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보수
“미쳤냐?”
에드는 생각만 한다는 게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직설적이던 자신의 성격이 많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소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국왕 전하의 뜻이라서 뒤탈은 없을 거야.”
에드는 샐러맨더의 검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는 조금 상식적인 수준에서 의뢰를 가져와.”
소나가 덥썩 손목을 잡았다. 에드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손목 잡기에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소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악마가 왕이 된다고 생각해 봐.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
인간형이라면 적어도 중급 악마. 지금 에드 수준에서 잡기 어려운 적임은 틀림없었다. 크레아틴 하나 잡는 데도 그 고생을 했는데 왕자의 몸에 들어간 놈이라면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이들도 문제다.
에드가 기사들을 깎아내리는 기색이 있지만, 그것도 시골 영지의 기사들이나 그렇다는 거지 왕도, 그것도 왕가를 지키는 친위대의 실력은 악마의 시대 1에서 이미 확인했었다.
악마가 왕자를 죽이고 왕자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왕자의 몸에 악마가 씐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할 것 같아 미쳤냐고 묻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이건 메인 퀘스트급이다.
그래서 고민됐다. 지금 자신이 메인 퀘스트에 올라탈 정도의 실력이 될까?
장비는 업그레이드됐지만, 아직 레벨이 부족한 것 같은데.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소나도 기회를 봤는지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샐러맨더의 검에 성공시 보수 100골드!”
사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샐러맨더의 검을 챙겼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거기다가 유물급 장비 하나 더.”
아칼란이 의뢰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받아낼 것은 다 받아낼 생각이었다.
소나는 에드가 다시 한번 더 지르자 잠시 고민했다. 이번 일은 출혈이 크지만 아칼란도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국왕이 결정한 만큼 이건 이미 그들에게 지상 과제나 다름없었다. 돈이나 유물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국왕의 뜻이라고 해도 결국 아들을 죽이는 일이다. 그러니 아칼란에서도 서로 미루고 있다. 소나도 짬이 됐다면 당연히 거절했을 일이다.
하지만 팀장 중 막내인 그녀는 거절할 수 없었다.
아칼란이야 국왕 직속의 특무대니 존속의 위험은 없을지라도 왕자를 죽인 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걸 알았기에 이건 반드시 외부 인사에게 맡겨야 했다.
그러면서도 뒤탈이 없어야 했다.
“좋아.”
“같이 움직일 거지?”
“이번 일은 같이 해야지.”
“그럼 가는 중에 장비를 내놔. 이번 일은 무조건 선불이야.”
보수를 선불로 달라고 하면 좋아할 이들은 없다. 하지만 아칼란에게는 해도 되는 것이 이들의 물건을 떼먹고 도망가는 것은 암상에게서 도망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소나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목표가 어디 있는데?”
“달리아 왕국.”
“응?”
달리아 왕국은 에드의 몸이 있었던 왕국이었다. 1년 전에 에드의 시체가 발견되었던 곳이 달리아 왕국의 최후 전선이었고, 달리아 왕국은 트라비아 왕국에 병합되었다.
당연히 지금까지 달리아 왕국의 귀족들은 트라비아 왕국군을 기습하고, 저항하는 중이었다.
그런 만큼 그곳은 악마보다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곳이었다.
“잠깐. 그럼 그 왕자라는 게 설마 이 왕자 클리프를 말하는 거야?”
소나가 윙크를 날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정답!”
죽일까?
이 왕자 클리프는 일 년 전 달리아 왕국을 병합한 왕국의 영웅이다. 아마도 죽으라고 내보낸 것으로 보이는 전장에서 오히려 승리하고 달리아 왕국의 수도로 진격해서 점령한 불세출의 기재다.
혹자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평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큰 공을 세운 만큼 왕권에 크게 한 걸음 다가갔다.
일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줘야 한다는 정통 귀족파와 공을 세운 이 왕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신흥 귀족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은 분위기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국왕은 이 왕자를 죽이고자 한다?
