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4화 (14/202)

#14

클리프 왕자

수도로 향하는 길에 소나는 에드에게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 에드도 이번 일을 빌미로 정확히 선을 그었다.

함께 배를 타고 오면서 친해지기도 했었지만, 그녀가 자신의 임무 때문에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을 벌였을 때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명확히 알았다.

그랬기에 오직 의뢰를 받은 용병처럼 대하기로 했다.

처음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살짝 걱정했지만, 달리아의 잔존 세력은 그들을 노리지 않았다. 그의 복장이 크로우의 정식 복장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이들 몇몇이 술을 사주기는 했지만 영입하려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대화 하나 없이 여행하고 수도에 도착하니 이곳은 성문부터 트라비아 왕국의 병사들이 서 있었다. 달리아 왕국의 크로우 복장을 한 에드를 막아 세운 병사들은 소나가 나서서 보여주는 패를 확인하고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서 여관을 잡았다.

그런데 여관 안에 들어가면서 에드는 이곳이 다른 여관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안에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트라비아 왕국의 사람들.

그들은 잠시 에드와 소나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물러났다.

에드는 자리에 앉아서 나오는 음식을 기다리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아칼란의 아지트인가?”

“맞아.”

지금까지는 대화가 필요 없었지만, 이제 대화가 필요해졌다. 에드의 시선이 향하자 소나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시행일은 이틀 뒤야. 그동안 왕궁의 내부 도면을 가지고 올 거야. 그걸로 침투 경로부터 모두 이해해야만 해. 내가 함께 갈 테지만 만약을 위해서.”

에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나는 말을 이었다.

“왕자의 친위대를 떨어트려 놓는 것은 아칼란의 요원들이 할 일이야. 하지만 한 명은 떨어지지 않을 거야. 클리프 왕자의 검이라고 불리는 기사 에트리안 경이야.”

“여자 기사인가?”

“맞아. 왕궁에서 지낼 때는 클리프 왕자의 곁에 있어서 온갖 구설에 시달렸지만, 실력 하나는 인정받을 만했지. 이번 전쟁에 함께 따라올 때까지만 해도 죽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마어마한 전공을 세웠지. 그녀의 실력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어.”

“그런데 그녀는 못 떼어낸다는 건가?”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떨어지지 않으니까.”

에드는 서늘한 시선으로 소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녀는 네가 상대할 건가?”

“계획은 그래.”

“자신은 있고?”

소나는 태연하게 답했다.

“나 혼자 상대한다고는 안 했어. 그 날 나와 함께 할 이가 둘이 더 있어.”

아칼란의 팀장과 요원 둘.

만만치 않은 전력이다. 그만한 이들이 기사 하나를 막는 것은 어렵지 않을 일. 문제는 다음이다.

“그럼 도면 구해와.”

“내일 아침까지 구해올 테니 쉬어.”

에드는 방으로 돌아가서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빙결의 화살집에 화살은 한 번도 빼지 않았다. 오 일 이상 충전했으니 얼마나 냉기가 맺혀있을지 궁금하기는 했다.

무한의 화살집의 화살은 이미 다시 채워 뒀다.

510발의 화살을 가지고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포기하는 것이 옳다. 중급 악마인 크레아틴을 상대할 때보다는 마력도 올랐고, 장비도 더 좋아졌다.

그러나 왕자도 악마라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보면 그걸로도 안심할 수 없다.

벨과 그곳에 모여 있던 이들을 죽이면서 상당한 경험치를 얻었다. 레벨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수준의 누군가를 죽인다면 레벨이 오를 정도.

이것도 분명히 변수가 될 수 있었다.

