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 타겟이 제 발로 걸어 오다니. 이런 기묘한 우연이 있나 하고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기에는, 골레릭이 경험했던 수많은 기이한 사건들이 벽이 되어 안일함을 가로막았다.
지금의 상황은 아무리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어젯밤에 암살당할 뻔했던 타겟이 오히려 다가왔다? 어쩌면 이미 정체를 파악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
이런 조심성이야말로 골레릭이 누군가에게 붙잡히지 않고 암살행을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였다.
위험하다고 느낀 즉시 골레릭은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나간 다음 그 즉시 메트로폴의 정거장으로 향했다.
설원에선 차가운 눈밭에 몸을 숨기고 숲에서는 떨어진 낙엽 사이에 몸을 숨기듯 도시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몸을 숨겨야 한다.
골레릭의 특제 소총은 첼로 케이스의 안에 보관했고 나머지 물건들은 전부 자신의 몸 주변 곳곳에 배치해두고 역으로 향했다.
역에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많았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잡상인이 파는 빵을 샀다.
입에 물고 조심스럽게 걷다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누군가와 부딪쳤다. 쳐다보자마자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타겟이었다.
*
샤를은 동전을 보관함에 봉인하기 전, 당연하게도 점을 쳤었다. 먼저 심상 세계로 그 동전을 들고 들어간 다음, 제단 형식으로 만들어진 곳 앞에 섰다.
여러 개의 보티브 초를 모아놓은 제단 앞에 도착하자마자 샤를은 동전을 평평한 곳에 올려두었다.
그 동전은 심상 세계에 도착하자마자 기이하고 검은빛을 뿜어냈는데 한순간 파직하고 정전기 같은 것이 일기도 했다.
성냥으로 초에 불을 켠 다음 곧바로 이 동전을 대상으로 점술을 시작했다.
“이 동전이 변이된 이유. 아, 아니지.”
샤를은 점술의 구문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변이된 이유는 제롬 때문으로 추측했으므로 그 구문을 시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계의 신들을 대상으로 점술을 벌여서는 안 된다. 다른 계시의 석판 조각을 가진 존재를 대상으로 점술을 할 때처럼, 이 공간을 침범할 가능성이 있었다.
“앞으로 이 동전이 일으킬 변화의 시작점.”
촛불의 빛이 눈앞에 남아있는 동안 눈을 감자 일렁이는 잔상이 눈꺼풀 아래에도 남아있었다.
그 잔상은 샤를의 영성을 받아서 확장되기 시작하더니 선명한 화면을 만들어냈다. 그건 미래의 어떤 장소였다. 증기 기관차가 검은색 매연을 흩뿌리고 움직이고 있는 장소.
‘메트로폴 정거장?’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그곳에 한 소녀가 나타났다. 꾸미지 않아도 미소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예뻤다.
키는 작고 아직 앳된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막 성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등에는 첼로 케이스를 메고 있었고 입에는 빵을 물고 있었다.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군. 이 동전과 그 여자가 무슨 관계지?’
샤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다음 두 번째 점술 구문을 행했었다.
“변화의 종착지.”
*
첫 번째 점술 구문의 해답은 다음날 알 수 있었다. 샤를은 연금술사 파테스트로피의 근거지를 들린 다음 곧바로 저번에 쳤던 점술이 기억나 플로나와 함께 메트로폴 정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 딱 그 장소, 그 시간에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그 여자를 볼 수 있었다.
“저기.”
입에 물고 있던 빵을 떨어트린 그 여자는 그 즉시 품에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저 머나먼 북쪽 나라에서 개발될 자동권총이었다.
선명한 금속제 단총의 총신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조준, 격발.
탕. 탕. 탕.
경고도 전조도 없이 세 발을 당겼으나 그건 전부 빗나간 상태였다.
그녀의 총알을 빗나가게 한 것은 냉정할 정도로 무표정한 플로나의 손이었다.
연금술사의 근거지에 들렀을 때도 플로나는 밖에 있던 자동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로 샤를과 함께 이 역에 왔었던 것.
샤를은 총격을 당하자마자 곧바로 상대의 정체를 깨달았다.
‘골레릭 본브레이커.’
베일에 싸인 무시무시한 악명의 암살자는 사실 앳된 미소녀였다.
‘그럼 그녀가 파멸의 동전을 가지고 있겠군…….’
