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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73화 (73/221)

제73화 - 더글라스는 소외된 오컬트 부서에서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던 경찰이 루이스였으므로, 그가 이상해진 것에 대해서 의문을 느꼈다. 루이스의 옆에 점심으로 사온 도넛 상자를 내려놓은 그가 물었다.

“이봐, 무슨 일 있나?”

루이스는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더글라스를 바라보고 말했다.

“나, 이혼당했어.”

“무슨 소리야?”

루이스의 자초지종을 들은 더글라스는 배를 긁으면서 생각했다. 자업자득이라고.

‘그러게 가족을 소중히 했어야지. 외도도 하지 말고.’

토끼같은 자식들과 여우같은 마누라 한 사람만 보고 사는 소시민 더글라스에게는 루이스의 외도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대놓고 타박할 순 없으므로 더글라스는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직 이혼이 확정이 난 건 아니지?”

“어? 어.”

“그럼 어떻게든 빌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막으면 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난 이제 끝장이라고. 사진까지 찍어놓고 법정에서 증거로 제출할 셈이야.”

더글라스는 루이스가 파멸하면 이 경찰서에서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인맥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이스가 여자관계는 별로더라도 수사 능력 하나 만큼은 탁월한 동료였으니 그냥 사라지게 두긴 아깝다.

“쯧. 어쩔 수 없지. 내가 좀 도와주지.”

“네가? 어떻게?”

“기다려 봐.”

겉으로 보기에는 무능의 화신으로 보이더라도 더글라스도 일단은 MI7의 수사관이다. 그에게도 여러 재주가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부인이 이혼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방법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오해’였다고 만들어버리면 그만이지.

“사진에 찍힌 게 네가 아니면 되는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사진들을 봐. 네 얼굴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고. 그럼 너랑 비슷한 남자를 찾아내면 되는 게 아닌가?”

“그, 그렇군.”

“조작이야 쉽지.”

MI7에서 가르치는 특수한 변장술이 있다. 이걸 사용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게 되는데 더글라스는 이걸 사용해 자신의 얼굴을 루이스와 비슷하게 바꾼 뒤, 루이스가 부인과 다음에 만났을 때 교묘하게 옆을 쓰윽 지나가면 된다.

“놀랍군. 그게 가능하다는 건가!?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라도 해주지. 돈이라도 필요한가?”

“아니. 됐다네. 우리사이에 무슨.”

더글라스는 루이스의 인맥을 강화할 목적으로 그를 도와주는 것이었으므로 당연히 물질적 보상은 필요없었으나 그래도 루이스는 무언가 보상을 해주겠다고 품에서 뭔가 꺼내려다가 갑자기 동전이 튀어나왔다.

“응?”

그 동전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고대 제국 시대의 골동품 같았다.

“저건 뭐야?”

“아, 저거? 그냥 길 가다가 주운 건데.”

더글라스는 동전을 집으면서 기이함을 느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름돋는 기분을 느끼면서 말했다.

“이 동전, 자네한테 꼭 필요한 건가?”

“아, 아니. 나도 그냥 골동품점에 팔아버릴까 해서 말이야. 왜? 관심 있나?”

“그럼 내가 이걸 대가로 받는 걸로 하지. 어때?”

“나야 고맙군.”

더글라스는 지하로 내려가 자신의 책상 앞에 앉으면서 이 기이한 동전이 가진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대체 뭐지?”

그때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더글라스의 앞에 확 나타났다. 기척도 없이 나타난 하얀 머리카락에 너무 놀라서 더글라스가 비명을 질렀다.

“끼요오오오오옷!”

“뭐 하냐?”

“너, 너, 너, 좀 제발 정상적으로 등장하면 안 되겠니? 부탁 좀 하자.”

유스티나는 천장에 매달려 있다가 박쥐처럼 고개를 샥 내민 것이었다. 너무 무섭다.

한 바퀴 돌아서 땅에 착지한 유스티나는 더글라스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는 더글라스가 들고 있는 특수하게 생긴 동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색하면서 말했다.

“너, 이거 어디서 구했어?”

“이거? 동료 경찰이 들고 있던 건데.”

“당장 손 떼.”

“으, 음?”

탁자 위로 동전이 떨어진다. 유스티나는 그대로 더글라스의 뺨을 후려쳤다.

“우호오어어억. 왜 때려!?”

“찰지구나.”

“뭐?”

“왠지 그냥 치고 싶었거든. 이유는 없다몽.”

유스티나는 동전에 손이 닿지 않게끔 조심하면서 따로 보관함을 꺼내서 동전을 집어넣었다. 요사스러운 영성을 내뿜고 있는 것이 보통 위험한 유물이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유스티나의 보관함은 재단에 의뢰해서 특수제작된 것으로 외부공간과 내부를 완전히 격리해버리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이런 류의 유물의 발동 조건은 대게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피부에 접촉했거나. 둘째, 보기만 해도 발동하거나. 셋째,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만 해도 발동하거나.

유스티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반나절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부 접촉에 의한 발동으로 보이는데 유물이 변이될 수도 있어.’