왕자가 악마라면 그를 죽이면서 레벨이 오를 수 있다. 잡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에드는 비수를 꺼내서 손질을 시작했다. 궁술만큼이나 비도술도 실력이 뛰어나지만, 위력 면에서는 아무래도 활의 도움을 받는 궁술만큼의 위력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위기 상황에서는 도움이 된다. 그렇게 비수를 손질한 에드는 샐러맨더의 검을 꺼냈다. 검날의 길이는 30cm정도에 불의 정령이 깃들어서인지 날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에드는 정령검이 처음이라 그것을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붉은 궤적을 따라 열기가 전해져왔다. 마력을 쓰지 않고 휘두르는 무기인 데다가 정령력이 떨어져도 그 자체가 굉장히 단단하고 날카로운 무기였다.

유물급 부터는 그 성능도 성능이지만 무기 자체로서의 날카로움이나 단단함이 명품과는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손질해줄 필요까지 없으니 이 무기는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에드는 원거리에서 강하지만 그렇다고 단검을 못 쓰는 것은 아니었다. 뛰어난 민첩으로 상대의 간격 안에서도 얼마든지 승기를 잡을 수 있다.

다만 아직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 또한 숨긴 것 중 하나다.

왕궁의 내부 도면을 놓고 소나는 이번 작전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왕궁의 북쪽과 동쪽에 불을 낼 계획이야. 지금 저쪽도 바짝 긴장하고 있어서 분명 침입자들을 감지하면 친위대가 움직일 거야. 그렇게 시선을 끌고 나를 포함해 열 명의 요원들이 그곳에 침투할 거야. 남아있는 친위대를 끌어내기 위한 요원들이야.”

“친위대가 몇 명인데?”

“신비술사 하나에 야만전사 하나, 그리고 암살자 하나와 기사 둘이야. 기사 중 하나가 에트리안 경이라 그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우리의 습격에 반응해서 움직일 거야.”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클리프 왕자의 능력은 어때?”

“전장에 나서기 전에는 그의 검술이 제법이라는 말은 들렸지만,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어. 그리고 전장에서도 직접 검을 휘두른 적은 없다고 해. 그의 곁을 지키는 친위대 때문에 아직까지 한 번도 그가 위험했던 적은 없어.”

에드의 시선이 소나를 향했다.

“뭐야? 친위대 실력이 그 정도야?”

소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를 지키는 친위대원들의 능력은 대충 장군 수준이라고 알려졌어.”

“장군?”

악마의 시대에서도 장군급이라면 중급 악마 정도는 간단히 회 쳐 먹을 실력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다섯이나 붙어있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너 고작 요원 둘 데리고 에트리안 경을 상대할 수 있겠어? 장군급이라면서.”

“죽이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시간은 끌 수 있어.”

이것들 하는 꼴을 보니 잘하면 에트리안 손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에드는 그 부분에 관해서는 관심을 끊고 시선을 돌려서 내부 도면을 살폈다.

이들이 보여준 것은 침입로다. 하지만 자신은 퇴각까지 신경 써야만 했다.

일국의 왕을 죽이는 것과 같은 난이도를 지닌 일이다. 그런 일을 고작 100골드와 유물급 장비 두 개로 의뢰하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문제는 저 친위대들이다. 장군급에 달하는 이들이 있으니 달리아 왕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터. 어쩌면 그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친위대의 정보가 필요해.”

“그들의 정보?”

“단순한 정보 말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부터 그들의 전투 방식까지 전부.”

소나는 필요없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에드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까지 준비해 올게.”

에드는 더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소나는 약속대로 저녁이 되어서 그들의 정보를 가지고 왔다. 에드는 자신의 침대에 앉아서 그들의 능력을 살펴보았다.

어떤 무기를 쓰는지 어떻게 싸우는지를 보고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그들과 싸우게 된다면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해가 저무는 것을 옥상의 지붕에서 지켜보는 에드의 뒤편에 소나가 서 있었다.

“언제 시작이지?”

“해가 완전히 저물면.”

짙은 석양이 하늘을 붉게 태우다가 온전히 가라앉고 차가운 남색의 하늘이 내려앉았을 때 왕궁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왕궁에서 치솟는 불길을 보고 소나가 다가왔다.

