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08)
손에 들린 노란색 유리구슬을 쳐다봤다.
“이게 그러니까 회복 물약 같은 거라고?”
딱히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린의 말을 믿기에도 그렇고, 아니라 하기에도 그랬다.
하물며, 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른 채 놀라워하는 상황이니 더욱더 그랬다.
“흠….”
고민을 거듭하던 중에 오식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치료가 덜 된 상태의 손도 보였다.
조용히 손에 들린 노란색 유리구슬을 녀석에게 내밀었다.
“마셔 볼래?”
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식이의 손이 치료될 것이었다.
아니라면….
‘에이, 설마 무슨 일이 있으려고….’
다소 무책임한 짓이기는 했다.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어들일까도 싶었다.
하지만, 오식이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휘익!
낚아채듯 노란색 유리구슬을 가져간 오식이가 그것을 빤히 들여다봤다.
당장에 린이 앞으로 나섰다.
“오식 씨, 구슬을 부순 다음에 흘러나오는 것을 코와 입으로 천천히 흡입하시면 돼요.”
린은 완벽하게 사용 방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이전처럼 말을 하고는 놀라거나 제 입을 막는 행위 또한 없었다.
내심 걱정했던 마음이 안심으로 바뀌었다.
빠직!
오식이가 거침없이 노란색 구슬을 부쉈다.
안에 들어 있던 노란색 연기가 흩어지듯 피어올랐다.
냉큼 코와 입을 가져다 댄 녀석이 그것들을 흡입했다.
“음….”
곧장 반응이 나타나지는 않는 듯했다.
그렇게 5초쯤 흘렀을까?
오식이 녀석이 흠칫하며 몸을 긴장시켰다.
그러고는 이내 바들바들 떨었다.
부르르르….
뜨끔했다.
뭔가 잘못됐나 싶었다.
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괘, 괜찮은 거지?”
“네, 괜찮습니다.”
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다시 오식이를 향해 눈을 돌렸다.
어느새 바들바들 떠는 것을 멈춘 녀석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찾아갔다.
“주인님, 오식 씨의 손 좀 보세요.”
린의 말에 오식이의 손을 쳐다봤다.
흉하게 까지고, 피까지 맺혀 있던 녀석의 손이 말짱해져 있었다.
“헉! 저, 정말이네?”
린의 말이 사실로 판명 났다.
이제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파악해야 했다.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내 물음에 린은 그냥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는 식의 똑같은 대답만 되풀이했다.
“이름도 그렇고, 사용법도 그랬다는 거지?”
“네.”
“흐음….”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답답함을 느꼈다.
‘무슨 감정 머신도 아니고….’
아이템을 넣으면 이름과 설명이 화면에 출력되는 감정 머신.
그것과 같은 짓을 린이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너무나 웃긴 일이라 여겨졌다.
해서, 농담처럼 아수라 스워드를 가리키며 린에게 물었다.
“린, 이것도 보면 뭔가 떠올라?”
린이 물끄러미 아수라 스워드를 쳐다봤다.
그러더니만 뻔한 대답을 했다.
“아수라 스워드잖아요.”
예시가 잘 못 됐음을 깨달았다.
엉뚱한 생각을 했음에 쓴웃음이 나오려 했다.
하지만, 이어진 린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고야 말았다.
“A등급, 공격력 30. 아수라 백작이 사용하는 검으로 사용자의 성별에 따라 검의 형태가 바뀐다. 추가 옵션으로는 E 클래스 스킬 숙련도 2% 상승, D 클래스 스킬 숙련도 4% 상승….”
내 허리춤에 매달린 검이 아수라 스워드라는 것은 그대들도 알고, 나도 알고, 오식이와 왕울이도 알고 있다.
당연히 린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내용은 얘기가 다르다.
뭐, 검의 등급이나 공격력까지는 내가 은연중에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치자.
더불어 검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아수라 백작이 사용했다는 것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리느브래크에서 검의 형태가 바뀌는 것도 본 적이 있으니 억지로 끼워 맞추면 이 또한 알 수 있는 부분이라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추가 옵션까지 줄줄이 꿰듯 말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앞서서 대충 그랬다고 치자며 넘긴 부분들도 솔직히 린이 알고 있었다 하기에는 무리가 좀 있었다.
