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추적
모두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테인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지금 쫓고 있는 악마의 흔적은 찾았나?”
아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테인을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아셨죠?”
“이곳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중이었지. 자네도 그걸 듣고 찾아온 것 아닌가?”
그 말에 대한 답은 프랑크 주임 사제가 대신해주었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파악한 것은 2주 전이었습니다. 기도를 드리러 오던 형제들이 하나둘 사라지지 않았다면 파악도 못 했을 겁니다. 그래서 교단에 지원을 요청했죠.”
“그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라진 건가?”
아린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답했다.
“빈민가에서 벌어진 일이라 정확한 집계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도착한 지는 일주일 정도 됐고, 지금 알아낸 수로만 대충 백 명 내외로 알고 있습니다.”
“허! 생각보다 많군.”
아린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빈민가 사람들이 저를 어려워해서 아직 더 많은 것을 알아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성기사치고는 간단한 복장이라고 하나 그녀는 등에 둥근 방패를 착용하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해머 하나와 검 하나를 양쪽에 차고 있었다.
게다가 망토 사이로 보이는 흉갑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아스트론의 증표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빈민가에 사는 자들 치고 뒤가 구리지 않은 자들이 드물다.
그런 자들이 아스트론의 성기사에게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리니 멀리하는 것도 당연했다.
오히려 빈민가에서 실종자가 백 명이나 나왔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 대단한 일이었다.
하긴 이만한 미인이 빈민가에 들락거렸다면 성기사가 아니었다면 벌써 무슨 일이 생겨도 생겼으리라.
에드의 시선이 테인을 향했다.
“어떤 놈인 것 같습니까?”
테인이 그 물음에 악마 총람을 꺼내서 펼쳐보고는 빠르게 종이를 넘겼다.
“도시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면 인간형으로 변신할 수 있거나 소형 악마일 가능성이 크지.”
테인이 종이를 넘기면서 질문을 던졌다.
“아직 추종자나 종속자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나?”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인지 아직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린의 대답에 테인은 악마 총람의 페이지 넘기던 것을 멈추고는 좌중을 돌아보았다.
“사람의 실종이 백 단위가 넘어갔다면 아마도 식욕을 참지 못하는 중급 악마 게롤드를 의심해 볼 수도 있지.”
“하지만 이렇게 은밀하게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요? 게롤드는 인간형에 가깝다고 하지만 신장이 2미터 50이 넘는데요?”
“그래서 악마 추종자를 보았는지 물었던 것이라네. 추종자를 이용해서 사람을 모았나 싶었지. 하지만 악마 추종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텐크람을 생각해 볼 수도 있네.”
에드는 그 말에 인상을 굳혔다. 게롤드라면 식인에 미친 악마라 생각보다 일찍 발견된다. 다만 중급치고 유달리 강한 맷집을 지닌 녀석이라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이다.
반면 텐크람은 식욕에 미친 놈은 아닌데 새끼를 가졌을 때 영양분으로 인간을 필요로 한다. 다만 이 녀석은 엄청나게 민첩한 녀석으로 알려져 있었다.
레벨이 오르면서 민첩에 많이 투자한 지금의 자신도 상대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테인은 이곳까지 오면서 악마 총람을 배운 덕분에 에드의 의견을 물었다. 에드는 잠시 팔짱을 낀 채 테인이 펼쳐 놓은 텐크람의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신장 2미터. 새끼를 가졌다면 지금 상황에 적합하다. 추론일 뿐이지만, 가능성도 컸다.
“새끼를 가지면 낳는 데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했죠?”
“한 달.”
“어쩌면 새끼를 낳을 시간이 임박했을 수도 있겠군요.”
에드의 말에 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처음 소식을 접한 지는 3주가 넘었네. 텐크람이라면 며칠 내로 새끼를 낳을 가능성이 크네.”
“그럼 빨리 찾아야겠군요.”
“그렇지. 텐크람이 새끼를 낳고 나면 새끼 먹이까지 구한다고 학살이 일어날 거다.”
텐크람이 새끼의 먹이까지 구하고 새끼를 낳으면서 축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을 때는 그 피해가 최소 백을 가뿐히 넘어간다. 문제는 그 새끼의 먹이로는 아이들을 구한다는 것.
단 하루에 죽어 나갈 아이와 어른의 수가 백을 넘어갈 터였다.