“악마기는 한 거야?”
“그건 이미 확인했어.”
에드는 가만히 소나를 돌아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다. 타국의 점령군이라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겠지만, 그를 죽였을 때 달리아 왕국의 잔존 세력에게 덤터기를 씌울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다. 이번 일을 처리하고 나면 과연 아칼란은 어떻게 나올까?
배신할까?
그럴 가능성도 무시 못 하기에 보수는 선불로 받을 생각이다. 그리고 아칼란이라고 해도 자신을 잡으려고 한다면 꽤 출혈이 클 거다. 그냥 죽어줄 마음은 없으니까.
악마도 아니고 인간을 상대로는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명성은 이럴 때 힘을 발휘한다. 천공의 신 아스트론 교단에서도 자신을 중시하고 있으니 함부로 죽이지는 못할 터.
그거면 됐다.
“그 정도면 암살도 힘들겠는데?”
“기회는 우리가 만들어 줄 거야.”
국왕이 뜻을 굳히고 아칼란이 작전을 짰다면 클리프 왕자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대신 그의 목숨을 끊어줄 칼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하긴 그만한 일을 해낸 것을 보면 클리프 왕자가 악마라는 이야기에도 힘이 실리기는 했다.
“악마가 아니면 안 죽여.”
마지막으로 발을 뺄 빌미를 남겨두고 의뢰를 맡기로 했다.
달리아 왕국의 수도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말을 타고 달려도 한 달은 걸릴 거리.
그러나 아칼란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인 강을 이용할 쾌속선을 마련해서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기에 에드는 배를 타고 가는 길에 빙결의 활을 이용해 연습을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아칼란에서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 자신을 왕자를 죽이기 위한 칼로 고용했으니까.
그렇기에 쾌속선을 타고 가면서 마음껏 연습할 수 있었다.
지금 마력으로는 단순히 냉기를 머금은 화살은 스무 발. 다만 냉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리면 한 발밖에 쏘지 못했다.
그렇게 쏘아낸 한 발은 강물에 반경 20미터짜리 얼음 덩어리를 만들었다.
소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감탄했다.
“빙결의 활이 뭐로 만든 것인지 알아?”
“알아야 돼?”
에드가 오히려 되묻자 소나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곧 페이스를 되찾고는 미소를 지은 채 설명했다.
“빙결의 활은 마수 켈페시아의 뿔로 만든 거야.”
“아!”
마수 켈페시아는 악마의 시대 1에서도 악마가 아닌 주제에 거의 필드 보스급으로 강한 마수였다. 냉기 브레스를 뿜는 녀석으로 굉장히 까다로웠지만, 녀석의 심장이 냉기 속성의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했다. 그렇게 만든 무기는 거의 막판까지 써먹었던 기억이 있다.
어쩐지 비싸다 했다. 녀석의 뿔이니까 빙결의 화살을 쏠 수 있었던 것.
“그런데 그게 왜?”
“그런데 빙결의 활의 전 주인을 통틀어도 너만큼 강하게 쓰는 건 처음 봤어. 거의 신비술사의 신비라고 해도 믿겠어.”
에드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캐릭터가 레인저다 보니 민첩과 체력을 위주로 올렸는데 빙결의 활을 얻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마력에 투자 없이는 제대로 싸울 수 없겠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번에 오른 레벨 업의 보상을 마력에 투자했다.
덕분에 마력이 전보다 넉넉해졌다. 예전이었다면 이만한 위력을 내지도 못했지만, 이렇게 많이 쏘지도 못했다.
스탯의 힘으로 엑스트라의 몸에 들어와서 악마 사냥꾼이라는 별칭을 받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연습할 때는 마력을 바닥까지 쓰지 않았다. 아칼란을 믿고 있다고 해도 그들에게 밑천을 보이면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삼할의 실력은 숨겨야 했다. 그래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으니까.