“출발해야 돼.”

에드는 대답 대신 먼저 움직였다. 가볍게 지붕 위를 밟으며 달리는 에드의 시선에 또 하나의 불길이 치솟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두 개의 불길. 그것은 친위대를 떨어트리기 위한 공격이다. 왕궁 안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달리던 에드는 소나가 말했던 곳에 도달했다.

왕궁의 성벽은 민가와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가까운 곳도 2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는데 소나가 말했던 곳에는 줄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걸 보고 에드는 고민하지 않고 줄 위를 달렸다. 성벽과 연결한 줄 위를 달리니 그 뒤를 따라서 소나와 요원들이 밧줄 위를 달려왔다.

민첩한 움직임을 보니 도망은 잘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비들도 불이 난 곳으로 몰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왕궁의 경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제법 경비가 삼엄했다.

그것도 모두 아칼란의 계획대로였다. 소나와 다른 요원 둘이 동시에 치고 나가더니 경비들을 처리했다. 같은 트라비아 왕국 병사들이라 그런지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 여겼다.

저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불가능한 전쟁에 끌려와서 죽지 않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들일 뿐이다. 그런 이들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았을 터.

아칼란이 원하는 것은 왕자의 죽음과 친위대의 죽음이다. 다른 이들의 목숨까지 원하지는 않으리라.

에드는 말없이 달렸다. 달리아 왕국 특유의 기와로 된 지붕을 밟고 달리면서 소나와 다른 이들의 움직임 속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곳들이 보였다.

고함과 함께 비명이 들리는 것을 보면 친위대와 아칼란의 싸움도 벌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소란이 들리는 곳이 세 곳.

성공적으로 친위대를 끌어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남아있는 건 단 한 명. 에트리안 경이다.

“이쪽.”

소나가 앞으로 치고 나간 곳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왕궁의 회의실이다. 꽤 많은 수의 병사들이 있는 것을 보고 소나가 품에서 구슬을 꺼내 던졌다.

무서운 속도로 퍼지는 보라색 안개를 보며 에드는 그녀가 미리 주었던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지는 것을 보고 소나가 문을 열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직경이 20미터는 되어 보이는 넓은 원탁이 있고 그 위에는 온갖 서류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원탁의 너머에 남녀 한쌍이 서 있었다.

어딘가 한량처럼 보이는 남자와 흉갑을 입고 있는 미모의 여기사.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클리프 왕자와 에트리안 경이라는 것을.

에트리안이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다. 검을 뽑은 그녀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장군급이라고 하더니 전에 만났던 벨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자였다.

게다가 뭘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간격은 회의실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소나.”

“왜?”

“유물급 장비를 갖고 있나 보다. 원거리 공격도 가능한 것 같으니 주의해.”

소나를 걱정해서라기보다 그녀가 먼저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한 말이다.

소나는 에드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채 옆으로 이동했다. 에트리안은 에드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천천히 시선을 돌려서 소나와 아칼란의 요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클리프 왕자가 소나에게 시선을 주고는 물었다.

“아칼란이 움직인 것을 보면 아버지가 결정을 내리신 것 같군.”

소나는 그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들이 아칼란이라는 것을 들킨 이상 반드시 왕자를 죽여야 했다. 그가 악마든 아니든 간에.

소나는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하며 에드를 바라보았다. 에드는 회의실에 들어와서부터 줄곧 클리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붉은 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악마가 씌운 것이 아니라 저건 스스로 악마에게 영혼을 바친 자들이 가지는 증상이다.

에드는 화살을 하나 꺼내 시위에 걸며 소나의 눈빛에 답했다.

클리프의 시선이 에드에게로 향했다.

“그대가 날 죽일 칼인가?”

에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에게 영혼을 바친 멍청한 새끼를 죽일 칼이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