제로군! 그런 생각을 가졌으니 아스트론님의 총애를 받는 것이겠지.”
프랑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들어온 여인에게 에드를 소개해줬다.
“이쪽은 에드님. 교단에서 특별히 편의를 봐달라는 말을 전할 정도로 뛰어난 악마 사냥꾼이시네.”
여인은 그 말에 에드를 다시 바라보다가 오른 주먹을 왼쪽 심장 위에 두드리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스트론을 모시는 성기사 아린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