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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3화 (13/202)

#13

크로우

달리아 왕국에 들어서니 공기 자체가 달라졌다. 산악 지형이 많은 달리아 왕국이다 보니 사냥꾼들이 많았다. 그런 이들이 많다 보니 누구든 활이나 칼만 쥐여 주면 곧장 병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이 전쟁에서 패했고, 영주들이 물갈이되었다. 1년 동안 클리프 왕자는 자신을 도와서 전쟁에서 승리를 일으킨 주역들에게 영지들을 나눠줬다.

그래서 새로운 귀족들이 영주라고 영주성을 차지하고 있으니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상황이니 아직도 잡음이 계속 들리는 것이리라.

달리아 왕국 사람들은 대부분이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금발이 주를 이루는 트라비아 왕국 사람들과는 한눈에 차이가 났다.

몇몇 트라비아 왕국 사람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은근히 그들을 피하면서도 시선이 그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폭거라도 하는 거야?”

“아니. 달리아 왕국 사람들이 유난스러운 거지. 아칼란에서도 이쪽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 그런데 아무래도 문제점들이 많아.”

트라비아 왕국 내에서야 아칼란이 활동해도 은밀히 활동할 수 있지만, 달리아 왕국에서는 너무 눈에 띈다. 머리야 염색하면 될 일이지만 눈동자 색까지 바꿀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 달리아 왕국을 온전히 손에 넣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너 달리아 인이었구나?”

에드는 소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알고 맡긴 거 아냐?”

아칼란에서 이번 일을 의뢰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뻔히 짐작이 갔다. 에드가 만약 그를 죽인다고 한다면 달리아의 잔존세력이 왕자를 죽였다고 더욱 탄압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보다 왕자는 귀환 명령을 거절한 거야?”

“응. 다른 마음을 먹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귀환 명령을 거절한 상태야.”

아마 돌아왔다면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죽였을 가능성이 컸다. 그걸 짐작했기에 아직 달리아 왕국의 진압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돌아가지 않은 것일 테고.

단순히 악마라고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들은 악마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는 동안 그가 이뤄낸 것에 대해 듣고 보니 확실히 악마가 아니라면 이뤄낼 수 없었던 전투가 몇 번이나 있었다. 죽었어야 할 곳에서 오히려 역전해온 것이 세 번. 한 번이나 두 번은 우연이었다고 해도 세 번이나 되니 의심을 한 것도 사실이리라.

달리아 왕국이 무너진 것은 그래서다. 승리를 자신할 만한 전투에서 연달아 세 번 패하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된 거다.

결국, 만나 봐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클리프 왕자의 친위대는 어느 정도 실력이지?”

“실력 좋지. 역전의 용사들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야.”

“그런 그들 사이에서 클리프 왕자를 죽이라는 거야?”

“그들을 떨어트려 놓을 거야. 네가 독대할 기회를 만들어 줄 테니까 그때 해결해.”

“그래. 독대하고 그가 악마라는 게 확인되면 죽여주지.”

달리아 왕국에 들어와서 분위기가 변했다고 쉬지 않고 이동할 수는 없었다. 소나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게 이동하는 동안 달리아 왕국의 수도에서 지금도 아칼란의 요원들이 모여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여관에 가서는 에드가 앞장섰다. 아칼란 요원들이 모든 여관을 잡아둘 수는 없었다. 달리아 왕국 내에서는 아칼란 요원들의 모습 자체에 적대적이었으니.

에드가 방을 두 개 잡는 동안 소나는 후드를 눌러쓰고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려야 했다.

에드는 깨어난 후로 대부분 시간을 트라비아 왕국에서 보냈다. 악마의 시대 주 무대이기에 익숙하기도 했고, 이상하게 트라비아 왕국에는 악마가 넘쳐났으니까.

그래서 달리아 왕국으로 왔어도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여관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식사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은근히 음식들이 매콤해서 입에 잘 맞았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입에 맞는 맛을 찾았다.

