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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72화 (72/221)

제72화 - 골레릭은 파테스트로피가 준 키를 들고 옆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누워서 몸을 웅크렸다. 임무에 실패했다. 처음부터 실패한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골레릭은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작은 보석함에 달린 오르골을 꺼냈다.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 지금, 남아있는 단서라고는 이 오르골뿐이었다. 태엽을 감자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 음악이 들릴 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슴 한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어서, 원래는 그 안에 있어야할 것이 없는 것 같다.

골레릭은 2년 전 어느 날.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대신 미래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먼 미래의 기억만이 남아있었다.

이것도 어떤 유물을 사용한 부작용이거나 유물의 효과에 당해서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알아낼 것이다.

“피곤해.”

긴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반드시 해내고 만다.

*

다음날 아침. 파테스트로피는 보관함을 열까 말까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가 보관함을 열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이렇게 심각할 정도로 부적을 덕지덕지 붙여둔 걸 보면 분명히 매우 위험한 유물일 것이 분명했다.

“뭐해?”

“셀린, 이리좀 와봐.”

거의 반쯤 벗다시피 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있는 금발머리의 미녀였다.

“이거 좀 봐. 이거 뭔지 알겠어?”

셀린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긁으면서 기이한 형태로 봉인된 보관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위아래로 보석을 감정하듯이 살폈다.

“안에 유물이 든 건 확실한 것 같네.”

“응.”

“그리고 물이 들어있어.”

“물?”

“찰랑찰랑 소리가 들리잖아.”

귀를 가까이 대고 보관함을 흔들어보니 확실히 무언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대체 뭘까? 술 같은 건가?”

“술을 이런 네모난 보관함에 넣어두겠어? 내 생각엔 반지나 보석, 동전, 단추 뭐 그런 게 아닐까?”

“열어볼까?”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열자!”

“안 돼!”

*

샤를은 돌아온 이후 자신의 내면에 무언가가 점차 ‘소화’되고 있는걸 느꼈다. 두 번째 석판 조각의 힘을 절반 정도 소화한 것 같다.

그리고 개화한 또 하나의 능력을 알아냈다.

‘주문을 변형할 수 있게 되었어.’

손을 쥐었다가 폈다. 무명교단의 신인 무존자가 점차 성장하고 있었다.

‘두 번째 석판 조각을 완전히 흡수하고 나면 주문을 변형하는 것을 넘어서 창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세 번째의 석판 조각이 필요할 지도 모르고.’

그러다 문득 샤를은 자기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방금 대낮에 저격당한 사람의 생각이 이렇다.

김연수라면 이럴 수 있었을까? 아니다. 분명히 공포에 짓눌려서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겠지.

‘어쩌면 나는 김연수라는 사람도, 샤를이라는 사람도 아니게 되어버렸을지도 몰라. 어떤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거지.’

잠시 생각하다가 샤를은 신경을 껐다. 알 수 없는 것에 너무 집착하는 건 의미가 없다.

보통 이렇게 신변에 위협을 당하는 경우, 외부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편할 테지만, 당장 샤를에게는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칼튼의 차원문 열기 이후, 그다음 굵직한 사건은 바로 교주들이 깨어나는 것이었다. 씨앗을 전부 흡수하고 깨어난 교주들은 대적하기 어려운 막강한 권능을 갖고 나타난다.

요나스 샤프트는 씨앗을 흡수하다가 말았는데도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했다.

‘타겟이 꽤 많아. 헬파이어 클럽의 교주 뷔셀, 어부형제단의 교주 부라토스를 저지해야 해.’

암흑성도회의 교주는……. 샤를이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죽는다.

암흑성도회는 규모가 거대한 만큼 많은 신도와 여러 계파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견제하고 싸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암격사의 씨앗을 받은 교주를 죽이고 그 씨앗을 쪼개서 여럿이서 나눠 가지게 된다.

그래서 교주‘들’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고.

그러나 완전히 그것만을 믿고 있는 건 너무 안일한 선택이었다. 샤를이 만들어낸 스노우볼이 구르고 굴러서 어디로 향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샤를이 아는 사람이 신성의 씨앗을 받게 될 수도 있고, 게임속에서는 등장하지 않아서 전혀 비중이 없던 자가 신성의 씨앗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할 생각이었다.

다음 대 교주들이 깨어나기 전에 그들을 막아내거나 죽이거나 방해한다. 그 와중에 무명 교단의 본거지도 메트로폴 시내에 만들어야 했고.

동전도 마음에 걸리지만 그건 일단 샤를의 손에서 떠났다.