아인 강의 하류로 이동해 도착한 곳은 트라비아 왕국 남쪽의 산톤 시였다. 이곳에서 달리아 왕국까지 가는 데는 말로 하루가 거리고 수도까지 가려면 일주일이면 됐다. 기한을 반 이상 줄일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출발하자.”
“양심은 있네.”
배를 타고 강 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오랜만에 부두에 내리니 육지 멀미가 올 정도였다.
“방 잡아놨어. 가자.”
“따로 잡았지?”
소나가 눈웃음을 지었다.
“아이참.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만데. 당연히···.”
에드의 서늘한 시선을 받은 소나가 볼을 부풀리고는 답했다.
“···따로 잡았지.”
소나와 일주일을 함께 좁은 쾌속선 위에서 보내다 보니 상당히 가까워졌다. 그래서 이런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도시에 있는 여관이라 생각보다 깔끔했다. 에드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눈을 감았다. 잠을 청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소나가 서 있었다. 소나는 왼손을 뒤로 숨긴 채 오른손에 든 술병을 흔들고 있었다.
“한잔 어때?”
“방에서?”
“응.”
한 방에 있다고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방문을 열어줬다. 안으로 들어오게 해주니 소나가 숨기고 있던 왼손을 내밀었다.
“이거 받아.”
소나가 건네준 것은 화살집이었다. 무한의 화살집이 있어서 굳이 다른 화살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게 뭔가 싶어서 바라보니 소나가 벌써 의자에 앉아서 술병의 마개를 열며 말했다.
“이번에 구해주기로 한 유물.”
“유물?”
에드가 화살집을 살피니 소나가 주석잔에 술을 따르며 무심하게 말했다.
“빙결의 활과 한쌍인 물건이야.”
에드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서 화살집을 살펴보았다.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다.
“그 화살집에 화살을 넣어두면 화살촉에 냉기가 맺혀. 어떤 화살로도 상관없어. 오래 넣어두면 그 위력이 강해진다고 하더라고. 사용자의 마력이랑 상관이 없어서 그 화살집에서 냉기를 맺히게 한 후에 그걸 빙결의 활로 쏘면 위력이 배가 된다고 해.”
“오호.”
이건 의외였다. 빙결의 활의 보조로 쓰기에 충분한 화살집. 게다가 사용자의 마력이 필요 없는 대신 냉기를 충전해준다는 말이니 위력은 확실히 올라갈 것 같았다.
“다만 열 발밖에 안 들어가서 보조 화살집으로밖에 못 써. 그래도 그 정도면 보상으로 괜찮지?”
“충분해.”
무한의 화살통과 연계해서 쓰면 된다. 냉기를 충전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확인이 필요했지만, 빙결의 활과 연계했을 때 위력이 기대될 정도였다.
무한의 화살집에서 열 발의 화살을 꺼내서 화살집에 넣고는 소나가 따라준 술잔을 들었다. 그녀가 술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이번 일 실패해서는 안 돼.”
에드는 그 말에 소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에게도 이번 일은 목숨이 걸린 일인 듯 눈빛이 한없이 진지했다.
“놈이 악마면 내 손에 죽어.”
마지막까지 선을 긋는 에드의 모습에 소나는 빙긋 미소를 짓고는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화끈한 것이 굉장한 독주였는데 안주도 없이 술잔만 기울이니 술병 하나는 금세 바닥을 보였다.
에드의 높은 체력 수치로도 적당히 취기가 몰려올 정도로 독한 술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술잔을 비웠던 소나는 이미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에드는 한숨을 내쉬고 그녀를 집어서 침대로 옮겼다. 일어나려는데 그녀가 에드의 손목을 잡았다.
에드가 내려다보니 그녀가 눈이 살짝 풀린 채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끼 부리는 그녀의 이마를 검지로 꾹 눌러서 떨어트리니 헤실거리며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에드는 그런 그녀를 내려보았다.
이 세계에 와서 한 가지 주의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언제든 이곳을 떠나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정을 주는 것을 주의하고 있었다.
잠든 그녀를 옆에 두고 에드는 비수들을 꺼내서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