그때 테이블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에드가 수저를 물고 고개를 드니 그곳에는 험상궂게 생긴 인물 둘이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복장을 보니 ‘크로우’인가?”

“응?”

“왕국 제 일의 레인저 ‘크로우’ 아닌가?”

에드는 그 물음에 수저를 내려놓았다. 이 몸을 차지했을 때 몸의 기능만을 쓸 수 있었을 뿐 기억이라고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이 몸이 ‘크로우’의 복장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전투에 특화된 복장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역시 맞나 보군. 자네 같은 실력자들을 찾고 계신 분이 있네. 함께 가지 않겠나?”

“지금 바쁜데?”

그러자 사내 하나가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보이며 말했다.

“조용히 따라오지?”

에드는 잠시 기가 막혔다. 이런 대접을 받아 본 게 처음이라서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때 앞에 앉아있던 소나가 입을 열었다.

“가요.”

후드 아래로 소나의 눈빛이 서늘한 것을 보고 에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달리아 왕국의 잔존세력을 규합하려는 자들.

아칼란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이들인데 그들이 먼저 손을 뻗으니 어떻게든 알아보고 싶은가 보다. 눈빛만 봐서는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까지 할 생각인가 보다.

악마가 아니라면 먼저 죽이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무기를 들이댄 자들은 지금까지 살려둔 적이 없었다. 이 자들도 방금 무기를 뽑아 들면서 살짝 선을 넘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었지만, 저들의 아지트로 가면 얘기가 다르다. 그런데 그곳에 가자고 하는 소나를 보니 픽 웃음이 나왔다.

이건 따로 계산해야 할 일이다.

“그래. 가자.”

에드가 일어나자 둘은 흡족한 미소를 짓고는 따라오라고 했다. 그들을 따라서 이동하니 여관을 나와 길을 걷다가 일반 가정집 중 하나에 들어갔다.

그들을 따라 들어가기 전에 에드는 자신의 기감에 잡히는 이들을 읽었다. 남의 간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데 옆집에 있는 자들의 간격에 자신이 들어가야 함을 알았다.

궁수들까지 배치까지 한 곳이라는 것에 이곳에 있는 이가 생각보다 거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뒤를 따라왔다. 에드는 자신에게 손짓하는 사내 둘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필요한 달리아 왕국의 사람들을 모아오는 것이 저들의 역할인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에드가 그들 곁으로 다가가자 가정집의 입구에 서 있던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무기는 놓고 들어가라.”

에드가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뭘 믿고 무기를 내놓으라는 거야?”

에드가 되묻자 사내의 인상이 굳은 채 무기에 손을 올렸다. 눈에 띄지 않게 단검을 잡는 모습에 에드의 눈빛이 굳어지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여보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놀라울 정도로 자신과 같은 복장을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검정 코트를 입고 있는 사내는 진한 턱수염을 한 사내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는 이도 마찬가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정말 저게 ‘크로우’의 복장인가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드가 안으로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있던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크하하하. 신입!”

뭔가 반가운 기색의 눈빛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정말 이 몸의 주인을 알고 있는 건가?

“이름이 뭐였더라? 넌 기억 나냐?”

뒤에 서 있던 사내도 눈에 반가운 기색을 담고 있었지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자마자 전투에 투입되어서 이름도 기억 안 납니다.”

“하긴 그때 신입 열두 명을 받았었지.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생존자가 있었군.”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난 널 기억 못 해도 넌 날 기억해야지. 제 3 단장 벨이다.”

에드는 한 걸음 물러나 그의 간격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 인간 실력이 대단한 건지 그의 간격 안으로는 들어가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만난 기사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자.

벨은 에드가 물러난 거리를 보더니 씨익 웃었다.

“전쟁에서 살아남더니 진짜 크로우가 됐구나. 그래. 그래야지.”

벨은 더 다가오지 않고 한 걸음 떨어진 상태에서 말했다.

“그래도 이제 우리와 함께하자. 까마귀는 같이 날아야지.”

벨의 말에 에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전 할 일이 있습니다.”