“꺄아아아아아아악!”
정거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에 사람들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도망쳤다. 그 사이 순식간에 육박전으로 변했다.
플로나는 장갑을 낀 손을 내밀어서 골레릭을 후려쳤지만 골레릭은 그 일격을 팔뚝으로 막아내면서 오히려 역공을 가했다. 권총의 총구가 겨눠지자 손목을 쳐서 궤도를 바꾸는 플로나가 오른쪽 다리를 들어서 발목을 걷어찼다.
순식간에 벌써 여러 번의 공방이 끝났다. 총알이 비어있는 권총을 바닥에 버린 골레릭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플로나와 육박전을 벌였다.
살인 병기 둘이 모여 있으니 가까이 가기만 해도 누군가 하나는 찢겨나갈 게 뻔했다.
샤를은 이곳에서도 주문을 사용하는 게 여의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곳만을 골라서 골레릭과 교전을 벌이게 된다니.
물론 뒷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그대로 주문을 날려도 상관없지만 이런 대낮에 움직이는 영성자는 샤를 혼자만이 아니었다.
“너, 너희들 멈춰!”
그때 나타난 것은 역무원이었다. 권총을 들고 있는데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면서 총구마저도 이리저리 돌아가는 것을 보니 이런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인다.
플로나가 잠깐 역무원에 시선을 돌린 사이 골레릭은 품에서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샤를은 그것이 무언인지 깨닫고 깜짝 놀라서 심상 세계에서 롱소드 하나를 꺼내서 집어던졌다. 백기사의 검을 소환할 시간도 없었다.
저절로 허공을 날아서 골레릭이 집어던진 물건을 격추한 롱소드는 상공 몇 미터를 더 움직인 다음 엄청난 섬광과 함께 폭발음을 냈다.
던져진 것은 둘둘 뭉친 사제 폭탄이었다. 롱소드 하나를 잃었지만, 샤를은 개의치 않고 폭발로 생성된 연기 사이를 바라보았다.
골레릭은 불꽃 속에서 골목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플로나, 쫓아가자.”
“네!”
샤를은 먼저 움직이기 전에 역무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벌벌 떨고 있었다.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가볍게 손을 써야겠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나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 역무원에게 환상을 보여줘서 기억 일부를 조작할 생각이었다.
플로나가 먼저 쫓아간 길을 따라서 샤를이 달렸다.
골레릭은 엄청난 속도로 달리면서 파쿠르를 하듯이 건물 여기저기를 뛰어넘었다. 그녀의 움직임이 숙달된 기술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플로나의 움직임은 거친 야생마의 질주 같았다.
엄청난 힘으로 도약해서 장애물을 부수거나 구부리면서 달렸다. 플로나는 그렇게 움직이면서도 전혀 힘이 든다는 느낌이 없었다.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현실과 연결된 이후로 아에라푸스는 오히려 더 강력한 힘을 플로나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식물을 다루는 능력 이외에도 기본적인 신체 능력 자체가 증가 된 느낌.
너무 강해져서 오히려 감당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금세 골레릭을 따라잡은 플로나는 어느 낡고 인적없는 창고의 앞에서 멈췄다. 골레릭은 말없이 플로나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었다.
“너 누구야?”
플로나의 말을 무시하곤 품에서 무기를 꺼낸다. 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쌍절곤이었다.
이런 이형 무기는 대체로 숙련되지 않으면 위험한데 특히 쌍절곤은 더 그렇다. 잘못 휘두르면 제멋대로 튕겨 나와 자신을 때리기도 하기 때문.
플로나는 상대를 얕보지 않았다. 치마에 손을 넣은 다음 모닝스타를 꺼내 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말 없는 암살자가 달려들었다. 빠른 돌격에 플로나는 모닝스타를 한 손으로 잡고 내리찍었다.
쌍절곤의 양쪽 손잡이를 잡고 사슬 부분으로 모닝스타의 일격을 받아낸 골레릭은 몸을 돌리면서 한쪽 쌍절곤을 회수, 자신의 어깨너머로 등 뒤를 향해 쌍절곤을 휘둘렀다.
닿을만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플로나는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섬광이 피어나면서 어깨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면 날아온 무언가에 적중당했을 것이다.