“헐….”
놀라움에 잠시 멍해졌다.
조금 더 확인해 보자는 의미에서 이것저것 다 물어봤다.
늘 입고 다니는 전투 타이츠부터 엘프의 활도 물어봤고, 배낭 속에 든 회복 물약과 마정석 등도 죄다 물어봤다.
놀랍게도 린은 막힘없이 모두 다 대답했다.
정말이지 입이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도대체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글쎄요, 저도 잘….”
놀라움으로 반쯤 나가 버린 정신을 애써 차렸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어 정신을 집중했다.
파리링….
눈앞에 린의 모습이 그려진 카드가 떠올랐다.
카드를 터치해 린의 프로필을 열었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레벨을 확인하기 위해 무진장 오래전에 열어 본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외에는 딱히 열어서 확인할 게 없었으니까.
그때도 그냥 레벨만 확인하고 바로 닫았지 싶었다.
“어디 보자….”
프로필의 하단을 빠르게 훑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것이 있었다.
“헐… 언제 이런 게….”
예상이 맞았다는 게 더 놀라웠다.
멍해진 정신을 바로 잡기 위해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는 손가락으로 프로필을 터치했다.
이내 새로운 패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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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아이템 감정
계열: 보조, 패시브
던전의 아이템들을 확인할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 최상위 등급(S)은 물론, 히든 등급과 아티팩트 등급도 감정이 가능하다.
숙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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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린에게 새로운 스킬이 등록되어 있었다.
언제,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신경을 쓰지 못한 나도 문제지만, 자신에게 새로운 스킬이 생겼는지도 모른… 아니, 스킬을 썼으면서도 스킬인 줄 몰랐던 린이 더 어이가 없었다.
‘그나저나 이것도 진화의 영향이겠지?’
진화 후에 오식이는 돌격 스킬이 생겼다.
하지만, 린은 아무것도 없어서 내심 아쉬웠었다.
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스킬을 얻게 됐으니, 앞으로의 일에 기대감이 생겨났다.
레벨이 오르면 새로운 스킬이 생기는 각성자들처럼 녀석들도 레벨이 오를수록 새로운 스킬을 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휘릭….
린의 프로필과 카드를 치웠다.
멀뚱멀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아, 그랬군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
“으응… 그랬으니까, 말을 안 했겠지.”
잠시 틈을 주고는 기대감에 찬 예상까지 털어놨다.
“확실치는 않은데, 앞으로 또 다른 스킬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정말이요?”
“말했잖아, 확실치는 않다고. 하지만 살짝 기대는 하고 있어.”
“아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린이 간절한 듯 두 손을 모아쥐며 말했다.
그 모습에 피식하고는 물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떤 스킬을 얻고 싶은데?”
“음… 다음엔 제발 강력한 공격 스킬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공격 스킬? 지금도 충분히 강하잖아?”
“분명히 예전보다 강해지긴 했지만, 더 강해지고 싶어요.”
“왜지? 왜 강해지고 싶은데?”
“왜라니요, 당연히 주인님께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그렇죠.”
린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기분이 째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식, 어쩜 하는 말마다 예쁜 말만 골라서 하니?”
환하게 웃으며 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린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질투 어린 오식이의 눈빛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생기의 미약이란 거 효과가 대단한데? 회복 물약은 ‘쨉’도 되지 않겠어.”
원체 탁월한 회복력을 자랑하는 오식이가 사용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회복 물약보다 효능과 효과가 좋은 듯했다.
웬만해서는 피해가야 할 골렘 놈들을 일부러 깨워서라도 잡은 뒤, 몇 개 더 쟁여 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주인님.”
“응?”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는데요.”
“뭔데?”
“생기의 미약은 저희한테만 효과가 있어요.”
“응? 그게 무슨….”
“주인님은 흡입하셔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말이에요.”
이건 또 무슨 개떡 같은 경우인가 싶었다.