MI7에서 배운 대로 신중하게 접근한 유스티나는 손뼉 쳐서 기다리느라 지쳐서 꾸벅거리고 있는 더글라스를 깨웠다.

“어, 음. 왜?”

더글라스는 침을 닦다가 유스티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참 징하다몽. 내가 왜 메트로폴 지부에 파견되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아?”

“어, 뭐. 이유가 있겠지. 츄릅.”

유스티나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더글라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도 알아야 할 때가 됐어. 루미너스가 그랬거든.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경우에, 네게 비밀 지식을 가르치라고.”

유스티나는 루미너스의 지령을 떠올렸다. 더글라스가 그곳에서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그건 기적일 것이라고 한 다음,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 영성자로 만들라고 했었다.

더글라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밀 지식이라. 그럼 그건가?

“오컬트……?”

“그래. 정확히는 영성자에 관한 것. 상대를 찾아야 하는 수사관이 상대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으면 안 될 테니까. 따라와.”

유스티나는 품에 유물이 든 보관함을 넣은 채로 밖으로 나가면서 등을 벅벅 긁었다.

더글라스는 자신의 홀스터를 챙기고 외투를 걸친 다음 부랴부랴 유스티나를 따라갔다.

유스티나를 따라간 곳은 메트로폴 외곽에 있는 언덕이었다.

“어우. 사람도 없는 이런 음산한 곳은 대체 왜 오는 거야?”

“수련해야지? 사격은 어디서 멈췄어?”

“음. 사격…….”

더글라스는 MI7에서 가르치던 그 괴상망측한 사격 기술에 대해서 떠올렸다.

루미너스가 권총을 들고 맨 처음 사격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을 때 더글라스는 코웃음을 쳤었다. 그는 이미 훌륭한 수사관으로 권총 사격에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루미너스가 처음 보여준 사격 기술을 보고 그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총을 쐈는데, 과녁이 멀쩡했다. 빗나간 게 아니라 정확히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루미너스는 그걸 살살쏘기라고 불렀다.

“살살쏘기 단계…….”

“아 뭐야? 아직도 그것 밖에 못 익혔어!? 너 MI7 수사관 5년 차잖아.”

“아니, 내가 쏴보고도 느끼는데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총을 살살 쏜다는게 말이 돼?!”

상식적으로 총알의 위력을 감쇄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총은 화약이 터질 때 일어나는 반발력으로 총구 바깥으로 튀어나가는 거고 여기에 사람의 정신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 말도 안 되는 것을 보고 더글라스는 그 총의 탄약에는 화약이 적게 들어있어 있었다는 과학적인 논리로 자신을 납득 시켰다.

“애초에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어떻게 총을 살살 쏠 수가 있어! 이게 무슨 몽둥이야?”

“영성을 불어넣으면 가능해. 사실 총이라는 것도 그냥 물질에 불과하니까. 자, 봐.”

잠깐 더글라스가 눈을 깜박였다가 뜨자마자 그 짧은 시간에 유스티나는 순식간에 권총을 뽑아서 더글라스를 겨누고 있었다.

더글라스는 기함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 전에 먼저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으니까.

“끄아아아악!”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더글라스가 쓰러지면서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분노를 일으킬 시간도 없이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때?”

“어떠긴 이 개 같은 년아! 존나 아프잖아!”

“갑자기 기어오르네, 진짜 죽여줘?”

유스티나의 눈빛이 차가워지자 더글라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움켜진 배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말랑말랑한 뱃살이 총알을 튕겨냈다. 마치 고무탄을 맞은 것 같다.

‘그럴 리가 없지.’

더글라스의 배는 살짝 멍이 좀 들었을 뿐 별문제가 없었다.

“루미너스는 영성을 사용해 탄환에 관한 비술을 창시했어. 어떻게 총을 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총을 쏠 수 있는지까지 말이야. 이른바 마탄학(魔彈學)이라고 할까? 진정한 MI7의 요원들은 전부 익혀야 하는 거야.”

“그렇군…….”

더글라스를 보면서 유스티나가 머리를 긁어댔다.

“정말 이해가 안 가네. 루미너스는 뭘 보고 널 가르치라고 한 걸까? 너는 진짜 일반인보다 영적 능력에 적성이 없는 것 같다몽.”

“그러니까 안 익히면 안 될까?”

“죽고 싶지 않으면 오늘부터 수련이야.”

수련을 한참 하려는 때, 도시 한복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뭐, 뭐야?!”

“음.”

그곳을 노려보던 유스티나는 가르치던 것도 멈추고 그 즉시 메트로폴을 향해 달렸다. 더글라스는 허겁지겁 유스티나를 따라갔지만 무슨 정글 속 날다람쥐처럼 날아다니는 유스티나를 쫓아가지 못하고 어느 순간 놓쳐 버렸다.

*

시간을 돌려서 몇 시간 전.

샤를은 자신이 봉인을 해뒀던 보관함이 해제된 것을 느꼈다. 보관함에 넣어뒀던 성수는 샤를의 영성이 어느 정도 깃들어 있으므로 그것이 오염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보관함을 열었나? 아니면 보관함에 넣어뒀던 성수만으로는 유물의 힘을 억제할 수 없었던 걸까?’