암살자의 위협에 주춤하고 있을 수는 없다. 샤를은 오히려 암살자를 역으로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침 아라크네의 실로 만든 옷이 도착했다.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정장이지만 상당히 많은 기능을 가진 옷이었다. 브로치가 있다지만, 방어 능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한 번 사는 목숨이니까.

그 옷은 따로 심상 세계에 보관해뒀다. 필요하면 옷을 걸치고 움직일 테고, 옷에 대한 몇 가지 테스트도 좀 해야하고.

두 번째 석판의 힘을 얻게 되면서 강화할 주문은 나비 소환술이었다. 환영을 만들어내 상대의 감각을 교란하거나 적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주로 사용하던 주문이었다.

“음.”

근데 이제는 숙련도가 어마어마하게 치솟았다. 다음 단계로 개조할 수 있을 것 같다.

-파기, 내가 주문을 ‘수정’하면 주문서에 있는 주문도 ‘수정’되는 걸까?

-수정된 주문은 따로 적히게 될 거야.

-그건 잘됐네.

샤를은 심상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수호자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손을 뻗으면서 나비들을 형성했다.

환영이란 사실 감각의 속임수였다. 그러나 환영마법을 주로 사용해 달인의 경지에 오른 진정한 환술사는 환상마저도 진짜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정신과 환상을 연동해 내면에 깃든 무언가를 물리 세계로 끄집어내는 것.

샤를은 자신이 가진 신앙 수치가 확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빛이 치솟으며 나비 수백 마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무언가를 형성했다.

-소환술이야?

-그래. 이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내와라. 백기사.”

수백 마리의 빛의 나비들이 지나가고 난 뒤에 남은 것은 샤를이 생각하던 것과는 좀 달랐다.

-엥, 팔 한쪽뿐이잖아.

-……아직 완전한 건 아닌 것 같네.

백기사를 이 세계로 소환해내는 것은 확실히 무리인 것 같다. 백기사의 오른팔밖에 소환되지 않았다.

소환도 실패다.

오른팔이 허공에 나타났지만 금새 제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오른팔은 금방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게 있었다. 백기사가 쓰던 거대한 순백의 대검이었다.

샤를은 모노클에 손을 가져다 대면서 조종의 대상을 변경했다. 백기사의 대검도 충분히 금속으로 인정받은 모양인지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본체를 소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검은 소환했으니 뭐. 반은 성공인가.”

이 시대에 아무리 기술이 성장했어도 인간의 공업기술로 만든 평범한 롱소드보다 심상 세계에 살던 기원을 알 수 없는 그 존재의 무기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순백의 대검 전체에는 어마어마한 영성이 깃들어 있었고 대검 자체에도 주문이 걸려 있는 것 같다.

“전술의 폭이 늘었네. 단순히 철검을 던지는 것보단 백기사의 대검을 쓰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이거라면 대낮에 저격해대는 암살자에게서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음. 아무튼 기록은 해둘게. 제목을 뭘로 할까.

-나중에 완전해지면 기록해두는 게 좋겠다.

그리고 샤를 이외에 다른 사람이 이 주문을 사용할 수 있느냐는 의문점이 남아있으므로 굳이 주문을 기록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

*

“아, 열자니깐.”

“안 돼!”

투닥거리던 셀린과 파테스트로피는 그 자리에서 보관함의 봉인을 개봉하지 않았으나, 보관함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보관함의 틈을 막은 부적이 스르르 갈라지더니 저절로 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무언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 어? 봉인이 저절로 풀리고 있어?”

“…….”

봉인 내부에서 아주 고약한 냄새 났다. 뜯긴 부적 사이로 물이 흘렀는데 피처럼 붉은색이었다. 보관함이 마치 생물처럼 느껴지고 보관함의 틈새는 상처라,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그리고 보관함이 저절로 개봉되기 시작했다. 안의 내용물은 매우 붉게 변한 동전이었다.

“이, 이게 뭐야?”

“유물 같은데?”

이 기이한 모습에서 둘은 섬뜩함을 느꼈다. 비밀 세계의 영성자인 그들은 이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유물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므로 파테스트로피는 재빨리 보관함의 뚜껑을 닫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봉인구를 가져왔다.

벌어진 틈새 사이의 부적을 특수한 촛농으로 메꾸고 그 위로 사슬을 칭칭 감아서 닫았다. 너무 서두른 나머지 파테스트로피는 자신의 손톱에 다른쪽 손등이 베였다.

“앗 따거.”

그러나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파테스트로피는 사슬을 닫은 뒤에 그 즉시 하얀색 천을 꺼내서 그 위로 덮은 뒤에 셀린을 바라보았다.