아니, 효과가 있으려면 다 같이 있어야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니….
“뭐야? 웬 차별? 그런 게 어딨어?”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린이 당혹스러워했다.
뭐, 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게 있기는 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생기의 미약과 반대된 ‘생명의 미약’이란 것이 존재했다.
몸뚱이의 재질이 돌이 아닌 진흙으로 된 ‘머드 골렘’에게서 얻을 수 있는 생명의 미약은 오로지 각성자들에게만 그 효과를 발휘했다.
아무튼.
듣자마자 발끈할 만큼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생기의 미약의 효능과 효과는 무시할 게 아니었다.
내가 아니면 어떤가?
녀석들이 유용하게 쓰면 그것으로도 나와 우리에게는 커다란 이득인 것을.
“오식아! 몇 마리 더 잡을 수 있지?”
“잡는다! 이긴다! 문제없다!”
녀석이 모닝스타를 들어 보이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좋았어! 놈을 찾아!”
당장에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성과가 빨리 나타나지는 않았다.
몸과 형체를 꼭꼭 숨긴 채, 곤히 잠들어 있는 놈들은 아무리 기를 쓰고 기척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딱 봐도 널찍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바위와 돌덩이를 툭툭 건드리는 원초적인 노가다를 이어 나가야만 했다.
“젠장, 대체 어디 숨어 있는 거야?”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이건 뭐 마음먹고 찾으려니까 더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다고 아예 놈들이 없을 리는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끝내는 물가 옆에 숨어 잠들어 있던 놈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그그….
“찾았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녀석들이 재빨리 모여들었다.
“그르르르릉!”
단잠을 깨운 우리를 향해 놈이 으르렁거렸다.
그보다 더욱더 큰 소리로 포효한 오식이가 모닝스타를 앞세우고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앙!”
* * *
열흘… 골렘의 서식지인 계곡에 머문 지 열흘이 지났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열 개만 채우자고 했던 생기의 미약 노가다가 불러온 지랄 같은 시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가다는 실패였다.
그것도 대실패….
딱 열 개만 모으자 했던 나름 소박한 계획은 열흘째인 오늘의 사냥을 마무리하면서도 고작 두 개밖에 이루지 못했다.
계획에 실패한 원인과 이유야 당연히 있었다.
일단은 지랄 같은 드롭률.
극악이라 불리는 자이언트 샌드 웜의 마정석이나 귀환석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지만, 생기의 미약도 드롭률이 참으로 더러웠다.
다음은 거지 같은 효율성.
골렘의 서식지인 계곡은 상당히 넓었다.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험난하기도 했다.
그런 데다가 서식하는 골렘의 숫자도 너무나 적었다.
열흘간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뽑아낸 놈들의 숫자는 정확히 열둘이었다.
특이하게도 리젠 자체가 없었다.
열둘을 모두 잡으면 그날은 땡이었고, 사마귀 놈들이 있던 정글처럼 다음 날 동이 트면 다시 열둘이 생성되는 시스템이었다.
가뜩이나 움직이기 불편하고, 넓기도 넓은 곳에서 기척조차 하나 없이 랜덤으로 잠들어 있는 골렘을 찾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더불어 놈을 상대하고,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오식이뿐이었다.
날붙이인 아수라 스워드는 말할 것도 없고, 파탄조차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린의 빗자루와 먼지떨이도 마찬가지.
하물며, 왕울이의 윈드 커터도 놈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오로지 오식이의 모닝스타만이 놈들을 부수고, 잠재울 수 있었다.
첫날, 오식이가 흡입한 것까지 두 개를 얻을 수 있었다.
해서, 드롭률이 지랄 같다고 여기지 않았다.
둘째 날은 꽝이었고, 셋째 날에 하나를 더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함정이었고, 우리를 착각 속에 빠뜨리는 계기가 됐다.
나흘, 닷새, 엿새… 날이 지나고 지나도 생기의 미약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나오겠지!”
기대는 점점 오기로 변했고, 끝내 열흘인 오늘이 되었다.
결과는 앞서 말한 대로 젠장이었다.
“후우우… 썩을….”