어찌 되었건 샤를은 그 위치를 감지하고 머릿속에서 가상이 메트로폴의 지도를 꺼내서 어딘지 파악했다. 그곳은 가본 적이 있는 장소였다.

‘잭&셀린 주점. 연금술사가 있는 장소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동전은 연금술사에게 흘러 들어갔고 그 동전을 연금술사가 열어버린 모양이었다.

코트를 걸치고 중절모를 쓴 다음 일어섰다. 빠르게 마차를 끌고 잭&셀린 주점 앞으로 들어선 샤를은 낮인데도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는 여자들에게 메달을 보여준 뒤에 파테스트로피가 있는 장소로 안내되었다.

그때 샤를의 옆으로 누군가 스쳐 지나갔다. 어떤 금발 머리의 미녀였는데 불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코트를 걸치고 머리카락을 코트 안으로 꽁꽁 집어넣고 몸을 웅크리고 걷고 있었다.

‘특이한 방식으로 걷는데?’

샤를은 그녀를 쫓아갈까 하다가 파테스트로피와 일단 만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기이한 냄새가 풍기는 곳에 연금술사가 샤를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라. 이게 누구야. 멋쟁이 고객님이잖아. 무슨 일이야?”

오늘도 늘 흰 가운을 입고 있는 파테스트로피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다가 샤를을 보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조금 전에 있었던 불길한 일 때문에 입은 자신의 손등에 난 상처에 광명 교단에서 구매했던 성수를 붓고 있었다. 혹시나 저주가 옮았을까 싶어서.

“내 물건이 이쪽으로 흘러 들어간 모양이라서 말이지.”

“내 물건?”

파테스트로피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전을 보지 못했나? 고대 롬 제국 시대의 동전.”

“아하! 그 동전 말이구나! 하지만 그건 내가 대금으로 받은 물건인데?”

그건 파테스트로피가 은신처를 제공하는 대가로 골레릭에서 받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봉인 때문에 지금 불안해 죽겠는데 그걸 물어보는 건가? 파테스트로피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금이라니?”

샤를은 미묘한 분위기에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샤를은 그 동전이 담긴 보관함을 가져간 사람이 광명 교회의 성기사나 아니면 자신을 습격했던 암살자 골레릭 본브레이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 줬지?”

“내 고객님의 프라이버시는 보호하는 주의라서 말이야. 알려줄 수는 없겠어.”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린 파테스트로피를 보면서 샤를이 말했다.

“그건 원래 내 물건이었다.”

“저런. 곤란하네. 하지만 물건을 잃어버린 건 고객님이잖아? 물건에 고객님 이름 써놓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샤를은 고개를 저었다.

“안에 봉인을 해둔 건 나야. 그러니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올 수 있었지. 그 봉인을 연 건 너냐?”

“아니. 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긴 했는데.”

“했는데?”

“자동으로 봉인이 풀리더라고. 안에서 붉은 피 같은 게 흘러내리고. 끔찍했어. 너무 무섭지 뭐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른한 표정은 바뀔 기미가 없었다. 특유의 허세 같다고 생각한 샤를은 자동으로 봉인이 풀렸다는 사실에 뭔가 또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유물이 변했다. 아니, 처음부터 변해 있었던 건가. 스스로 봉인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고? 왜?’

어쩌면 샤를이 성배 조각품으로 만들어낸 성수가 천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견디지 못하고 봉인을 풀고 나와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들었다.

“지금 그 물건은 내가 아니라 친구가 가지고 갔어. 너무 위험한 물건 같아서 아는 탐구자에게 가져다주려고 했거든.”

“……누구?”

“엔시우스. 머리가 빨갛고 삐죽삐죽 할아버지. 즈카펠 클럽 사람이거든.”

뜬금없는 정보였는데도 샤를은 그가 누군지 알아챘다. 점술로 보았던 즈카펠 클럽의 인원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경매장에서 잠깐 봤기도 했다.

“정보 고맙군.”

“잘 가.”

파테스트로피는 샤를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손을 흔들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팔뚝을 잡고 닭살이 돋은 피부를 쓸어내렸다.

“어우 무서워. 대금으로 받았다고 하니까 바로 눈빛이 돌변하는 거 봐라. 협조하지 않았으면 난리가 났겠어.”

원체 싸움을 싫어하는 파테스트로피는 자신의 팔뚝을 좀 쓸어내리다가 담요 한 장을 꺼내서 가운 위로 걸쳤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뒤에서 나타났다.

“어머어머. 잘 잤어? 골레릭?”

“방금 왔던 잘생긴 사람……. 누구야?”

“손님인데? 어머? 관심 있어?”

골레릭은 파테스트로피가 고객에 대한 정보를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이례적으로 되물었다.

“누군지 알아?”

“샤를 헥센이라는 교수야.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도 메달을 들고 왔더라고. 생긴건 꽤 잘 생기지 않았어? 조금 무서운 것만 아니면 정말 멋진 남자인데 말이야.”

파테스트로피는 이미 상대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걸 말해주는 건 처음이었지만 골레릭은 눈빛을 번뜩였다.

방금 나간 자는 타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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