플로나는 상대의 무기가 어떤 종류의 유물이라고 느끼곤 품에서 장미 한 송이를 꺼내서 모닝스타의 가시 부분에 올렸다. 장미 가시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생장해서 모닝스타를 둘렀다.
일전에 제롬과 싸웠을 때 사용했던 아에라푸스의 무기 강화였다. 골레릭은 자신의 무기, 섬광절을 재차 휘둘렀다. 플로나는 몸을 숙이는 것으로 그 공격을 피한 다음, 뒤로 물러나 창고의 방직 기계들을 엄폐물로 삼았다.
파캉! 쾅! 콰지지직!
얼마나 미친 듯이 쌍절곤을 휘둘러대는지 모르겠지만 공장의 기계들이 하나도 남아나질 않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플로나는 공장 2층에서 샤를이 대기하고 있는 장면을 발견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플로나가 눈길을 끌기 위해 떨어진 철판을 방패로 삼아 벌떡 일어났다.
골레릭은 그런 얇은 철판으로 그녀가 가진 섬광절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빠르게 섬광절을 휘둘러서 철판을 반토막으로 조각냈다.
이제 끝장낼 생각으로 쌍절곤을 다시 휘두르려는 그때, 골레릭의 머리 위로 어마어마한 열기의 불꽃의 창이 날아왔다. 주문 공격이었다.
불꽃의 창이 폭발하면서 열기를 뿜어냈다. 그러나 2층에서 주문 공격을 했던 샤를은 안심하지 않고 있었다. 무존자의 창이 직격하기 전에 마치 그림자가 허물어지듯 골레릭이 사라지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저런 방식으로 도망치는 건가.’
골레릭에는 공격을 입었을 시, 공간을 뛰어넘어 탈출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제롬도 비슷한 능력이 있는 것 같지만, 조금 성질이 다르다고 할까.
‘마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 같았어. 보통 그런 경우 그림자의 마법으로 만든 분신일 확률이 노아. 그럼 방금까지 우리가 싸웠던 골레릭은 본체가 아니고 꼭두각시 같은 건가? 말도 하고 빵도 먹고 있는 꼭두각시? 그건 조금 이상한데.’
샤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이능 중에 골레릭이 가진 이능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교주님. 적을 놓쳤어요. 죄송해요.”
“아냐. 플로나. 신경 쓸 것 없다. 저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멀리 도망가진 못했을 거다.”
샤를은 적을 추적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골레릭이 파멸의 동전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 그것을 대상으로 점술을 벌이면 된다. 눈을 감고 심상 세계에 들어간 다음, 점술을 통해서 동전의 위치를 파악했다.
“음?”
동전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하얀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샤를은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MI7의 네임드 캐릭터로 머리에 총알이 박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던 유스티나였다.
“MI7이 대체 왜?”
그리고 파멸의 동전을 가지고 있는 유스티나는 지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골레릭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
유스티나는 함께 따라오던 더글라스가 체력이 달려서 너무 느려지자 지체 없이 그를 버리고는 홀로 점프 하면서 벽과 천장을 타고 달렸다. 첫 번째 폭발이 있던 곳은 정거장. 정거장에서 흔적을 쫓아서 골목길을 향해 뛰어간다.
그리고 작게 들리지만 두 번째 폭발음을 들었다. 어떤 창고에서 들린 소리였다. 이 폭발음은 폭약이 격발해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왜냐면 영성의 이동을 감지했기 때문.
주문으로 인한 폭발이었다. 마도사 전문화를 가진 누군가가 있음을 파악한 유스티나는 자신의 품속에 탄환이 몇 박스나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던 차에, 또다시 영성의 이동을 감지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졌는데도 느낄 수 있다. 골레릭과 싸운 뒤로 얻은 능력이었다.
머리에 총알을 맞은 이후로 싸우면 싸울수록 유스티나는 내면에서 기이한 부름을 들었다. 누군가가 마치 그녀를 부르는 듯한 소리였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어떤 뜻이 있는 언어도 아니었다.
그 부름이 들리고나면 유스티나는 항상 이전보다 더 강해지고는 했다.
이번에 얻는 능력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아주 작은 영성의 움직임조차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골레릭이야.”
이런 순간이동,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골레릭 본브레이커가 눈 앞에서 사라질 때 느꼈던 그 기분.
그 즉시 유스티나는 골레릭을 쫓아서 기어코 좁은 골목길 사이에서 자신의 숙적을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