셀린의 머리카락이 길어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유물의 보관함을 집었다. 혹시 모르니 직접 손으로 만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머리카락은 자르면 해결되니까.

“이걸 가지고…….”

“즈카펠 클럽의 클럽장에게 가라 이 말이지? 알겠어.”

심상찮은 상황에 셀린은 그 즉시 옷을 걸쳐 입고 머리카락을 살포시 아래로 내려 옷 아래로 보관함을 감췄다.

몸을 일으킨 셀린은 클럽을 나가서 그 삐죽삐죽한 폭탄 머리의 집이 어딘지 떠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골목을 지나가던 누군가와 세게 부딪쳤다. 매우 위험함을 느낀 셀린은 방어 자세를 취했으나 나타난 것은 영성자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

대신 얼굴을 알고 있는 사이였다.

경찰국의 루이스 형사였다. 샤를의 충고를 따라서 셀린과 꽤 만나지 않았지만 요즘 다시 그녀를 만나고 있었다.

“오, 셀린 아가씨!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그는 갑자기 마주친 셀린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으나 셀린은 그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바빠서, 먼저 가 볼게요.”

가볍게 루이스의 어깨를 스쳐 지나간 셀린을 보면서 루이스는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다.

그때 루이스는 바닥에 무언가 떨어진 것을 보았다. 골동품 동전이었는데 녹이라도 슨 것인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건 뭐지?”

그는 동전을 들고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는 주워서 가져가기로 했다.

루이스를 지나친 셀린은 그대로 즈카펠 클럽의 클럽장을 찾아갔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의 노인, 엔시우스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급하게 달려오는 셀린을 보고서 손을 들어서 멈추게 했다.

“엔시우스!”

“뭔가?”

셀린은 숨을 헐떡거리면서 자신의 코트 속으로 숨긴 머리카락을 보여줬다. 머리카락은 무언가를 잡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봉인 된처럼 보였다.

“무슨 물건이지?”

“허억, 허억, 안에, 허억, 동전이…….”

“자네가 그렇게 급한걸 보면 딱 봐도 유물이겠군. 줘보게나.”

“이건 보통 위험한, 허억, 유물이 아니에요.”

“걱정 말게. 나에게는 유물의 효과를 막아내는 방법이 있으니. 급한 것 같으니 의뢰 비용은 나중에 청구하겠다네.”

엔시우스는 함을 받아서 봉인구를 해제했다. 너무도 당당하게 봉인을 해제하는 모습을 보면서 셀린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응?”

“뭐, 뭐야?”

엔시우스는 보관함 내부를 셀린에게 보여주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

신기한 동전을 주운 루이스는 그걸 주머니에 넣고 나중에 어딘가 골동품점에 팔아버리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지만 그 생각은 곧 앞으로 있을 일 때문에 잊혀졌다.

루이스는 경찰국 내에서는 굉장한 실적을 올리는 유능한 경찰이었지만 그에게는 사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여자관계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부인의 냉랭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루이스의 뺨을 후려쳤다.

짝!

“왜, 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부인은 말없이 사진을 꺼내서 내밀었다. 그걸 받아본 루이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셀린과 밀회를 벌이거나 홀로 어디 홍등가에 가는지 그런 것들이 전부 찍혀 있었다. 그간 누군가에게 도촬 당하고 있었던 거다.

당연하게도 그건 그의 부인이 고용한 사립 탐정이 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넌지시 언급한 부인이 말했다.

“이혼해.”

“뭐?”

“재산은 절반으로 나눠.”

“자, 잠깐만. 잠깐만.”

“싫으면 법대로 하던가.”

“여보! 여보!!”

냉랭하게 말을 던진 부인은 그대로 집 밖으로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루이스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멍청한 표정으로 그간의 일들을 반추하던 루이스는 다음날 출근 시간이 되자 움직이지 않는 무거운 몸뚱이를 움직였다.

멍한 표정으로 직장 내에서도 혼이 빠져나가 있는 모습을 보고 케인 청장이 옆을 지나쳤다.

그는 씨익 웃었다. 그가 루이스의 부인에게 알선해 주었던 사립탐정이 정확히 일을 수행해준 것 같다.

이혼이 공표되면 루이스의 입지에 상당한 타격이 갈 터였다. 그걸 핑계 대서 제거하면 아주 편하겠지.

하지만 대외적으로 케인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므로 표정의 변화도 없이 루이스를 그냥 지나쳐갔다.

멍하니 서 있던 루이스에게 다가온 것은, 더글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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