에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빈민가에 탐문 좀 다녀오겠습니다.”
“자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새끼를 낳기 직전의 텐크람은 위험한 놈이네.”
“주의하겠습니다.”
에드가 밖으로 나오자 그의 뒤를 아린이 따라 나왔다. 에드가 돌아보자 그녀는 옆에 선 채로 담담히 말했다.
“제가 안내하겠어요.”
에드는 그녀의 행색을 간단히 살폈다. 지금 그녀의 행색으로 가면 빈민가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해올 수 없다. 며칠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오늘 당장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에드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갑자기 다가가니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검을 잡았다. 에드는 그녀의 목 양옆으로 스윽 양손을 밀어 넣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아린은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공격하려면 이미 전에 해야 했다. 오빠가 목숨처럼 아끼는 증표를 건네준 인물이라 방심한 탓도 컸다.
아린이 눈을 질끈 감을 때 에드는 이 여자가 왜 이러나 싶었다.
그녀의 여행자용 망토는 다행히 후드가 달린 거라 그걸 잡아서 그녀의 머리에 씌워준 에드는 뒤로 물러나서 그녀를 살폈다. 무기를 착용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성기사라는 것을 들키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입을 벌리면 또 얘기가 다르다. 성기사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을 하는 순간 발각 될 테니까.
“빈민가까지만 안내해주고 가서는 입도 벙긋하지 마세요.”
아린은 자신이 엉뚱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서 안내를 시작했다.
빈민가는 다 쓰러져 가는 건물과 천막보다 짙은 패배자의 냄새가 더 짙었다. 약에 찌든 인간부터 병마에 시달리는 자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그런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영악한 녀석들이 많았다.
빈민가까지 안내해준 뒤로 에드는 아린에게 자신의 뒤를 따르라 하고 앞장서 걷다가 아이 셋이 술래잡기하듯 웃고 떠들다가 선두에 선 녀석이 부딪쳤을 때 그 손목을 잡았다.
녀석의 손에는 에드의 동전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소년은 에드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었다.
“헤헤헤. 죄송해요.”
에드가 그 손에서 동전 주머니를 빼앗으며 다른 녀석들을 보자 벌써 도망친 후다. 잡힌 녀석은 에드의 눈빛을 보고는 침을 퉤 뱉었다.
“쳇. 영지병에게 신고할 거면 하세요. 감옥에 가면 밥은 나오니까.”
당돌한 꼬마의 말에 에드는 동전 주머니를 열어서 그 안에 든 동전 하나를 꺼내 던져줬다.
꼬마의 눈이 커졌다.
“이름?”
“톰이요.”
에드는 동전 하나를 더 꺼내서 던졌다.
“요즘 빈민가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들었다. 혹시 사라진 아이들이 있나?”
톰은 날아온 동전을 받아들고는 생각해 보다가 답했다.
“아뇨. 아직 없어요.”
에드는 그 말에 조금은 안도했다. 다행히 새끼는 낳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에드는 이번에는 은화 한 닢을 꺼냈다. 톰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고 에드는 은화를 높이 튕겼다가 받았다. 톰의 눈동자가 따라오는 것을 확인한 에드가 물었다.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나?”
톰은 그 물음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요즘 빈민가에 성기사 누나 하나가 질문하고 다니는 거랑 같은데? 아스트론 교단 사람이에요?”
에드는 뒤에 선 아린이 움찔하는 것을 느끼고는 태연하게 답했다.
“아니. 용병이야. 이번에 받은 의뢰 때문에 조사하고 있지.”
톰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자신이랑 상관없다고 여겼다. 저 눈앞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은화를 보면 다른 모든 것의 가치는 희미해지니까.
톰이 손을 내밀었다.
에드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최근 일주일간 사라진 사람들의 집을 알고 있어?”
“어제 일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무슨 일주일간 사라진 사람들의 집을 어떻게 기억해요?”
에드는 동전 주머니를 꺼내서 은화를 집어 넣으려고 했다.
“자, 잠깐! 생각났어요!”
에드가 바라보자 톰이 빠르게 말했다.
“일주일 전에 사라진 게 빈스씨 일가였어요!”
에드는 은화 한 닢을 튕겨서 날렸다. 톰이 마치 훈련 잘 된 강아지가 공을 물어오듯 뛰어올라 은화를 잡아채더니 빠르게 품에 넣고 주위를 살폈다.