“왕궁을 되찾는 대의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나? 잠시 자네 할 일은 미루게.”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치밀었지만, 이 몸의 원주인을 알고 있던 이들이라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딱 한번만 물러났다.

“더 큰 대의를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죠.”

에드가 한 걸음 더 물러나며 자신의 간격 안에 상대 둘을 넣어두고 돌아섰다. 벨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를 불렀다.

“이보다 더 큰 대의는 없다. 그리고 넌 크로우의 깃발 아래 맹세했다. 네가 떠날 방법은 오직 하나 죽음뿐이다.”

에드는 그 말에 씨익 웃었다.

“후회할 짓은 하지 마시죠.”

에드의 경고에 벨이 손을 들어 올리자 뒤에 서 있던 사내가 활을 꺼내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리고 그런 사내의 활이 에드를 겨누기도 전에 그의 손등에 화살이 하나 박혔다.

“큭!”

에드는 빙결의 화살집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시위에 걸어서 벨에게 겨눴다.

벨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에드의 눈을 바라보았다. 진짜 까마귀가 된 것처럼 에드의 실력은 놀라웠다. 자신도 반응이 조금 늦을 만큼 빠른 속사였다.

그리고 눈빛을 보니 진심이었다.

이대로 놓아주자니 저자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 자신할 수 없었고, 잡아 죽이자고 하니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조차 잡으려고 하면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이 서로에 전해졌을 때 그 변화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시작됐다.

에드의 뒤편에 말없이 서 있던 여인이 던진 비도가 벨에게 날아들었다. 벨이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들어 비도를 쳐내고는 곧장 몸을 날렸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터에 날아든 비도를 쳐낸 순간 반사적으로 뛰쳐나간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화살이 하나 날아들었다.

검으로 쳐낸 순간 훅 밀려온 냉기가 검날부터 시작해서 오른팔까지 얼렸다. 그러나 이미 간격 안으로 들어섰기에 왼손으로 허리 뒤 춤의 단검을 뽑았다.

그러나 단검을 채 다 뽑기도 전에 세 개의 비수가 날아들었다. 몸을 틀어서 급소를 피했지만, 세 개의 비수 중 한 개는 뺨을 스쳤고, 하나는 어깨에 하나는 가슴에 꽂혔다.

가죽 코트 안에 걸어놓은 비수가 가슴에 꽂히는 것을 막았지만, 어깨에 박힌 것 때문에 멈칫거린 것이 실수였다.

가볍게 뒤로 뛰어 물러난 에드가 연달아 다섯 발의 화살을 날렸다.

단검을 뽑아서 세 개를 쳐냈지만, 두 개는 어깨와 옆구리에 꽂혔다. 쩡쩡 얼어버린 상황에서 에드의 화살이 그의 미간에 꽂혔다.

벨이 소나의 단검을 쳐낸 순간부터 에드에게 달려들었다가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의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손등에 화살을 맞았던 이가 단검을 뽑아 들었을 때 이미 벨이 죽었다.

“단장님!”

에드는 이미 틀어진 상황에서 주저함은 없었다. 달리아 왕국에서 일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의 중요 인물을 죽였으니 끝을 봐야 했다.

에드는 손등에 화살을 맞은 크로우 요원에게도 다섯 발의 화살을 쏴서 죽이고, 이곳으로 안내한 이들까지 처리했다.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밖에 있던 이가 들어왔을 때 그는 소나가 다가가 휘두른 단검에 목숨을 잃었다.

에드는 밖으로 나가서 옆집에 있는 자들까지 모두 제압하고 소나에게 돌아왔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역시. 실력은 끝내···.”

쫘악!

소나의 뺨을 후려친 에드가 그녀의 목을 틀어쥐었다.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날 이용하면 그때는 죽여버린다.”

소나는 터진 입술을 혀로 핥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미안해.”

그녀를 밀쳐버린 에드는 집을 나와서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았다. 에드는 잠시 문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도 달이 밝아 더 짜증이 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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