“어제 사라진 사람들의 집과 일주일 전에 사라진 빈스 일가의 집만 알려줘. 그러면 3실버를 주마.”
“따라오세요.”
톰은 이게 인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다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비장한 표정으로 앞장섰다. 에드가 그런 톰을 따라가는데 뒤에서 아린이 바짝 붙어왔다.
“뭐 저리 술술 불어요?”
“돈의 힘이죠.”
에드의 대답에 아린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성기사가 하는 일이 그들을 돕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물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는 충격적이었다.
에드는 톰의 뒤를 따라가면서 빈민가의 형태를 돌아보며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퇴로를 기억해두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어제 사람들이 사라진 집이었다. 집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에드는 그 안으로 들어가 집을 살펴봤다.
천막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는데 그 안쪽은 어질러져 있었다. 에드의 손이 바닥을 짚었다. 에드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던 아린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혈향이 나는군요.”
에드는 아린의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에드가 찾는 것은 혈향이 아니다. 그리고 바닥에서 깊게 팬 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앞쪽에 두 개, 뒤쪽에 하나.
새의 다리를 닮은 텐크람의 흔적이다.
에드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텐크람이군.”
새끼를 품은 텐크람은 보통 예민한 것이 아니다. 새끼를 낳을 시기가 다가올수록 위험해진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아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드는 밖으로 나와 톰에게 말했다.
“일주일 전에 사라졌던 집으로 가자.”
“따라오세요.”
톰이 다시 앞장서 걷자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에드는 신경 쓰지 않고 걸었지만, 뒤에서 따라오던 아린은 긴장한 건지 검의 손잡이를 쥔 채 따라오고 있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곳에 있는 이들 중 태반은 삶을 포기한 패배자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위협을 느끼기에는 지난 1년간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
톰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집에는 사람들이 이미 들어와 살고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사내 하나가 나와서 톰을 쏘아보았다.
“뭐냐? 톰.”
“별거 아니에요. 그냥 길 안내를 부탁받았어요.”
에드의 시선이 험상궂은 사내에게 향했다. 그는 에드와 아린을 보더니 눈을 부라렸다.
“우리 집에 볼일 있어? 여자를 끼고 올 곳은 아닌데?”
에드는 동전 주머니에서 은화 세 닢을 꺼내서 톰에게 던져줬다. 톰이 동전을 받고서는 후다닥 멀어지는 것을 보고 험상궂은 사내가 히죽 웃었다.
“돈이 넘쳐나시나 봐? 저런 소매치기 꼬마에게 돈을 저리 주는 것을 보면.”
험상궂은 사내의 손에는 어느새 단검이 하나 들려 있었다. 에드는 그런 험상궂은 사내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다른 천막들과 다르게 이곳은 허름하기는 해도 집이었다.
뒤편에서 나온 여인들을 본 에드의 눈빛이 싸늘하게 굳었다.
반쯤 헐벗은 여인들이 있었다. 빈민가라고 유곽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인들의 눈이 약에 취해 풀려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몸을 판다. 그리고 그건 지금 험상궂은 사내 뒤편으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까지 한패라는 얘기.
“그럼 우리한테도 적선 좀 해주실까? 원한다면 여자를 품을 수도 있고.”
에드는 그들을 쭉 둘러보다가 활을 뽑아 들고 화살을 날렸다. 여자들 뒤에 나타나 슬그머니 다가오던 자들의 미간에 화살이 박혔다.
에드가 화살을 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험상궂은 사내는 뒤에서 들리는 쓰러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일행의 미간에 모두 화살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무슨···?”
고개를 다시 돌리던 사내는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단검으로 자신의 어깨를 찌른 것을 보았다.
“끄아아악!”
그 손목을 잡고 있던 에드가 사내의 얼굴에 바짝 다가간 채로 말했다.
“물어볼 게 있는데 똑바로 대답해주면 좋겠군.”
“무, 무슨···?”
에드는 사내가 아직 답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의 손목을 비틀었다. 그의 몸에 박혀있던 단검이 비틀리자 사내가 비명을 내질렀다.
“물어볼 게 있다고.”
에드의 서늘한 목소리에 사내 글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통에 비명을 지를 때가 아니다. 잘못하면 죽는다.
“뭐, 뭐든 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